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부터 명함이나 전화번호를 불러달라는 상대방이'011'이라는 말을 듣고는 흠칫 놀라며
"네?"라고 되묻는 일이 많아지긴 했지만
오히려 "011입니다, 010 아니고!"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도 그다지 귀찮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서각으로 직접 번호를 파서 핸들 앞에 두던
전화번호도 지나던 사람들이 보며
신기해했어도아무렇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누구나 다 쓰는 번호이지 않아서 좋았고
20여 년을 함께 해서 익숙해져서 좋았으며
전화기가 오롯이 전화기의 기능만에
충실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작년 딱 이맘때 위의 그림처럼 통신사의 보상이랍시고 나왔던 것을 보면서도, 나는 원래 내가 사용하던 와이파이용 스마트폰으로(a.k.a. 자급제폰) 2년간 최상위 요금을 무상으로 지원받는 형태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변경하고 사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약속대로' '011'의 최후의 숨통을 끊겠다고 통지해온 것이다.
2G 폰은 필요 없다고, '011' 번호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투쟁하는 이들의 모임(010 통합반대운동본부)에도 카페였긴 했지만 가입해서 힘을 더하겠다고 했었다.
위 사진처럼 이런저런 소송이니 투쟁이니 다 해보던 이들은 마지막 선택으로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렸다.
그들의 손을 들어줄 수 있는 양심이 관공서에, 정부에 남아 있는지는 의문이다.
철저한 시장논리에 의해 없어지기로 한 사실에 대해 부정하는 이들은 없다.
1년 전, 기나긴 통신사의 구애활동에 손을 들어주던 과기정통부는 현황조사를 통해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2G 운영 현황 파악을 위해 기술전문가 그룹, 장비 제조사 등과 함께 전국의 교환국사 및 기지국사·광중계기 운영 상황에 대한 4차례 현장점검을 수행했다며 기레기들을 통해 보도자료를 뿌려댔다.
그들의 확인(?) 결과 망 노후화에 따른 고장 급증(최근 3년간 교환기 고장 132%, 기지국·중계기 고장 139% 증가), 예비 부품 부족에 따른 수리 불가 품목 존재, 장비별 이중화 저조(20% 미만) 등에 따라 2G 망을 계속 운영시 장애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과기정통부는 "2G 망 노후화와 장애 위험 등으로 망 복구가 일부 불가하거나 서비스 품질이 떨어지고 있어 이용자 안전 등을 고려할 때 더 이상 2G 망을 운영하는 것이 이용자 보호 차원에서 적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개소리다.
그 속의 이야기를 좀 들여다보자면, 기존 2G 폰 사용자들의 요금제가 스마트하게 고가를 받을 수 없으며, 그들은 한번 요금을 내면 그저 계속 그 요금을 내는 스마트하지 않은 나이의 사용자들이었으며, 낡은 2G 장비들을 유지하는 비용보다 계속 늘어가는 최신 장비들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얻는 통신사의 이득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나는 작년 6월에 내가 사용하던 기기로
5G를 개통하였다.
나는 강남 한복판 아파트 숲에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G는 제대로 터지지 않아 중간중간 끊기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엄청난 광고비와 설비비를 쏟아부었다고 하면서정작 출시된 최신폰은 LTE(4G) 요금제도 사용할 수 없게 해 놓고선5G가 제대로 터지지 않아 LTE로 전환해야 끊김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잦다.
통신사가 재계의 상위권 기업임은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들이 돈을 버는 방식이 아무리 양아치스럽다고 하더라도그들이 2G를 없애서 얻는 이득이
그들이 관련 공무원들에게 룸살롱에서 뿌리는 돈보다 어마 훨씬 크다고 하더라도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사용하는 번호에서 '011'만 '010'으로 변경되는 것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은 위의 설명을 듣고 다시 한번 뒤통수를 잡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