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부장이 계속 박 교수의 눈치를 보며 눈을 이리저리 데구루루 굴렸다. 박 교수의 귀에 시끄러울 정도로 그의 잔대가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또 시끄럽게 해야 얘기하기가 편하겠나?”
박 교수가 편안하던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쇳소리 들어간 목소리가 그에게 다그쳤다.
“아닙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자기가 기자라는 사람이 왔었습니다.”
“기자?”
“네. 그런데 정식 기자인지도 알 수는 없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나이도 많았고, 기자증을 보여주거나 하진 않았으니까요.”
박 교수가 잠시 그의 이야기를 듣다 말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주영희의 사진을 그에게 들이밀며 물었다.
“이 사람, 맞아요?”
“어? 어떻게 아셨어요? 아는 사람이세요?”
“나는 이 사람을 잘 모르고 이 사람은 나를 아주 잘 알죠.”
박 교수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다리를 꼬며 의자 뒤로 몸을 젖혔다.
“후우~! 그래서 기자라면서 뭐라고 합디까?”
박 교수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여전히 잔머리를 굴리던 경비부장이 박 교수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완전히 집을 빼신 거냐구 물었구요. 무슨 외교대학교 성추행 사건을 취재 중인데 교수님이 당사자라면서 관련 기사들을 쫙 내놓으면서 보여줘서 그냥 간단한 정도만 대답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짐을 빼지도 않고 완전히 나간 게 아니라는 것쯤은 경비부장도 알고 있지 않나요?”
“저야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그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고, 교수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고 해서요. 그렇게 정확하게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은 겁니다.”
“그런데, 아까 그 전화는, 그 사람이었던 건가요?”
“예? 아, 네.”
“뭐라고 묻던가요?”
“돌아오신 게 맞냐고, 직접 봤냐고 막 화를 내더라구요. 돈도 얼마 주지도 않았.... 아차!”
“돈을 몇 푼이나 찔러줬길래 그런 짓거리까지 합니까?”
박 교수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며 고개를 좌우로 설레설레 저어 보였다. 경비부장은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르며 계속해서 안절부절못하며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한 달 전에 와서 물어봐놓고 지가 내가 안 돌아올 거라고 했단 말이죠?”
“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기가 자신이 없는지, 혹시라도 교수님이 다시 나타나면 자기에게 바로 연락을 달라고 하더라구요. 자기가 어차피 출입국 검사소의 사람을 통해서 다 알 수는 있는데, 그래도 집에 돌아오시는 걸 보기라도 하면 바로 연락을 달라고 해서 아까 그렇게 통화를 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내가 돌아왔다니까 화를 지가 왜 낸대요?”
“그러게 말입니다. 직접 봤느냐면서 막 화를 내더니 그럴 리가 없다고 다시 똑바로 확인하라 마라 하다가 아까 전화가 끊긴 겁니다.”
“알겠어요. 그 사람은 기자도 뭐도 아니에요, 뭐 이미 눈치챘겠지만. 그리고 지난번 내가 살던 아파트에 이상한 찌라시를 뿌려서 그 인간을 경찰에 고소한 상태니까 최소한 여기는 타이베이에서 가장 비싸고 좋은 주상복합인데, 경비부장이 그런 일을 모른 척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이지요.”
그때 바에서 음료를 만들어 웨이터가 두 사람 앞으로 가져왔다.
“이거라도 드시고 올라가세요.”
“경비부장이 두 잔 다 마시고 정신 좀 차리세요. 난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박 교수는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장 먼저 옌 변호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물론 평일이라 연락이 안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이 있었다.
“여보세요.”
옌 변호사의 전화기에서 바로 그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지금 안 바빠요?”
박 교수가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물었다.
“박 교수님? 지금 어디세요? 타이베이세요?”
옌 변호사의 의미심장한 질문이 다시 박 교수의 말문을 턱 하고 막았다.
“내가 타이베이지, 그럼 어디에 있다는 거죠?”
“네?”
박 교수의 날카로운 반문에 이번엔 옌 변호사가 갑자기 말문이 막힌 듯 정적이 아주 잠시지만 강하게 둘 사이를 관통했다.
“아니, 한국에 가셨다는 이야기가 들려서요.”
“누구한테서요?”
“상대편 변호사가 그런 말을 하길래...”
