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사는 악녀 - 128

피눈물 흘리며 울고 있을 영혼을 위한 진혼곡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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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달리 9월 학기를 시작하는 유럽이나 미주지역은 6월에 종강을 하고 긴 여름방학에 들어간다. 겨울방학이 크리스마스를 끼고 잠깐 있고, 한국처럼 긴 겨울방학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학에 있을 때 유일하게 좋았던 점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까지 합쳐 1년의 절반 가까이를 방학이라는 이유로 버젓이 월급과 연구비를 받으며 동안거(冬安居)와 하안거(夏安居)를 할 수 있다는 점과 5년에 한 번씩 종교와 상관없이 안식년(安息年)이라는 명분으로 1년을 해외대학을 나가든 아무것도 안 하고 집필만 하든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 말고 한국 대학에서 좋은 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려웠다.

해외 대학에 초빙되고 나서는, 여름 방학의 계획을 알차게 짜야만 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타이완의 제자에게 갈 계획이었다. 현장에 가서 위로도 해주고 무엇보다 현지의 왕회장이라는 자를 비롯하여 관련자들을 직접 훑어보고 힘이 되어줄 참이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진작에 그랬어야 한다고 후회를 했지만, 1심이 끝나기 전이었고 나름 돌아가는 상황을 관조한다는 핑계가 차일피일 미루게 되다가 결국 제자가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취소되었다.


제자가 정작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그냥 들어가겠다고 한 뒤로, 며칠간의 카페 자료에 업로드가 없는 것을 보면서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전에도 다른 특별한 사항이 없거나 해서 며칠 동안 업로드가 뜸했던 적은 있었지만 만나는 사람들과의 모든 대화나 통화의 녹취파일을 올리고 사소한 것까지 일지처럼 기록하던 것이 끊긴 것이 조금 걸리긴 했다. 한국에 들어가 이것저것 정신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완을 한 번 들어가서 조사를 할지 아니면 그냥 원래 계획했던 대로 가족들과 유럽에서 만나서 섬에 들어가 고즈넉하게 여름을 보낼지 아주 잠시였지만 고민했다.

안일했다고 후회했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리 해도 늦은 것이라는 사실은 불변의 진리였다.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그는 애먼 주먹을 꽉 쥐어가며 이미 손에서 피딱지가 진 것을 다시 상처 내고 있는 것을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메일로 박 교수의 아내가 연락을 취해온 것은 그가 한국에 들어간다고 했던 이틀 뒤였다. 이메일을 받기 전부터 계속 꿈자리가 사납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그저 일찍 온 열대야의 탓이려니 생각하고 애써 무시하려고 했었다. 그렇게 이틀도 되지 않아 새벽에 확인한 메일을 보고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안된다. 이건 아니다. 이러려고 여태 버텼던 것이 아니지 않은가!”


중얼거림은 어느 사이엔가 외침이 되었고 미친 듯이 혼자서 외치며 절규하고 있었다. 사택의 경비가 다른 방의 신고를 받고 뛰어올라올 때까지도 그는 머리를 감싸 쥐고 미친 듯이 소리 질렀다.


“괜찮으신 거예요?”


옆 방의 미국인 교수도, 다른 앞 방의 일본인 교수도 놀라서 경비의 뒤에서 문을 살짝 열어보며 그의 상태를 살폈다.

2019년 7월의 어느 날.

서울 강남에 위치한 병원의 장례식장에 박 교수의 아내가 검은 상복을 입고 망연자실 조문객을 받고 있었다. 박 교수의 아들이 검은색 양복을 입고 엄마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대학의 이름으로 다양한 화환들이 줄지어 배달되어 늘어 서 있었다. 박 교수의 노모가 통곡을 하다가 쓰러져 중환자실로 막 들 것에 실려 간 정신없는 상황이 불과 10분전에 연출되었었다. 조문객들이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식사를 하는 곳에 박 교수의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었다.


“윤 프로! 여기야.”

강 판사가 먼저 윤 검사를 알아보고 손을 들어 보였다.


“먼저들 왔었네? 미안하다 좀 늦었다.”

윤 검사가 자리에 앉으며 심란한 얼굴로 모여 앉은 친구들의 면면을 보았다. 대학 동기들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특별한 공부를 함께 배웠던 탓에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모종의 사조직 같은 모임이었다.


“선생님한테는 연락받은 거 있냐?”

“나는 니가 한 줄 알았는데?아냐?

“응? 난 안 했는데?”


국무조정실에 나가 있어 도무지 짬이 안 난다며 거드름을 피우던 안 정책관이 윤 검사에게 잔을 내밀고 맥주를 들어 보이며 따라주었다.


“아무도 선생님한테 연락을 안 한 거야? 난 우리 연락망으로 부고소식이 왔길래 선생님한테는 너희들 중에서 누군가가 한 줄 알았는데...”


