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이없던 날의 전혀 다른 지도교수를 대하면서 박 교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그들의 상식에 수정액을 들이부었다. 어차피 국내에서 기웃거리지 않는 이상 그들과 부대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배워야 할 것은 오히려 스승을 통해 늘 배울 수 있었고, 그것만 배우기에도 버겁고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분명히 이대로 한국에 들어가게 된다면, 주영희는 신나서 이곳저곳에 페인트를 뿌리고 다니며 난리법석을 피울 것이다. 어차피 다시 타이완에 돌아와 법적인 것을 다툴 것이 아니라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때 자리를 마련해야 하고 그러면 결국 다시 그들과의 관계를 맺어야만 했다. 물론 그것도 100%로 보장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주영희와 그 쓰레기들이 한국에 계속 빨대를 대며 빨간 페인트를 뿌려댈 것이고 그 주홍글씨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며 포용해줄 베이스캠프가 필요했다. 그들의 지저분한 꼴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해외 대학의 초빙에만 응하면 밖으로 나간 스승에게 손을 벌릴 수는 없다고 여겼다. 박 교수는 조심스럽게 전화번호부에서 전화번호를 찾아 국제전화를 눌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선생님. 접니다.”
“아! 박 선생인가! 나한테 전화하지 마라.”
“여보세...”
“뚜뚜뚜뚜...”
전화가 끊겨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원래 제멋대로에 괴팍한 성격이긴 했지만, 그는 박 교수의 신원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으로 응대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기운이 쑥 빠졌다. 다시 전화를 연이어하는 것이 더 큰 실망을 안을 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이메일을 먼저 쓰기로 했다.
(중략...) 오랜만에 연락드렸는데, 많이 노하신 듯하여 다시 전화를 누르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2년 전에 타이완의 대학에 왔다가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쓰고 2년이 넘도록 제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재판과 언론에 매달리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세월을 보냈습니다.
해외대학으로만 돈다고 안 좋게 생각하시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후배들이 이제 세계로 나가 공부하는 것도 좋게 지원하시는 분위기로 바뀌시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가시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쓰면서 상대해야 할 자가,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타이완에서 유명한 친일파인 주영희라는 작자입니다. 사건이 터진 그즈음부터도 계속 혐한을 이용해서 저를 공격하는 것을 넘어 한국의 언론에 소설을 써서 저에 대해 음해하는 기사를 내달라고 악다구니를 쓰던가 하는 등의 악행을 서슴지 않는 자였습니다.
제가 당한 일에 대해 처음부터 모두 설명하고 말씀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모두가 제 마음만 같지 않은 탓에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기가 내키지 않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부족하긴 하더라도 여학생을 건드리거나 그런 작자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 선생님이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가 더 조심하고 더 삼갔어야 했는데, 모두 제가 부덕한 소치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제가 책임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지금 재판을 고의적으로 지연하고 저를 타이완에 가둬준 채 피를 말리는 전략으로 마냥 버티고 있습니다.
1심에 말도 안 되는 유죄를 선고해놓고서는 바로 항소심을 제기하였더니 작년 크리스마스에 항소를 한 것이 여름이 다 오도록 아무런 진전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자신들의 음모가 드러날 것 같으니 갑자기 법원을 통해 출국금지를 풀어버렸습니다. 아마도 뒷문을 열어 한국에 들어가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후 한국에 들어가면 도망갔다면서 난리를 치려는 계략을 부리고 있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끝까지 싸우고 싶었지만, 2심이 열리지 않는 지금의 상황이라면 1년도 더 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지옥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이제 중년이 지나 대학에만 있었던 제가 한국에 들어가서 다시 대학 말고 무슨 장사를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겠습니까?
결국 학교 말고는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이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에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저의 울타리가 되어줄 곳이 없습니다.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제가 잠시 비를 피하고 쉴 수 있는 우산 역할을 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다시 전화를 드리는 것이 괜한 반발처럼 보일까 싶어 이메일로 대신합니다. 아까 뜬 번호로 언제든지 전화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연락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중략...)
그렇게 이메일을 보내고 다시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혼자서 중얼거리며 가족들이 안녕하길 바라는 기도와 함께 여명이 돋는 그즈음에 스러지듯 잠이 들었다.
“아,안돼~!”
아주 잠시였다. 5분도 채 눈을 감지도 못했는데, 아주 긴 꿈에, 끔찍한 악몽에 전기자극을 받은 것처럼 퍼덕거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자신도 모르게 땀에 온 몸이 푹 젖어 있었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꿈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이 배를 타고 가는데 커다란 폭풍과 큰 파도가 그 세 명을 집어삼키려는 듯 달려드는 것 같았던 같기도 했고, 검은 그림자가 가족을 덮치는데 자신이 빤히 보면서도 달려가서 막으려고 해도 항상 한 텀이 느려서 그 어둠에 가족들이 잡아 먹히는 꿈이었다. 그것이 끝없이 계속 반복되었다.
