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기자는 생각보다 조금 늦는 듯했다. 박 교수는 지하철 역 앞에 있는 카페에서 가만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이제 4일이 지나면 다시 타이완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그나마 들어가기 전에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그럴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이제 돌아가면 그런 호사조차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다 말라붙어 쩍쩍 갈라져 그 안에서 피고름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아! 교수님. 많이 기다리셨죠? 생각보다 차가 막히네요. 막힐 시간도 아닌데...”
공 기자가 헐떡거리며 밝게 웃어 보였다.
“아니에요. 그래도 금방 왔네요.”
“하아, 일단 제가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데스크에서 허락을 하지 않던가요?”
박 교수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드라이하게 물었다.
“네. 데스크가 좀 이상한 사람이긴 한데, 아예 대놓고 뻰찌를 놓으면서 자기는 페미니스트니까 절대 역 미투 같은 거 해줄 수 없다고 하네요.”
“페미니스트... 하하하!”
박 교수가 힘없이 웃어 보였다. 공 기자는 불과 하루 전에 만났던 그의 모습에서 뭔가 다른 분위기를 느끼고 묘한 인상을 받았지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데스크가 저런 식으로 나오면 제가 결제를 못 받으니까 해외출장이고 뭐고...”
“아니에요. 그런 사람이 그 사람 하나도 아니고... 제가 운이 없나 보네요. 공 기자가 이렇게 신경 써서 해보려고 했는데도 일이 이리 일그러지는 걸 보면...”
“그 지난번에 며칠 뒤에 들어가실 때 같이 들어간다는... 그 J방송사는 바로 방송 스케줄을 잡았나요?”
“아니요. 그쪽에서도 데스크가, 사장 핑계를 대면서 미투를 가장 먼저 쏘아 올린 방송사에서 사장이 인터뷰까지 몇 번을 했는데 그걸 뒤집기가 그렇다고 그러네요.”
“웃기는 핑계네요.”
“페미니스트만 하겠어요?”
박 교수의 농담 아닌 농담은 공 기자의 어색한 웃음을 쓴웃음으로 바꾸었다.
“그러면 다 어그러진 건가요?”
“사실 그쪽 추적 90분 피디들도 만나긴 했는데...”
“아, 걔들은 이제 끝났어요.”
“네?”
“그 프로그램이 오래된 역사만큼 밥값을 못하기 시작하면서 돈 까먹기만 한다고 해서 이번에 완전히 폐지가 결정 났어요. 비밀이긴 한데요. 하긴 뭐 교수님이 어디 가서 이야기하실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걔들 지금 진행 중인 거 다 접고, 마무리 방송 준비한다고 하더라구요. 워낙 그동안 안일하게 방송들을 해와서 시청률은 바닥이고 그렇다고 의미 있는 방송을 한 것도 아니고 현판 내릴만했죠, 뭐.”
“그쪽 뉴스는 현판 안 내리구요?”
“하하하! 교수님. 많이 기분이 상하셨나 보네요. 저도 생각 같아서는 그냥 휴가 내고 혼자라도 들어가 볼까 생각까지 했었어요, 아까 오다가...”
“공 기자 생각엔, 공 기자나 우리나라 방송사에서 카메라 들고 들어갔더라면 뭔가 상황이 반전되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네?”
“아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정작 방송을 하지는 못했는데, 나는 처음엔 하도 많은 방송사에서 관심을 가져들하길래 오히려 내가 어디까지 공개를 하고 어디까지 협조를 해야 하나를 걱정했었거든요. 그런데, 정작 방송사도 그렇고 신문사도 그렇고 뭔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서요.”
“으음. 사실 사회부에 있으면서 보도를 하게 되면 파장이 일어나는 경우를 많이 보긴 해요. 특히 보도가 들어가는 것만으로 이른바 피의자라고 하는 쪽에서 피해자 측에 개선을 약속하거나 급 저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이 있긴 하죠. 그런데 요즘은 그것도 반반이에요. 오히려 대기업이나 돈 있고 힘 있는 이들은 반대로 위에 압력을 넣죠. 잘못 보도 나갔다가 역풍 맞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에서부터 교수님, 잘 아시는 것처럼 학연에 지연에 끌어들여서, 어떻게 해서는 취재를 없던 걸로 하거나 다 취재했어도 그냥 따로 자리 갖는 것으로 해서 용돈 주면서 덮는 일도 없다고 볼 수는 없거든요.”
“공 기자 말처럼, 이건 해외 건이고, 그런 알력 관계도 없는 거잖아요.”
“제가 열 받는 게 그거예요. 이번에 데스크한테도 그 말을 했고, 기획안까지 완벽하게 올렸는데, 이렇게 완벽한 건일 수록 위험하다는 거예요.”
“뭐가 위험하대요?”
