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출신의 털털한 목사와 달리 전라도 출신의 깍쟁이 같은 부인이 얼른 박 교수의 손에 들려 있던 짐들을 자동차 트렁크에 넣었다.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며 큰 차를 샀던 목사는 그의 아내가 혼자서 낑낑거리며 캐리어를 옮기는 것을 보며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뒤에서 그것을 들어 차곡차곡 차 뒤쪽에 실었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목사가 물었다.
“가실 준비는 이걸로 다 끝나신 겁니까?”
“네. 뭐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이 그저 집을 비우는 거니까요. 아이들과 집사람 짐은 대강 지난번 갈 때 자기들이 가지고 갔구요.”
“그래도 묵은 살림이라는 게 만만치 않았을 텐데 혼자서 치우시느라 고생하셨네요.”
도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훠궈 뷔페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면서도 박 교수의 맥 빠진 얼굴을 보며 목사의 아내가 한 마디 보탰다.
“교수님. 이제 한국에 들어가실 텐데 여기 일은 그냥 다 잊으세요.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잖아요.”
“네.”
웃으며 선선히 대답은 했지만, 박 교수는 전날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면서도 선뜻 젓가락이 훠궈에 향하지 못했다.
“혹시 어디 아프신 곳이라도 있으세요? 안색이 너무 안 좋으세요.”
“짐 정리하고 혼자서 치우시느라고 고생이 많으셨던 게지.”
목사가 먼저 아내에게 눈을 찡긋하며 그저 모른 척하라는 듯이 사인을 보내며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목사님. 뭐 하나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퀭한 눈으로 멍하니 훠궈를 응시하던 박 교수가 목사에게 물었다.
“얼마든지요. 제가 답해드릴 수 있는 거라면요.”
“목사님은 제가 처음에 연락드렸던 1년 전에 처음 저를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서 어떻게 저를 믿게 되셨나요?”
다소 생뚱맞은 질문에 목사의 아내가 막 움직이던 젓가락을 가만히 앞으로 가져가 박 교수와 남편을 번갈아 조심스레 바라보았다.
“으음. 안 믿었습니다. 아니, 믿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저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셨으니 그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지 제가 믿었다거나 하는 단계가 아니었습니다. 처음 뵈었을 때는요.”
뭔가 뒤의 이야기가 있다는 듯이 입을 뗀 그의 말에 박 교수가 가만히 경청하고 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교수님의 사모님과 아이들이 타이완에 와서 같이 생활하시고 그때 저희 부부와 함께 만나서 온천도 가고 함께 식사고 하고 하면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도 말레이시아에서 해외 목회활동을 시작하면서 한국인들이 해외에 나와서 숱하게 여러 안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한국인들끼리 속이고 싸우고 등치고 별의별 꼴을 다 봐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쉽게 누군가를 믿고 뭐하고가 안되더군요. 사실 해외에 나와 교회를 찾는다고는 하지만, 해외의 한국 교회는 말 그대로 한인사회의 집약판이거든요.”
“그렇지요.”
“그런데, 교수님의 팩트에 근거한 이야기를 들을 때는 사실 머리로는 이해가 갔지만 과연 왜 그렇게까지 일이 벌어졌을까? 그게 어디까지 사실일까? 물론 지금은 전체를 듣고 실제로 그 쓰레기 같은 사립대 여자 교수도 만나고, 이번에 그 외교대학교에 같은 성을 가진 교수라는 놈이 하는 짓거리까지 들으면서 교수님이 설명해주신 그 내용을 본의 아니게 검증하게 되기도 했지만, 사모님과 아이들을 만나서 그 자리에서 스스럼없이 그 일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서 확신을 하게 되었지요. 사실 그런 일을 벌인 남편과 아버지에게 그렇게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을 보이는 건 연기로는 되는 게 아니거든요.”
박 교수가 뭐라 대답을 하지 못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죄송합니다. 제가 뭐라고 건방지게 누굴 믿고 안 믿고를... 물으시니 답한다고 했다가 오버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전에 1심을 맡았던 변호사 녀석이 했던 말과 비슷해서 그 녀석이 생각났습니다, 갑자기.”
