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사는 악녀 - 131

그 마지막 이야기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747


“누, 누구세요?”


츠리엔이 먼저 동생에게 다가서는 남자들의 앞으로 나서며 막아서서 물었다. 175의 작지 않은 키의 츠리엔의 눈에 남자들의 뒤에 경찰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 4명이나 서 있는 것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랴오츠리엔씨? 현 시간부로 당신을 명예훼손과 무고 등의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한국어 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한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으며,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할 경우...”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남자가 드라마에서나 본 것 같은 대사를 자신의 얼굴 앞에서 아무런 표정 없이 책 읽듯 말하고 있었다. 뒤로 갈수록 귀가 멍해지면서 그의 입모양만 보였다.


‘난 이제 겨우 그렇게 벼르고 벼르던 한국엘 왔는데, 한국땅을 밟자마자 체포라구?’


머리가 새하애졌다. 정신을 차린 것은 자신에게 매달리며 울고불고 안절부절못하는 동생의 모습과 차갑고 묵직한 수갑이 손목에 채워지는 것이었다.


‘일단 쓰러지자. 시간을 벌고 정신 좀 차리자.’


그렇게 빨리 머리를 돌린 그녀는 그 자리에서 까무룩 쓰러졌다.


“언니! 언니!”

“정말 말씀하신 대로네. 예언가시네, 우리 검사님. 어떻게 아셨지? 야! 순경들! 이거 기절한 척하는 거니까 난리 칠 필요 없어. 그냥 업을 준비해.”


자기가 까무러치는 연기를 했는데도 그들은 아무런 미동이나 난리를 치지 않았다. 난리를 치며 민남어(타이완 토속어)로 떠들어대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는 동생 한 명이었다. 그때 그녀가 가만히 눈을 뜨는데 웬 남자가 자신의 앞으로 다가와 섰다. 남자는 나이가 제법 있었음에도 머리를 포니테일 스타일로 묶고 있었다.


“이제야 얼굴을 보는구나. 랴오츠리엔. 이 쓰레기 악녀...”

“선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알겠소. 약속대로 금방 떠나리다. 나도 비행기 시간이 되어서... 그럼 딱 한 대만...”


순경들이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데 남자가 자신에게 수갑을 채운 사람에게 ‘딱 한 대만’이라고 하더니 뭔가 엄청난 충격이 뇌를 때렸다. 그렇게 까무룩 정말로 정신을 잃었다.


“언니~~!”

찢어질듯한 외마디 비명이 공항 청사에 퍼졌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며 웅성거렸지만 순경들이 통제하며 사람들을 흘려보냈다. 뺨 한 대였다.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감정이 실리지도 않은 듯 순식간에 막 일어선 그녀의 뺨을 시원하게 후려갈겼다. 그런데 키가 175나 되는 그 육덕진 몸이 공중에 붕 뜰 정도로 휘청하더니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여동생이 고개를 들어 그 남자를 쳐다봤을 때 남자는 그 자리에 없었다. 캐리어를 끌고 저 멀리 사람들 사이에 유유히 사라지며 출국장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있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그와 눈이 마주친 여동생은 바로 시선을 내리 깔아야만 했다. 남자는 정말로 눈에서 불길이 일어날 정도의 무서운 표정으로 자신과 언니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다 싶었는데 희끗희끗한 반백의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겨 포니테일 스타일로 묶은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도깨비상으로 자신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계속 보고 있다가는 바로 다시 달려와 자신마저 잡아먹을 것 같았다.


“아! 저 양반 운동하셨나? 뭐 이렇게 힘이 좋아? 제대로 들어갔네. 얘 정말로 기절했다. 엎고 빨리 차에 태워라. 검찰로 바로 간다.”


다시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에 올라 손바닥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결국 그 악녀를 잡아 가두고 뺨 한 대만을 양해받는 것으로 이렇게 끝내는 것이 다인가 싶어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달 전.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이 내려다보이는 회의실을 마련한 것은 국무조정실에 있던 안 정책관이었다.


“다들 온건가?”

“예. 선생님.”


재판일을 피해 약속을 잡아달라고 했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은 좌장 격인 강 판사가 대답했다.


“대략 공유했던 메시지와 내용은 다 파악했지?”

“예.”

“너희들이 하기 어려운 일이면 너희 윗선의 선배 기수의 녀석들까지 가동한다. 법을 어기는 일은 하나도 없는 선에서 준비했다. 그리고 김 군은 주영희에 대한 건 어떻게 되었나?”


