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화상 인터뷰 방식으로 본다고 하는데, 데모를 만들어서 보내라는 건지 아니면 실시간으로 화상 인터뷰를 하는 건지는 사장이 다시 알아본대. 그런데 언니, 데모 영상 같은 거 유튜브에 올렸었어?”
“응? 아니.”
입안에 조금씩 면을 욱여넣으며 계속 중얼거리는 그녀에게 동생이 다시 물었다.
“기타만으로 노래하는 모습을 봤다면서 사장이 언니도 같이 볼 생각, 있느냐고 묻던데?”
“아! 지난번에 너 그 사장이랑 계약할 때 만났었잖아, 사무실에서.”
“아 그렇긴 하네. 그런데 그때는 언니가 노래나 연예계 데뷔하고 싶다는 얘기도 꺼낸 적이 없었잖아?”
“그게 뭐가 중요해. 내 영상을 봤다며? 아마 예선에 냈던 걸 우연히 봤을 수도 있지.”
“그런가? 하여간 언니 스케줄 봐서 약속 잡자고 하더라. 언니 나 드디어 한국에 가는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언니한테 한국어라도 더 배워둘 걸 그랬나 봐.”
“엄마랑 아빠한테는 아직 말하지 마. 괜히 실망하실 수 있으니까, 내가 조금 더 알아보고 우리 오디션 결과 보고 말씀드리는 게 낫겠어.”
“알겠어. 그럼 언니 시간 확인하고 다시 전화 줘.”
“그래. 너 때문에 우육면 다 불었다. 끊자. 특히 언니한테는 암말도 하지 말고.”
그녀는 전화를 끊고 식어버린 우육면을 입안에 욱여넣으며 벌어지는 입을 다물기 어려웠다. 드디어 동생이 데뷔도 아니고 한국의 기획사에 가게 된다면 자신도 이제 이 지긋지긋한 타이완을 벗어날 수 있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고객들 중에서 중국어도 못하는 비즈니스성 출장을 온 사람들을 만나면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 때문에 자신에게 손님들을 몰아주던 마담이 했던 말도 떠올랐다.
“야! 차라리 한국 쪽에 가서 일하는 게 돈은 훨씬 더 많이 벌겠다.”
방금 확인했던 대학 가요제의 최종 예선에 탈락한 것은 실망할 겨를도 없었다. 내장과 면을 욱여넣고 국물을 마시는 둥 마는 둥 남아 있던 펑리즈 안에 있던 파인애플을 입안에 넣고는 얼른 가게를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기타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 다시 만지작거리기 시작하며 조율이 다 풀어진 것을 다시 맞추며 머릿속은 한국에서 펼쳐지게 될 화려한 연예계의 생활이 떠올라 입이 자꾸만 벌어지는 것은 어쩔 줄 몰랐다. 어쩌면 한국 예능이나 드라마에서 봤던 남자들에게 대시를 받을지도 모르고 적당히 가지고 놀고 즐기다가 대기업의 재벌 아들에게 간택되어 인생이 완전히 역전되는 것도 그저 꿈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한국에 가게 된다.’
1등급에 해당하는 성적이 아니라면 도저히 들어갈 수 없다는 국립 외교대학교 영어학과에 입학하고,학교와 동네에 플랜카드가 걸린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타이난에서 빌빌거리던 아버지가 제대로 돈벌이도 못하면서 이것저것 벌여놓고 수습도 못해서 빚더미에 앉아 야반도주하듯이 타이중으로 이사한 것이 중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였다.
타이난의 초등학교에서는 외모가 반반하다며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슬쩍 가슴을 만지던 사회선생이나 몸을 잡아준다면서 여기저기 주물러대며 껄떡대는 체육선생, 두루두루 다양하게 겪었던 터였다. 물론 처음에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괜찮다고 이 정도는 친숙함의 표현이라며 구는 그들이 적당히 용돈을 챙겨주기도 하는 것에 일찍 철이 들었던 것인지 타협하며 지내는 것이 익숙해질 즈음이었다. 물론 그렇게 처녀 딱지를 중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반 강제 반 타협성으로 지긋한 나이의 남자에게 뗀 것도 그다지 아쉬울 것은 없었다.
