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처럼 생긴 듯하면서도 독특하게 닭을 튀기는 방식은 재래방식의 묘한 가게에서 기다리다가 한 바구니에 한 마리 반을 담아서는 위층의 고즈넉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먹어봐요. 여기 맛집이니까.”
제임스가 먼저 바구니를 세팅하고 콜라를 옆에 챙기며 박 교수의 앞 접시에 닭다리를 놓아주었다. 박 교수가 맛있어 보이는 닭다리를 들고 크게 한입 물었다.
“맛있는데요?”
“그쵸?”
제임스가 자신이 튀겨낸 닭이라도 대접하는 표정으로 만족스럽게 씨익 웃어 보였다.
“어떻게 지냈어요, 요즘?”
제임스의 질문에 박 교수가 닭고기를 우물거리며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실 어떻게 지냈는지를 묻는 질문이 아닌 것을 묻는 사람이나 대답할 사람,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버티면서 괜찮았는지 안부를 묻는 것이었지만 뭐라고 따로 답할 마땅한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얘들은 잘 크죠?”
박 교수가 웃어 보이며 아이들의 안부를 물었다. 오십이 훌쩍 넘었던 제임스는 늦게 결혼한 데다가 아내와 나이 차이도 제법 있어서 늦둥이까지 아이를 셋이나 본 학부모였다.
“아, 정신없죠. 집에 들어가면 일단 전쟁인 셈이니까. 게다가 얘들 엄마도 일단 호텔일을 나가니까 얘들 챙기느라 주말에는 계속 왔다 갔다 정신이 없어요.”
제임스가 맛있게 닭을 우물거리며 콜라를 입 한가득 빨아 마셨다.
“캬아! 언제 먹어도 맛있다니까!”
“제임스. 지난번 보내줬던 1심 그 여자 판사에 대한 기사 있잖아요?”
“아, 내가 보내줬던 거요?”
“그거 보고 <연합보>에 제보메일을 보냈었어요. 며칠 전에. 그런데 그쪽에서 법정 출입기자라면서 이 사람이 연락이 왔었어요.”
박 교수는 지난번 왕 기자에게 받은 라인 화면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의 기자증과 이름을 보면서 제임스가 얼른 손을 닦으며 자신의 스마트폰에 그의 이름을 검색했다.
“<연합보> 기자는 맞네요. 그런데 이 사람 명예훼손으로 걸려서 맨날 돈을 배상금으로 다 쓴 사람일세. 이런 사람들 많아요. 워낙 타이완에 언론이 옐로페이퍼 수준이라서 조금만 명예훼손에 걸렸다 싶으면 돈을 목적으로 형사 고소를 하거든요.”
그리고 그는 잠시 말없이 왕 기자의 이름으로 검색된 몇 개의 기사들을 찾아봤다.
“아마, 이 사람은 기사를 직접 쓰진 못할 거예요. 워낙 판사나 검사들에게 찍혀있는 사람이라서 당분간 이슈몰이는 할 수 없는 입장일 것 같아요.”
“그 사람도 직접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자기 밑에 함께 기사를 쓰는 여자 기자가 기사를 쓰게 되면 쓸 거라구....”
박 교수가 조금 기운 빠진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막상 기사가 나간다고 1심 판결을 뒤집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금 2심 날짜가 안 잡히고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으음. 2심이 그렇게 오랫동안 안 잡히는 건 나도 처음 들어봐요. 물론 내가 법조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정확한 건 아니지만 주변에 물어봐도 작년 크리스마스에 1심 판결이 나오고 지금 2심 준비기일까지 가졌는데 아직도 재판이 안 잡힌다는 게... 특별히 재판이 몰려 있을 만한 상황도 아닌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감찰부에 투서를 넣기는 했어요, 온라인으로..”
“가, 감찰부요?”
제임스가 콜라를 마시다가 사레들린 사람처럼 컥컥거리며 다시 말을 겨우 이었다.
“그거 타이완 사람들도 안 믿어요.”
“안 믿는다니요?”
박 교수가 황당한 표정으로 제임스에게 다시 물었다.
“감찰부라는 게, 결국 지금의 행정부와 딱 붙어서 호흡을 맞춰가는 건데, 그 안에서도 민진당파와 국민당파가 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한궈위 열풍이 일고 있잖아요. 지방선거도 여당이 완전히 무너지고.”
“그랬죠.”
