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사는 악녀 - 120

타이완으로 다시 향하다.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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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학교를 가야 하는 아이들보다 조금 일찍 나섰어야 했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로 삼성역에 공항터미널로 가서 짐을 부치고 여유 있게 공항버스를 타기로 하고 아침에 서둘러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아빠 가요?”


막 일어난 아들이 눈을 부비며 아빠와 엄마를 보고 물었다.


“우리 아들, 일어났어? 이제 학교 갈 준비 해야지. 아빠가 금방 갔다가 올게.”

“네.”

“어디 한번 안아볼까?”


아들은 막 일어나서 아직 잠도 덜 깬 얼굴로 어정쩡한 폼으로 아빠에게 안기며 몸을 슬쩍 뺐다. 몸을 빼는 아들을 더 꼬옥 안으며 박 교수가 아들에게 속삭이듯 뒤에 대고 말했다.


“우리 아들이 아빠가 없을 때는 엄마랑 누나를 지켜줘야 하는 거 알지?”

“네.”


그저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가는 아들을 뒤로하고 자고 있는 딸을 꼬옥 안아보고는 박 교수와 아내가 집을 나섰다.

다시 들어가는 짐이라 간단하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라면이니 간단한 먹을 것을 챙긴 가방이 제법 무거웠다. 차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며 박 교수가 서두는 아내에게 물었다.


“뭘 이렇게 많이 넣었어? 이렇게까지 넣을 필요 없다니까...”

“됐어요. 그냥 다 먹을 거니까 가서 또 밥 생각 없다고 굶고 있지 말고, 싸준 거 다 먹고 와요. 그래 봐야 그대로 먹으면 한 달 안에 다 먹을 거예요.”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며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고 얼른 가서 공항버스의 티켓부터 끊겠다고 줄을 섰다. 바로 공항버스 티켓을 받고서 남편의 손에 전해주며 아내가 시선을 내내 마주치질 못했다.


“그럼 들어갈게. 당신도 얼른 가. 운전 늘 조심하고.”

“우리는 걱정하지 말고 당신이나 잘해요. 아프지 말고. 밥 굶고 혼자서 청승 떨고 있지 말고.”

“알았어. 얼른 가.”

“가는 거 보구요.”

“알았어. 그럼 내가 먼저 갈게.”


버스가 움직이는 동안까지 옛날 터미널처럼 박 교수의 아내는 차창에서 가만히 앉아 자신을 어색한 얼굴로 웃는 남편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박 교수도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그들은 그렇게 다시 이별을 고했다.

버스가 강남을 빠져나가 인천으로 향하면서 박 교수는 밤새 한 숨도 자지 못했던 긴장이 풀리는 느낌에 잠시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지만,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태엽 감기 같은 과거로 돌아가는 그 느낌 때문에 눈을 뜨고 있는 것보다 더 훤하게 영상이 떠오르고 그날들이 떠올라 정신이 더욱 말짱해지는 불면증의 반복이 지속되었다.

어느 사이엔가 바다를 건너 영종도 공항에 도착하자 박 교수는 전화로 어머니를 찾았다.


“어디세요?”

“응. 여기 F창구 앞이야.”


아침 10시 1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였음에도 노모는 새벽부터 지하철을 타고 얼린 김치와 반찬거리를 바리바리 챙겨서 아들을 맞았다.


“뭐하러 공항까지 이렇게 다 챙겨가지고 오셨어요. 차라리 어제저녁에 집에 들르시지.”

“아니야. 가는 거 봐야지.”

“아버지는요? 집에 혼자 계세요?”


박 교수가 노모의 얼굴을 안쓰럽게 쳐다보며 물었다.


“저기 앉아계시잖아. 아범이 올 때까지 그냥 여기서 기다렸어.”

“아버지까지 오셨어요? 에휴 뭐하러...”

어느 사이엔가 박 교수의 아버지가 다가와 아들을 보며 웃어 보였다.

“아버지까지 뭐하러 이렇게 번거롭게 오셨어요, 힘드시게.”

“뭐가 힘들어? 그냥 산책 가는 느낌으로 지하철만 타면 바로 오는데...”


다시 박 교수의 마음에 큰 돌덩이가 쇠사슬에 묶여 첨벙하고 물에 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다 가져가라구요? 너무 많은데....”

“아니야. 내가 넣을게. 아범은 저기 좀 앉아 있어. 가방 주고...”

“아니에요. 어머니가 뭘 하세요? 제가 할게요. 줘보세요. 이렇게 많이 안 싸주셔도 되는데...”


말하면서 자꾸만 눈앞이 흐려져오는 것을 박 교수는 이를 꾹 깨물며 참았다.


