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사는 악녀 - 118

타이완 재입국 카운트다운 D-5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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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박 교수님. 저 지난번에 만나 뵈었던 수요 신문의....”

“아, 네.”

“단도직입적으로 제가 여쭤보려구요? 외교부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서 만나셨어요?”

젊은 기자의 목소리는 다소 격양되어 있었다.

“네. 만나다고 했잖아요. 어제 외교부 본부 감사실 과장인가 하고 감찰관들 만나고 왔어요. 그런데 왜요?”

“아니, 만나시는 건 그렇다 치고 걔들한테 취재진이 취재 중이라고 하셨어요?”

“아니, 이미 취재해서 보도된 건도 있는데 지금 그게 왜 중요한 거죠?”


박 교수가 다소 그의 무례한 듯한 태도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아니, 이런 건 조용히 준비가 다 된 다음에 뒤통수를 쳐야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건데 그렇게 다 얘기해주시면... 하아!”

“정확하게 뭐가 어떻게 된 거고, 뭐가 문제인지를 차근차근 설명해 줬으면 좋겠는데....”

“교수님이 외교부 놈들을 잘 안다고 생각하시지만 걔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얘들이 아니에요. 제 취재원 통해서 그 안을 솎아보고 있는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어제 대책회의가 열렸다는 거예요. 아주 심각하게 그것도 아주 길게.”

“대책회의요?”

“네. 교수님이 오셔서 감사실 쪽이랑 접촉했는데 증거들이 워낙 많고, 모든 대화가 다 녹취가 되어 있다. 그리고 그게 보도가 예정되어 있다. 일이 더 크게 터질 경우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그간의 외교부의 대처가 문제가 없었는지에 대해 보도자료를 만들고, 대표부랑도 입 맞추고 그런 짓을 밤새 했다는 거예요.”

“네?”


박 교수는 어이가 없었다. 사실 과장과 만났을 때도 그렇고, 그 이전부터 대표부와 접촉할 때도 그렇고, 심지어 2017년 그 사건이 여름이 되기도 전에 터져 S사의 8시 뉴스에 나오기까지 외교부는 그저 뻔뻔하게 부인하고 자신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똑같은 앵무새 같은 말로 그냥 버텼다. 그런데 이제 방송사에서 취재를 들어간다는 얘기만 듣고 그렇게까지 보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무엇보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화와 이메일로 그렇게 난리를 부렸을 때도 아무렇지도 않게 접고 튕겨내며, 과장이라고 나왔던 녀석도 그 이전까지 담당 감찰관으로 통화까지 수차례 했던 그 놈이었는데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뭘 대처한다는 말인가?


“내가 녹취를 준 것도 아니고, 주겠다는데도 필요하면 그때 달라고 하겠다고 했던 자들이 무슨 대책회의를 하고, 또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요 신문에서 취재를 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지금 내가 보내준 녹취랑 증거들 다 가지고 있잖아요? 뭐가 문제가 되는 거죠?”

“아휴! 교수님! 왜 일에 대한 대처가 그렇게 꼼꼼하시면서 저에게 상의도 안 하고 그쪽 놈들한테 그간의 증거가 뭐가 있는지까지 그렇게 일일이 다 설명하신 거예요. 이해가 안가네.”

“마지막으로 물어볼게요. 그게 뭐가 문제가 되냐고 물었습니다.”


박 교수의 달라진 목소리에 젊은 기자가 징징거리던 소리를 사그라뜨리며 투덜대듯 말했다.


“걔들은 모든 케이스에 대해서 사전 준비와 시나리오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만약 제가 먼저 터트려버렸다면 뒤에 어설픈 변명이 되는데, 여러 시나리오를 준비해서 제 기사와 동시에 뭔가 다른 팩트를 만들어내서 내밀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제가 터트리는데 상당한 리스크가 따르게 됩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증거와 녹취들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없으면 그만두세요, 보도고 뭐고.”

“네?”

“그렇잖아요? 지금 나한테 항의하려고 전화한 게 아니라 보도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이렇게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 그게....”

“내가 기사 내겠다고 했다가 엎는 기레기들, 하나둘 본 것도 아니고, 수요 신문에서 외교부를 조져보겠다고 먼저 얘기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증거들 모두 보내준 거잖아요.”

“말씀은 맞는데, 왜 어제 가셔서 그런 얘기까지 시시콜콜하게 다 하셔 가지고...”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전화 끊습니다.”

“아니, 교수님, 저기...”


전화를 끊고 박 교수는 가만히 전화기를 바라보고 20여분의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선 한번 돌리지 않고 멈춰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를 갔고, 아내는 회사를 나갔다. 집 안의 모든 것들은 멈춰서 있는 듯했다. 그리고 일어선 그는 간략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가지고 들어올 때 짐이 많았지, 다시 타이완에 들어가면서 더 가져가고 할 것은 없었다. 그리고 다시 노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찾아뵈려구요. 이제 곧 다시 들어가는데, 시간 있을 때 뵙고 나갈 준비 하려고요. 오늘 어디 안 나가세요?”