한궈위라는 인물은 이미 3선의 입법위원 출신으로 국민당의 당대표 선거까지 나와서 밀리긴 했지만 중진으로 사람들의 눈도장을 찍고 2018년 11월에 가오슝 시장 선거에 출마하며 당선된 인물이었다. 그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민진당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 이루어지면서 대거 국민당의 흐름으로 전국 정세의 흐름이 돌아오는 듯했다. 특히나 타이완에서 가오슝 시장을 국민당 출신이 당선된 것은 근 20년 만의 쾌거였다. 전통적인 민진당 텃밭이었던 가오슝의 시장이 되면서 그는 차기 총통으로 지지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차이잉원의 연임을 막을 국민당의 대항마로 그가 실질적인 대선 후보로 지명된 것이었다. 하지만, 한귀위 열풍이라고까지 했던 분위기는 6월 5일(하필이면 박 교수의 사건을 알렸던 그 여자 국회의원의 기자회견일 2주년이 되던 그 날) 그가 총통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국민당이 다시 민진당을 뒤집고 정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술렁이던 때였다.
외교대학교 근처에 살고 있던 제임스와 제임스의 처가 일가는 전통적으로 중국 본토에서 넘어온 사람들로 국민당 지지자들이었다. 그들은 타이완 사람들이 쓰는 객가어조차 말하기는커녕 알아듣지도 못한다며 여당이던 민진당을 꼴 보기 싫어하는 확실한 정치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제임스는 지금 사건의 주동자들이 여당인 민진당을 뒷배로 삼고 있으니, 모든 것이 정치적인 흐름으로 이루어지는 타이완에서 국민당으로 정권이 바뀌면 그들을 성토하는데 훨씬 편한 흐름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며 박 교수를 위로해온 터였다.
“그러니까 이제 흐름이 온 거예요. 그것들을 한방에 날려버릴...”
“그런데 총통선거는 2020년 1월이잖아요.”
“금방이에요. 요즘 TV만 틀면 온통 한궈위밖에 안 나오잖아요.”
“그거야 그렇긴 한데...”
그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계속해서 민진당 판이라면 유리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결국 2018년 11월에 있던 그 선거에서 타이난 시장에 나오겠다고 설치던 그 여자 입법위원은 자기네 당내 선거에서도 짓밟혀서 시장 선거에는 나오지도 못하고 그저 사그라들어 겨우 숨만 쉬는 지경인 분위기였다.
“아, 감찰부 얘기하다가 얘기가 샐 뻔했네요. 감찰부가 말만 오권분립이지, 행정부의 시녀예요. 특히 민진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자기네 사람으로 물갈이를 다 하면서 자기들을 어떻게 감찰할 수 없게 구조를 만들어뒀어요. 그래서 감찰부 쪽에서 민진당이 여당이 된 이후로 그 어떤 감찰 건도 이제까지 나온 적이 없어요, 그것만 봐도 감찰부는 유명무실한 부서인 거죠.”
“그러면 법원의 비리 같은 것에 대해서 감찰부에서 아예 들여다보지도 않아요?”
“여당 입장에서는 지금 사법부에서나 다른 곳에서 비리가 터지는 것 자체가 지금 정부에 약점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 터트리지 못하게 할 거예요.”
“그러면 괜한 짓이 되어버린 거네요.”
“아마 2020년 1월 차기 총통 선거까지는 민진당은 목숨 걸고 조용히 사고 없이 무난하게 넘어가려고 비상체계를 지킬 거예요. 게다가 지금 한궈위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더더욱 납작 엎드려서 아무런 일이 터지지 않으려고 있을 거예요.”
“후우! 그러면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니...”
박 교수가 먹고 있던 닭뼈를 빈 박스에 툭 던지면서 중얼거렸다.
“하나님은 박 교수가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주실 거예요.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요.”
제임스는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기 전에 다시 한번 박 교수를 위해 기도하겠다며 절절한 기도를 해주었다. 박 교수는 이제 뭔가 결심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때도 말했고 매번 말하지만, 타이완의 그 어느 누구도 믿지 말아요. 박 교수에게 우호적으로 다가서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들은 뭐든 어떤 식으로든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타이완 사람인 제임스가, 그것도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아이러니했지만, 그가 그렇게 말하는 눈빛에서 진실함이 담겨 있음을 알았다. 박 교수와 제임스는 지난 2년간 박 교수가 겪은 사건을 굳이 다시 떠올리지 않더라도 크리스천의 탈을 쓰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혐한을 몸소 실천하는 이들을 수도 없이 봐왔기 때문에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었다.
“고마워요. 조만간 연락할게요.”
“그래요. 언제든 내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요.”
“고마워요.”
박 교수는 그렇게 그와 헤어지고 다시 시먼딩으로 돌아오면서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감찰부에서 보냈던 연락에 기대를 걸었던 것이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감찰부의 회신이 들어와 있었다.
귀하의 민원내용을 검토한 결과 사실관계에서 특별히 감찰할만한 부분이 없다고 판단되어 민원을 기각합니다.
