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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Feb 18. 2022

말하는 것만 봐도 그 훌륭한 사람됨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曾子有疾, 孟敬子問之. 曾子言曰: “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 君子所貴乎道者三: 動容貌, 斯遠暴慢矣; 正顔色, 斯近信矣; 出辭氣, 斯遠鄙倍矣. 籩豆之事, 則有司存.”
曾子가 병환이 있자, 孟敬子가 문병을 왔다. 曾子가 말씀하였다. “새가 장차 죽을 때에는 울음소리가 애처롭고, 사람이 장차 죽을 때에는 그 말이 착한 법이다. 군자가 귀중히 여기는 도가 세 가지 있으니, 용모를 움직일 때에는 사나움과 태만함을 멀리하며, 얼굴빛을 바룰 때에는 성실함에 가깝게 하며, 말과 소리를 낼 때에는 비루함과 도리에 위배되는 것을 멀리하여야 한다. 제기(邊豆)를 다루는 등의 소소한 일로 말하면 有司(담당자)가 있어 하는 것이다.”

이 장에서 나오는 상황은 증자가 병이 들어 위중했을 상황이다. 증자는 공자가 역책(易簀)했을 때 겨우 27세의 청년이었다. 그런 증자가 병이 들어 위중했을 때이니 이 장의 이야기는 공자의 사후 4,50년이나 뒤의 일이다. ‘역책(易簀)’이란, 대자리를 바꾼다는 뜻으로, 증자가 위독했을 때, 그가 깔고 있던 대자리가 너무 화려해서 자기 신분에 맞지 않는다고 바꾸게 한 뒤에 죽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그 뒤로는 ‘역책(易簀)’이라고 하면 사람의 임종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다.

맹경자(孟敬子)

맹경자(孟敬子)는 앞서 ‘위정(爲政)편’에서 공자에게 효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던 그 맹무백(孟武伯)의 아들이다. 이름은 첩(捷), 시호는 경(敬)이다. 魯나라의 세 大夫 중 仲孫氏였기에 사람들은 그를 ‘중손첩(仲孙捷)’이라고도 불렀다

 

이 장에서는 그 유명한 ‘군자가 귀하게 여겨 지켜야 할 세 가지’에 대한 말이 나온다. 이후의 배우는 자들은 ‘泰伯(태백)편’에 나오는 이 가르침을 ‘三貴(삼귀)’라고 부른다.


먼저 그 세 가지 가르침 전에 언급하는 ‘새가 장차 죽을 때에는 울음소리가 애처롭고, 사람이 장차 죽을 때에는 그 말이 착한 법이다’라는 내용도 호사가들에게는 많이 활용되는 문구이다. 그 말뜻 그대로 활용하는 무식한 자들이 많이 있어 원래 그런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주자의 주석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새는 죽음을 두려워하므로 울음소리가 애처롭고, 사람은 궁하면 근본으로 돌아가므로 말이 착한 것이다. 이는 증자의 겸사(謙辭)이니, 경자(敬子)로 하여금 그 말하는 것이 선한 것임을 알아서 기억하게 하려고 한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고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라 겸사로 사용된 말이라는 의미이다. 즉, 자신이 곧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 이 말에 무게를 두라고 한 말인데, 그 앞의 말을 여는 것으로 주의를 환기하고 뒤에 핵심이 되는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려고 의도한 말이라는 설명이다.

 

도는 있지 않은 데가 없으나, 군자가 귀중히 여기는 것은 이 세 가지 일에 있을 뿐이다. 이는 모두 수신하는 요점이요, 정치하는 근본이니,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操存하고 省察하여 경황 중이거나, 위급한 상황이라도 떠나서는 안된다. 籩豆의 일로 말하면, 器數의 지엽적인 것이니, 도의 전체는 진실로 포함되지 않음이 없으나, 그러나 그 직분은 유사의 책임이고, 군자가 귀중히 여기는 바가 아님을 말씀한 것이다.

 

군자가 귀중하게 해야 할 내용에 대해 세 개의 구를 딱딱 들어맞게 짜임새를 맞췄음을 알 수 있다. 容貌(용모)는 얼굴만 아니라 온 몸의 태도를 의미한다고 설명하였다. 표정뿐만 아니라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의미함에 다름 아니다. 이 장의 ‘三貴’는 배우고 익히는 이들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한 실제적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정자(明道)는 이 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해준다.

 

“용모를 움직인다 함은 온몸을 들어 말한 것이니, 周旋(행동)함에 예에 맞으면 사납고 거만함이 멀어질 것이다. 얼굴빛을 바루면 망령되지 않으니, 성실함에 가까워질 것이다. 말과 소리를 낼 때에 바로 중심에서 나오면 비루함이 멀어질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몸을 바르게 하는 것이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籩豆의 일은 담당자가 있다고 말씀한 것이다.”

