박 교수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가볍게 차를 마시며 호흡을 가다듬는 동안 공 기자는 펜을 다시 고쳐 잡고 그의 설명을 받아 적을 준비를 끝냈다.
“왜 타이완의 혐한이 생겼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대부분 그런 소리를 해요. 한국이 자기네 나라를 배신하고 중국이랑 손을 잡았다고.”
“아, 우리나라가 중국과 수교하면서 타이완과 단교했던 거요?”
“네. 1992년 8월 24일이었어요. 그때 중국과 손잡겠다고 하면서 당연히 중국에서는나라로도 인정하지 않던 타이완과 단교를 하게 되었고, 당시 타이완은 자신들이 대사관으로 쓰던 건물에서 마저도 쫓겨났고 그 건물에 중국 대사관이 당당히 입성했죠.”
“우리가 생각했을 때는 이해가 안 되지만, 배신이라고 느낄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공 기자도 그렇게 생각해요?”
박 교수가 넌지시 공 기자의 생각을 물었다. 공 기자가 뭔가 질문의 후면에 숨겨진 진의가 있음을 어렴풋이 눈치챈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뭔가가 있었던 거군요?”
“타이완이 UN에서 언제 쫓겨났는지 알아요?”
“UN에서 쫓겨났었나요? 타이완이 들어가긴 했었나요, UN에?”
“공 기자가 그렇게 기억할 정도니 일반 사람들은 어떻겠어요?우리는 타이완에 대한 아무런 관심이 없으니까,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들에 대한 기억이 없는 거예요. 나도 이번에 이 일을 겪으면서 책을 엮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자료를 정리하며 알게 된 거예요. 실제로 그들은 UN에 아주 구애를 하다못해 노래를 부르며 매달려 있다가 1971년에 중국의 알력에 의해서 쫓겨나요. 그런데 더 웃긴 게 있어요. 그들이 일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아요?”
“하아, 이렇게 질문하시는데도 제가 제대로 답변할 수 있는 게 없네요. 제가 정말로 타이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게 실감이 나요. 근데, 타이완도 일제 식민지 아니었나요? 그엄 당연히 싫어하지 않나요? 제가 타이완을 한 번 여행으로 다녀온 게 고작이라서요. 하하! 죄송합니다.”
머리숱도 하나도 없는 스킨헤드의 공기자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에요. 공 기자의 무관심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타이완에 관심을 갖지 않았죠, 아니. 가질 필요가 없었죠. 정답부터 말하자면, 타이완은 똑같이 위안부까지 두고 국권을 유린당했음에도 지금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전 세계국 중에서도 1위예요. 특히나 기성세대는 절대적이죠. 요즘 세대들은 조금 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요? 왜죠? 우리나라랑 똑같은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요?”
“그렇죠. 그게 한국 사람들이 타이완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점이라고 해요. 일제 식민지 시대를 통해서 타이완에서는 금이 많이 나왔어요. 군자금의 화수분이었죠. 그래서 그 금괴들을 옮기기 위해 철도를 놓아주고, 도시화를 진행했고, 일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게 했고, 어찌 보면 우리나라랑 똑같이 굴었는데, 단 한 가지만 달랐어요.”
“그게 뭐죠?”
“타이완 원주민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외국인들의 침략으로 점철된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자기네들을 정복한 이들에게 순응하는 것이 익숙해 있었어요. 나쁘게 말하면 정복당하는 거에 익숙한 민족이었고, 좋게 말하면 그저 순한 바보들이었던 거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고 일본 제국에서 철도를 놓고 도시화를 하며 새 건물을 짓고 하는 행위들이 결국 식민지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것이라고 여겨 우리나라에서는 굉장한 반발을 샀잖아요. 그게 결국 독립운동과 반일운동으로 이어진 거고.”
“그렇죠. 그런데 타이완은 그렇지 않았다는 말씀이신가요?”
“맞았어요. 타이완에서는 그걸 감사히 여기고, 자기네들한테 일본어를 가르쳐 주고 문명화해준 감사한 존재라고 일본이 요구한 대로 가스 라이팅이 된 거예요. 완벽하게.”
“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그래서 지금 일본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라를 꼽으라고 하면 타이완을 꼽는대요. 특히 나이가 좀 있는 기성세대들은 타이완에 여행 오면 너무도 감격해서 눈물을 흘릴 정도예요, 아직도.”
“왜요?”
“자기네가 지배했던 그 건물들과 그 구조들이 문화재로 그대로 보존되어서 타이완 애들이 애지중지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거든요. 자기 나라가 아시아를 지배했던 향수를 타이완에 가면 그대로 느낄 수 있으니까요.”
“아,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타이완에 갔을 때 타이베이 쪽 어디였나 온천에 갔더니 일본 식민지 시대 때 온천을 만들었다고 그래서 그 마을을 그대로 뒀다고 하는 게 기억이 나네요. 그런 거였군요.”
