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사는 악녀 - 122

왕회장으로부터의 협박 조언이 도착하다.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712


박 교수는 밤새 문건을 작성하고 몇 번이나 다시 검토한 후 겨우 새벽이 되어서야 이메일을 각 언론사에 뿌리고 겨우 잠이 들었다. 잠시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또 놀라 푸드덕거리며 일어났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면서 막 비틀거리며 책상에 앉아 노트북에 앉았다. 잔다고 하는 잠시의 새벽 시간 동안 그의 머릿속에 계속 꿈틀거리며 시뮬레이션하다가 빠진 것이 계속해서 그의 알파파를 끌어올렸기 때문이었다.


‘까먹고 있었어. 얼른 준비했어야 했어.’


그는 얼른 법원에 대한 부분을 감찰부서에 감찰을 요청하는 문건을 세 가지로 만들었다. 한국은 3권 분립이라고 해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만 있지만, 타이완은 여기에 고시부와 감찰부를 더해 5권 분립을 하고 있다. 이른바 감찰부가 있어 권력에 대한 감시를 해야 한다는 쑨원의 이론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실제로 국민당의 부패 잔치가 발각되면서 지금의 차이잉원의 민진당이 정권을 잡게 된 계기도 출발은 그 문제를 제기한 감찰부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들었기 때문에 박 교수는 마지막으로 법원의 이상한 1심에 대한 행태와, 교육부와 외교부로 대표되는 행정상의 절차 뭉개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회의원 신분을 이용해서 외국인인 자신을 린치 했던 여자 국회의원에 대한 제대로 된 감사를 요청한다는 자료를 각기 사실에 근거하여 작성하기 시작했다. 아침해가 떠오르기 직전에 시작했는데, 후끈거리는 열기가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에서야 세 개의 문건을 각기 제목을 달리하여 감사부에 접수할 수 있었다. 안내문구에는 2주 안에 담당이 정해지고 연락이 온다는 설명이 나와 있었다.


겨우 쓰러지듯 침대에 누우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네. 보내주신 메일 제보 보고 연락드리는데요. <연합보>의 장청 기자라고 합니다.”

젊다 못해 어리다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통통 튀는 소프라노톤의 여자가 자신을 기자라고 소개하며 흥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보내주신 자료 봤는데요. 제가 이 사건이 터졌을 때 자세히 보지 못했었는데 자료를 워낙 잘 정리해주셔서, 저희가 좀 다뤄보고 싶은데요.”

“아, 그래요?”

박 교수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말에 행간을 뒤적이는 듯 짧게 답했다.

“일단 자세한 건 보내주신 자료에 충분히 나와 있어서 보긴 했는데, 취재를 하려면 만나 봬야 할 것 같아서요. 시간 괜찮으시면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네. 좋습니다. 시먼딩 근처 아무 데나 좋습니다. 시먼딩 역 괜찮으시죠?”

“네. 시내이니 사무실에서도 갈 수 있으니까 괜찮긴 하네요. 그러면 제가 지금 법원에 나와서 취재 중인데 시간 좀 다시 체크하고 연락드려도 될까요?”

“그럼 그렇게 하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박 교수는 연합보에 보낸 이메일을 수신확인을 눌러 체크해봤다. 2시간 전에 읽음으로 나와 있었다. 2시간이라면 정독하려면 할 수도 있지만, 그녀는 지금 법원에 취재를 나와 있다고 했다. 어디까지 그녀의 말을 믿어야 할지, 그리고 그녀가 주영희와 연관관계에 있는지 혹은 불러내서 린치를 가할 수 있다는 가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은 한국이 아니다. 그리고 주영희는 내가 어제 다시 타이완에 돌아온 것 때문에 흥분해서 난리를 부렸다. 그렇다면 충분히 돌발행동을 저지를 수도 있는 놈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온갖 상상과 최악의 상황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안에만 갇혀 있을 수는 없었다. 그 놈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박 교수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집안에만 가둬두고 그것으로 무력하다 못해 스스로 무너지거나 한국으로 도망가게 하는 것임은 분명했다. 그래서, 그들의 의도대로 그것을 기정 사실화하여 1심의 결과를 만방에 알리며 도망갔다고 적당히 이 상황을 정리하는 것임을 이번에 확실하게 확인하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들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또 전혀 처음 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박 교수님 되십니까?”


이번엔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중국어가 아닌, 어눌한 한국어였다.


“네. 그런데요. 어디시죠?”

“저는 왕회장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인데요.”

“왕회장이요?”


