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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n 18. 2021

몇 개 국어나 하세요?

남의 나라말을 능통하게 하는 것에 대하여

아주 오래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작품을 오늘 브런치에 정성스레 올렸다.

브런치 북으로 만들기 위해 적당히 나눠 총 12편으로 만들어 나누어 올렸다.



처음으로 내가 그림을 그려 넣은 작품이라,

그리고 그림책이라는 특성 때문에 외국어 번역 작업을 직접 해서 번역자 없이 전 세계에 출판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팔을 걷어붙였다.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야 휴가 때마다 놀러 가서 종종 사용하는 언어이니 '후딱'까지는 아니어도 작업할 만했다.

그런데 다음 언어들이 문제였다.

러시아어 번역판

가끔이긴 하지만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독일어와 프랑스어는 그렇다손치더라도 러시아어도 그렇고, 스페인어도 그렇고, 짧게는 수년간 길게는 수십년간 쓸 일이 없었던 터라 작품을 번역한다는 것은 제법 시간이 필요했다.

늘 사용했던 언어도 아니고

그 나라로 향하는 비행기가

그 나라의 공항에 도착할 즈음

한국어에서 스위치가 자동으로 바뀌어야

사용하기 시작하는 언어들이라

본래 한국어로 작성했던 것을

번역하는 느낌이 아닌

그 나라말로 새롭게 글을 쓰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스페인어 번역판

사실 해외의 출판사나 에이전시에게 연락이 와서 그곳에서 추천하는 능력 있는 번역가들에게 맡겨도 그만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처럼 유별난 작가가 아닌 다음에는 다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임을 안다.

하지만 시작한 김에 확실하게 창작한 이가 그림에서부터 8개 국어를 완벽하게 작업한 작품으로 남기고 싶은 욕심이 나를 매섭게 채찍질했다.

(그게 뭐라고 본업을 뒤로 하고)

외국어 번역을 끝내고 수차례 수개월간에 걸쳐 다시 퇴고하고 다듬고 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독일어 번역본

최종적으로 해당 국가에 있는 현지 교수들에게 도움을 청해 언어감수를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작품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며, 그리고 그림이 너무 아름답다며

분에 넘치는 칭찬과 격려를 해주었다.

정작 언어에 대해서는 빨간펜 한 두개 말고는

별 말이 없었다.



외국어를 배우면서 아주 안 좋은 버릇이 하나 생겼더랬다.

우리나라 말을 아주 잘하시네요.


이 말을 들으면 너무너무 분해서 그날 밤잠을 설치고 이불 킥이란 걸 했더랬다.

한국인에게 한국어를 잘한다고 칭찬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기준과 이유에서였다.

같은 침대를 쓰는 사람에게 뭘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늘 핀잔을 듣곤 했지만

그저 퍼포먼스가 아니라 나는 정말 분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어디서 이상한 부분이 걸려 나온 거지?


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시장을 찾아 그들과 흥정하는 대화를 하는 것이 즐거웠다.

내가 외국어를 공부했던 이유는

최소한 그거 하나로 충분했다.

물론 그 나라의 세미나에 가서

그 나라말로 논문을 발표하고

그 나라 학자들과

그 나라 말로 논쟁을 하는 것도 좋았지만

그래도 시장에서 살아있는 그들만의 말을 듣고 생각을 나누는 것만 못했다.


외국어를 전공한 학생들이나 늦깎이로 통번역대학원을 다니며

언어를 공부하는 이들의 목표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 즐거움은

폭넓은 의미의 학문의 즐거움과는

또 다른 곳에 감춰져 있다는 말이다.


세계 어느 도시엔가 내가 알지 못하는 이가

내가 그들의 언어로 쓴 글을 읽고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면

글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전하는 당신도

한 번쯤 외국어 공부에 빠져봄직하지 않은가?


나이가 먹어서?

가방끈이 짧아서?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어서?


내가 만난 젊고 가방끈이 긴

외국 유학을 하던 젊은이들은

대개 나보다 그 나라말을

잘하지 못하더라.


당신이 주저하고 있다면

내가 당신의 증거가 되어주마,

더 늦기 전에

시도해보라.


정작 그렇게 준비하고

아직 해외 번역어판은 출판 전이다.

한국어판을 예쁘게 만들어 표본을 삼아

해외 번역판을 작업할 지,

멋스런 양장본의 해외판을 만들어

그 표본으로 한국어판을 출간할지,

정작 정하지 못하였다.


게으른 탓이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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