“우리는 조선총독부 건물도 다 부숴버렸잖아요, 일제의 잔재라고.”
“그렇죠.”
“그런데 얘네는 그 건물들을 안에만 리모델링해서 문화유적처럼 아주 감사하게 쓰면서 실제로 마음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나이 든 기성층에게 어필하겠다고 심지어 선거 포스터에 일본어로 표어를 쓰는 정신 나간 후보도 있어요, 아직까지도.”
“네에?”
“어찌 되었든, 얘기가 너무 퍼지니까 아까 얘기로 돌아올게요. UN에서 쫓겨난 타이완인들에게 이듬해인 1972년에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나요.”
“그게 뭐죠?”
공 기자는 마냥 신이 나서 계속 박 교수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다음을 물었다.
“일본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타이완과 단교를 선언한 거죠.”
“네? 그럼, 한국보다 20년이나 먼저 한 거잖아요?”
“그렇죠. 우리나라가 가장 늦었어요.”
“그럼 미국도?”
“네. 미국은 1979년까지 중국과 줄다리기를 하다가 결국 수교를 결정하면서 타이완을 버리게 되죠.”
“그런데 왜....?”
“맞아요. 한국은 끝까지 나름 의리를 지키고 지키다가 1992년이 되어서야 마지막으로 단교를 결정한 거예요. 그것도 한국의 결정이라기보다 세계화의 추세에 맞춘 거죠. 중국의 개방이 그즈음에 결정되면서 시대의 흐름인 셈이었으니까요.”
“그러네요. 그런데 왜 걔네는...?”
“그러니까 핑계라는 거예요. 사실 자료를 검토하다 보니 실제 언론보도에서 가짜뉴스를 활용하면서까지 혐한이 본격화된 건 1986년 즈음부터였어요.”
“그때 무슨 계기가 될만한 사건이라도 있었나요?”
“있다면 있었죠. 한국이 아시안게임을 치르고, 이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고 불리던 중에 가장 먼저 치고 나가면서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그게 걔네랑 무슨 상관이....”
“배가 아팠던 거예요. 자기네는 나라로 인정도 못 받는데 세계적인 경기를 유치하고 올림픽을 아시아 네 마리 용 중에서 가장 먼저 치르게 되면서 2년 간격으로 아시안게임에 올림픽까지 이어지는 경제 고속 성장을 보기가 배가 아팠던 거죠.”
“이런 썩을...아이구 죄송합니다. 어떻게 그런 심보가 있죠?”
“당시 타이완의 보도들을 찾아보면, 한국에서 보신탕을 먹는다는 사실을 확대하려고 보신탕 골목을 취재하고 대서특필한다거나 난지도에 가서 한국은 쓰레기 더미의 나라라고 보도를 한다거나 하는 황색 언론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어요. 뭐든 어떻게든 끌어내리고 욕하고, 그러는 거죠.”
“그게 지금까지 이어오는 건가요?”
“당시에 그들이 그랬던 건, 사실 그럴만한 이유랄까? 배경이 있었어요. 그리고 참고로 말하자면 지금 관심을 가져하는 이 일의 배후...”
“아, 그 주영희?”
“네. 그놈이 외교대학교 한국어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에 와서 얼쩡거리며 특파원 신분도 아니었다가 카메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어 타이완에 팔다가 이웅평이 한국에 미그기를 타고 온 사진을 현장에 가서 대거 찍어 보내면서 졸지에 특채되었던 게 그 시기였어요, 그러니까 혐한 보도가 그놈의 손에서 다 만들어진 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닌 거죠.”
“아, 그놈이 그때부터 싹수가 보였군요.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배경이라 하심은?”
“네. 당시에는 그들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살았거든요.”
“타이완이 우리나라 보다요?”
“네. 그래서 당시에 중국으로 유학을 갈 수 없었던 중문과나 동양화 전공하는 이들이 모두 타이완으로 유학을 가던 시기였어요. 타이완보다 우리나라의 GDP가 높아지면서 경제성장이 역전된 건 노무현 대통령 때가 되어서예요.”
“아, 그래요? 정말로 저를 포함해서 한국 사람들은 타이완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고 있었네요.”
“알 필요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중요한 건, 그즈음이 되면서 또 혐한이 난리를 치는 거예요. 그들은 내내 한국을 주시하고 신경 쓰고 있었거든요.”
“걔네는 왜 그렇게 한국에 대해서 라이벌 의식 같은 걸 가지고 있는 거죠?”
“그걸 나는 머슴 의식이라는 표현으로 글에서 정리했어요.”
“머슴 의식이요?”
“일본 식민지 시기에는 타이완이 1980년대보다 훨씬 더 조선의 상황보다 윤택했다고 아까 설명했었죠?”
“네. 그 황금이 나오던 금맥을 가진 곳이었으니까... 아무래도...”
