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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Feb 09. 2022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아쉬울 때만 하늘을 찾는 딱한 자들에게.

子疾病, 子路請禱. 子曰: “有諸?” 子路對曰: “有之, 誄曰: ‘禱爾于上下神祇.’” 子曰: “丘之禱久矣.”
공자께서 병이 위중하시자, 자로(子路)가 신에게 기도할 것을 청하였다. 공자께서 “이런 이치가 있는가?”하고 묻자, 자로가 대답하기를, “있습니다. 誄文에 ‘너를 上下의 神明에게 기도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하였다. 공자께서 “나는 기도한 지 오래이다.”하셨다.

이 장의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 고증에 의거하면 애공 14년 즈음으로 추정한다. 당시 공자의 나이 이미 칠순을 넘긴 71세였다. 고문에서 ‘질(疾)’은 그냥 병에 걸린 것을 말하는 것이고, ‘병(病)’은 중병에 이른 상태를 묘사하는 말이다. 그러니 꽤 위중한 병에 걸린 듯 많이 아팠음을 의미한다.


스승이 많이 아프자, 곁에서 모시던 자로가 신에게 기도할 것을 청한다. 그러자 공자가, ‘이러한 이치가 있었는가?’라고 묻는다. 이것이 원문에서 ‘有諸?’라고 한 부분인데, 이 내용은 이치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전례(典例)’가 있었는지를 묻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례(典例)’란 ‘전거(典據)가 되는 선례(先例)’를 의미하는 단어로 ‘이전부터 있었던 사례’를 말하는 ‘전례(前例)’의 의미와 전혀 다른 뜻이다. 즉, 이전에 이런 일이 있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느 경전에서 그렇게 하라고 나와 있는가?’라며 되묻는 것으로,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전례를 내가 공부하면서 살펴보지 못하였는데 어찌하여 근거 없는 그런 말로서 권하는가?라고 완곡하게 가르침을 주어 거절하는 의미이다.

베트남 하노이의 문묘

그러자, 스승의 쾌차를 바라는 자로(子路)는 우직하게 뢰문(誄文)에 그런 기록이 있었다고 대답한다. 뢰문(誄文)이란, ‘죽은 이를 애도하면서 그의 행적을 서술한 글’이다. 上下는 하늘과 땅을 말하는데, 하늘의 神을 신(神)이라 하고, 땅의 신을 기(祇)라 하니 하늘에 기도했다는 말을 그대로 언급한 것이다.


스승 공자의 완곡한 가르침을 알아듣지 못하고 우직하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자신이 찾은 이른바 족보 없는 뢰문의 비슷한 내용을 말하며 기도를 청하는 제자의 모습을 보며 공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기도한 지 오래이다.”

 

사실 이 장의 눈깔 문장은 바로 이 마지막 대답이다. 이 장을 해설한 현대 해설서들을 보면, 대개 이 장의 내용을 이전에 공자가 말했던 괴력난신(怪力亂神)을 가지고 와서, 공자는 귀신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귀신에게 기도하라는 제자의 청을 거부했다는 식으로 해설하는 해석이 대부분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의 공부가 얕은 것을 지적하기 전에, <논어>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보고 참고 삼아야 할 주자의 주석만큼이라도 공부하는 성의를 보이라고 그들의 곁에 있는 이들이 그의 쓴 책이라는 것을 들어 내려쳐주길 부탁한다.

왜 내가 이렇게 답답해하는지 주자의 주석을 먼저 풀이해보자.

 

기도는 잘못을 뉘우치고 善에 옮겨가 신의 도움을 비는 것이다. 그런 이치가 없다면 빌 필요가 없는 것이며, 이미 그런 이치가 없다면 빌 필요가 없는 것이며, 이미 그런 이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성인은 일찍이 잘못이 없어 옮겨갈 만한 善이 없어서 평소의 행동이 진실로 이미 神明에 합치한다. 그러므로 “나는 기도한 지가 오래이다.”라고 말씀한 것이다. 또한 《예기(禮記)》의 <사상례(士喪禮)>에 “병이 위독하면 五祀의 신에게 기도를 한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臣子의 절박한 정에서 그대로 있을 수 없어서이고, 당초에 病者에게 청한 후에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공자가 자로(子路)에게 곧바로 거절하지 않고, 다만 기도를 일삼을 것이 없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자아, 어떠한가? 이렇게 상세하게 공자의 가르침이 담고 있는 행간까지 말끔하게 주자가 해설해주었는데도 어쭙잖게 주워들은 괴력난신(怪力亂神)을 운운하며, 공자가 귀신에게 기도하는 것을 지극히 싫어해서 기도를 하지 않았네 뭐네 해설이랍시고 혹세무민 하는 것에 괘씸해하는 것이 이상한가? 자기 혼자만 오독하고 삽질하는 것도 딱할 판에, 전문가를 자처하며 책까지 쓴답시고 해설서를 그따위로 출간하고 헛기침하는 것은 좀 심하지 않은가?