“형사 재판 중에 한국에 들어갈 수 있나요?”
박 교수는 이전에 물었을 때, 옌 변호사의 절대 출국금지는 풀리지 않는다며 몇 번이나 강조한 설명을 떠올리며 그에게도 그 말을 기억하느냐는 식으로 꼬집듯 물었다.
“물론, 안되지요. 그래서 저도 어이가 없긴 했는데...”
“그건 됐고. 그래서 재판 일정이 어떻게.... 잡혔나요?”
“아니요. 법원에서는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아니, 한 달이 넘었는데 아직까지도 일정조차 안 잡히는 게 말이 되나요?”
“아마도 저쪽 변호사가 저에게까지 그렇게 말한 걸 보면, 재판부나 그쪽에 그런 식의 정보를 흘리거나 그런 식으로 연장책을 쓰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연장책은 지난번에 말했던....”
“네. 아마도 교수님이 지금 직업도 없고, 수입도 없는 상태이고, 가족도 찢어놓았으니까 계속 시간을 끌어서 피를 말리려는 작전을 계속해서 고수하는 것일 수도 있구요.”
“아니, 그 판사가 보인 반응도 그렇고 옌 변호사 말에 의하면 그 사람은 공정하게 처리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건 맞는데, 개인이 하는 게 아니라 결국 재판부도 위의 재판 일정이나 전체를 관할하는 부서에서 진행하는 의견이 강하게 반영되는 편이라, 국회의원 측에서도 그렇고 아마도 그쪽에서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제 어머니와 대부들의 의견으로도 지금대로라면 아마 현재 고등법원의 판사님이 정년을 앞두고 있어서 이 건을 묵혀서 퇴직할 때까지 재판을 열지 못하게 할 수도 있을 거라고 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아니, 그게 그런 식으로 멋대로 할 수가 있어요?”
“아마, 위에서 계속 압박을 하게 되면, 이 재판 때문에 퇴직 전에 스트레스를 받고 싶어 하지 않다면 그 판사님도 그들의 말대로 들어주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고 자신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생각할 테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가 다루지 않는 거죠. 그렇다고 유효기간이 있어서 언제까지 재판을 반드시 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항소를 12월에 바로 했고, 3월에 준비기일이 있었으면 옌 변호사의 경험이나 통상적인 타이완의 법조계 관례도 한두 달이면 첫 공판이 잡힌다고 하지 않았나요? 게다가 항소심은 그렇게 길게 진행되지도 않는다고 했잖아요.”
“속상하신 거 압니다. 그런데 이게 저희 뜻대로 항의를 할만한 법적인 규정이 있는 것도 없고, 여러 가지로 저희 어머니와 대부들에게도 라인을 찾아달라고 하고는 있는데, 저쪽에서 특히 여자 국회의원이 사활을 걸고 틀어막고 있나 봅니다.”
“만약 내가 정말로 한국으로 가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지금 상황에서?”
“일단 형사 재판 중에는 출국금지가 풀릴 리도 없지만, 원칙적으로 피고가 불가피한 사유로 재판에 나오지 못하게 되면 재판은 당연히 진행되지 못합니다. 그건 전 세계 형사재판의 기본입니다. 해당 피고인이 없는데 재판을 진행하는 건 형평성의 원칙에도 어긋나고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니까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일단 최대한 빨리 재판 일정이 잡힐 수 있도록 항의라도 해주세요. 민사는 그냥 홀딩된 거 맞는 거죠?”
“네. 민사는 형사가 진행되지도 않으니까 그대로 진행될 수 없다고 판단해서 연락이 없는 걸 거예요. 그 사람들이 형사를 막아버리는 바람에 민사도 진행이 안 되는 효과라면 효과까지 드러난 거죠.”
“후우,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재판을 진행할 수 있게 어떻게든 좀 도와주세요.”
“알겠습니다. 변동 사항이 있으면 다시 연락하기로 하죠. 저는 또 상담이 있어서 들어가 볼게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가만히 앉아 있자니,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이미 주영희와 그의 변호사는 출국금지를 푼 것도, 박 교수가 한국에 들어간 것도 모두 일일이 체크까지 해가며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정보가 외교대학교 한국어학과 학과장에게까지 공유가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누가 왜 어떻게 형사 재판상의 출국금지를 풀면서까지 그런 일을 꾸몄는지에 대한 곳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시 심박동이 올라가며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앞서 옌 변호사의 설명대로라면 이대로 시간을 끌게 되면 한도 끝도 없이 언제 시작될지도 모르는 시간을 계속 버리며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한다. 뭔가 결정을 해야 했다.
