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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an 19. 2022

차갑게 해서 마시는 사케도 있다구요.

니혼슈(日本酒)의 세계 -5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699


- 우라가스미 키잇뽄 (浦霞 生一本)


우라가스미 키잇뽄의 가장 큰 장점은 안주와의 함께 할 때 그 맛이 훨씬 더 배가된다는 것이다. 무슨 의미인지 의아할 수 있는데, 사케 자체만 마셨을 때에 온전히 그 맛을 내는 것이 좋은 술임에도 불구하고, 사케만 흔히 말하는 깡으로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더군다나 아츠캉(熱燗)으로 마실 경우에는 그것에 맞는 안주를 맞추기가 조금 난해한 경우도 있다. 잘못 먹게 되면 사케의 맛도 안주의 맛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심자들이 안심하고 어떤 안주를 선택하더라도 포용해줄 수 있는 무난한 아츠캉(熱燗)이 있지 않겠는가? 그 대표적인 사케가 바로 우라가스미 키잇뽄, 되시겠다. 심지어 집에서 식사할 때 반주 아츠캉(熱燗)으로 곁들여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 나구라야마 겟큐 (名倉山純米酒 月弓)

 

겟큐를 양조하는 ‘나구라야마 주조(名倉山酒造)’는 ‘깔끔하면서도 달콤한 풍미’를 모토로 하는 양조장이다. 겟큐는 그러한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대표선수 격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목 넘김과 풍미가 적당히 갖춰진 사케로 아츠캉(熱燗)을 하게 되면 그 풍미가 훨씬 배가되는 전형적인 사케이다. 다만 온도를 너무 뜨겁게 데우게 되면 은은한 향을 지워버리는 악수를 두게 되니 주의할 것, 중탕을 위한 물을 뜨겁게 한 정도에 미지근하게 데워지면, 자연스럽게 그 은은한 향이 퍼지기 시작하며 입맛을 돋아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한국의 이자카야에서 아츠캉(熱燗)로 내놓는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혼조조와 준마이까지가 초심자용. 이자카야에서 마시는 것으로 연습을 시작해서 집에서 아츠캉(熱燗)을 좀 해봤다 싶으면 이제 주종을 조금 특별한 쪽으로 옮겨갈 단계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전 시간에 공부한 사케의 분류 중에서도 키모토와 야마하이는 아츠캉(熱燗)의 중급자 이상들이 즐겨마시기 위해 선택하는 사케이다. 이미 혼조조와 준마이로 아츠캉(熱燗)의 세계에 맛을 알게 되었다면 그 두 가지보다 산도가 높은 야마하이와 키모토가 주는 농후한 맛을 십분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래서 배움은 끝이 없다는 것, 아닐까?

 

아츠캉으로 마시기 좋은 키모토(生酛)와 야마하이(山廃)

 

- 오토코야마 키모토 준마이 (男山 生酛純米酒)

 

사케를 마시는 이들에게는 생각보다 이름이 많이 알려진, 오토코야마(男山)는 이름에서 풍기는 대로라면 엄청 남성적이고 거친 맛일 듯 하지만, 실제로는 잘 발효된 쌀에서 퍼져 나오는 깊은 단맛이 은은한 것이 천상 여성적인 맛이다. 대개 이 브랜드를 아는 이들은 상온에서 그냥 마시거나 심지어 차갑게 해서 마시기도 하는데, 아츠캉(熱燗)으로 한번 마셔보면 왜 산도가 높을수록 아츠캉(熱燗)에 적합하다고 하는지 그 차이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 히라이즈미 초쿄 (飛良泉 長享)

 

야마하이 방식의 사케가 어떤 맛인지 설명하기 어려울 때 추천하는 사케 중 하나. 사케 고유의 풍미와 산미가 어울려 거친 듯하면서 확 다가오는 특유의 야마하이만으로 만들 수 있는 맛을 느껴볼 수 있다. 초쿄(長享)라는 이름은 히라이즈미 혼포 양조장이 창업한 1487년이 일본 연호로 초쿄(長享) 원년이라 그렇게 지은 것이다.

 

- 데와노유키 유키 준마이 (出羽ノ雪 雪 純米)

 

아름다운 눈의 결정 모양을 전면에 드러낸 유키(雪). 이 사케는 400년 이상된 유서 깊은 양조장에서 전통적인 생효모(키모토) 방식으로 만든 사케로, 2018년 누루캉(ぬる燗) 부문(아츠캉보다 낮은 온도) 금상을 수상한 술로, 특히 기름진 덴뿌라(튀김)와 궁합이 아주 잘 맞는 사케.