다시 원문으로 돌아와 보자.

공자는 조상을 섬기는 데는 열심이었지만 미신은 아주 싫어했다. 그것은 이 장의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앞서 설명했던 ‘전례(典例)’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경전에서 근거를 가지고 그렇게 말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따를 수 없으나 근거도 없는 미신 같은 것에 의거하여 비는 것을 탓했던 것이 괴력 난신의 의미로 해석되는, 공자가 경계한 바이다.


그런데 이 장은 그나마 그런 부분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주자의 주석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마지막 문장이 눈깔 문장임을 확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도나 빈다는 행위 자체는 잘못을 뉘우치고 선한 행동을 하기 위하여 신의 도움을 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반대로 생각해보면, 빌어야 할 이유가 없다면 빌 필요가 없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공자는 누차 스스로 강조하고 가르쳐왔던 바대로 학문을 시작할 때부터 그 공부의 목적이 하늘의 뜻에 따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에 ‘그런 기도를 한 지가 오래되었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즉, 그 말을 굳이 풀이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나는 평소 하늘의 뜻을 받들어 천도(天道)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왔으니 그런 기도하는 경건한 마음을 실천해온지 이미 오래되었다네.”

 

아! 그러므로 몸이 아프다고 새삼스레 낫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도를 드릴 계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픈 스승을 걱정하는 마음에 공부가 깊지는 못하지만 그 마음이 곧은 자로를 보며 사려 깊은 스승 공자가 바로 쓸데없는 소리라며 노골적으로 내치지 않고 에둘러 큰 가르침을 다시 한번 준 것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 큰 병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자는 따로 기도를 드리지 않고 병에서 쾌차하였고, 이듬해인 애공 15년에 자로(子路)는 전장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공자는 자신을 그렇게 걱정해주던 우직한 제자 자로(子路)의 죽음을 비통해하며 천명(天明)에 부름을 받아 이듬해 세상을 떠나게 된다.


수천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당했을 때 신을 찾아 기도를 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인간이고, 인간은 약하기 그지없기 때문에 자신이 감내할 수 없는 고난을 맞닥뜨리게 되면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며 신의 조력을 구하느라 기도를 하게 된다.


스승 공자의 아픔을 보면서 걱정스러워했던 제자 자로의 우직한 마음을 스승이 모를 리 없었기에 스승은 그가 이해하지 못할 경지의 말임을 알았지만 가르침으로 다시 한번 제자를 일깨워주었다.

 

당신에게는 그 가르침이 와닿았는가? 늘 그렇지만 뜬금없는 질문 하나 하자. 사람들은 저축을 왜 하는가? 돈이라는 것이 언제 어떤 일이 생겨 급하게 필요할지 모르기 때문에 미리 그 갑작스러운 일에 대비하기 위해 준비한다.

물론 무언가를 하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구매하기 위해 저축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구매하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저축을 하든, 가족 중에 누가 아프거나 갑작스럽게 돈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아주 현실적인 이유로 저축이라는 것을 한다.

 

그렇다면 이제 바꿔서 질문해보자. 당신은 공부를 왜 하는가? 내가 아침마다 <논어>를 강독해주면서 최근 화두처럼 우리는 왜 공부하는지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지에 대한 공자의 가르침을 여러 각도에서 이해하고자 노력해왔다. 올바름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그것을 실생활에서 실천하기 위해서 배운다.


배운다는 것 자체가 실천한다는 것을 반드시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정도로 배웠다. 그런데 그것을 부단히 지속하고 끊임없이 배우고 실천해나가는 삶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공자는 아파서 끙끙 앓으면서도 이처럼 상세하게 해주고 있다.