단숨에 첫 잔을 들이키며 윤 검사가 넥타이를 가볍게 돌려 느슨하게 했다.


제길! 이게 무슨 일이냐! 타이완에서 그 일 때문에 그랬다고 보기엔 시간이 너무 지났잖아? 어떻게 된 건지 아는 사람 있어?”

“윤 프로, 넌 알아본 거 없어?”


강 판사가 조심스럽게 윤 검사에게 떠보았다.


“난 박 교수한테 연락받고 통화한 지 벌써 1년도 더 넘었다. 뭐 이것저것 법적인 거 물어보길래 답변해주다가 실례를 물어보고 타이완 쪽이랑 무슨 교류나 힘을 써줄 수 없냐고 얘기하는데 하필이면 그때 정신이 없어서... 그냥 그쪽에 직접 알아보라고 얘기했더니 이 친구가 날카롭게 이제 다신 나한테 연락할 일 없을 거라면서 그냥 연락을 끊어버렸어.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도 아닌데 내가 무슨 힘을 쓰냐? 중국어도 못하는데, 문서도 못 읽는데...”

“에휴! 나한테도 그런 연락은 왔었는데, 김 부장, 너한테는 무슨 연락이 있었을 거 아냐? 너희 신문사에서 그 사건, 다루지도 않았잖아?”


민국일보의 정치부 부장을 맡고 있던 김 부장에게 질문이 들어갔다.


“씨~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냐? 무슨 기획취재까지 해달라고 하길래, 그럼 니가 부장 해라, 내가 교수할게.라고 농담 던진 것뿐인데, 다시는 연락도 안 하더라. 타이완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많은 대한민국에서 뭐 그게 좋은 일이라고 기획취재까지 가냔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출국금지 상태였다면서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거냐?”


소심한 강 판사가 다시 윤 검사의 빈 잔에 맥주를 채워주며 물었다.


“됐다. 이거론 안 되겠다.”


윤 검사가 소주를 따서 반이 차 있던 맥주잔을 가득 채우고 한숨에 들이켰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서 급하게 알아보기는 했는데, 그 쓰레기 같은 것들이 뒷문을 여는 방식으로 항소심으로 이어지는 출금을 다시 신청하지 않고서 한국으로 들어가게 해 놓고 뒤통수를 치려고 그림을 그린 것 같더라.”

“그게 가능해?”


김 부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러게나 말이다. 그런데 왜 2년이 넘도록 버티던 녀석이 한국까지 와서 그런 일을 당하냔 말이다. 씨! 그나저나 선생님이 아시면 가만히 안 있으실 텐...”


“그래도 대가리에 똥만 들어찬 것들은 아니라서 내가 가만히 안 있을 거라는 건 아는구나!”


그들의 뒤에 언제 왔는지 도깨비 같은 표정의 남자가 서 있었다. 누가 다가오는 인기척조차 느끼지도 못하고 있다가 모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김 부장은 얼마나 놀랐는지 앞에 따르고 있던 술잔을 앞으로 다 쏟아 엎었다.


“뚫린 주둥이라 앉아서 여기 앉아 술이 목으로 넘어가더냐?”


“서, 선생님. 오랜만에 뵙습...”


“다 닥치고 밖으로 나오거라. 여기서 큰 소리 내고 싶지 않으니까...”


그가 밖으로 먼저 성큼성큼 나갔다. 밖은 후덥지근한 여름이 맞았는데, 자신들의 스승이 어떤 사람인지 또렷하게 기억하는 중년의 남자들은 서늘한 기운에 후다닥 일어서 스승의 뒤를 얼른 따랐다.

장례식장에서 엘리베이터를 지나 계단으로 성큼거리며 앞서가는 스승을 주섬거리며 여럿의 중년 남자들이 뒤를 따라나섰다. 밖으로 나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 현관 곁을 지나 건물을 돌아 인적이 없는 곳으로 가서 벽을 보며 검은 슈트를 입은 그가 가만히 섰다.


자신들이 속한 자리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그래도 대접받으며 목에 힘깨나 주고 산다는 판사, 교수, 검사, 기자, 고위 공무원, 대기업 간부 등등이 그의 뒤에 마치 얼차려를 받는 신병들처럼 쭈뼛거리며 섰다.


“선생님. 노여워하시는 것은 이해합니만, 저희 나이도 있고 이제...”


대기업에서 기획조정실 부장을 단지 3년이 지난 이 부장이 특유의 붙임성을 가지고 그에게 말을 걸다가 예의 사늘한 표정에 놀라 움찔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 입 못 닥치겠나? 이 쓸모없는 자식아!”


그가 뒤로 돌면서 그의 뺨을 날렸다. 육중한 몸의 이 부장이 고개가 홱 돌아가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선생님!”


바로 튀어나오려는 윤 검사의 조인트를 그가 바로 세차게 걷어찼다. 그가 데구르르 구르며 엎어졌다.