스승에게서 카톡이 온 것은, 막연해하며 베란다에서 열기가 올라오는 시먼딩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던 즈음이었다.
발검무적: 박 선생. 잘 들어갔나?
박 교수 : 네. 선생님. 이제 막 들어와서 짐 풀고 변호사와 통화했습니다.
발검무적: 뭐라던가 그 친구는?
박 교수 : 여자 국회의원이 필사적인 것 같다고 합니다. 제가 한국에 다녀온 것은 아예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주영희 변호사가 제가 한국으로 도망갔다는 식으로 비아냥거렸답니다. 아, 그리고 주영희가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까지 와서 완전히 한국으로 간 게 맞느냐고 몇 번이나 확인하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는 난리를 부렸다고 하네요.
발검무적: 그 미친놈은 정상적인 방법이라고는 모르는 놈이로구나. 혹여 이상한 짓을 하거나 아파트에 들락거리고 그런 것까지는 아니고?
박 교수 : 제가 떠난 다음 날 와서 그 난리를 쳤다는 거 보니까 그 녀석의 정보원이 누군지는 몰라도 아마 출국 확인이 되거나 정말로 근처에 24시간 감시하는 녀석이라도 쓰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발검무적: 전에 오토바이 사고도 있고, 워낙 정상적인 놈이 아니니 항상 밖에 다닐 때는 주의하고 모르는 놈들이 근처에 눈에 띄면 항상 주의하도록 하고.
박 교수 : 네. 지난번 일 이후로 선생님 말씀처럼 늘 조심하고 핸드폰에 단축번호로 110도 해두었고, 작지만 단검도 하나 사서 가지고 다닐까 생각 중입니다.
발검무적: 자네가 정말로 생기지도 않아야 할 일에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까지 당하느라 정말 마음고생이 심하겠구나. 조금만 더 기다려보도록 하지.
박 교수 : 다른 건 모르겠는데.... 재판을 이런 식으로 늘리는 건 아무래도 그대로 기다리고 있지는 못할 듯합니다. 아까 변호사 말로는 그쪽에서 해당 판사가 6개월 후에 퇴직을 하게 된다면서 그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안 하고 시간을 미루기만 할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합니다.
발검무적: 정말 나라가 아닌 곳이로구나, 그곳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박 교수 : 전에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던 것처럼, 만약 그렇게 재판부가 교체되기라도 하면 또 반년 이상을 끌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정말로 몇 년 동안 이 일에 묶여서 그것도 진행만 되면 저에게 유리한 상황인 것도 아닌 터라 뭔가 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발검무적: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직접 힘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언론사라도 들어갔다면 판세를 좀 흔들어보기라도 했을 텐데...
박 교수 : 아닙니다. 그래도 선생님이 이렇게 힘이 되어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발검무적: 도저히 답이 안 보이고 답답하긴 하겠지만, 오늘 다시 들어간 것이니, 마음 추스르고 다음 단계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로 하자.
박 교수 : 예.
발검무적: 혹시라도 그쪽 언론사의 반대파가 있을 수도 있으니 그것도 한번 알아보도록 하거라.
박 교수 : 네. 그것도 한번 다시 시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발검무적: 그래. 그럼 또 변동사항이 있는 대로 연락하기로 하자. 오늘 힘들었을 텐데 좀 쉬도록 하고.
박 교수 : 네. 좋은 일도 아니고 이렇게 오래 끌며 선생님께 못난 꼴만 보여드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발검무적: 쓸데없는 소리 마라. 이게 어디 자네가 잘못해서 생긴 일인가?
박 교수 :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타이완에 돌아오자마자 이런 황당한 일의 전말을 알게 된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박 교수 입장에서 뭔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어이가 없었다. 일단 스승의 말대로 타이완 언론에서 가장 주영희와 대척점에 있을 것 같은 국민당 쪽 언론을 검색해서 중국어로 이 사안을 정리해서 이메일 제보의 형태로 뿌리기로 하고 작성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