천도(天道)가 무엇이던가? 결국 하늘의 뜻이고 본래 그렇게 해야 하는 올바름에 다름 아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끊임없이 공부하여 궁구 하였고 그것을 실생활에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단련하며 수양하였다. 하늘의 뜻에 최대한 거스르지 않고 그 본연의 흐름에 맞춰나가는 수양을 해왔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늘의 뜻에 맞춰 생활했던 자가 갑자기 아픈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없는 돈이 생겨서 어려움을 해결해달라고 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가?

 

무조건 원하는 것이 있다면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사이비 종교의 지도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평상시에 공부하지 않으면서 좋은 대학을 가게 해달라고 매일같이 새벽기도를 한다고 갑자기 성적이 쭉쭉 오른다면 모든 수험생들이 그 사이비 종교에 귀의하여 그 귀신의 힘에 기댈 것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자마자 바로 기도원에 처박혀서 병이 없어져주기를 바라는 철야기도를 드린다고 해서 병이 깔끔하게 낫는다면 병원의 의사들은 할 일이 없어질 것이다.


회사가 망해가고 있는데, 회사를 살리겠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노력할 생각은 하지 않고 기도하겠다고 신을 찾으며 눈물을 흘리며 하늘의 도움을 청해서 회사가 기사회생할 것이라면 어느 누구도 회사 경영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평생을 다른 사람들에게 겁박하며, 자신들이 죄를 만들겠다고 끝까지 조지면 결코 결백한 사람이 없을 것이고 자신들이 수사하지 않으면 죄가 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지내던 검찰의 법비들이 뒷돈을 아들을 통해 받겠다고 설치다가 걸려 백일기도를 한다고 해서 그렇게 오랫동안 쌓은 업보와 죄업이 갑자기 사라질 리 만무하지 않은가?


자기 처와 장모를 비호하며 돈 없고 빽 없는 자들에게는 엄중한 법의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며 칼을 휘두르던 자가 갑자기 이상한 사이비 법사에게 택일을 점지해 받고 손에다가 '왕'이라는 글자가 아니라 '황제'라는 글자를 쓴다고 한들 그녀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단 말이다.

학생이 자신의 본분에 맞게 열심히 매일같이 공부하고서 마음을 다스리며 자신이 하루하루 공부했던 자세로 노력하는 것이 기도이며, 매일 사특한 마음을 품지 않고 직원들과 공생한다는 마음으로 노력해나간 경영인은 위기가 닥치더라도 그 위기를 직원들과 동료들과 함께 극복할 방안을 모색하지 기도원으로 달려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자신의 몸 관리를 소홀히 하여 병이 생겼다면 그 병의 원인을 찾고 몸에 좋지 않은 것을 삼가고 몸에 좋은 것을 다시 조절하고 의사의 도움을 받아가며 다시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나간다면 병세의 호전을 바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전부터 매년 건강검진을 통해 자신을 관리하고 운동을 통해 자신의 몸을 관리해왔다면 갑작스럽게 시한부 선고를 받을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앞서 군홧발에 총칼을 들고 대통령이 된 자의 딸과 국민들 등을 쳐서 국가를 기업화하여 크게 한 탕하겠다고 설치던 장사꾼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여, 자기 입맛에 맞게 법을 재단한 자가, 사이비 점쟁이의 점지에 따라 손에 왕(王) 자가 아니라 옥황상제라고 쓴 글자를 문신으로 새긴다고 해서 한 나라를 대표하는 통치자가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주역> 대유(大有) 괘의 상구(上九) 효사(爻辭)에 보면 “하늘이 도우면 길(吉)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自天祐之, 吉无不利)”라고 하였다. 이 효사의 뜻은, 무조건 하늘이 도와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하지 않는다. ‘신실(信實)한 삶을 살면서 명(命)에 순종(順從)해야 하늘이 도와준다’라고 풀이한다. 평상시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하늘이 쭉 보고 있었기에 그것을 보고 하늘이 도움을 준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매일같이 당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두 아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최소한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는 한 사람, 바로 당신이 안다. 그리고 하늘도 안다.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모른다고 해서 아무도 모르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은 결코 비유가 아니다.


그래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실천에 옮기고 하늘의 명을 기다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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