“특별한 예외 케이스인데, 혹여 일반적인 다른 여러 대학 내 성추행이나 그런 범죄들까지 면죄부로 쓸 수 있다나요? 저도 같이 기자 밥을 먹고 있는 입장이지만 이 사람이 조금 유별나게 티를 좀 내는 편이거든요. 성별만 남자이지, 남자라고 보기 어렵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저희 내부의 문제이긴 한데, 그래서 이 사람에 대해서 위에서도 말이 많긴 했는데, 지금 당장 교수님 건에 대한 결재권을 가지고 있는 건 데스크가 맞으니까요.”
“후우. 한 달 동안 대한민국의 언론사의 피디랑 기자들은 이제 다 만나고 가네요. 내가 무슨 프리미엄 영화 시사회 프로모션 왔다가 돌아가는 할리우드 스타 같네요. 하하하”
박 교수는 말 끝에 웃고 있었지만, 그의 웃고 있는 모습의 처연함에 공 기자는 차마 따라 웃지 못하고 겸연쩍게 고개를 떨구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꼭 힘이 되어 드리고 싶었는데.... 아니, 개인적으로 제가 이 아이템은 꼭 다뤄보고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 꼬이게 되어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니에요. 공 기자야 먼저 연락해오고 이렇게 출장을 가고 싶어 했는데 어쩔 수 없는 거죠. 근데요... 뭐 하나 엉뚱한 거 물어봐도 될까요?”
“네.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제가 아는 거면 말씀드릴게요.”
“혹시, 이건 그냥 혹시나 하고 물어보는 건데요. 내가 죽으면 방송사에서는 관심을 좀 갖나요?”
“교, 교수님. 그건... 좀... 그런 생각 하시면...”
“아니. 내가 그러겠다는 게 아니라, 한국에 와서 유사 사례들을 좀 알아봤거든요. 그랬더니 억울하다고 죽은 사람들이 나오거나 하면 경찰도 그렇고 언론사도 그렇고 취재열기가 다시 불붙는 것 같더라구요. 억울하다고 실제로 죽은 선생님이나 교사들도 제법 되더라구요.”
“혹시 그 동아대 교수건 말씀하시는 건가요?”
“어? 공 기자도 알고 있었네요?”
박 교수가 놀란 목소리로, 하지만, 커피잔에서 시선을 옮기지 않은 채 물었다.
“제가 말씀드렸었잖아요. 도저히 한국이 미쳐 돌아가는 것 때문에 역 미투를 제대로 다루려고 준비 중이었다고. 저도 한국에 그런 케이스가 너무 많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면서 교수님의 연락에 반가워했던 거였구요.”
“그랬었죠.”
“그래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도 아직 아이들이 어리긴 하지만, 교수님이 그간 이루신 삶을 전부 부정해버리는 꼴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건에 대해서 교수님이 보내주신 자료들을 밤새워서 분석하면서, 정말 어이도 없었지만, 우리나라도 아닌 그 나라에서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그렇게 집단 린치를 받는다는 건, 물론 견디시기 힘드셨겠지만 지금 벌써 2년이 넘게 싸우고 계신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 와서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생각하시는 건 저는 반대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교수님은 물론이고 이 건을 기억하는 사람들 자체가 없어요. 방송에도 어쨌거나 나갔던 건이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어이가 없어하는 거지요.”
“제가 면목이 없긴 하지만, 저도 나름 이쪽에서 다른 방송사나 친구들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그러니까 마음 약하게 먹지 마시고, 동아대 그 교수 건도 그렇잖아요.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 진상이 밝혀지고 죄지은 사람들 감옥에 보낸 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결국 사람이 살아 있어야 진실을 밝혀도 의미가 있는 거지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겁니다.”
“알죠, 잘 알죠. 그래서 버텨왔던 거고...”
“교수님. 힘내십시오. 제가 여러 안 좋은 사건들도 취재하고 그래 봤지만, 당장은 모두 막혀서 힘들고 그런 것 같아도 그때가 지나고 또 지나게 되면 살아지더라고요. 어찌 보면 아무렇지 않은 일까지는 아니지만 지나고 진실이 밝혀지고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되면 분명히 웃으며 이야기하실 날이 올 겁니다. 저만해도 교수님이랑 어떤 친분이 있던 것도 아니고 제가 자료만 가지고 분석했는데도 금방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고맙습니다, 그렇게 얘기해줘서....”
박 교수가 공 기자와 헤어져 지하철역을 들어갈 때까지, 공 기자는 조폭처럼 허리를 90도 꺾어가며 공손하기 그지없는 인사로 박 교수를 보냈다.