“자아, 이렇게 하면 다 들어갔어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눈가에 스쳤다. 가방에 노모가 가져온 것을 모두 넣고 나서 다시 캐리어를 세우고 박 교수가 티켓팅을 하고 나서 여권과 티켓만을 들고 다시 돌아와 부모님과의 이별을 고했다.


“천천히 들어갈게요. 얼른 집에 가서 쉬세요.”

“뭐 맨날 집에만 있는데 급하게 들어가? 그나저나 괜찮은 거니? 어째 한국에 나왔다가 더 얼굴이 꺼칠해져서 들어가니?”

“괜찮아요. 어제 조금 잠을 설쳐서 그래 보일 거예요.”

“가서 잘하고 마음 약하게 먹지 말고 잘할 거라 아버지는 믿는다.”


입이 무거운 박 교수의 아버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들의 어깨를 만지며 말했다.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애정표현이었다. 박 교수도 아버지가 어떤 마음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며 자신을 쓰다듬는 것인지 알았기에 더 버티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고 얼른 들어가기로 했다.


“네. 가서 또 전화드릴게요. 저 들어가 볼게요.”


눈이 빨개질대로 빨개져서는 서둘러 들어가는 아들의 왜 그리 서둘러 가는지 부모가 모를 리 없었다. 노모는 들어가려는 아들을 부여잡아 끌며 꼬옥 안았다.


“불편하면 언제든지 말해. 우리가 또 갈 테니까....”

“네. 그럴게요.”


자꾸 울컥거려 목소리가 이상하게 갈라질 것 같아서 목을 가다듬으며 박 교수가 어머니를 다시 한번 꼬옥 안고서 서둘러 고개를 돌려 들어갔다. 여권을 펼쳐 보여주려는데 눈앞이 뿌애져서 거꾸로 보여주는 것도 모르고 내밀었더니 여자 직원이 다시 돌려서 보고서는 그에게 되돌려주었다. 아들의 뒷모습과 창 뒤로 실루엣이 모두 사라지기까지 나이 든 부모님들은 내내 망부석처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아들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심사대를 통과하자마자 근처 화장실 표시를 보고 들어가 수도를 틀고 거울을 봤다. 눈이 충혈될 대로 충혈되어 눈물인지 피눈물인지 모를 것이 흐르고 있었다. 옆에서 손을 씻던 외국인이 놀라서 그를 다시 계속해서 힐끔거리며 보았다. 수도 앞에서 물을 가득 채우고 그 물 안으로 얼굴을 들이박고서 한참을 있다가 물에 뒤섞여 붉어진 얼굴이 거울에서 물을 뚝뚝 흐리는 것이 보였다.


“후우!”


깊이 숨을 내쉬고 나서 얼굴을 닦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안정되기 시작했다.

‘가자. 가서 이제 하나씩 정리하자.’


그렇게 비행기에 오른 박 교수는 몇 시간 만에 또 그 퀴퀴한 냄새가 확 밀려 들어오는 타이베이 공항으로 도착했다. 사람들은 한 달 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강대강 심사를 하는 태도 하며 한 달의 기간 동안 바뀔 리도 없었지만, 공항을 막 나서는 박 교수의 심기에는 마치 다시 지옥으로 들어서는 느낌에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를 통과하여 다시 시먼딩 쪽으로 들어가는 버스에서 그는 마치 엊그제 여행을 갔다가 다시 집에 돌아오는 친숙함까지 들어 심히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집으로 들어서는 로비에서 경비원이 친한 척 인사를 했다.


“어? 교수님. 한국에서 오시는 거예요? 안 오실 거라고 그랬는데?”

“네? 뭐라구요?”


박 교수가 신경질적으로 그의 말을 받았다.


“누가 내가 안 올 거라고 하던가요?”

“네? 아니 그게...”


키가 짜리 몽땅하고 통통한 남자 경비는 박 교수의 다그침에 뭐라고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다.


“누가 내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하던가요?”

“그게 저어... 말해도 되나?”

“네.”

“저희 경비부장님이요.”


남자가 우물쭈물거리며 겨우 대답했다.


“그래요? 지금 경비 부장은 사무실에 있나요?”

“네? 아, 네. 그런데 뭐 특별히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구요.”

“알았어요. 그냥 물어보려고 그래요. 나 짐도 집에 두고 다시 내려올게요.”