 

마지막에 언급하는 제사 지내는 그릇에 비유하면서 그 제사를 관할하는 큰일이 아니라 그릇의 수를 확인하는 것을 담당하는 담당자가 따로 있으니 그것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하는 말은 현대인들에게 언뜻 와닿지 않을 수가 있다.


이 비유는 말 그대로 앞서 설명한 자신을 수양하고 수신해야 하는 일은 결코 형식적인 것이거나 겉치레에 해당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 것이다. 즉, 그런 자질구레한 지엽말단적인 것에 일일이 신경 쓰지 말고 본질에 좀 더 다가서서 신경 쓰라는 말이다.

제사라는 크고 복잡한 일을 담당하는데 여러 가지 일이 있는데, 그릇을 담당하는 자가 있어 그가 그것을 하는데도 일일이 그런 것에 신경 쓸 것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이고 큰 것에 신경 쓰라는 의미로 사용하여 자질구레한 것에 얽매이지 말고 큰 쓰임새를 익히기 위해 자신을 더 갈고닦아 도량을 넓히고 배워나가라는 충고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윤씨(尹氏)는 이 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심중에 함양하면 외모에 드러나는 것이다. 증자는 자신을 닦음으로써 정치하는 근본을 삼았으니, 籩豆 등의 기물과 사물의 소소한 것으로 말하면 이것을 맡은 담당자가 따로 있는 것이다.”

 

이 장의 내용을 보게 되면, 공자의 가르침도 마찬가지였지만, 증자는 유독 자신을 다스리는 것에 굉장히 강조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겸사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죽음을 앞두고 한 말치고는 거대한 담론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고 사소할 수 있는 자신을 다스리는 것에서 모든 일이 출발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앞서 이 세 가지를 공부하는 자들을 위한 구체적인 공부법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증자의 말을 자세히 곱씹어보면 이것은 단순한 방법론에 해당하기만 한 것이 아닌 궁극적인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사나움과 태만함을 보이지 않기 위해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연스럽게 멀어질 정도로 수양해야 하며, 얼굴빛을 바룰 때에도 그저 연기하듯 겉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신실함에 가깝게 내실을 다시고 그렇게 수양하게 되면 얼굴빛은 자연스럽게 바루어지고, 비루함과 도리에 위배되는 것을 멀리하는 수양과 단련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말과 소리가 그렇게 나온다는 앞에서 공부했던 뫼비우스의 띠를 떠올리게 된다.


그것을 목표로 해서 행동을 하고 공부를 하며 수양을 하는 것이 맞는데, 그 단계가 되면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그 자태가 드러나게 된다는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증자

코로나 정국이 2년이 넘게 지속되면서 훨씬 더 많아졌다고 하지만, 정작 코로나 정국이 되기 전부터 이미 다양한 형태의 유선 상담일을 하는 감정노동자들이라고 하는 이들은 많이 있었다. 그만큼 직접 대면이 아닌 유선으로 상담을 하게 되는 일이 많아진 시대이다.


모든 상담 전화가 그러하고 주문 전화가 그러하며 항의 전화 역시 그러하다. 그래서 유독 전화 상담원이라는 직업군이 센터라고 하는 이름으로 구축되기 마련이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역시 CS 업무를 하는 센터일 것이다. 가전제품에서부터 통신사, 인터넷 쇼핑, 쇼핑몰, 여행사에 이르기까지 CS 업무는 유선 업무로 거의 이루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의 아니게 그들과 전화를 하게 되면, 그들의 기계적인 응대에 다소 짜증스러울 때가 많이 있다. 그런데 그건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은 하루 종일 감정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전화응대를 해야 한다. 무언가를 전화로 판매하는 판촉사원도 있겠지만. CS 업무를 하는 이들의 경우, 대개 화가 나 있는 상태의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일이 많다.


고객들은 이미 무언가에 대한 불만이나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무언가에 대해 항의하고자 전화한 것이다. 그런 항의 위주의 고객들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춰 업무를 하라고 매뉴얼을 통해 업무자들은 교육을 받는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어디 먹고사는 일에 쉬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일반 전화에서도 그렇지만, 그렇게 전화업무가 자신의 직업인 사람, 특히 그 업무를 해온 지 오래된 사람일수록 경험상 길게 통화를 해보지 않아도 통화하는 상대의 성격이나 특성에 대해 파악하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길게 설명을 하는가 싶은가? 일반적으로는 오래 전화업무를 한 사람이 내공이 쌓여 전화 상대에 대해 더 빨리 파악하고 이해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상하게도 시간을 오래 들인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 분야의 탁월한 기술을 갖게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굳이 전화업무를 예로 든 것은 그것이 사람을 대하는 일이고 사람을 파악해야만 원활하게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인차가 있을지언정 전화업무를 오래 했다고 해서 전화상담원이 훨씬 더 능수능란하게 업무를 처리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오래 하지는 않았어도 센스 있게 일처리를 하는 감각을 가진 상담원과 통화하게 될 경우, 그 차이는 훨씬 더 크게 느껴진다.


