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따끈한 오뎅과 함께 마시는 사케, 생각만으로도 속이 뜨끈해지는 느낌이 든다. 앞서 공부했던 중국술은 거의 마실 때 온도를 크게 조절해서 마시지 않았지만, 일본은 디테일이 살아 있는 문화답게 차갑게 마시는 사케와 데워서 마시는 사케 등 마시는 방법이 제각기 다르고 그렇게 제대로 해서 마실 때 본연의 맛을 더 살릴 수 있게 된다.
사케를 데우는 행위, 또는 데운 사케를 일본에서는 ‘아츠캉(熱燗)’이라고 부른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사케를 무조건 데워서 마시는 것은 물론 아니다. 데워서 괜찮은 술이 있는 반면, 차갑게 마시는 것이 가장 맛있는 사케를 어설픈 흉내를 내겠다고 데우는 순간 맛을 다 버려버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공부했던 종류에 따라 예를 들자면, 다이긴조와 같은 술은 워낙 양조과정에서도 열처리 등에 민감하고 섬세한 조절을 거쳤기 때문에 데우면 오히려 그 비싼 사케를 모두 망쳐버리게 된다.
준마이슈나 혼조조 같은 경우는 데웠을 때 술의 다양한 맛이 활성화되면서 차가울 때는 잘 느끼지 못했던 미묘한 매력들이 되살아나 그냥 마실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사케를 데우는 것도 온도에 따라 다양한 명칭이 있는데, 알아두면 주문할 때 도움이 된다.
• 히나타캉(日向燗) : 33도 전후. 햇볕이 내리 쬐이는 정도의 온도.
• 히토하다캉(人肌燗) : 37도 전후. 사람의 체온 정도에 맞춘 온도.
• 누루캉(ぬる燗) : 40도 전후.
• 조캉(上燗) : 45도 전후.
• 아츠캉(熱燗) : 50도 전후
• 토비키리캉(飛び切り燗) : 55도 이상
물론 이런 미묘한 주문방식은 한국의 이자카야에서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저 아츠캉(熱燗)으로 달라고 하면 데워주는 정도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집에서 아츠캉(熱燗)을 하려고 하다가 알코올을 모두 휘발시켜버리는 우를 범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
앞에서 설명해주었지만 술을 데우는 방식은 언제나 조심스러운 중탕으로 하되 알코올이 휘발될 정도여서는 안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잡내가 딱 날아가버릴 정도인데, 그걸 맞출 초심자는 없으니 적당히 너무 뜨겁지 않은 상태로 도쿠리에 덜어 중탕을 하여 따끈하게 마실 정도로 만든다는 생각을 하면 된다. 절대 술을 데울 때, 자리를 비우는 바보짓으로 밥을 태워버리듯 사케를 날려버리지 말 것.
데워마시는 사케는 어떻게 고르나요?
그렇다면 데워 마시는 사케를 어떤 기준으로 골라야 할 것인가? 초심자 입장에서는 기껏 선물 받은 사케이거나 맘먹고 사케를 멋지게 마시겠다고 도쿠리까지 사뒀는데 정작 어떤 사케를 데울지 정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데워서 마시는 사케를 고르는 몇 가지 간단히 소개한다.
- 사케의 맛에 따라 고르는 법
보통 감칠맛과 산미가 높은 묵직한 느낌의 사케를 고르면 크게 실패할 확률은 줄어든다. 풍미가 진하고 농후한 사케는 온도가 올라가면 고유의 풍성한 향미가 퍼지면서 입안에 은은한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화려한 향이 특징인 긴죠나 갓 걸러낸 싱싱한 맛이 중요한 나마겐슈나 나마슈는 데우는 순간, 풍미가 없어져 버리니 아츠캉에는 적합하지 않다.
초심자에게 추천하는 이 기본 원칙에 부합하는 사케로는 감칠맛과 산미가 높은 ‘이치노쿠라 토쿠베츠 준마이 가라구치’가 있다.
