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사는 악녀 - 129

타이베이에 사는 악녀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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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리리리리

“아!

갑자기 울린 전화 벨소리에 머리 위 근처를 더듬다가 쿵하며 바닥에 그대로 떨어졌다.

띠리리리리리

아랑곳하지 않고 어디선가 계속 알람처럼 전화벨은 울렸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지만 아픔은 머리와 온몸에서 전화 벨소리에 맞춰 비명을 질러댔다.

띠리리리리리.


“아이 썅~!”

뿌애진 앞을 쳐다보다가 다시 협탁 테이블에 눈 바로 위를 모서리에 박았다. 정신이 번쩍 들며 아까보다 10배 정도 되는 통증이 눈썹 근처의 통점을 잡아 뜯었다.


띠리리리리리.

그만하면 포기하고 울리지 않았을 전화벨일 텐데, 뭔가 중요한 전화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일어서는데 윗도리가 흘러내리듯 풀어진 브래지어 앞으로 한쪽 가슴이 전면 거울에 언뜻 드러났다.


“전화가 어디에서 울리느...아!”

전화를 찾던 그녀가 현관문 앞쪽 바닥의 핸드백 앞에 계속 진동과 함께 큰 소리로 우는 핸드폰을 발견했다.


“여보세요.”

“아!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요?”

“누구세요?”

“나예요. 하 변호사!”


짜증 나는 하이톤의 남자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받았던 고객 중에 변호사가 있긴 했는데, 이름을 알려줬던가? 아닌가? 내 핸드폰 번호는 알려준 적이 없는데...’


깨질 것 같은 머리를 움켜쥐고서는 어슬렁거리며 다시 소파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누구시라구요? 전화 잘못 거신 거 아니에요?”

막 라이터를 찾는데 라이터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짜증이 났다.


“외교대 성희롱 건 담당하고 있는 하조동 변호사라구요.”

“아! 아!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리며 그녀가 그제서야 그가 누군지 생각났다는 반응을 보였다.


“네네. 죄송해요. 어제 공부하느라 새벽에 잠들어서 정신이 없었어요. 지금 막 쓰러지듯 잠들었는데 몰랐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어느 사이엔가 차분하고 고분고분한 여대생의 그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변호사님이?”

“그 교수가 한국으로 떠난 걸 확인했어요.”

“네?”


그녀가 다시 떨어뜨렸던 담배를 입에 물려다가 멈칫하며 황당한 반응을 보였다.


“다시 돌아왔다고 지난달에 그러지 않으셨어요?”

“맞아요. 그런데 이번에 다시 나갔다고 출입국 관리소에 있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이제 아주 편하게 한국을 왔다 갔다 하나 보죠?”


그녀가 다시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찾아 어슬렁거리며 전화기에 대고 다소곳한 목소리로 가냘픈 돈으로 물었다.


“아닌 것 같아요. 주 선생님한테 아까 연락이 왔는데,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완전히 짐을 뺐다고 부동산 업자한테 확인하셨대요.”

“그럼 완전히 간 거예요?”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전화한 건데요. 이제 입법위원 측에서도 그렇고 주 선생님도 그렇고 법원 쪽에 압박을 넣어서 1심대로 2심을 확정해달라고 할 거예요.”

“그러면 이제 돈을 받아내는 건가요?”


그녀가 화색을 띠며 물었다. 냉장고 위에 뒹굴거리던 라이터를 찾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국으로 가버리면 돈을 받을 수는 없죠. 대신에 더 이상 이 건으로 우리가 뒤집히거나 진실이 드러나는 일은 없어지는 거죠. 얼른 끝내버리고 종결해버려야 되거든요.”


라이터를 열심히 켜댔지만 이미 가스가 다 닳아버려 불이 나오지 않았다. 다시 짜증 난 그녀가 담배를 잡아 빼어들며 말했다.


“약속이 다르잖아요. 민사를 한 건 그 사람을 압박해서 돈을 받게 해 주신다고 했던 거잖아요?”

“그건 1심에서 그런 바보 같은 일들이 벌어지기 전에 했던 얘기였죠.”

“으음.”


평소 같았으면 벌써 소리를 빽 지르며 뭐라고 한 마디 했을 것이지만 하 변호사에게 보였던 꾸민 이미지가 있던 터라 최대한 다소곳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이성이 그녀의 본능을 잡아끌었다.


“그러면 이후엔 어떻게 되는 건데요?”