정신이 다시 퍼뜩 들었다. 왕회장은 버닝 썬 때문에 그 난리가 났다는 린 사모의 남편이자 지난번 스승의 정보를 통해서 악녀를 죽여주면 어떻겠느냐는 살벌한 농담 같은 제안을 했던 그 작자 아니던가?


“어떻게 제 번호를 아신 거죠? 아니, 무슨 일로 연락을....?”

“왕회장님이 굉장히 불편해하십니다.”


남자의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듯한 어눌한 한국어가 굉장히 거슬리게 들렸다.


“불편이요? 왜요?”

“한국의 언론이 타이완에 오게 되면 여러 가지로 회장님이 거슬리는 상황이 되고 일이 커질 것이라고 불편해하십니다.”

“그런 얘기를 왜 저한테 하시는 거죠?”

“교수님이 당한 일에도 상당히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계십니다.”

“얘기 들었습니다. 그쪽에 왕래하는 한국인이 있다구요.”

“네. 하지만 그 사람은 그저 어떻게 투자를 받고 싶어서 우리 쪽에 어슬렁거리는 피라미일 뿐 저희 회장님이 교수님의 사건에 대해 2년 전부터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남자는 어눌하기 그지없는 발음이었지만, 천천히 책을 읽듯이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듯한 목소리로 아주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요? 왜 제 사건에 관심이 많으신 건가요?”

박 교수도 약간 호전적인 느낌으로 그에게 되물었다.

“한국에 대해 가족들이 워낙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교수님의 사건이 터지면서 쓰레기 같은 것들이 타이완의 얼굴에 똥칠을 한다고 생각하셔서 굉장히 거슬려하시던 참이었습니다.”


‘똥칠’이라는 표현까지 아무렇지도 않은 톤으로 책 읽듯이 말하는 남자의 말소리는 여전히 어디에도 강조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게 제 사건에 관심을 가진 이유신 가요?”

“문제는 그 랴오츠리엔이라는 여자애와 주영희 아니신가요?”

“문제요?”

“예. 회장님의 사업도 그렇고, 한국 언론의 관심이 자꾸 이상한 쪽으로 몰리는 것을 불편해하셔서 교수님이 더 이상 이 일을 확대하는데 관여하지 않기를 바라시는 마음이 있어 제가 이렇게 연락드리게 된 겁니다.”


남자의 말은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책을 읽는 듯한 어눌한 한국어였지만, 묘하게 중압감이 느껴졌다. 마치 옆에서 칼을 목에 들이대고 그대로 읽으라고 하는 것을 아무런 내용도 모른 채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했다.


“제가 언론사에 접촉한 적은 있지만, 그것도 결국은 제 사건 때문이지 저는 그쪽에 관심이 있는 언론사의 취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한국어로 설명하면서도 그가 온전히 자신의 뜻을 알아듣기는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박 교수는 편하게 그냥 자기 식대로 설명했다. 남자가 잠시 숨을 가다듬는 듯 거친 숨을 몇 번 쉬다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랴오츠리엔은 술집 알바까지 하면서 아주 편하고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뭘 하고 지내는지 저는 별로 궁금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없어지면 이 사건이 덮이는지에 대해 왕회장님은 궁금해하십니다.”

“이미 문제는 법원에까지 퍼져있고 주영희가 그녀들의 뒤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닙니다. 물론 저 역시 그녀가 싫기는 하지만... 이건 고소사건이라고 할 수 없는 형사사건이라서....”

“결국 그녀가 없어지고 주영희가 자기 변호사를 시켜서 이 고소를 취하하게 되면 사건은 그대로 종결됩니다.”


그의 말에 무게가 한층 무거워짐을 느낀 박 교수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가만히 생각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도 한 방법일 거라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왕회장이라는 분이 저를 위해 그렇게까지 하시겠다는 건가요?”

“물론 그럴 수 있다는 것이지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희 쪽에서는 박 교수님 한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 더 조용해지는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어서요.”

“저희 쪽이라니요?”

“그냥 우리 쪽이라는 설명일 뿐입니다. 그래서 다시 말씀드리는 건, 행여 한국의 언론사가 타이완에 오거나 하는 일이 벌어져 한국이 타이완에 더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 왕회장님이 불편하다는 설명을 드리기 위해 전화드린 것이 오늘 전화한 이유입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리고 최소한 저 때문에 한국의 언론사에서 들어올 일은 없을 겁니다.”

“그건 이미 우리 쪽에서 손을 썼기 때문에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조심하라는 뜻에서 연락드린 것이니 참고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신다는 건....”

“뚜뚜뚜....”