- 산도에 따라 고르는 법
가장 과학적인 근거가 명확한 방법. 실제로 모든 사케에 대해 알고 있지 못하는 일본의 이자카야에서도 사케를 데우는 기본 분류법으로 이 방법을 사용한다. 산도가 높은(단맛이 적고 농후한 맛이 나는) 사케가 일반적으로 아츠캉(熱燗)에 적당하다. 산도가 높은 사케는 입에 조금 머금어보면, 단맛이 적고 진한 맛과 조금 쎈 알코올의 기운이 올라온다고 보면 되고, 산도가 낮은 사케는 입에 머금고 있으면 달짝지근함이 살짝 느껴지며 맑고 담백한 맛을 느끼게 한다.
일반적으로 이렇긴 한데, 정 궁금하면 당신에게는 인터넷 검색으로 어떤 사케든지 산도를 확인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 준마이와 혼조조를 중심으로 선택하는 법
앞서 설명했던 종류로 무난하게 대분류에 따라 선택하는 방법이다. 50도 미만으로 데워 먹는 데는 준마이(純米)가 가장 무난하다. 앞에서 공부했던 것처럼 준마이 자체가 감칠맛이 특징인 사케라 데우게 되면 자연스레 그 풍미가 본래 가진 것보다 훨씬 올라가는 효과를 보여준다.
준마이 중에서도 키모토 즈쿠리(生酛造り)나 야마하이 시코미(山廃仕込み) 방식으로 만든 준마이가 데워먹기에 마시기에 좋으니 참고할 것.
조금 부언하자면, 키모토 즈쿠리(生酛造り)는 자연 방식을 활용해 예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야마오로시(山おろし)’라는 전통 방식으로 발효를 진행하기 때문에 상당한 노동력을 요하는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야마하이 시코미(山廃仕込み)는, 키모토(生酛)와 마찬가지로 생효모를 사용해 발효하지만 발효 과정 중 찐쌀과 누룩을 고루 뒤섞어 섞는 과정인 야마오로시(1~3일간 노동력으로 승부하는)를 하지 않고 저절로 발효하도록 놔두는 방식이다. 최근에 야마하이 시코미(山廃仕込み)의 방식이 주로 사용된다.
한국의 이자카야에 가서 가장 많이 마시는 도쿠리 사케는 따끈한 50도가 아닌, ‘뜨끈한’ 대략 60도 이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정도로 조금 강한 토비키리캉(飛び切り燗)으로 마실 경우에는 앞에서 배운 분류 중에서 혼조조(本醸造)계가 가장 무난하다. 혼조조는 양조 알코올을 사용해 향과 맛을 끌어올렸기 때문에 따끈하게 데워도 향미에 손상이 전혀 가지 않기 때문에 알코올이 모두 휘발되어버릴 위험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냥 분류법 말고 데워마시는 사케를 추천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면, 어떤 사케를 데우고 어떤 사케를 데워서는 안 되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질문을 할 수 있다. 그 수많은 사케들에 대해 절대적인 룰이란 없다. 앞서 예를 들었던 다이긴조라고 해서 무조건 데우면 망하는가 하면 예외도 분명히 있다. 가장 좋은 정답은 해당 사케를 만든 양조장 혹은 브랜드에서 추천하는 방법이 있다. 물론 설명서가 첨부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를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유명한 브랜드의 라인업들은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추천 음용 온도 등을 구입처에서 설명해준다.
요즘은 홈페이지나 판매처에서 음용 온도 자체를 아예 표시하는 서비스를 해주고 있다. 물론 그렇게 자주 사케를 마시는 것도 아니고, 사케 공부하면서 그 많은 사케를 마실 것도 아니라면서 추천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따끈하게 데워 마시면 맛있는 사케를 추천해준다.
아츠캉(熱燗)으로 마실 때 가장 맛있는 혼조조 (本醸造)
아래 설명 순서대로
- 오야마 칸레 가라쿠치 (大山 燗麗辛口)
2015년 아츠캉부분 금상을 수상했던 사케로 데워마시면 깔끔한 뒷맛이 최고!
- 구스다마 히다노 카라캉(久寿玉 飛騨乃辛燗)
가성비 갑으로 유명한 아츠캉(熱燗)에 최적화된 사케. 단, 미지근할 정도의 수준일 때 풍미가 가장 좋으니 너무 데워서 맛을 버리는 일이 없도록.
