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작고 화가의 빵모자 같은 것을 쓴 남자가 입구에서 기웃거리며 사람을 찾는 모습이 보였다. 기자증에 본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얼굴의 윤곽이 그 남자가 맞는 것 같아 보였다.
“양기자님! 여깁니다.”
“아! 박 교수님?”
남자가 카페 안으로 들어와 박 교수의 앞에 앉으며 모자를 벗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 많이 덥네요. 뭐 시원한 거라도 마실까요?”
“그러시죠. 제가 사죠.”
막 일어서려는 박 교수의 앞으로 남자가 재빨리 움직이며 말했다.
“원래 취재원과 만날 때는 기자가 사는 겁니다. 하하! 뭐 드실래요?”
남자는 꽤나 유쾌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음료를 받아서 자리에 다시 앉아 흐르는 땀을 닦았다.
“자료를 보다가 재미있는 걸 발견해서요.”
남자가 빨대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절반 가까이 마시고서는 툭 던지듯 말했다.
“재미있는 거요?”
“1심 여자 판사요.”
“아, 그 위판사요?”
박 교수가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에게 말했다.
“오! 대단하시네요? 자기 재판 판사의 이름을 다 외우시다니. 외국인이?”
“하도 못생겼는데 제멋대로 돈 받고 그러는 사람처럼 굴어서요.”
박 교수는 지난 1심의 지긋지긋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의 못생기고 툭 튀어나온 검미스타일의 입을 언급하려다 말았다.
“그녀랑 악연이 좀 있거든요. 들으셨겠지만, 장청 군과 저도 그렇고 저희가 법원 담당 기자들 이어서요. 주로 소송 관련 기사들을 맡고 있거든요.”
처음 듣는 설명에 박 교수는 그들이 왜 먼저 연락을 했는지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무슨 악연이 있으셨죠?”
“이 여자가 형사 단독심을 맡은 지 오래되었는데, 원래대로면 벌써 다른 쪽으로 갔어야 하는 순번인데 매번 인사이동 기간에 타이베이 형사 단독심에만 벌써 세 번째 잔류했거든요.”
양 기자가 천천히 자신의 기자증과 다이어리를 펼치며 볼펜을 꺼내 들며 말했다.
“그게 그렇게 이례적인 일인가요?”
박 교수의 질문에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이어리를 꺼내 자신이 적어둔 자료 같은 것을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 보세요. 정기 인사이동이 있으면 이렇게 신문기사에 날 정도로 이동을 하죠. 한국도 그런 걸로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판사가 한 곳에 오래 있게 되면 부정부패와 결탁해서 고인 물이 썩기 마련이거든요.”
“그렇죠. 한국도 그런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 여자가 부정부패 사건이라도 있었던 건가요?”
“이 여자가 아주 웃긴 게, 검찰이랑 결탁하는 게 아니라, 돈을 주는 사람이 피고이면 피고 쪽에 유리하게, 고소인 쪽에 돈을 받으면 검찰 쪽에 유리하게 아주 고무줄 판결을 너무 티 나게 내는 걸로 유명했거든요.”
“그 얘기는 법조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그러면 더 잘 아시겠군요. 그 법조 기사를 쓴 게 제 후배거든요. 그 친구도 열 받아서 연재 시리즈로 세 편이나 쓰긴 했는데, 이 여자에 대해서 5년 전에 제가 기사를 썼다가 명예훼손이 어쩌고 소송까지 갈 뻔했었거든요.”
남자는 남은 음료를 다 마시고서 웃어 보였다. 마치 자신이 고소를 당할 뻔한 것이 아니라 그녀를 고소했다는 식의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그럴 뻔했다는 건 결국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건가요?”
박 교수가 그의 미묘한 표현을 잡아내고선 바로 되물었다.
“그렇죠. 왜냐하면 결정적 증인이 제 취재원이었거든요.”
“네? 결정적 취재원이라면?”
“그 여자가 돈을 받은 정황을 증명해줄 증인. 그거면 그 여자는 더 판사를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공무원 청탁 금지법으로 형사처벌을 받아야 했거든요.”
“아...”
“여기까지만 하죠. 이제 우리 얘기를 좀 할까요? 그런 여자에게 걸렸으니 상대가 누군지 조 알아봤는데, 그냥 여학생이랑 기껏해야 그 기자회견으로 타이난 시장 선거에 나가려고 설쳤던 그 여자 입법위원이 다 였던가요?”
“주영희는 체크하지 못하셨나 보군요.”