박 교수는 한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이런 불쾌한 상황을 다시 접하게 되는 것을 보니 정말로 타이베이에 돌아오긴 했구나 하는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 달 만에 백만 원이 넘는 월세를 잡아먹은 집은 아무렇지도 않게 집을 나섰던 그 휑한 모습 그대로였다. 캐리어를 열어 냉장고에 음식물을 간단히 넣고 방 여기저기를 한번 둘러보고 후덥지근한 열기가 느껴지는 창을 열고 베란다로 통하는 망도 열고서 다시 간단히 옷을 갈아입고 로비 리셉션으로 향했다.


로비로 가고 있는데 경비부장의 목소리인지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통화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엘리베이터 앞쪽까지 들려왔다.


“정말이라니까요. 왔어요, 지금. 네. 캐리어를 끌고 왔다는 거 보니까 아예 작정하고 온 것 같아요. 저는 어찌 되었든 알려드렸습니다. 그렇게 알고 계세요.”

“이봐요.”


박 교수가 전화를 하고 있는 그의 앞에 가서 그를 부르자 그가 놀라서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하며 다시 급하게 핸드폰을 부여잡으며 눈이 똥그레졌다.


“아, 교, 교수님.”

“오랜만이네요. 내가 중요한 통화를 하는데 방해한 건가요?”

“아, 아닙니다. 끄, 끊었어요.”


경비부장은 당황한 것이 역력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박 교수의 표정을 이리저리 살피며 계속 말을 더듬었다.


“아, 그래요? 그럼 좀 물어봅시다. 아까 경비를 만났는데요.”

“네. 말씀 들었습니다. 한국에는 잘 다녀오셨구요?”

“내가 한국에 다녀온 건 어떻게 알았어요?”


박 교수가 바로 그의 질문에 반문으로 답했다. 그러자 경비부장이 더 당황한 얼굴로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며 박 교수에게 답했다.


“아, 아까 캐리어를 들고 돌아오셨다고 해서, 한국에 가셨다고 들었거든요.”

“누구한테요?”


그가 숨을 돌릴 틈이 없이 박 교수가 바로바로 질문을 반문으로 잡아채서 내던지듯 물었다.


“네? 가시기 전에 말씀을 하고 가셨다고...”

“난 아무한테도 내가 한국에 간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네? 아니 그게...”

“경비부장 혹시 나한테 뭐 속이는 거 있나요?”


박 교수는 모든 것을 달관한 사람처럼 당황한 경비부장의 속을 다 알고 가지고 노는 사람처럼 그에게 가볍게 툭툭 던지듯 질문을 던졌다. 오랜만에 한국어가 들리지 않는 공간에서 중국어로만 이야기하는 것이었음에도 한국에서 기레기들과 실랑이를 하는 것보다 오히려 가볍다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소, 속이다니요? 제가 그럴 게 뭐가 있습니까? 제가 듣기엔 한 달 전쯤에 나가실 때 한국에 가신다고 하셨다고...”

“그래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건 그렇고 내가 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던데, 그게 무슨 말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러 왔어요.”

“아, 그게... 그러니까...”

“방금 그랬잖아요. 한국에 간다고 들었다면서요? 그런데 내가 오지 않을 거라는 소리는 또 뭐죠? 내가 조금 이해가 안 되어서요.”


박 교수는 가볍지만 날카롭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지만, 그의 작고 미세한 변화까지 모두 집중해서 그가 어떤 행동이나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집중해서 살폈다.


“하아, 죄송합니다. 그냥 전에 교수님이 떠나시던 날 누가 찾아와서 물었었습니다. 물론 여기 사시는 주민들에 대한 개인정보를 넘긴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경비 부장이 시원한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기 시작한 로비에서 연신 땀을 닦으며 말했다.


“여기서 서서 이럴게 아니라 2층에 가서 이야기 나누시지요.”


경비부장에 리셉션 데스크에서 빠져나오며 박 교수를 2층 카페로 안내했다. 주민들만 식사당이나 모임의 장소로 활용하는 레스토랑에서는 가볍게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제법 넓게 만들어져 있었는데, 주민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아 주말에만 활성화된 곳이었다.


“뭐 드실래요? 시원한 거로 할까요? 아니면 차?”

“편한 대로 하세요. 아무거나.”


경비부장에 얼른 뛰어가서 바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에게 뭐라고 음료를 주문하고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 앉았다.


“그래요. 이제 말해봐요. 누가 왔었다구요?”

“그게 저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교수님이 지난번 여기 이사오실 때에도 리셉션 직원이 버릇없이 굴어서 화를 내셨던 일도 있고 해서 저희가 아무래도 교수님이 외국인이시고 하니까 조심스럽긴 해서요.”

“지난 얘기는 할 거 없구요. 그래서 누가 와서 나에 대해 그런 얘기를 하던가요?”

“그게 저어....”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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