회의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본사 건물이 있어 가장 먼저 도착했던 민국일보의 정치부 김 부장이 수첩을 펼치며 보고했다.


“선생님 말씀대로 박 교수가 한국에 들어온 다음날 자신이 1980년대 한국에 특파원으로 나와있을 당시 찍었던 이웅열 열사의 가투 사진을 내놓겠다며 자연스럽게 이웅열 열사 기념사업회 측에 밑밥을 뿌리고 기레기들과 엮어 기사까지 내놓고 다시 기어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선생님이 사전조치를 다 하셨음에도 기념사업회에서는 움찔하면서도 자기네가 이번 이슈를 통해서 어떻게든 사회적 이슈를 좀 띄워볼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기사를 낸 애들은 이제 사회부 4,5년 차인데 그냥 받아쓰기를 해서 보도자료 그대로 뿌렸습니다. 공중파 2군데와 신문 2군데, 그리고 인터넷 매체 2군데 정도입니다.”

“그 쓰레기까지 엮어버리고 싶은데, 혹시 그 년이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 내가 알려준 대로 이번엔 그년을 한국에 끌어와서 잡아넣는 것까지를 최우선으로 하고, 그년이 처리되는 대로 김 군이 그놈은 예의 주시하되 다음 타자로 집어넣는다. 한국에 발도 못 들이게 하되, 그래도 대가리를 들이밀 짓을 할 테니 그때 집어넣는다.”

“알겠습니다.”

“처리 방식에 대해서는 윤 군이 다시 정리해서 설명해라.”

“네. 선생님이 주신 정보대로 일단 기획사 사장이 원래 진행 중인 해외 오디션을 타이완의 왕 회장이 연결해준 라인을 통해서 진행하고, 그렇게 한국으로 오게 된다는 사실을 고지받는 시점 전에 강 판사 쪽에서 선배 기수들을 통해 공 앤 정 로펌에 신 선배님이 고소장을 이틀 전 접수해 주셨습니다. 법적인 검토는 이미 끝났습니다. 피해자가 한국인이고 명예훼손은 물론이고 심각한 무고로 인해 피해가 상당했기 때문에 속지주의(범죄행위가 일어난 위치를 기준으로 죄를 따지는 법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도 충분히 피력하였습니다. 아울러 명예훼손과 무고인데 인신을 구속할 수 있는가에 대한 법적인 논리도 대응하였습니다. 일단 한국에 들어온 적이 없었던 피의자의 기록과 최근 타이완 여학생들이 보이스피싱 관련하여 중국 본토를 대상으로 했던 범죄와 연루되어 난리를 쳤었기 때문에 도주의 우려도 있고 한국에 정해진 숙소나 지인이 없기 때문에 구속적부심에서 문제가 될 것은 없을 것으로 확인하였습니다.”

“실제로 재판이 진행되고 형이 확정되어 실형을 살게 하는 것까지 하면 총기간은 얼마 정도로 보나?”

“선생님이 일러주신 대로 최대한 잡고, 국선 변호인을 통해 항소를 진행한다면 1년 이상의 실형을 받아내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에 구치소에서 있는 것으로 때울 우려도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만...”

“강군, 말했던 그 부분에 대해서는 검토해봤나?”

“네. 마약 투여 혐의를 적발하게 되고 타이완에서 마약을 가방에 가지고 왔을 경우, 최근 타이완과 중국 본토에서 한국에 원액을 가지고 와서 마약을 제조하다가 적발된 케이스가 있어, 마약수사대 쪽에 공조를 요청하면 명예훼손과 무고죄와는 별개로 가중처벌이 되어 실형까지 선고하는데 큰 무리는 없습니다. 특히 한꺼번에 하지 않고, 명예훼손과 무고죄가 끝나는 시점으로 이어져서 시작하게 되면 교도소에 보내서 최소한 1년 이상은 보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그 사립대 여자 교수건에 대해서는?”

“일단 박 교수가 고소를 진행했었는데 종로 경찰서에서 덮었고, 창원경찰서에서도 경찰 놈들이 대강 뭉갠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윤 검사가 수첩을 보며 말했다.


“그건 나도 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고? 너희 검찰에서는 그걸 불기소로 처리해줬잖아!”


갑자기 남자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면목없습니다. 일단 경찰에서 초동수사부터 잘못되었고, 알아보았더니 선생님이 코치하신대로 박 교수가 수사 심의까지 서울 경찰청에 요청했는데 거기서도 아무렇지 않게 뭉갰던 것으로 확인하였습니다.”