어제 자료를 정리해둔 것을 보고 놀랐는지 스승에게서 다시 카톡이 와 있었다.
발검무적: 한국으로 들어가기로 결정을 했다구?
박 교수 : 죄송합니다. 바로 메시지를 보지 못했습니다.
발검무적: 죄송은 무슨. 마음이 착잡해서 그러려니 했네. 그래서 한국에 들어갈 생각인가?
박 교수 : 네. 어제 민 교수님에게 연락을 했는데, 제가 건 걸 알고서는 전화를 끊어버리시더라구요.
발검무적: 그 자에게 또 뭐하러 전화를 했나? 에휴. 그 작자들은 언제든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고 지금 얼마나 고소해하며 자기들끼리 자네를 씹고 있을 것을...
박 교수 : 그래도 한국에 들어가려면 자리를 알아봐야 할 것이고 여러 가지로...
발검무적: 으음...결국 주영희들이 난리를 칠 것을 뻔히 아는 입장에서 내가 뭐라 할 말은 아니네만, 그래도 그들이 지금 자네에게 울타리가 되어줄 아량을 보여줄까?
박 교수 : 그렇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움직여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가장노릇도 못한 지 벌써 몇 년째인데...
발검무적: 맞는 말이긴 하네만...자네가 한국에 들어가서 편하게 쉬지도 못할 것을 생각하니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을지...혹시라도 내가 있는 곳에 와서 좀 쉬는 건 어떻겠나?
박 교수 : 아닙니다. 가족들과 함께 있어야죠. 그렇지 않아도 요 몇 달이나 떨어져 있으면서 남편 노릇도 가장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이 생일에도 함께 있어주지 못했는걸요.
발검무적: 그래. 가족은 함께 있어야지. 암, 그래야지. 그러려고 사는 것인데...
박 교수 : 그리고 선생님에게 너무 많이 신세를 져서 제가 더 의탁하기가 죄송스럽습니다.
발검무적: 무슨 그런 소리를 하나? 내가 해준 것은 또 뭐가 있다고...
박 교수 : 일단 모레 들어가서 정리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동기들이나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기도 그렇긴 한데...
발검무적: 으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어차피 한국에 들어가기로 마음 먹었다면 일단 좀 들어가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그간 상처 입은 것을 회복하는 것에 주력했으면 좋겠네. 그리고 타이완 건에 대해서도 어떻게 원격으로 콘트롤할지에 대해서도 좀 생각해보고.
박 교수 : 그러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로 감사합니다, 선생님.
발검무적: 감사는 무슨. 해결되거나 도움이 된 것도 하나도 없이 이렇게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긴 하지만, 그렇다고 죽치고 있는다고 될 것도 없으니 지금은 자네의 결정을 지지하네. 그리고 자네가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든 자네 자신은 변함이 없으니 결코 기죽거나 쓸데없는 이들에게 고개를 숙이면서까지 지낼 필요는 없네.
박 교수 :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한국에 들어가서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발검무적: 그래. 한국에 들어가기 전까지 항시 조심하고, 조금도 방심해서는 안될 놈들이니 지금 또 얼마나 자네의 일거수 일투족을 노려보고 있겠나. 사람이 상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네. 일을 도모하는 것은 항상 그다음이야. 알겠지?
박 교수 : 네. 선생님. 또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박 교수는 마지막으로 연락도 없는 <연합보>에 전화를 넣어볼까 하다가 아예 전화기를 다시 책상에 놓았다. 은행에 가서 통장에 있던 남은 돈을 모두 찾아서 통장을 폐기했고, 버리는 짐으로 두었던 것들을 모두 챙겨 분리수거함에 가져다 넣었다. 저녁 즈음이 되어 부동산 업자가 다른 사람이 집을 본다면서 핑계를 대며 집을 보러 왔다. 집을 보러온 타이완 여자는 술집에 나가는 여자인 듯 짙은 화장과 노브라로 젖꼭지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노출이 심한 옷을 건들거리며 와서는 방 안까지 들어와 어둠이 내리깔린 창가를 보며 말했다.
“한국 사람인가 보죠? 한국 사람들이 이런 높은 층들을 다 사고 지내더라구요.”