“아, 그 친구도 사모님과 아이들을 보고 믿게 되었다고 하던가요?”
목사가 해맑은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요. 그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교수님의 눈을 보고 자기는 결백을 확신한다고...”
“아, 그 친구, 참 철학적일세. 허허허. 교수님 다 익었습니다. 좀 드시지요. 이제 내일이면 한국에 들어가실 텐데 새로운 시작을 하셔야지요.”
목사 부부와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들이 다시 교회일로 교회에 들어가 봐야 한다고 하여 박 교수를 다시 아파트 앞에 내려다 주고 헤어졌다.
“꼭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보조석 쪽에 앉은 목사 아내의 창쪽으로 목사 부부에게 박 교수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네. 한국에 들어가면 다시 가족끼리 맛있는 식사라도 하지요. 조심해 들어가십시오.”
그렇게 그들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올라오려는데 왠 검은 가죽옷을 입은 삐쩍 마른 남자가 박 교수 쪽으로 다가오다가 몸을 부딪혔다. 조금 세게 부딪혔는지 박 교수가 옆으로 한 걸음 밀려났다.
“앞을 좀 보고 다녀요!”
박 교수가 그에게 한 마디 던졌지만 남자는 박 교수를 그저 가만히 쳐다보고는 쓱 지나가버렸다. 아주 잠시였지만, 아주 불쾌한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남자의 얼굴을 보며 박 교수는 자기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혹시...’
다시 별별 생각이 다 들면서 7월 한 여름에 가죽재킷을 입고 성큼성큼 그 자리를 떠나버린 남자를 두리번거리며 찾았지만 남자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얼른 아파트 로비로 들어와 리셉션 데스크 앞의 응접 공간에 가만히 앉아 부딪힌 몸을 살펴보았다. 특별히 다치고 한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그의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듯한 그 이상한 표정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한참을 로비에 앉아 있다가 위로 올라가 다시 전화기를 만졌다. 이메일에 읽음 표시는 뜨지 않았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전화벨을 눌렀다.
“여보세요.”
그쪽의 거친 민 교수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선생님. 접니다.”
“아니. 전화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왜 자꾸 전화질인가?”
“그렇게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으시면 안 되겠습니까?”
박 교수가 단호하게 그의 말을 막아서며 물었다.
“박 교수가 지금 상황을 모르나 본데, 지금 학과에서 강경한 이들은 자네에 대한 모든 흔적을 없애버리고 우리와 관련이 없다는 것으로 ‘호적에서 파내버리자’라는 말까지 나온 상태란 말이네.”
“도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들으셨길래 그러시는 겁니까?”
“뭘 어떻게 들어? 뉴스까지도 다 나서 난리법석에 일반인들이 우리 학교 출신이라고 하면 무슨 일만 있으면 끌어내리고 손가락질하려 드는 것을 자네가 모른단 말인가?”
“그건...”
“자네가 말하려는 억울한 누명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게 일을 언젠가 벌일 거라고 다들 자네를 욕하고 있었지. 내가 그러지 않았나? 그렇게 외국을 누비고 다니는 것이 뭐 위해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그런데 결국 이 사달이 나지 않았는가 말이야?”
“괜한 시빗거리를 만든 것은 면목이 없습니다. 하지만...”
“면목이 없으면 연락을 하지 말고 학교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
“아니, 그렇다고...”
“학교에서도 그렇고 학과에서도 그렇고 그런 문제가 났던 자네와 얽히고 뭔가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말이 많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학내에서도 미투 사건 이후로 학생들이 별 난리들을 다 치고 몇몇 교수들은 대놓고 자르라고 난리를 치는 마당에 외국에서 그런 일을 벌이고 우리 학교 출신 교수라는 게 뭐 대단한 광고라도 된다고... 면구스럽기 스리...”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이제 우리 근처에 얼씬거리는 일이 없기를 바라네. 끊네.”
“아니, 선생님...”
“뚜뚜뚜....”