딸만 셋에 둘째. 돈이 없다고 공부도 잘하던 언니가 직업 군사학교에 들어가 직업군인이 된 것이 치가 떨렸다. 그래도 공부만 잘하면 무시를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악착같이 성적관리에는 매달렸다. 외교대학교 영어학과를 들어가니 시골 고등학교에서 여자 1등이자 전교 2등을 하던 수준은 밑바닥을 드러냈다. 타이베이 출신의 사립학교에서 교육받은 애들부터 외국에서 살다온 애들에 이르기까지 수준이 달랐다. 중간고사를 치르고 나서 결심하게 되었다. 여기 계속 있다가는 그동안의 주목받던 삶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일종의 본능적인 휴학이었다. 엄마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1학년이 마치기도 일주일 전에 급하게 휴학을 했다. 뭔가 전환이 필요했다. 언니는 집에 코딱지만 한 월급의 일부를 부쳐왔지만, 국립대라고 해서 학비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 성적으로 성적 장학금을 받을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저 그런 아이들 중에 하나로 섞여 지내는 것은 그간의 자신의 자존심이 도저히 용납하지 않았다.
그렇게 학비를 벌겠다며 지금의 마담과 연계되면서 집안에도 돈을 보태면서 새롭게 인생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죽인 그 담임선생의 귀신이 붙었다고 하면서 무당이 굿을 해야 한다고 해서 그 돈이 아까워 고민하다가 적당히 부적을 받고 몸의 은밀한 부분에 문신까지 새기는 것을 그 귀신을 떼어버리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죽임을 당해 원한이 깊은 영혼은 웬만해서는 끝까지 들러붙어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 내내 귀에 맴돌았다.
하지만 돈 많은 남자들에게 명문 외교대학교 영어학과 1학년이라는 타이틀로 에이스 역할을 하면서 그녀는 다시 주목받는 삶을 누르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는 것에 세상이 쉬워 보였다.
하지만, 1학년 중퇴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1년간 타이베이의 고급 술집에서 전전하며 확인한 결과였다. 이제 성년을 넘긴 그녀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바보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복학을 하기로 했고, 당분간은 청순가련한 여대생으로 몸값을 높이는데 주력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결정한 것이 한국어학과로의 전과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스트레스 해소를 하겠다고 이것저것 인터넷을 찾아가 발견한 것이 한류 예능이었다. 드라마부터 예능에 이르기까지 이건 완전히 신세계였다. 2015년 즈음의 타이완에는 한국의 연예계 마케팅이 본격화되며 각종 콘서트와 팬미팅이 연이어 이루어졌다. 모두가 그렇게 세련될 수가 없었다.
매일같이 시간이 날 때마다 신이 나서 밤을 새워가며 보다 보니 자막과 비슷하게 귀에 들어오는 단어들이 있었다. 술집에서 함께 일하던 머리 안 좋은 서른 살 언니가 사서 읽지도 않고 던져두었던 한국어 첫걸음이라는 책을 대기실에서 읽다 보니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것 같았다. 타이완의 국립대에는 유일하게 긴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어학과가 있다는 사실에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은 일종의 생존본능이었다.
한국어학과에 들어온 얘들의 성적은 영어학과에 비하면 한참 밑이었다. 거기에 가면 다시 여왕벌 대접을 받으며 주목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6개월 이상 책을 달달 외우듯 독학을 하고 매일같이 예능과 드라마를 달고 사니 기본적인 한국어에 대한 개념은 잡혔다. 1년 휴학을 마치면서 전과 시험에 대해 알아봤고 결국 영어와 학점이라는 기본적인 조건을 봐도 충분히 전과를 통해 다시 2학년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그녀의 인생 계획은 한국의 연예계에, 그리고 좁디좁은 타이완의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 화려하게 한국에서 날개를 펴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사실 막연하게나마 영어학과를 목표로 삼았던 것도 타이완을 벗어나 미국인을 만나거나 미국으로 가서 신분을 상승할 수 있으려면 영어실력은 물론이고 학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타이완의 상류층 자식들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타이완의 연예계를 동경하며 한국어학과에 전과를 성공하자마자 모 잡지사에서 기획한 대학생 모델을 뽑는 인터넷 공모전에도 청순한 여학생의 콘셉트로 응모했지만 한 표도 받지 못하고 떨어졌다. 술집을 찾는 무식한 타이완 아저씨들과 젊은 네티즌과 전문가들의 눈은 자신을 특이한 여왕벌로 봐주지 않는다는 현실에 쓴맛을 본 첫 경험이었다.