“아,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형사가 진행되면 그냥 피고가 도주해버렸기 때문에 1심의 결과를 그대로 인정해달라고 하면 되는데, 민사는 지금 츠리엔 양이 원하는 것처럼 혹시라도 나중에 돈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다시 한번 나와서 못을 받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얼마나 중대한 피해를 입었는지를 어필할 필요가 있거든요.”

“그런 거야 얼마든지요.”

“그리고, 혹시 모르는데, 그럴 리는 없겠지만 한국에서 언론사 보도팀이 올 가능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니까 당분간 연락이 있을 때까지는 너무 티 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게 좋아요. 그게 문제가 될까 봐 미리 경고해주라고 주 선생님이 말씀하셔서 전화했어요.”

“티 나는 행동이라뇨?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길래...?”

“주 선생님도 입법위원도 들리는 소문으로 츠리엔 양이 요즘 업소에 나간다는 사실을 다 알고 계세요.”

“그건....”


뭐라고 변명을 하는 것이 나을까 잠시 고민했었지만, 굳이 알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 때문에 신경을 날카롭게 내세울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이 일만 정리되면 또 볼 사람들도 아니고 정치계에 뜻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 사람들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었다.


“저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요.”

“그렇긴 하지만, 혹시라도 언론사에 노출이라도 되는 날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게 입법위원의 걱정이에요. 그 여자도 지금 핀치에 몰려 있기는 마찬가지거든요.”

“아, 그 비서관이랑 바람 폈다는 기사는 저도 주간지에서 봤어요. 왜 그런 짓을 하고 다녔대요, 그 아줌마는?”

“하여간 나는 지금 또 재판이 있어서 법원에 들어가 봐야 하니까 형사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조금 눈에 띄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게 이쪽 선생님들의 의견이니까 본인도 잘 생각해서 결정해요. 특히 이번 달부터는 이제 대학생 신분도 아니니까...나중에 문제 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자구요.”

“하여간 알겠어요.”

“그럼...”


하 변호사가 뭐라고 더 말하려는 것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짜증이 났다. 돈을 뜯어내 주고 명성도 얻을 수 있게 해 준다고 하더니 그 어느 하나 이룬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시원하게 그가 자살이라도 하여 속이 후련한 것도 아니고 괜한 빌미 때문에 대학 4년의 절반을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이중생활을 하는 것이 다 그의 탓이었다.


“괜히 그런 남자를 좋아해서 내가 미쳤지. 돈을 떼어주는 것도 아니고 이 멋진 몸을 한 번 안아줄 생각도 하지 않고 말이야. 쳇!”


전신 거울에 늘어진 한쪽 가슴을 움켜쥐어 보이며 혼잣말을 중얼댔다. 어제 새벽 내내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고 2차에서 뒹굴다가 들어온 기억이 스멀거리며 찢어진 스타킹을 타고 올라왔다.


7월말의 타이완 여름은 에어컨을 24시간 달고 살아야 할 습기가 가득한 불쾌한 뜨거움이 여기저기서 불길을 뿜어댄다. 냉장고를 열었지만 맥주 두 캔과 오래되어 다 시들해진 야채들만이 썩어가고 있었다.


“일단 좀 씻고 나가서 먹자.”

화장실에 들어가자 어제 게워낸 지저분한 토사물이 변기의 주변에 튀어 여기저기 붉은 얼룩이 져 있었다. 그 와중에 물을 틀자, 탱크의 미지근한 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래된 아파트의 녹물 같은 것이 조금 새어 나오다가 이내 미지근한 기운이 가시며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찢어진 스타킹을 찢듯이 벗고 팬티를 벗으려는데 안에서 끈적거리며 지저분한 것들이 묻어 나왔다.


“아! 그 늙은이 콘돔을 쓰라고 했더니 기어코 이 꼴을...아! 맞다.”


샤워기를 틀어놓은 쪽으로 가려다 말고 막 생각나서 벌거벗은 채로 밖으로 뛰어나와 쪼그리고 앉아 현관 앞에 널브러져 있던 핸드백을 뒤졌다.

“아! 안돼. 여기에 분명히 넣었는데...”


핸드백 안을 뒤지다가 화가 나서 바닥에 뒤집어 탈탈 털었다. 온갖 잡다한 것들이 다 쏟아져내렸다.


“아, 안돼! 그게 어떻게 받아낸 건데... 여기 없으면... 아닌데, 내가 분명히 여기에... 아!”


소파 위에 던져두었던 얇은 재킷의 안쪽을 더듬었다.


“아! 여기 있었네!”