아주 세차게 폴더폰을 닫아버리는 소리와 함께 그는 수화기의 저 멀리로 달아나버렸다.
황망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그에게 뭔가 기대를 한 것도 아니긴 했다. 그가 대단한 동아줄이라서 한국으로 돌아간 이후에 번호표를 턱 하니 내주고 그 번호표로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타이완에서의 사건을 뒤로할 거라는 기대 따위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학교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잠시라도 좋으니 자신이 잠시 기탁할 수 있는 울타리 정도만을 기대한 것이었다. 그가 그렇게 헤헤거리며 챙기는 학생들이 아직도 자리를 못 잡고 빌빌대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대단한 무언가를 해달라고 연락을 취한 것이 아님을 그 역시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그가 도대체 무슨 권리와 뻔뻔함으로 자신들의 근처에는, 아니 학교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며 금족령까지 언급하는지 황망하기 그지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한 결정이 맞는 것인지, 며칠 전 결정을 하고 아내에게 비행기표를 예약했다는 말을 꺼내자 아내가 진작 들어왔어야 한다며 가능하면 빨리 들어오라고 말해줬던 것이 떠올랐다. 가족이 있다. 가족 때문에 살았고, 앞으로도 그러했다.
박 교수는 노트북을 열고 제임스에게 연락이 오기 전까지 2시간을 꼬박 자신에게 쓰는 이메일을 4통, 아주 길게, 그리고 촘촘히 적어 내려간 후 저장했다.
제임스가 현관 앞쪽에 차를 세우고 비상등을 켠 채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 짐이 좀 많은데, 이거 싣고 있어요. 난 한 번 더 위에 다녀올게요.”
박 교수가 박스 2개와 비닐 가방을 주면서 다시 한번 아파트 현관으로 뛰어 들어갔다.
“알겠어요.”
다시 한번 돌아온 박 교수의 손에 가득 담겨 있는 물건이 든 비닐가방을 차의 뒷자리까지 꽉 채우고 나서야 두 사람은 차에 올랐다.
“미안해요. 별로 좋은 것도 아닌데...”
박 교수가 멋쩍게 웃어 보이며 제임스에게 사과했다.
“무슨 소리를요? 아이들 장난감부터 사용하지 않은 한국 조미료부터 아내와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하겠던데요?”
운전대를 돌리며 제임스가 활짝 웃어 보였다.
“일단 시먼딩은 주차공간이 만만치가 않으니 그 식당도 현지인들만 아는 골목 깊숙한 구석에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 골목 앞쪽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야 해요.”
그가 소개해주고 싶다는 시먼딩 뒷골목의 우육탕면 집은 정말로 허름하지 짝이 없었다. 제임스는 웃으며 자신이 늘 시키는 대로 이것저것 특별히 넣어달라는 재료까지 이야기하고는 두 그릇을 주문했다.
“먹어보면 왜 내가 여길 그렇게 데리고 오고 싶어 했는지 알게 될 거예요.”
“그래요. 맛있게 먹읍시다, 일단은.”
사실 낮에 먹은 훠궈도 그다지 많이 먹진 않았지만 영 입맛이 없었다. 아니, 음식 맛을 느낄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도 마치 먹방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박 교수는 아주 밝게 웃어 보이며 그 큰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맛있네요, 정말. 고마워요. 이런 가게를 소개해줘서.”
거짓말이었다. 아니.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 것이 다였다. 타이완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믿을 수 있는 타이완 사람이던 제임스에게,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박 교수는 정말 마음의 빚이 크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로 가려고 해요, 이사는?”
“도착하게 되면 라인으로 사진 찍어서 보낼게요. 일단 타이베이에서 벗어나려고 해요.”
박 교수의 뜻 모를 웃음에 제임스가 더 이상 묻지 않고 함께 미소 지어주었다.
“그래요. 일단 살림을 좀 줄이고 당분간 마음 좀 편하게 지내요.”
무언가를 안다는 것처럼 제임스가 대답했다. 두 사람은 음료수로 시킨 콜라 한 캔을 비우고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은 채 그저 서로를 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