박 교수는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아무런 일도 없던 것처럼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평소에 즐겨 가던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도 하며 평온한 듯 나머지 3일을 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마지막 저녁을 맞았다. 아이들을 재우고 아내와 침대에 누운 그가 막 자리에 누운 아내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뭐가 당신이 미안해요?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그리고 미안하면 얼른 정리하고 빨리 들어와요. 다음 인생을 살아야지. 그 일에 인생 다 걸 거예요?”
아내도 그간 참고 있던 속내를 툭하고 쏟아내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그래서 미안하다구...”
“그런 말 하지 말라구요. 괜히, 내일 들어가는 사람이 그런 맘 약한 소리는 뭐하러 해요? 부모님 말씀처럼 어찌 보면 대단한 일 아니에요. 사람이 죽고 사는 일도 있고, 갑자기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기도 하잖아요. 나도 아이들이랑 거기 있을 때는 당신이 너무 힘들어하고 앞으로의 진로에도 영향이 있을 것 같아서 그러긴 했는데, 당신이 능력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꼭 대학교수 아니어도 괜찮아요. 직업이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여태 했는데 다른 거 하면서 산다고 당신이 죽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게 얘기해줘서 고마워.”
“자꾸 그러지 말아요. 생전 고맙네, 미안하네 그런 말 하기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었잖아요, 당신. 얘들 아직 대학도 안 갔어요. 당신이 힘내고 얼른 기운을 차려야 집이 제대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래도 아빠가 있는 거랑 없는 거랑 얘들이 많이 다른 거 알죠? 이번에 들어가서 보증금이든 뭐든 상관없으니까 그냥 걔들 다 털어주고 들어와요.”
“......”
남편이 선뜻 대답이 없자, 아내가 가만히 침묵을 응시했다. 그녀 역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난 2년간 그 외롭고 힘겨운 싸움을 남편이 얼마나 목숨 걸고 해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늦둥이를 임신하고 타이완을 향했을 때 중국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자신과 아이들을 챙기기 위해 새벽부터 그렇게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바로 타이완 학생들을 챙겨주겠다며 그 냄새나고 못생긴 아이들을 하나하나 웃으며 챙겨주고, 연구실에 공부하러 온 학생이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하면 자기 아이들 인양 바로 뛰어나가 학교 앞 길 건너에서 무엇이든 요기가 될만한 것을 가지고 와서 공부하기 전에 먹고 다니라며 챙겨주던 남편이었다. 신경이 날카로운 자신과 부대끼고 싸우기도 했지만, 남의 나라에서 죽은 아이를 꺼내는 수술을 하던 날도 하혈로 양말이 모두 젖었던 그날도 학생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연구실로 뛰어가던 남편에게 서운하고 속상하고 화도 났었다.
공부하는 것 외에는 그닥 관심사도 없고, 욕심도 없고, 매일 같이 그 재미없는 논문과 전공서적을 들쳐보기만 하는 낙으로 살던 그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어이가 없었다. 물론 내내 여학생이든 남학생이든 그렇게 자기 아이처럼 성심성의를 다하고 그러는 모습이 한국에서도 이상했을 텐데, 자기들 성적이 잘 안 나올까 봐 뭉쳐서 바로 등에 칼을 꽂는 쓰레기 같은 아이들을 위해 그가 그렇게 고생하고 시간을 쏟았다는 것이 속상하고 더 화가 났다. 그런데 여태 그렇게 강하고 절대 쓰러질 것 같지 않은 그가 억울하다며 속으로 울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한 달 내내 방송사 피디와 기자들을 만난다고 전화기를 들고 밤새 통화하고 낮엔 그들과 미팅이 있다면서 내내 뛰어다녔다. 그러나 단 한 곳도 그와 함께 타이완에 내일 들어가겠다는 곳은 나오질 않았다.
그녀가 말없이 남편의 손을 꼬옥 잡았다. 남편의 손이 흐느끼듯 떨고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언제도 흔들리고 불안해하던 자신의 손을 잡아주던 남편이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속으로 흐느끼고 있었다. 학자로서의 자존심만큼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질 수 없다고 당당하던 남편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녀를 더 강하게 몰아세우고 있었다.
“다 잘될 거예요. 선생님이랑도 상의하고 너무 성급하지 않게, 정 다 안될 것 같으면 이제 한국에 돌아올 수 있다는 선택지도 생긴 거니까... 당신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 잘 생각해요. 당신이 우리 때문에 억지스러운 결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다였으니까 우리는 이제 한국에서 거기에서처럼 거지 같은 꼴 보면서 지내지 않으니까...”
“그래. 다 잘될 거야. 다...”
남편이 혼자서 중얼거리는 혼잣말을 들으며 그녀의 한쪽 눈으로 툭 하고 눈물이 흘렀다. 다행히 침실에 모두 불을 끄고 있어 그녀가 왜 갑자기 눈물을 흘렸는지 남편이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손을 꼬옥 잡고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밤새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출발일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