둥글게 말아서 마약처럼 감춰두었던 돈뭉치가 쟈켓의 안쪽 바느질로 막아둔 것 같은 안 호주머니의 옆에 박혀 있었다. 벌거벗은 채 머리를 산발로 한 미친 여자 같은 모습으로 돈을 보며 입술을 맞추고 그녀는 환호했다.


온몸에 진이 밴 담배냄새와 술 냄새 그리고 토사물 냄새까지 한참만의 샤워로 세탁기에 들어가 몇 바퀴는 돈 것 같은 그녀가 긴 머리를 틀어 올리고서는 옷장에서 대강 팬티를 걸치고 헐렁한 반바지에 티셔츠를 걸치고서는 밖으로 나섰다.

핸드폰과 지갑만 들고서 슬리퍼 차림으로 젖은 머리를 흔들며 그녀는 아침거리를 찾아 나섰다. 시간은 이미 정오가 다 되어가고 있었지만, 늘 가는 가게까지 귀찮게 걸어서라도 먹어야 했다. 일단은 갈증이 심하니 해갈이라도 하겠다고 펑리즈(파인애플 주스)를 파는 가게 앞에 가서 섰다.


“아줌마. 여기 펑리즈 따베이(큰 잔)로 하나 주세요.”


멍하니 기다리며 담배를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것이 그제야 생각났다.


‘담배도 사고 라이터도 잊지 말고 사야지.’


그녀는 펑리즈를 받아 들고는 우육탕면 집으로 걸음을 어슬렁거리며 옮겼다. 이 뜨겁고 후끈거리는 날씨에 생각보다 좀 거리가 먼 데를 괜히 가려고 나왔나 싶어서 후회를 할 즈음에 시원한 펑리즈가 속에 들어가니 한결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 우육탕면 집까지는 걸을 수 있을 듯했다.

우육탕면 집에 들어가 내장이 잔뜩 들어가게 한 그릇을 주문시켜놓고 펑리즈의 빨대를 입에 꽂은 채 핸드폰을 열었다. 일단 라인에 왔던 메시지를 훑고, 단골 마담 언니의 메시지를 챙긴다. 그리고 어제 라인을 텄던 그 늙은이에게서 온 애프터 신청을 확인하고 적금 하나는 마련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우육탕면을 맞았다. 막 한 입을 입에 넣으려는데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넌 왜 내가 뭘 좀 먹으려고 하면 전화를 하니?”

“언니. 연락이 왔어, 드디어!”


연예계 데뷔를 손꼽아 고대하며 한국의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가는 게 소원이라고 떠들어대던 동생이었다.


“어디서 무슨 연락이 왔다는 거야? 후우~”


다시 크게 우육탕면을 하나 가득 들고 입에 넣으려고 하는데 너무 뜨거워 들어갔던 면들을 그대로 뱉어냈다. 곁에서 그녀를 지켜보던 할머니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앗! 뜨거! 이런, 썅!”

“언니 지금 나한테 욕한 거야?”


전화기 속의 동생이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신경질을 냈다.


“아니야. 너 때문에 우육탕면 먹다가 입천장 다 데었다. 그런데 어디서 무슨 연락이 왔다고 이렇게 호들갑이야?”

“한국의 기획사에서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우리 기획사를 통해서 왔대.”

“응? 정말?”


말이 기획사지 타이완에서 뭐 하나 제대로 된 작품은 고사하고 그 흔한 지방 방송에도 얼굴 한번 내밀어보지 못한 채 소속사와 계약만 하고 사장이 자꾸 몸만 더듬어댄다는 그 기획사를 말하는 거였다. 이제 졸업도 했으니 자기가 가서 한번 주고 동생보다 먼저 데뷔할까도 생각하던 터였다.


“정말?”

“응. 그런데 언니 지난번에 노래대회 예선 결과는 나왔어?”

“아! 맞다. 그거 오늘 발표라고 했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막 이메일과 메시지를 찾던 츠리엔은 인터넷 페이지에 들어가서야 2차 예선 통과자 목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없다.”

“응? 또 떨어진 거야?”

“또? 너 지금 언니한테 또라고 한 거야?”

“아니야. 아니야. 그래도 잘됐으면 했는데, 그거 아니더라도 나보고 친구나 언니가 있으면 함께 준비할 수 있는 게 있느냐고 그쪽에서 물어왔대. 전에 쯔위(트와이스)처럼 제2의 쯔위를 만든다고 타이완 연습생들을 찾는 거래.”

“잘됐네. 그런데 오디션을 한국에 가서 보는 거야? 아님 거기 관계자들이 이쪽으로 와서 보는 거야?”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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