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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y 28. 2021

원수들이 만나는 외나무 다리

운전하면서 늘 만나는 그 외나무 다리

아파트로 빼곡한 언덕배기의 바로 앞쪽의 언덕으로 이름처럼 오래된 느티나무 마냥 슈퍼마켓이라고 보기엔 좀 크고 대형마트라고 하기엔 좀 작은, 개인이 운행하는 오래된 마트가 하나 있었다. 차가 없으면 외출을 할 수 없는 미국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형마트처럼 차를 이용했고, 마트에서는 마트 사이즈만 한 넓은 주차장을 마련해뒀고, 주차요원들까지 고용하는 곳이었다.

마트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냐고? 아니다. 이야기는 그 마트의 아래쪽에 있는 마트의 창고로 이어지는 지하 1층과 연결된 통로 차로에서 시작된다.

마트를 들어서는 도로가 늘 막히기 때문에 아래쪽에서 오는 이들은 마트의 유통차량들이 사용하는 길을 들어서고는 했다. 그 길은 도로 폭이 좁아 양방향일 수 없는 태생부터 일방통행로였다. 그 대단지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니, 모르는 사람들은 아예 그 길을 쓸 수 없었다. 큰길로 나가는 샛길이었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예 들어서지 못하는 길이었던 거다.

어느 주말 저녁, 여느 날처럼 가족과 나들이를 마치고 느지막이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저녁 시간에 집에 돌아오며 장을 보러 마트의 지하 통로로 들어서는 샛길에 들어갔다. 길의 길이는 대강 100여 미터가 조금 더 되었고 나는 이미 중간을 지나 길을 빠져나갈 생각에 천천히 핸들 앞을 응시했다.

그런데 버젓이 일방통행인 길의 반대편에서 차가 들어왔다.

이른바 얌체족이었다. 본래 나가는 길이어야 했지만 그 길로 들어서면 막히는 큰길의 주차장이 아닌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이의 소행이었다. 어떻게 확신했냐고? 낡고 오래된 차였고 가족이 함께 타고 있는 것이 정면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절반 이상을 더 왔고, 심지어 이 곳은 일방통행이었기에 조금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가만히 그 차가 뒤로 빠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 차는 차를 뒤로 빼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기다렸다.

그 사이, 그 차의 뒤로 또 다른 얌체족이 들어와서 그 차의 뒤에 섰다.

후진으로 60여 미터를 차를 빼서 그들을 빼주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한 호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살짝 짜증이 나서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앞쪽의 운전자는 전혀 내릴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 차로 다가갔더니 그가 귀찮은 듯 창문을 내렸다.

  "여기 일방통행인 거 아시죠?"

  "..."

  대꾸를 하지 않고 빤히 쳐다본다.

  "저기요. 차를 좀 빼주시죠. 뒤에 차가 계속 들어와요."

  운전자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고개를 운전자 쪽으로 들이밀며 말했다.

  "내가 절반 이상 왔고, 일방통행인데 어떻게 내가 차를 뻅니까?"

  "좀 빼주시면 좋잖아요."

  뭐가 어떻게 좋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더 짜증을 내기도 전에 그 차의 뒤에 들어왔던 얌체족 2의 운전자가 답답한 듯 앞으로 왔다. 이미 그 얌체족 2의 뒤에 얌체족 3이 또 들어와서 클락숀을 심하게 두 번이나 눌러댔다.

  "여기 일방통행인 거 몰라요? 여기로 왜 들어와요?"

  내 지적에 아랑곳하지 않고 얌체족 2의 운전자가 말했다.

  "나는 무슨 사고라도 난 줄 알았네. 여긴 차가 3대나 있잖아요. 그쪽이 한 대니까 뒤로 빼주세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이해 이전에 상식적으로 이 사람이 요구하는 것이 맞나 헷갈렸다. 심지어 뻔뻔하게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대꾸조차 하지 않으면서 사태가 해결되면 앞으로 재빨리 가겠다고 하는 운전자와 그의 아내 뒤로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차 뒤로 뺍시다."

  얌체족 2의 운전자는 자신이 점잖은 제안을 하는 냥 차를 빼라고 종용했다.

  싸움을 못하거나 내 주장을 못할 것도 없었지만 얌체족 1의 부부 뒤에 앉았던 아이들을 보고서는 그냥 내 차로 돌아와 60여 미터의 길이를 후진해 주었다. 3 대중에 어느 한 대도, 감사하다거나 죄송하다는 표시를 하기는커녕, 짜증 난다는 표정이나 눈을 위아래로 희번덕거리며 지나가는 것이 뻔히 보였다.

  차의 뒤에 타고 있던 아들이 물었다.

  "우리가 잘못한 거예요? 우리가 비켜줘야 하는 거예요?"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 상황이 어떤 것이었는지 아들에게 설명하면서 저 아랫배 쪽에 있는 부아가 스멀거리며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얌체족 운전자 부부는 뒤에 앉아있던 자기 자식에게 뭐라 말할까? 그 아이들은 오히려 그런 부모의 행동에 익숙해있을까? 점잖은 척하며 차를 뒤로 빼라고 했던 외제차의 나이가 지긋했던 남자는 정말 자신의 요구가 당당하다고 느꼈을까?

  아마도 그들은 연일 TV에서 나오는 정치인들의 비리를 보면서, 사회 부조리를 보면서 '저런 것들이 있으니까 우리나라가 발전이 안되지. 저런 것들은 다 콩밥을 먹여야 해.'라며 분을 삭이지 않는 이른바 '서민'이라고 자신들을 포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화문에 아이들과 먹을 것을 싸가지고 촛불을 들고 그 사진을 찍어 카톡 프로필 사진에 올리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이들일 것이다.

  그들은 알까, 그런 그들이 이 나라를 좀먹고 부정비리가 만연하게 되는 가장 처음이 되는 곳이라는 것을?

  원수들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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