예컨대, 모든 전화상담업무에는 매뉴얼이라는 것이 있다. 이럴 때는 이렇게 해라. 저럴 때는 저렇게 해라, 라는 케이스에 맞춘 방식에서부터 아예 기본적인 응대 대사를 외워서 책 읽듯 하는 상담원도 있다. 당연히 고객의 입장에서는 귀에 거슬리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반대로 말로 먹고 산다고 하는 변호사나 교수, 정신과 의사, 아나운서 등의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이 CS 업무를 맡은 사람들과 여러 가지 이유로 통화를 하게 되면 정말 프로다운 사람의 경우에는 상대방의 지적 수준에서부터 그 사람의 감정상태까지 충분히 짧은 시간 내에 읽어내곤 한다. 대개 짜증이 나있는 상태는 전화 상담원인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이 반복적인 일상이고 그저 일이고 짜증 나는 일의 끝없는 반복이라고 느끼곤 하기 때문이다.


굳이 전화상담을 예로 든 것은, 직업적으로 전화상담 업무를 하는 감정노동자가 아니고서도 우리는 상당히 많은 사람과의 소통을 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이 장의 가르침처럼 어떻게 말하는가에 대한 것이 그 사람의 배움 정도는 물론이고 교양과 인격을 드러낸다는 공식에 여지없이 드러난다.

중요한 것은 왜 자신에 대한 수양이 언행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가 하는 본질적인 원인을 알아야 궁극적으로 어떤 것을 지향해야 할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점잖고 예의 바르고 상냥하게 말하고 그렇게 비춰지고 싶어 하지, 누가 짜증내고 무식하며 격 떨어지게 말하고 행동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사람들은 속에 감춘 가면 속의 모습을 정작 제대로 감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은 많이 배우지 못하고 스스로를 많이 가다듬지 못한 사람일수록 더 빨리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이 장의 가르침이 훨씬 더 두꺼운 가면을 준비해서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원숙한 연기를 연습하라는 의미는 당연히 아니라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본성을 어떻게 원숙한 형태로 가다듬는가 하는 부분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여러 장을 통해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자는 말‘만’ 잘하는 자를 지극히 경계하고 싫어하였다. 이는 말을 잘하는 이를 싫어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공자 자신이 달변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자신에 대한 생각을 조리 있게 정리하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말하기의 능력을 폄하했던 것이 아니라 실천하지 못하면서 말만 앞서는 허풍쟁이들에 대한 경계를 한 것뿐이다.


오랜 시간 자신을 들여다보고 공부하고, 부족한 점을 채우고 끊임없이 수양하는 자가 눌변이기가 어렵고, 바닥을 금세 드러내는 가벼운 언행을 하기가 어려운 것은 지극히 당연한 진리이고 논리적 수순이다.

달변가의 가장 큰 미덕은 먼저 듣는 것이다. 상대가 원하는 것,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는 것, 그것이 선행되지 않으면서 달변가가 될 수는 없다. 모든 것은 상대를 제대로 읽는 것에서 출발한다. 읽기 위해서는 내 목소리만 내면서 떠드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에서 토론을 할 때도 그렇고 자신의 주장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할 때도 그렇고 자신과 다른 입장의 사람을 계속해서 설득하며 그 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온 사람은 문제 해결 능력이 발전되고 진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대방의 이야기와 상관없이 내가 먼저 어떤 그림을 그려놓고 그 사람에 대해서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협박과 윽박을 지르거나 내가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으면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던 직업을 가진 검찰 출신 법비들은 문제 해결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현직에 있으면서 권력을 등에 업고 칼자루를 쥐고 있을 때 자신이 할 수 있었던 것과 그 모든 호가호위(狐假虎威)의 배경이 없어졌을 때 자신의 능력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의 차이를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


전화상담을 하는 감정노동자조차도 상대방이 무슨 불만이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빨리 알아내고 그 절충점을 찾아내서 해결해주는 것이 중요한 자질이자 능력으로 손꼽힌다. 국민을 대신해서 나라를 이끄는 일을 하는 정치가는 전화 상담을 하는 상담원보다는 나아야 할 것이 아닌가?

당신이 보기에 그가 고개를 패딱패딱하는 것이 정말로 말귀를 알아들어 그러는 것처럼 보이나? 아니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으로 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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