“그래. 그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확실하게 조져서 그 타이완 사립대에 있는 찌질한 년까지 가만히 둬서는 안 돼. 그런 것들이 그런 짓을 하고 발 뻗고 자게 해서는 안된단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

“그리고 안군. 외교부 건에 대해서는 알아봤나?”

계속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안 정책관이 수첩을 펼쳤다.

“말씀해주신 박준기라는 작자는 아직도 일본 그 지역에서 총영사로 있습니다. 외교부 감사관실에서는 박 교수의 마지막 요청까지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덮었구요.”

“너희들이 사회에 나와서 벌써 몇 년인가? 이 사회가 이렇게 썩어갈 때 너희들이 그 자리에서 과연 무엇을 했는지 다시 박 군의 영전 앞에서 생각해보고 행동해라. 단순히 친구에게 미안하다 따위는 내가 기대하지도 않는다. 너희들이 혹은 너희 자식들이 어떤 일을 겪을지 생각해보란 말이다. 이대로 그 안에서 너희도 공범이 되어 살아갈 생각인가? 내가 너희들을 그따위로 자기 보신하라고 가르쳤더냐? 그러면 서울대 나와서 청와대 못 들어가서 저 지랄하는 쓰레기들이나 법비들과 너희가 뭐가 다르냐?”

“죄송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화를 삭이지 못해 꼭 쥔 주먹을 쥐고 있던 그가 말했다.


“나를 포함해, 우리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살인범의 공범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게다. 진실로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너무 부끄럽고 참담하고 미안하다. 너희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선생’ 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구차하게 사는 것이 너무도 쪽팔리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기가 두렵다.”


모두가 숙연하게 고개를 숙이며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윤군. 내가 중앙지검 쪽에 이야기를 넣어둘 테니 그 계집이 들어오는 날이 확정되는 대로 정보 공유하자. 만약 늦어진다면 내가 출국을 늦추더라도 상관없으니 내 그 년의 얼굴을 꼭 한번 봐야겠다. 그리고 어차피 큰일이 아닐 테니 내가 뺨 한 대만 후려칠 수 있도록 해다오.”

“네?”


스승의 황당한 요구에 윤 검사가 황당한 표정으로 다시 스승의 얼굴을 보았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나? 내 물어볼 것도 아니고 내가 먼저 접촉하는 것도 생각해보았네만 그렇게 하는 것보다 그 계집이 수갑을 차고 긴급체포를 하게 되면 분명히 까무러치는 같잖은 연기를 하며 또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려 들 거다. 그러니 그 혼란한 틈을 타서 나는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으로 뺨 한 대만 후려치고 바로 출국 하마. 상해를 입히는 것도 아니고, 그년이 아무리 나중에 폭행을 당했네 뭐네 해도 공권력과 상관없는 지나가던 사람의 행동이니 본건과 상관없이 탓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정 그리 말씀하시면 당일 나가는 검찰 수사관들에게 언질을 해두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다, 내 맘을 알아줘서.”

“아닙니다. 선생님이 고맙다는 말씀을 하실 건도 아닙니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범죄자 소굴에 던져줘도 시원찮을 쓰레기인 걸요. 다만 굳이 그런 지저분한 계집에게 선생님이 손을 대실 필요가...”

자네가 졸업한 지 오래되어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뭔지 잊었나 보구나.”

“죄송합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같은 말씀 두 번 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럼 당일 그리 처리하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나머지 세부사항은 자료 공유한 대로이니 강 군이 체크하고 수시로 연락을 주면 좋겠구나.”


창가로 다가가 내려다본 광화문은 여름의 시작인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햇살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2020년 2월, 박 교수의 아내로부터 어느 새벽 알 수 없는 이상한 번호로 링크주소가 왔다며 이메일로 사진과 링크가 도착했다.

타이완 법원에서 피고도 없는데 2심 판결을 유죄 확정으로 내렸다는 보도 내용과 그 판결을 근거로 역시 민사에서 몇 천만 원의 피해보상을 악녀와 천 위지에에게 보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는 기사였다.


보낸 자는, 한국에서 더 이상 돈을 울궈내지 못하게 되어 새벽에 그 분을 삭이지 못하고 메시지로 기어코 알려온 그 놈이라는 것을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직, 복수는 시작하지도 않았다."

그는 나지막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짧지 않은 분량,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대만에 사는 악녀>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