바로 그때 한국에서 그가 왔다. 한국 최고의 대학 출신 교수. 본토에서 20여 년 전에 배웠다는 중국어는 의사소통을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수준이었고, 그의 학벌과 네트워크라면 충분히 한국으로 진출하는 데 있어 무난한 사다리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제까지 외교대학교에 왔던 한국인 교수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다만 거슬렸던 것이 있었다면 그가 아내와 두 아이에게 지극정성인 가정적인 남자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가장 확실하게 그를 이용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을 여성으로 여기고 자신의 치마폭에 담가야 했다.
만만치 않았다. 그는 조그만 언어적 뉘앙스의 차이도 금세 눈치챘고, 무엇보다 학과에서 보이는 불합리나 강의 중에 보이는 타이완 학생들의 무례함에 강력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대처했다. 다소 강건하여 학생들의 반발이 심해지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의지가 강해서 웬만해서는 마음대로 굴리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기회가 왔다. 조교를 뽑아야 한다는 학과의 공지에 학과장과 학과 측에서 그를 공식적으로 엿 먹인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영어학과에서 학비 때문에 가정환경으로 빈곤함을 어필하여 늙은 여자 교수의 조교를 했을 때, 학교의 조교 알바가 가장 보수가 크고 일은 적은 꿀알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어학과를 찾았던 여느 한국인 교수들이 대강 찾아먹지도 못하거나 그냥 허수아비 노릇만 하던 선례를 그가 깼다. 그것에 대해 학과장과 행정조교가 날 선 반응으로 그를 엿 먹이는 것이 최초의 기회였다. 먼저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다고 자연스럽게 그의 아내와 언어교환을 시작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의 아내에게 눈물을 보이며 가난한 가정형편을 과장해서 흘리고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고 어필하며 동성으로서의 연대감을 강조하여 신뢰구조를 만들었다. 이제 그에게 자연스럽게 조교라는 공식적인 직함으로 어필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남자가, 그냥 죽어버려 원귀가 되어 붙었다는 고등학교 숙맥 담임보다 훨씬 더 고지식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저 쑥맥이 아니라 워낙 예민하고 흐름을 읽는 바람에 마음대로 위에서 가지고 놀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매일같이 틈만 나면 연구실 앞을 지나며 혼자 있길 기다렸는데, 강의하는 시간외에는 못생기고 냄새나는 그 한국어학과의 폭탄들에게 한국어를 무료로 가르쳐주질 않나, 아이들 도시락을 챙겨준다며 부속 소학교로 뛰어다녔다.
그나마 혼자 논문을 쓰는 시간에 도와주겠다고 공식적인 시간을 만들었지만, 자극적이 팬티를 입고 주저앉는 척하면서 팬티를 보여줘도 모니터만 보고 있었고, 가슴을 부여잡아 부풀어 오르게 만들어 속이 파인 옷을 일부러 내려도 여전히 논문을 보며 질문만 던져댔다. 헷갈렸다. 그가 다 알면서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페로몬이 술집의 타이완 아저씨들에게만 통했던 것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상황들이 지속되었다.
학과에서는 1년만 지나면 이 사람을 내쫓을 생각이라며 공공연한 소문이 나도는데 두 달이 지나도록 그를 치마폭은 고사하고 자신의 가슴에 손도 얹지 못하게 했다는 점이 조바심을 나게 했다. 뭔가 극적인 상황이 필요했다. 그의 아내가 언어교환에 오지 않겠다고 한 날. D-DAY로 삼고 아예 함께 식사까지 할 요량으로 일찍 연구실을 찾아갔다.
문득 한국의 연예계에 대한 상상으로 남자 연예인과 뒤엉키는 것까지 좋았는데, 하필이면 거기서 상상이 왜 박 교수에게 넘어갔고 그간의 기억이 났는지 짜증이 났다. 막 진뜩하게 젖어있던 팬티 안에 담았던 손가락을 빼며 혀를 찼다.