 

- 이치노쿠라 엔유 (一ノ蔵 円融)

 

엔유는 야마하이 방식으로 제조하되, 1년간의 숙성과정을 거쳐 출시되는 사케이다. 1년간의 숙성 기간을 거치며 사케의 5가지 맛은 엔유(円融)라는 이름처럼 완전히 모든 맛을 하나의 조화로운 맛으로 융화시키게 된다. 이 사케는 조금 뜨겁게 50도 정도의 진정한 아츠캉(熱燗)으로 바로 마시기 조금 뜨거울 정도의 수준으로 데우는 것이 포인트. 뜨거울 때 올라오는 김에서 느껴지는 원숙한 풍미가 최고의 맛을 선사한다.

 

- 다이시치 준마이 키모토 (大七 純米 生酛)

 

묘한 복숭아 향이 올라오며 깔끔함과 감칠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아츠캉(熱燗)을 하게 되면 본연의 향과 풍미의 두배 이상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아츠캉(熱燗)에 최적화된 사케. 다만, 후쿠시마에 양조장이 있는 관계로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찾는 이들이 급감해버린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케, 되시겠다.

 

사케는 온도에 따라 맛이 전혀 달라진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보통 유명한 술의 경우 제품 후면 등에 적정 음용법이 설명되어있지만, 그런 설명이 없을 때에도 선택하는 방법은 또 있다. 일단 상온 상태에서 마셨을 때(혹은 차게 마셨을 때) 단맛이 강한가를 판단하고 단맛이 강한 사케는 차갑게, 단맛이 적고 드라이하다 싶은 사케는 따뜻하게 데워 마시는 쪽이 좋다.


단맛의 경우 체온보다 낮아질수록 적게 느끼게 되는데, 차게 마실 경우 더 적게 느끼는 편이다. 따라서 상온 혹은 차게 마셨을 때 술이 달다고 느꼈다면 데워마시게 되면 더더욱 달게 느껴지게 된다. 때문에 단 술은 데워마시면 과도한 단맛에 부담스러워질 가능성이 높아지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단맛이 강하지 않다면 데워마시는 것이 어느 정도 술의 풍미를 느끼는 데에 좋다.

 

그러면 데워마시지 않는 사케나 차게 마시는 사케는 뭐라고 하나요?

보통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마실 때 꺼내서 가져오는 술은 ‘히야(冷や)’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술은 상온에서 유지된다. 사케 역시 일반적으로 히토하다(人肌), 즉 피부의 온도로 마시는 걸 기본으로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딱 피부에서 느껴지는 온도가 사케의 향을 느끼게 하기에 최적화되었다는 시간과 경험이 알려준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케의 특성에 따라 온도의 차이에 따라 그 맛이 배가되기도 하고 삭감되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만드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연구와 경험이 첨부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차갑게 마시는 사케를 부르는 명칭도 물론 따로 있다.

 

하나히에(花冷え) : 10도 정도로 시원하게 해서 마시는 방법

유키히에(雪冷え) : 5도 정도로 꽤 차게 해서 마시는 방법

 

사케도 소믈리에 제도가 있다구요?!

와인의 소믈리에와 같은 자격제도가 일본에서도 정착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기키자케시(利酒師)가 그것인데, 사케 소믈리에 정도의 의미로 이해하면 되겠다. 사케 서비스 연구회(SSI)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받고 시험을 응시하여 자격증을 부여받는 제도가 마련된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등급으로는 사케 내비게이터(日本酒ナビゲーター)가 있고, 상위 등급으로 올라가면 ‘사카쇼(酒匠)’라고 하는 등급이 있다. 사케 내비게이터는 시험 없이 교육만 받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자격이고, 사카쇼의 경우, 관련직 종사자가 SSI에서 주최한 체험실습 참가한 이력이 있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고, 교육과 시험의 내용도 훨씬 더 어렵다.

 

한국에서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 기본적인 상식 교육 수준으로 그렇게 믿을만한 자격증 제도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일본에서 키키자케시를 취득할 경우에는 일정 기간마다 갱신을 해야만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엄격한 반면, 한국에서는 그저 일회성으로 발급해주고 끝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교육받은 이들은 사케 아카데미에서 개인적인 지도를 받은 것보다 못한 수준인 경우가 허다하다.

 

2010년도에 ‘지자케붐(地酒ブーム)’이라는 게 있었다면서요?

지자케, 후쿠슈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일본의 사케는 전국구에 해당하는 내셔널브랜드(ナショナルブランド)와 각 지역 일본술을 대표하는 지자케(地酒)라는 것이 있다. 통상 일본 내에서 출하량 30위권내에 들어가는 전국구의 대형 메이커를 내셔널브랜드라 부르고, 그 이하의 소규모 지역 양조장을 지자케 브랜드라 구분하여 부른다.