박 교수의 말에 남자가 순간적이긴 했지만 멈칫하고서 동작을 멈춘 채 표정을 바꾸고 박 교수를 응시했다.
“지금 주영희라고 하셨나요? 그 쓰레기 언론 사칭 평론가?”
양 기자의 말이 거칠어지며 다소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다.
“아시나요, 그 사람도?”
“알다마다요. 그 쓰레기가 <연합보>에 있다가 민진당 쪽으로 넘어가면서 얼마나 이쪽에 똥물을 뿌렸는지 우린 다 알지요.”
“<연합보> 쪽에서 대접을 받다가 변절했다는 이야기는 읽어서 알고 있습니다.”
“한국분이신데도 타이완 정황에 대해서 이것저것 꼼꼼하게 다 잘 아시네요?”
양 기자가 박 교수의 표정을 보며 소형 녹음기를 꺼내고서 물었다.
“지금부터 녹음을 좀 할게요. 장 기자도 같이 들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정리하기 전에 벌크로 듣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저도 녹음을 좀 하죠.”
박 교수가 이번에는 아예 그와 같은 방식으로 양해를 구하고 대놓고 핸드폰의 녹음 버튼을 누르며 테이블 위에 놓았다. 양 기자는 박 교수의 호전적인 방식에 씨익 웃어 보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양 기자의 법조출입기자였던 만큼 박 교수는 재판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서 주로 설명하는 전략을 폈다. 그리고 결정적인 증인이던 판판의 증언과 파격적으로 남자 검사의 증언 과정에서 도저히 견딜 수 없다며 중간에 그만둬버린 이야기를 했다. 그때 양 기자의 반응이 가장 적극적인 것임을 확인했다.
“아니. 검사가 중간에 그만두겠다고 해서 증인 심문 중에 검사가 여자로 교체되었다고요?”
“네. 많이 이례적인 거라고는 변호사가 말하더라구요.”
“이례적이요? 그 변호사가 그럽디까? 이거 완전히 아무리 썩었어도 그렇지 너무 티 나게 판을 짰네.”
양 기자가 이야기를 하던 다이어리 안에 펜을 높고 의자 뒤로 몸을 기대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웃었다.
“교수님. 이건 이례적인 게 아니라 이상한 거예요. 물론 중간에 병으로 쓰러지거나 사고를 당해서 재판을 검사가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재판부에서 과정을 모두 녹취하게 되어 있는데, 그 과정에서 검사가 자기는 못해먹겠다고 말할 정도면 이건 나라도 아닌 거죠.”
박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여기 원래 나라가 아니잖아요.’라고 바로 대거리를 칠 뻔했다.
“그래도 진행하겠다고 한 것도 그렇고, 위 판사가 검찰 측을 대변하듯이 내내 재판을 진행한 것도 어이가 없었어요. 모든 게 그랬죠. 판판이 결정적인 증인이 아니라면서 배제하고는 판결문에는 제대로 된 언급이나 설명조차 없었어요.”
“아까 오다가 대강 읽긴 했는데, 뒷부분에 있었군요. 아니, 현장에 같이 있었고, 누군가 거짓말을 한다면 그걸 판명해줄 수 있는 결정적인 타이완 여학생의 증언인데 어떻게 그걸 배제하겠다고 이따위로 판결문을 쓴 거지?”
그는 계속 뭔가 혼자서 쓰면서 구시렁거리는 것인지 박 교수를 향해 뭔가 묻는 것인지 모를 방식을 오락가락 시연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이미 끝난 재판에 대해서 저격하는 방식의 기사를 쓰게 되나요?”
박 교수의 질문에 그가 멈칫하다가 이내 숨을 내쉬듯 입을 열었다.
“사실, 이런 일이 이례적이거나 간혹 있는 사례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교수님의 사건이 갖는 이슈로 맞춰질 경향이 많은 거예요. 제가 사실 최근에 쓴 기사 때문에 명예훼손 합의금으로 워낙 많은 돈이 깨져서 저는 직접 기사를 못 쓸 것 같고, 아마 장 기자가 쓴다면 외교대학교 사건을 다시 언급하면서 다루게 될 겁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그냥 솔직하게 물어볼게요. 이렇게 돌아가는 게 말이 됩니까? 판결도 그렇고?”
박 교수가 답답한 마음을 그대로 토해내듯 그의 객관적인 답을 원했다. 물론 그가 객관적인 답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타이완 사람이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는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했다.