“맞아요. 그래서 일본도 돈줄을 확보한 곳이라서 그렇게 거칠게 할 필요도 없었고, 무엇보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그 사람들은 항일운동이라던가 독립운동 같은 걸 한 역사가 없어요. 즉 저항 자체가 없이 너무도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식민지의 역사를 이어왔던 거죠. 그런데 대한민국은 독립운동에 항일운동에 난리가 아니었던 거예요.”
“네. 그랬죠.”
“그런데 생각해봐요. 식민지 치하의 국민들을 머슴국이라고 본다면, 머슴에도 서열이라는 게 있단 말이에요. 필리핀도 일본군이 주둔했고, 동남아를 대동아 전쟁이라며 자기네가 패권을 잡으려고 했어요. 그러면 타이완 입장에서는 자기네가 돈줄 역할이니까 머슴 중에서도 대장급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뭐 걔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뭐. 착각은 자유니까요.”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1990년대까지 그들이 쭉 한국을 앞설 수 있었던 건 그 당시에 마련되었던 기반시설과 기술 전수 등등이 아주 큰 역할을 했거든요.”
“그럴 수도 있었겠네요. 아무래도 일본이 건물부터 해서 모든 것들을 두고 전쟁이 끝났으니까...”
“예컨대, 최근도 타이완에는 제빵기술이 모두 일본식이에요. 한국에서는 제빵기술이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온 사람도 있고, 미국식 빵도 있고, 여러 가지가 섞여 있잖아요. 물론 일본에서 제빵 기술을 배운 사람들도 있지만 그게 주류는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타이완의 제과점에 가보면 모든 제빵기술이 한결같이 일본식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일본에 여행을 많이 다녔던 사람들은 타이완에 가면 일본의 먹거리에 일본 화장품 광고에 일본 제품으로 도배된 광고에 조금 헷갈려할 정도거든요.”
“아, 그러고 보니 제가 여행 갔을 때도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네요. 오타쿠 같은 애들이 모여 있었던 것도 본 것 같고...”
“그런데 머슴 대장의 입장에서는 모든 머슴들이 자유를 얻고 노비 서류를 다 태워버렸어요, 그런데도 노비 의식은 본능적으로 남아 있는데, 자기 밑에 있어야 할 머슴에 해당하는 한국이 일본을 깔보고 일본보다 더 잘 나가겠다는 둥 타이완도 금방 따라잡는다는 둥 헛소리를 하는 것 같더니 정말로 급성장을 하면서 아시안 게임을 하고 올림픽을 하더니 한국에 놀라가면 몇 달만에 서울의 야경이 바뀌어 있는 걸 보게 된 거예요. 그러면 머슴 반장의 마음이 어떨까요?”
“불안하고 속이 뒤집히겠죠? 아무래도 자기가 쫓기는 입장이기도 할 테니까...”
“그게 내가 분석한 그들의 혐한의 알맹이예요. 정말로 말하고 싶지만 말도 못 하고 심지어 그들도 제대로 분석해보지도 못한”
“아! 그런 거군요.”
“그런 심리가 아까 이전 여자 학과장에게도 밑바탕에 깔려 있었던 거예요.”
“그런 거였군요.”
“그런데 주영희는 바로 그때 혐한에 나팔을 불던 놈인데 너무도 당연히 분통이 터질 지경이겠죠. 왜냐하면 지금은 또 한류까지 오면서 중화권의 교두보로 한국의 엔터사업이나 게임 사업들이 타이완을 연습무대로 삼고 있거든요. 게다가 타이완 젊은 애들은 아주 한국 연예인에 미쳐서 난리를 치고, 타이완 아줌마들은 한국 드라마라면 아주 사족을 못쓰니 혐한을 노래 부르던 이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미치고 팔짝 뛰는 거죠. 그런데 그들도 먹고살아야 하니,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된 거죠.”
“가면이요?”
“주영희의 이름을 검색해보면, 버젓이 외교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라고 사칭하면서 한겨레 신문 쪽이랑 연계해서 광주사태 관련 사업회나 제주 4.3 사태 사업회에 불려 다니며 용돈을 챙기고 있어요. 있지도 않은 친한 단체를 운영한다고 사기를 치고, 자칭 타이완 2.28 기념사업회 회장 입네 하는 유령 명함까지 돌려가며 한국과 연계해서 호가호위하며 빈대 붙어 콩고물 떨어지는 걸 챙겨 먹는 거죠.”
“아, 그런 식으로 기생충처럼 사는 놈이었군요.”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한 번도 만나서 말을 섞어본 적도 없지만, 그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블로그가 있거든요. 거기 가서 보면 아주 가관이 아니에요. 이미 공기자도 찾아봤겠지만, 내가 부임하던 해에 일본 우익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그 글, 중선 일보 기자가 열 받아서 통째로 번역해서 대서특필해서 풀었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