 

내셔널브랜드의 경우는, 막강한 자본력과 유통망을 기반으로 전국에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평균적인 맛을 유지하는 것을 기본이다. 반면, 지자케의 경우는 다소 술의 질이라던가 전체적인 평균적인 맛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난점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작정하고 연구와 투자를 해서 이벤트 성으로, 극한에 가까운 양조기술로 놀라운 품질의 사케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특히,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거나 하다는 특징 때문에 각 기차역의 도시락이 인기를 얻는 것처럼 지자체의 지원과 이벤트로 인해 아무데서나 사서 마실 수 있는 내셔널브랜드의 사케보다, 빼어난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는 독특하면서도 추천할만한 지자케들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유행했다. 2000년대 후반 즈음부터 약간의 징조가 보이나 싶더니, 본격적인 붐이 2010년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일본에서는 그것을 ‘지자케 붐’이라고 불렀다.

 

이 현상의 가장 주요한 포인트는, 젊은이들이 사케의 맛을 즐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던 통계자료에서 알 수 있듯이 1974년을 정점으로 사케의 출하량과 인기는 계속 하향세로 치닫고 있었는데, 90년대 즈음부터는 아예 일본의 젊은 층에선 숙취가 심하다던가, 아저씨들이나 마시는 술이라고 비아냥거리며 사케를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지자케 붐으로 다시 출하량이나 판매량이 상승한 것은 아니지만 사케 시장의 판도가 조금씩 변화했다는 것이 이 현상의 주요한 핵심이다. 앞서 공부했던 후츠슈와 같은 품질이 떨어지는 술이나 내셔널브랜드에서 나온 아무런 특징이랄 것이 없는 사케들이 급격히 출하량이 줄어드는 반면, 지자케 브랜드에서 만드는 준마이슈 이상 등급의 추천할만한 사케들의 판매량이 조금씩 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현상은, 사케의 고급화 현상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는데, ‘기간 한정’을 이벤트로 다양한 더 고퀄리티의 개성 넘치는 신제품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양한 나츠자케, 히야오로시 등의 계절상품을 출시하며 소비자들의 입맛을 만족시키고 있다.

 

우유처럼 팩에 넣은 사케가 일본에 가니 있던데요?

지금이야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해지긴 했지만, 사실 우유나 주스에나 어울리는 종이팩에 사케가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한국인들에게는 여전히 생경한 문화충격이었다. 일본에서는 꽤 역사가 있는 이 물건은, 팩사케(サケパック)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전통적인 큰 댓병에 담지 않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편하게 구매하고 그리 큰 병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편의성이 젊은이들에게 어필하면서 제법 인기를 끌었다.

 

팩 사케의 퀄러티가 병에 담긴 것과 똑같은 거 맞나요?

아니다. 팩사케는 단순히 포장을 팩으로만 바꾼 것이 아니라, 가성비를 맞춘다는 의미에서 퀄러티도 당연히 병에 담긴 오리지널리티보다 떨어진다. 간혹, 팩에 담긴 다이긴죠도 시중에서 판매가 되고 있는 것을 볼 수도 있는데, 병에 판매되고 있는 멀쩡한 다이긴죠와 비교해서 마셔보면 퀄리티면에서는 비교할 수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팩사케가 모두 엉망이라면 판매되지 않았을 것이다. 프리미엄급을 찾는 것이 아니라면 팩사케 중에서도 웬만한 병에 담긴 레귤러 사케보다 월등한 퀄리티의 사케도 간간히 찾아볼 수 있다.

 

팩 사케는 요리용 맛술로 쓴다면서요?!

일본에서도 팩 사케를 마시는 용도로 사용하기보다는 요리용 맛술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기본적으로 일본요리에 워낙 청주가 많이 쓰이고, 직접 요리를 하는 이들이 사케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여성들인 탓에 그게 그거고, 가격도 적당하니까 그냥 쓰면 되지 않느냐는 무지에서 확산된 현상이다.


물론 출시한 브랜드들 입장에서는 마시라도 출시한 것인데 그런 오해를 받으니 억울할 수도 있지만, 그나마 그렇게라도 판매가 되고 있으니 뭐라 불평을 할 상황도 아니다. 보통 일본 현지에서도 맛술 용도가 아닌 마시는 목적으로 찾는 팩 사케의 경우는 후츠슈 조센(上撰), 준마이, 준마이긴조 까지가 대부분이고, 준마이 다이긴조까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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