본가의 부모님이 과일과 빵을 사들고 들어오는 박 교수를 맞았다.


“이런 걸 뭐하러 사들고 다녀?”


노모는 과일과 빵을 받으며 아들의 얼굴을 다시 한번 위아래로 살폈다.


“그래, 와서 처리한다는 언론사들이랑의 일은 다 잘 되어가고?”


아버지가 물었다. 짧은 질문이었지만, 박 교수의 표정을 읽고서 던진 아버지만이 할 수 있는 행간이 깊은 질문이었다.


“다들 얘들이 반응이 좀 그러네요. 시간도 지났고, 워낙 타이완에 관심들도 없고, 그놈의 미투인지 뭔지 때문에 다들 몸을 움츠리는 것도 있고, 그런 것 같아요.”

“그래. 너무 기대하지 말고 일단 타이완의 변호사랑 잘해서 그쪽 일에 집중해야지. 여기에서 방송된다고 해서 당장 뭐가 달라지지도 않을 거였고...”

“네. 그러려고요.”

“밥 안 먹었지? 얼른 와서 밥 먹자.”

노모가 차려주신 식탁 가득 놓인 반찬에 가득 퍼담은 밥을 박 교수는 웃는 표정으로 천천히 하나하나 다 맛보며 먹었다. 언제 다시 맛보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인 양 부러 하나하나 반찬에서부터 국과 찌개까지 어머니가 정갈하게 차려주신 음식들을 다 먹었다. 아들이 식사하는 동안 보지 않는 것처럼 거실에서 TV를 보던 아버지도 힐끔거리며 신경 썼고, 아예 아들의 맞은편에 앉아 뭘 먹으라며 이것저것 접시를 계속 만지작거리던 노모는 얼른 냉장고에서 시원한 보리차를 꺼내 컵에 가득 따랐다.

“뭘 그렇게 급히 먹어. 천천히 좀 먹어라.”

몇 끼나 굶은 사람처럼 천천히 밥을 먹으며 박 교수는 내내 노모를 향해 웃어 보였다. 식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노모는 과일을 깎아 접시에 내오며 거실에 앉아 있던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에 두었다.

“나는 그냥 이번에 안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냥 있으면 안 되겠니?”


노모가 조심스럽게 아들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일단 집도 정리는 해야 하고, 물론 보증금은 다 떼이고 오겠지만, 짐도 그렇고 정리를 해야죠. 그리고 가서 재판이 바로 시작되는지도 보고 상황에 맞춰서 보고 올게요. 어차피 이제는 출국금지가 해제되어서 아무 때고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니 아버지 말씀 들으니까 그게 언제고 걔들이 실수였다고 하면서 다시 막아버릴 수도 있다고...”

노모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다시 조심스레 물었다.

“어린 나이도 아니고 배울만큼 배운 대학교수한테 뭐 얘들도 아니고 당신이 그런 말까지 하나?”


아버지의 괜한 잔소리에는 아들의 의견을 묻는 걱정이 묻어 있었다. 박 교수가 그것을 못 읽을 리 없었다. 박 교수가 과일을 하나 입에 물으며 다시 대답했다.


“걔들의 심정이 지금 다시 타이완에 돌아올까 봐 전전긍긍할 거예요. 이번에 학과장이란 놈한테 언론사의 피디가 연락을 취했었는데, 그 놈들끼리는 이미 제가 한국에 나와 있는 것도 모두 체크해서 알고 있더라구요. 그러니까 걔들 입장에서는 나간 걸 확인했으니 다시 들어오지 않은 것만 확인되면 그다음 단계를 진행하려는 준비 중일 거예요.”

“아니. 그 놈들은 왜 그렇게 너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니?”

“그러게요. 그런데 싸움이 시작된 거니까 누가 죽던지 한쪽이 죽어나갈 때까지 싸워야 하는 꼴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 이번에 들어가서 변호사랑 출국금지가 풀린 것도 상의하고 항소심의 재판부가 조금 긍정적이라니까 그것도 확인하고 그러려고 해요.”

“많이 먹어서 그런가? 조금 걸어야 할 것 같은데요. 아버지 산책 가실래요?”

“그래? 날이 더워지던데, 아버지가 아침마다 다니는 절에 한번 가볼래?”


평생 9시 뉴스가 끝나면 잠자리에 드시고 새벽 4시가 조금 넘어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신 아버지가 새벽마다 산에 운동을 하러 가신다는 걸 박 교수도 알았다. 한 번도 함께 동행한 적은 없었지만, 아버지는 산에서 운동을 하고 내려오다가 산 중턱에 있는 절에 들러 항상 아들과 손주들의 건강과 안녕을 비는 절을 하고 내려오신다는 것도 박 교수는 아주 잘 알았다. 그래서 오히려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어색할까 싶어 아버지의 아침 운동에 일부러라도 함께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얘랑 잠깐 나갔다가 올게.”