아주 짧았다. 어떤 부분을 살펴보았고 어떤 이유 때문에 기각하는지조차 설명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더 이상 살펴보지 않겠다고 한 것이 끝이었다.
박 교수는 문득 이 지경까지 만들어놓고 곧 졸업을 앞둔 악녀 랴오츠리엔이 뭘 하고 사는지 궁금해졌다. 술집을 나간다는 말도 지난번 통화에서 들었고, 학교 기숙사에서도 나와서 지낸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버젓이 라인에서는 그를 차단하지 않고 그대로 둔 채였다. 보통이라면 랴오츠리엔도 그렇고 박 교수를 라인에서 차단한 학생들은 오히려 이미 졸업한 4학년 학생들만 있을 뿐 사건의 당사자들은 박 교수를 라인에서 차단하지 않은 채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그대로 바꿔가는 것을 전시하듯 보여주고 있었다.
랴오츠리엔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하고서 설마설마했던 그녀의 이름과 사진이 뜨는 것을 본 박 교수는 어이가 없었다.
그녀는 대학생 가요제에 버젓이 등록하고 싱어송라이터라며 기타를 들고 프로필 사진을 찍고 대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자기소개에도 자신이 K-POP을 좋아하며 타이완의 여자 가수들도 좋아한다는 내용을 적어두고 있었다. 자신이 기타로 곡을 만들며 싱어송라이터의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 자신을 선발해달라는 같잖은 애교까지 듬뿍 담아놓고 있었다.
실제로 대학생 관련 송 페스티벌에 예선 조에 일정표에 이름이 등재되어 있었다.
‘얘는 그 짓을 벌이고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삶을 즐기며 졸업을 준비하고 있구나.’
박 교수는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어쩔 줄 몰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의 삶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놓고 자신은 음악을 즐길 수가 있다는 것인지 화가 났다. 정말로 길에서 지나다가 만나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다는 생각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가득 채워지는 것 같은 느낌에 몸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자리에 가만히 앉지도 못하고 왔다 갔다 하다가 다시 라인에서 옌 변호사에게 말을 걸었다.
“2심은 아직 아무런 예정이 없나요?”
그에게는 바로 답이 오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가만히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밤이 완전히 어둠에 잠겨 박 교수의 모습을 담가버릴 때까지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아주 조용히 자신의 숨소리에만 집중했다.
새벽 몇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옌 변호사에게서 답이 도착했다.
“재판부에서는 아직 모르겠다는 말만 하고 있습니다.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한 내용입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혼자서 그렇게 있던 박 교수가 방에 불을 켜고 거실에도 방을 켜고 이것저것 집의 짐을 모두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짐을 정리하려고 사두었던 베란다의 박스를 가지고 왔다.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쓸 수 있는 새로운 물건들을 새 박스에 넣었다. 제임스와 그 가족들에게 줄 박스를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버릴 것들을 큰 비닐에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라인으로 부동산 업자에게 다시 연락을 취해두었다.
“가장 빨리 집을 뺄 수 있게 해 주세요.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계약 만료 전에 나가는 걸로 해서 보증금은 포기하더라도 집을 빼고 싶습니다.”
박 교수의 손이 빨라졌다. 버릴 짐 말고서도 정리할 짐을 포모사 카페에 모두 올려서 가져갈 사람들은 시먼딩이나 용산사역근처까지 와서 가져가라고 사진을 찍어 공고까지 올렸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서 연락처로 남긴 라인으로 찌질한 한국 워홀러들이 득달같은 연락들을 날려왔다. 그들과 아침부터 물건을 건네주고 다시 들어왔다가 다시 연락을 받고 주고받는 일들이 계속되었다. 부동산 업자는 거액의 보증금을 떼이면서까지 왜 갑자기 나가느냐며 만류하려는 듯한 말투로 집에 손상이 없는지 감시를 하러 왔다.
“냉장고와 싱크대를 완전히 깨끗하게 다 정리해서 이전 상태로 만든 다음에 저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내줘야 합니다. 손상된 것이나 지저분한 것이 없는 최초의 상태를 만들어두면 그 날짜에 맞춰서 방을 정리하는 것으로 하지요.”
“알겠습니다.”
바로 집에 설치했던 인터넷 회사에도 전화를 걸어 원래 기간이 채워지진 않았지만 보증금을 포기하고 나가겠다고 이사하는 바로 전날 저녁에 인터넷을 끊어가라고 통보했다. 집의 세간살이들이 거의 줄어들었다. 만난 지 며칠 되지 않은 박 교수에게서 차를 가지고 시먼딩까지 한 번 와서 저녁이나 하자는 연락을 받은 제임스는 느낌이 이상했는지 다시 박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