“젠장. 거기서 애들이 있을 건 뭐고, 그 판판까지 오는 줄 알았으면 작전을 따로 세웠어야 했어. 그날 거기서 했어야 했는데...”
동생에게 연락이 온 지 2주 만에 데모 영상을 만드는 겸 연습 실력을 보자며 타이완 기획사의 사장에게서 확인 연락이 왔다. 밤마다 술집 알바를 한답시고 연습이 부족하는 생각에 마담 언니에게 아주 큰 봉이 아니라면 부르지 말라며 연습에 몰입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기회에 강했다.
집중해서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는 시기가 있는 것이라고 늘 그녀의 본능은 그녀의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게다가 하 변호사의 말처럼 지금 괜히 술집 알바에 치중했다가 꼬리를 잡히는 날에는 한국 연예계의 인터뷰고 뭐고 요즘 말로 한국에서 뜨는 학폭 어쩌구 과거 들춰내기처럼 걸려서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에 몸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2주간 막 명문 국립대를 졸업한 한국어학과 학생으로 메소드 연기에 돌입한 그녀는 한국어로 말하며 한국의 오디션 예능에서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어떻게 심사위원들을 휘어잡았는지 어떤 말투를 쓰는지 그리고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어필해야 하는지를 연구하고 분석했다.
오디션을 보기로 한 당일 정작 타이완 기획사의 사장은 왜 수수하게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나왔느냐며 입맛을 다셨지만, 데모 영상을 만들고 이뤄진 한국 기획사의 온라인 영상 오디션에서는 동생보다 자신에게 더 관심을 보이느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다.
‘그럼 내가 2주 동안 밤새워가며 쏟은 정성이 있는데 이 정도는 움직여줘야지.’
이사라고 했던 남자는 사장이 한번 봤으면 한다면서 시간이 괜찮다면 한국에 와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예 대놓고 동생이 아닌 자신에게 묻는 말을 들으며 그녀는 이제 거의 반은 넘어왔다고 확신했다. 한국에 가서 저 남자에게 한 번만 대주고 나면 모든 일이 탄탄대로로 풀릴 것이 눈앞에 선했다. 하지만 최대한 청순한 볼이 발그레해지는 연기혼은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부모님과 상의하고 여기 기획사 사장님과 동생과 함께 데뷔할 수 있는지를 상의해볼게요. 저는 동생과 함께가 아니면 한국에 갈 이유가 없거든요.”
“그렇게 하세요. 대신 너무 늦으면 곤란하니까 1주일 안에 답을 주세요. 저희 사장님과의 일정도 일정이지만 저희가 한 두 명 오디션을 보는 게 아니니까요.”
괜히 어설프게 튕겼다가 튕겨져 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덥석 물고 싶었지만 산전수전 다 겪어가며 여기까지 온 자신이 그 정도로 어리숙하지 않다며 마음을 토닥였다. 그녀는 수십 번 연습했던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며 미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언니 당연히 바로 간다고 하면 될걸 왜 그런 거야?”
동생이 뾰로통한 얼굴로 물었지만 츠리엔은 가만히 동생의 머리에 알밤을 먹이며 말했다.
“너는 그냥 언니만 믿고 따라와. 언니가 너랑 같은 기획사에 있으면 너는 연기를 하든 아이돌 그룹에 타이완 구색을 맞추는 걸로 들어가든 들어갈 테니까...”
그렇게 타이완 기획사 사장의 안달복달하는 연락을 가지고 놀다가 1주일을 꽉 채운 날 저녁에 메시지로 한국에 일단 오디션은 보고 오겠다는 유보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그렇게 그녀는 거금을 들여 동생과 자신의 한국 여행을 준비했다. 큰 소리는 쳤지만 한국은 정작 처음이었다. 자신과는 달리 여행으로 두 번이나 한국을 다녀왔던 동생은 소풍을 앞둔 꼬마처럼 전날까지도 서울의 맛집을 뒤졌다.
“숙소는 기획사 쪽에서 제공해준다고 그랬대.”
“그 얘기 벌써 열 번째야. 가을이니까 서울은 추울 거야. 옷이나 잘 챙겨.”
그렇게 두 자매는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신나는 걸음으로 출구를 나오며 마중 나온 기획사 매니저의 네임카드를 찾던 그녀들 앞에 서너 명의 남자가 길을 막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