“으음. 그냥 제 개인적인 사견을 말씀드리는 걸로 하는 게 맞겠네요. 사실 타이완 남자들에게도 돈을 뜯어내겠다고 요즘 이런 짓을 벌이는 여자애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이 여자애가 머리가 좋은 건지, 아니면 우연히 계속 겹쳤는지는 모르겠지만, 포진이 아주 잘 이루어졌어요. 페미니즘 사건으로 자기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하던 여자 입법위원, 마침 그 대학의 한국어학과 강사이면서 한국인에게 이를 갈고 호시탐탐 씹을 기회를 노리던 언론인 출신 쓰레기, 그리고 이건 정말로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그 한국어학과에서 교수님이 그대로 있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불편해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학과는 왜 갑자기요?”
“사실 이런 학내에서 발생한 성희롱이나 성추행 같은 경우에 가해자가 교수일 경우에는 교수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현행범이 아닌 이상은 다 감싸주거든요. 그런데 그 경향은 해당 학과의 교수들이 가장 심해요. 왜냐하면 그걸 인정하는 순간 자신에게도 언제든 총구가 향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최소한 정치적인 이유에서라도 침묵을 하면 했지, 지금처럼 역으로 교수님을 해임시키자고 하는 일에 선동으로 나서지는 않거든요. 그 점이 저는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개인적으로는 더 묻고 싶었어요. 물론 법정과 관련된 일이 중심이 되어야 하기는 한데, 거의 대부분의 모양새나 돈 받고 판결문 조작하는 위 판사도 익숙하긴 한데, 외교대학교의 한국어학과에서 보인 스텐스는 제가 처음 보는 경우이기도 하고. 아, 물론 교수님이 한국인이라는 특성을 감안하면, 혐한 정서가 가장 시청률을 올리는 데는 효과적이니까 주영희도 들러붙기는 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기 학과에서 벌어진 일을 이런 식으로 교수를 쳐내는 것으로 해결하는 건 전혀 타이완스럽지 않아요.”
“무슨 말인지 대강 알겠네요.”
“자아, 그러면 이 정도로 오늘 인터뷰는 마치도록 하지요. 제가 또 다음 취재원을 만나기로 한 약속이 파리 쪽에서 있어서요.”
“네, 오늘 시간 내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기사가 어떻게 나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큰 기대는 안 하시는 게 좋아요. 게다가 <연합보>에는 아직도 주영희와 연결되어 있는 오래된 고인물들이 제법 아직 남아 있거든요.”
“네. 어찌 되었든 장 기자에게 잘 보도될 수 있도록 좀 신경 써주세요.”
“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와 헤어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뭔가 획기적인 전환 포인트가 없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그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제임스였다.
“박 교수. 요즘에 어떻게 지내요?”
“아! 그렇지 않아도 연락한다는 게 너무 오래 못 봤네요. 지난번에 부모님 오셨을 때 보고...”
“별일, 없는 거죠?”
제임스는 타이완 사람 중에서 박 교수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친구였다.
“언제 점심시간 이용해서 잠깐이라도 봐요. 내가 근처로 갈게요.”
“그럴까요? 회사 근처에 맛있는 닭집이 있어요. 내가 살게요. 모레 점심에 어때요? 12시쯤에 그쪽으로 와요. 내가 구글 지도 찍어서 보내줄게요.”
“그래요. 그동안의 일도 그렇고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 하니까...”
“그래요. 그럼 모레 점심에 만나요.”
제임스는 한국에 가 있는 동안에도 자신의 마음을 담은 성경의 구절이라던가 짧지만 기운 내라는 메시지를 간간히 보내와 자신이 응원하고 있음을 전해왔었다.
약속한 점심시간에 맞춰 버스를 타고 제임스가 찍어준 닭집이라는 식당에 막 들어서려는데 골목의 끝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들렸다.
“박 교수!”
“아! 제임스!”
덩치도 있는 나이 먹은 아저씨들이 골목에서 부둥켜안고는 인사를 나눴다. 제임스는 늘 만날 때마다 가슴을 맞대고 박 교수를 안아서는 어깨를 꼬옥 잡아주는 것으로 마음을 전했다.
“잘 지냈어요?”
“우리야 늘 그렇죠. 박 교수는 식구들이 다 한국에 가서 혼자서 외롭게 지냈겠어요. 우리 동네 가까이 살 때는 외교대 근처에서 보면 좋았는데, 시먼딩은 너무 멀어서 놀러 오라고 하기도 좀 그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