- 야에가키(八重垣)
2018년 일본 아츠캉(熱燗) 부문 금상을 수상한 사케.
- 가미고코로 히호 (嘉美心 秘宝)
사케의 묘한 향이 부담되어 잘 못 마시는 이들에게도 목 넘김이 좋은 사케로 정평이 나 있는 사케. 이것 역시 미지근할 정도의 온도로, 절대 따끈따끈할 때까지 데우지 않는 것이 포인트.
- 츠카사보탄 토사노 쵸가라쿠치 (司牡丹 土佐の超辛口)
뒷에 묘하게 끈적거리는 느낌의 사케들이 갖는 안 좋은 느낌을 모두 없앤 듯한 담백한 맛의 대명사. 카라쿠치 중에서도 가장 쎄다고 이름에 아예 달고 있는 만큼 드라이한 산미가 확실하게 강해서 데웠을 때 그 풍미가 최고조로 올라가는 사케, 되시겠다.
한국의 이자카야에 갔을 때 뒤에 놓여 있는 정종 대병 같은 것이 대개 혼조조라고 보면 되는데, 양도 크고 대체적으로 이자카야에 가서 아츠캉(熱燗)을 해달라고 하면 그 녀석들 중에 가장 저렴한 녀석을 가장 비싼 가격에 바가지 씌우는 경우가 대부분. 그래서 사케 공부를 좀 하고 나서 맛을 알게 되면 집에서 사다가 분위기 있게 안주를 갖춰 마시게 되는데, 그럴 경우에는 무겁게 혼조조를 사다가 마시는 것보다 공부했던 준마이는 데워마시면 고유의 향미가 올라가면서 이자카야에서 마셨던 아츠캉(熱燗)보다 훨씬 맛 좋은 데워 마시는 사케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다만, 준마이는 혼조조와 다르게 45도 미만으로 뜨겁지 않게, 앞서 몇 번이나 강조한 것처럼 도쿠리에 덜어 중탕하는 기술에 신경 써야 한다. 50도 이상으로 올라가버리면 본래의 맛보다 더 드라이한 맛으로 변해버리니 주의할 것.
그냥 마셔도 좋지만 데워 마시면 그 진가를 발휘하는 준마이(純米)
아래 설명 순서대로
- 텐쥬 (天寿純米酒 天寿)
2015년 프리미엄 아츠캉(熱燗) 부문 금상을 수상한 사케. 사실 아츠캉(熱燗)을 하지 않아도 매끄럽고 부드러운 목 넘김으로 유명하다. 아츠캉(熱燗)을 하면 더 풍미가 배가된다는 사실. 아키타(秋田)를 대표하는 지자케이기도 하다.
- 오야마 토미즈 (大山 十水)
‘토미즈(十水)’라는 뜻은, 쌀 10 섬에 물 10 섬을 넣고 발효시키는 전통적인 양조방식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일반 양조 방식보다 물을 적게 넣고 발효시켜 농후한 맛이 특징인데, 이렇게 양조할 경우, 기본적으로 쌀이 가진 감칠맛과 단맛이 우러나오게 된다고 한다. 2014년 아츠캉(熱燗) 부문 금상을 수상작.
- 이치노쿠라 카라쿠치 (一ノ蔵特別純米酒 辛口)
드라이한 맛, 카라쿠치 사케의 대표로 불리는 사케. 카라쿠치의 대장 격인 오니고로시의 +12의 극강 카라쿠치까지는 아니고 +1.0~+3.0의 약간 정도만 카라쿠치의 맛을 주면서 오히려 약간 단맛이 입안에 남을 정도의 깔끔함이 느껴지는 맛. 2017년 아츠캉(熱燗) 부문 금상을 수상한 녀석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케는, 차게 마시는 방법과 그냥 상온에서 마실 때와 데워서 아츠캉(熱燗)으로 마실 때, 모두 조금씩 다른 맛을 내는 참 신기한 녀석이라는 점. 물론 다른 사케가 다 다른 것은 아니지만 이 사케의 경우는 세 가지 모두와 함께는 물론 함께 하는 안주에 따라서도 맛이 색다르게 다가온다는 재미있는 실험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