뭐라고 계속 말하려고 하는데 이미 전화가 끊겨 있었다. 박 교수가 가만히 끊긴 전화를 그리고 그 번호를 보며 멍해졌다. 남자가 ‘전할 말’이라는 표현을 하며 전언을 전한 것이라는 것과, 마지막에 우리 쪽에서 손을 썼다는 표현이 계속해서 박 교수의 뇌리를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아주 찝찝하면서도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끈쩍거림이 있는 타이완의 습기가 박 교수의 멘털을 휘감기 시작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손에 들려 있던 전화기의 벨이 울렸다. 아까 전화 왔던 어린 여기자의 번호였다.


“여보세요?”

“네. 아까 전화드렸던 장청인데요. 아무래도 제가 오늘 법원 취재가 길어질 것 같아서 다른 기자분에게 박 교수님이랑 먼저 인터뷰를 따달라고 부탁을 드렸거든요. 같은 법원 담당 기자세요. 괜찮으시면 한 시간 뒤에 시먼딩 역 앞에서 만나주실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은 누구인지 기자증과 이름을 메시지로 보내줄 수 있겠습니까?”

“네?”

“워낙 기자가 아닌 사람들도 많아서요.”

“아, 그건 문제가 안됩니다. 바로 보내드리고 직접 연락드리라고 박 교수님 연락처도 그분에게도 공유하도록 할게요. 잘 좀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인터뷰를 이 사람이 하면 취재기사는 누가 하고 누구 이름으로 나가는 겁니까?”

“저희가 공동으로 취재해서 나가는 경우도 있거든요. 게다가 그분은 저 한참 위의 선배분이라 기사를 총괄 검토하시는 일도 하시는 분이라 취재가 더 빨라질 수 있으니까 협조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메시지로 기자증으로 보이는 사진이 도착했고 남자의 이름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보내준 번호로 바로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네. 제가 지금 제 기자증이랑 이름 보냈습니다. 저는 양루이라고 합니다. 그냥 양기자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장청 기자에게 대강의 이야기는 듣고 방금 자료 공유했습니다. 제가 한 시간 뒤에 시먼딩 역으로 갈 테니 그쪽에서 뵙고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그 남자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하자, 그가 작성한 기사부터 그가 기사를 폭로하면서 명예훼손을 한 것으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지불했다는 기사까지 여러 뉴스들이 떴다.


‘최소한 가짜 기자이거나 위협하려는 건 아니네.’


박 교수는 한편으로 안도하면서도 이런 과정까지 거쳐야 하는 상황이 엿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이 그랬다. 그가 기자가 아닌 것이 아니라 그가 기자여도 만약 주영희와 어떤 커넥션이 있다면 충분히 위협이 될만한 요소는 어디에나 있었고, 지난번 오토바이 테러처럼 밖으로 나갈 때 노리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타이베이의 어디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었다. 심지어 밤에 누군가 집에 올라와 그냥 기다리고 있다가 무슨 짓을 해도 아무런 이상할 것이 없는 곳이었다. 타이완이라는 특성상. 특히나 방금 전화통화를 했던 그 기분 나쁜 목소리의 남자가 설명했던 것처럼 ‘그들’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말처럼 지금 이 사태를 그저 조용히 덮기 위해서 가장 먼저 제거한다면 박 교수만 제거된다면 모든 사건이 덮인다는 설명이 가장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추론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시간 뒤였으니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입고서 모자를 쓰고, 집에 있던 과도까지 가방에 챙겨 넣고서 시먼딩 역으로 길을 나섰다. 로비를 나서는데 리셉션 데스크의 경비부장이 애써 박 교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뒤의 사무실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내가 나간다고 전화를 하러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겠지?’


별의별 쓸데없는 것까지 생각해야 하는 이 상황이 박 교수의 신경을 더욱 날카롭게 했다.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시먼딩 역으로 뒷골목을 나오면서도 오토바이 소리에 내내 신경을 곤두세우면서도 오가는 남자들이나 이상하게 생긴 아줌마들, 그리고 한 달 만에 느껴지는 거리의 기분 나쁜 습기, 6월 말치고는 너무 뜨거운 정오의 태양볕 등등이 여러모로 거슬렸다.


만나기로 했던 시먼딩 역 출구 쪽에서 박 교수가 다시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시먼딩 역 앞의 커피 전문점 안에 들어가 앉아서 밖을 보는 편이 훨씬 뭔가 나아 보였다. 크고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 많은 곳보다 작고 입구가 좁아서 체크하기 편한 카페로 들어가 사진을 찍어 보내고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자리에 앉았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