묻는 것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소리를 하며 그녀는 뷰가 굉장히 마음에 든다며 부동산 업자에게 눈짓을 해 보였다. 그러다가 방 옆으로 균열이 간 곳을 보며 눈썹 하나를 꿈틀 추켜올리며 말했다.
“저건 뭐죠?”
“원래부터 있었던 건데... 집주인이 해결해줘야 하는데...”
부동산 업자가 안절부절못하며 박 교수의 눈치를 보다가 그녀에게 다가가 뭐라고 얘기를 했다. 그가 하는 말은 박 교수에게도 아주 또렷하게 다 들렸다.
“사실 여기가 최상층 라운지라서 균열이 있는데, 지금 이걸 얘기하면 집주인이 수리를 해야 하는데, 어차피 아가씨는 바로 들어올 거 아니니까 전문 수리공을 불러서 안전검사를 요구하면서 돈으로 다 받아낼 수 있어요. 지금 저 한국사람한테 그런 얘기를 하면 안돼요. 저 사람은 급히 나가는 바람에 보증금을 두 달치나 떼였는데 지금 이 사실이 집주인의 귀책사유라는 걸 알면 보증금을 떼이기는커녕 안전에 문제가 있어서 나가겠다고 우겨도 우리가 할 말이 없다구요. 그런데 집주인은 타이완 사람인데 타이완 사람의 돈을 빼앗아서 한국 사람한테 주고 싶어요? 그러니까 아가씨는 그냥 맘에 드는지 안 드는지만 보면 돼요, 지금 이상한 소리를 했다가는 곤란해진다구요.”
그 부동산 업자의 말을 듣던 박 교수는 피식하며 웃었다. 웃음이 나올 타이밍이 아니었지만, 이제 아무런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달치나 되는 수백만 원의 보증금을 버리고 그 돈이 주인에게 갈지 중간에 저런 농간을 부린 부동산 업자에게 갈지는 몰라도 이제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2년이 넘도록 버린 시간과 돈은 그것보다 훨씬 더 컸고, 그것으로 인해 더 벌 수 있었던 더 발전하고 더 나아질 수 있었던 돈과 시간은 고통으로 바뀌어 계속 그를 괴롭히고 갉아먹었다는 사실을 인지할 뿐이었다.
그의 비열한 웃음 섞인 얼굴에 그간 타이완 사람들의 민낯들이 겹쳐져 한꺼번에 여러 사람이 들어가 있는 잘못된 오버랩 화면처럼 그와 짙은 화장 냄새의 여자가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 모레 아침에 열쇠 반납하는 것은 로비에 하시면 됩니다.”
부동산 업자가 마지막으로 문 앞에서 떠드는 소리에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
“후우!”
아침부터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배고프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제 하루만 더 보내면 이 타이완에는 평생 올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그렇게 한 숨도 편하게 잠을 자지 못한 시간이 흐르고 목사 부부와 제임스를 만나 마지막 정리하기로 한 날이 밝았다. 새벽 내내 악녀 랴오츠리엔과 천위지에의 라인을 하염없이 반복하며 보았다. 그녀들은 이미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즐기기 위해 프로필 사진 안에서 밝게 웃고 있었다. 자신의 사람을 다 갉아먹고, 자신의 삶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려놓고 그녀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자신들의 일상을 찾아갔다. 생각 같아서는 그녀들을 죽이고 자신도 그냥 죽겠다고 생각했던 때가 생각났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기운이 없었다.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 계속 메일 수신확인을 눌러보았지만 민 교수는 메일을 읽지 않았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서 목사에게서 카톡이 왔다. 싸 두었던 캐리어와 목사 부부에게 줄 그림 액자와 선물이 담긴 박스를 가지고 만나기로 한 시간에 맞춰 1층 로비로 내려갔다. 키 작고 통통한 경비가 밝게 웃으며 현관문을 열어주며 인사했다.
“여행 가시나요? 짐이 많으시네요?”
“아, 네.”
지난번 일도 있고 하니 날카롭게 반응할 것이었음에도 박 교수는 그저 선선히 대답하고는 밖에서 차를 대고 막 내리는 목사부부에게 인사하며 밖으로 나갔다.
목사 부부는 마지막 브런치라며 훠궈 뷔페를 가자며 먼저 청했다. 사실 늘 한식을 먹길 고집하던 목사 때문에 한식당에 가서 고기를 먹을까 했지만 전화를 걸었더니 하필이면 정기휴일이라고 주인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말소리가 들린 직후의 제안이었다.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그리고 이건 맡기려던 가방이구요. 이건 선물 받았던 그림 액자인데 제가 한국에 가지고 들어가기도 뭐하고 가장 어울리는 분들에게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포장도 아직 뜯지 않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