“아니, 나도 같이 가요. 새벽 운동도 아니고 산책 가는 건데...”


노모가 얼른 일어나 옷을 챙기며 따라나섰다.


“네. 같이 가세요.”


박 교수는 그렇게 부모님과 함께 집을 나섰다.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낮엔 제법 햇볕이 타이완의 그것만큼은 아니지만 뜨거워져가고 있었다. 아무런 말없이 그저 천천히 걷는 세 사람은 저마다 걸음걸이의 속도가 달랐다. 그렇게 찬찬히 속도를 맞춰가며 오랜만에 보는 동네 정경을 설명하고 요즘엔 어떻게 소일하고 지내시는지, 동네의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사대문 안에 대단지가 들어서게 되면 어마어마한 프리미엄이 붙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것이라는 설명 등등 타이완의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동안 들어들이지 못했던 아주 사소하고 별 것 아닌 이야기들이 오갔다. 마치 일부러 어느 누구도 타이완의 일을 입에 올리는 것을 금기라고 선언한 것처럼 평온한 일상들의 이야기들이 세 사람 간에 오갔다.


절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조용한 오후의 산사(山寺)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산사 안쪽에서 조용하게 울리는 목탁과 염불을 외우는 소리와 아주 미미하게 흘러나오는 향냄새가 여러 가지 생각을 박 교수에게 떠올리게 했다.


시먼딩의 그 지저분한 용산사에서 느낄 수 있는 번잡스러움과는 완전히 격리된 산사(山寺)만이 줄 수 있는 여유가 느껴졌다.


‘왜 내가 지금 이런 꼴을 당하며 살고 있는 거지?’


매일같이 절을 하시는 곳이라며, 대웅전의 부처님을 보여주시며 아버지는 미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박 교수는 자신의 괜한 해외행이, 괜한 오지랖이, 괜한 그 모든 행동들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눈물이 울컥 나올 것 같았지만, 오랜만에 평온을 반가워하시며 소녀처럼 좋아하는 노모의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 얼른 대웅전의 뒤쪽으로 빠른 걸음을 옮겨 눈물을 훔치고는 티 나지 않게 다시 약수가 나온다는 수도가로 향해 간단히 손을 씻으며 얼굴을 닦아냈다.


“얘들도 데리고 왔으면 좋았을걸.”


아들이 혼자서 타이완에 가 있고, 며느리와 아이들만 있으니 부러 그 집을 찾아가기도 뭐하라며 손주들을 보고 싶어 하던 노모의 아쉬움이 묻어났다.


“죄송해요. 모시고 여행을 가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네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부모님을 모시고 여름방학마다 여행을 다녔던 것이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박 교수는 그날 처음으로 자신이 타이완에서 했던 일이 자신의 실수 때문이고 모든 것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며 후회를 번뜩이는 광채를 보이는 부처님에게 속삭이듯 기원했다.


‘다 괜찮은데, 이제 충분히 힘들었으니 제발 바로잡아주세요.’


부모님과 절을 한 바퀴 돌아보고 본가로 돌아와서는 박 교수는 마지막으로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약속이 있다고 말하고는 다시 길을 나섰다.


“돌아가는 날, 괜히 공항에 나오지 마세요, 이번에.”


아쉬워하는 노모에게 박 교수가 말했다.


“몇 시 비행기라고 했지? 어차피 여기서 공항 철도 타면 금방이고 할 일도 없는데 뭐. 그 김에 바람 쐬고 그러는 거지. 내가 가야지. 에미는 또 일하느라 못 나와볼 거 아니야?”

“그냥 혼자서 가도 돼요. 짐도 거의 없구요.”

“그래도 당장 가서 먹을 김치도 없잖아. 오늘 줄 수도 없으니까 내가 꽁꽁 얼려서 그날 공항에 가지고 가서 줄게.”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아니야. 시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이따 전화로 알려주렴.”

“그럼 가볼게요.”


막 본가를 나와 지하철역으로 들어서는데 공영방송의 공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네. 교수님. 저 공 기자인데요. 지금 어디세요?”


박 교수는 그의 첫 목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남은 건 정말 너 하나구나. 너마저 안되면...’

“네. 여의도에서 멀지 않은데, 이쪽에서 볼까요? 내가 여의도로 가도 좋구요.”

“아, 그러면 제가 나가는 길이니까 그쪽으로 갈게요. 강남보다 훨씬 가깝네요. 바로 갈게요.”


이제 데스크와의 협의가 끝났으니 함께 들어가진 못해도 준비해서 곧 뒤따라 들어가겠다고 그렇게 이야기만 하면, 한 시간짜리 보도를 통해 얼굴과 실명을 까지 않고서도 충분히 그들에게 그로기 펀치를 먹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박 교수는 스스로를 토닥이고 또 토닥이고 있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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