“내가 니들한테 선생님이라는 말을 듣는 것 자체가 모욕이다. 이 거지 같은 것들아!”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강 판사가 고개를 푹 숙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친구랍시고 여기 와서 돈 몇 푼 봉투에 담아와서 술이 목으로 넘어가디?”

“죄송합니다.”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이 부장과 윤 검사가 고개를 숙이고 입을 모아 용서를 구했다.


“뭐가 죄송한데? 니들이 저기 대신 누워있어 볼래? 내가 니들한테 이 따위로 친구가 사지에 몰려 죽음을 당할 때까지 니들 사는 것망 챙기라고 가르쳤더냐?”

“.......”


어느 누구도 함부로 앞으로 나서거나 뭐라 대꾸를 하지 못했다. 짧게는 수년만에 길게는 10여 년 만에 만나는 스승이었지만, 매년 스승의 날이나 스승의 생일에 연락을 취하는 것만큼은 잊지 않았다. 그가 그들이 속한 조직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 그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것만은 분명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그들이 그 처음을 시작할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주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기본을 일러주었던 스승이었다. 자신들이 마흔이 넘어가는 중년이 되고나서는 간혹 잊고 지내긴 했지만, 그들이 갓 대학을 들어가기 직전부터 인성이라는 것이 생기고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공부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기본부터 다 뜯어고쳐야 한다며 하나하나 일깨워준 스승이었다. 그런 그가 노기 띤 표정으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너희가 친구라서가 아니라 내게서 가르침을 배운 것이 있다면 그리고 너희들이 생각이 있어서 조금씩이라도 도움이 되었더라면 이런 일이 있을 리가... 있을 리가...”


그가 휘청거리자 반사적으로 윤 검사가 앞으로 뛰어나가 그를 부축했다. 그가 바로 윤 검사의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치워라, 그 더러운 손. 너희가 저 친구의 영정 앞에 버젓이 당당하게 절을 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박 군이 얼마나 얼마나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버티며 도움을 청했는데 너희들이 그가 청하는 그 절규에 답해주었더냐?”

“죄송합니다. 선생님. 저희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입이 백개 천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정치부의 김 부장이 얼른 고개를 숙이며 말을 꺼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때까지 너희가 방조하냔 말이다. 너희가 박 군을 살해하는데 암묵적 동조를 하지 않았냐고 말할 수 있겠냔 말이다. 이제 박 군의 처와 그 아이들을 어찌 보며, 어떻게 같은 하늘을 보고 살아갈 생각이란 말이냐! 이 쓰레기 같은 자식들아!”

“선생님. 고정하시지요, 건강에 안 좋습니다.”


흐느끼는 것인지 기운이 빠져 숨을 몰아쉬는 것인지 그가 굵은 비 같은 눈물을 바닥에 툭툭 떨구었다.


“저희가 정말로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선생님 뵐 면목이 없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강 판사가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는 스승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법정에서 늘 부장판사라며 그가 나타나면 모두가 자리에서 기립하고 어딜 가든 판사님 판사님 하며 존경 어린 시선을 받는 것이 익숙해진 그였다. 앞서 영전에 꽃을 올리고 눈물이 말라 제대로 말도 잇지 못하는 미망인을 보면서도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사진 속의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감정이 울컥하거나 눈물이 나올 기미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스승의 일갈을 듣고 나니 자신이 얼마나 타성에 젖어 그간 그 지위가 당연한 것이라며 누리며 지내왔는지 부끄러움이 발 저 끝에서부터 양심의 울렁임을 타고 큰 파도가 되어 온 감정을 뒤흔들었다. 강 판사의 모습을 보며 움찔거리듯 하나둘 주저앉아 흐느끼는 스승의 앞으로 모두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후둑후둑.


내내 맑던 하늘에서 굵은 빗줄기가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에도 없던 타이완에서나 볼 수 있는 굵은 스콜 같은 소나기가 양복을 입고 꿇어앉아 흐느끼는 중년의 남자들 틈새로 쏟아붓기 시작했다.


어느 한 사람도 스승에게 다가가 일으켜 세울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무릎을 꿇은 채 그 비를 고스란히 맞았다. 그들은 그제서야 그들이 사회생활의 일환으로 장례식장을 찾은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들이 함께 공부했던 그 짧지 않은 시간들이 바닥을 때리는 빗줄기들이 하나둘 깨우쳐주었고, 공부하다가 배가 고파 허겁지겁 먹던 젊은 날의 그 장면들이 아스팔트를 때리는 빗줄기로 튀어 오르며 그들의 뿌애진 눈물 멍울 안으로 그려졌다.


아직 살 날이 살아온 날만큼이나 남아 있던 박 교수는 그렇게 그들의 곁을 떠났다.


하지만, 그 빗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그는 생각했다.


‘이렇게, 이대로는 그냥 보내줄 수 없다. 내가 그리 못하겠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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