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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n 25. 2021

자전거 도둑

원리와 원칙을 지키는 대단한 '여자' 관리소장과 여직원

강남 한복판 아파트에서 자전거가 사라졌다.

딸아이의 말로는 체인을 제대로 채워두었는데 없어졌다고 했다.

물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없어진 줄 알았던 자전거가 그 근처의 상가 앞에서 발견되었을 때는

체인을 제대로 채워서 사람들에게(특히 아이들에게) 견물생심 하는

테스트를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그런데 이번엔 아예 안 보인다고 했다.

약간 부아가 났다.

도대체 자기 물건 간수를 어떻게 하길래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분노의 화살은 자전거 도둑에게 쏠렸다.


경찰서에 가서 도난 신고부터해.
도처가 CCTV인데 바로 잡아줄 거야.


야밤에 당직 근무를 서던 강력계 형사가 곤란해하며 자전거의 사진이라도 있어야 찾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아니냐고 비슷한 자전거라도 사진을 찍어오라고.

도난신고를 간단하게 하고 나서 나오면서

자전거 사진을 또 찍겠다고 아파트를 두리번거리며 옆 아파트까지 탐문 아닌 탐문을 다녔단다.

갑자기 전화가 왔다.


자전거 찾았어요. 다른 아파트 옆에 있어요.


당연히 자기 자전거인데도 혹시나 싶어 묶어두었던 체인의 번호 네 자리를 맞춰보니 딱 열렸단다.

한 걸음에 달려가 경찰서로 다시 갔다.

경찰에게 사진을 보냈고, 세워둔 자전거를 정면으로 비추는 CCTV가 보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런 일이 생각보다 잦다고, 아이들이 범인이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절도죄로 입건해서 처벌을 한다고 했다.

그것이 아이라 할지라도.

설사 선처를 바라거나 없던 일로 하자고 해도 반의사불벌죄가 아니기 때문에

칼 같이 절도죄로 처벌한다고 강조했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1948년작 <자전거 도둑>에 나오는 위 사진의 장면이 생각났다.

만에 하나 어떤 아이가 그냥 자전거가 체인이 채워져 있지 않아서 타고 온 것인데,

절도죄로 입건이 된다고 하면 부모 입장이나 아이 입장이 당혹스러울 것 같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그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찾았다.

저간의 상황을 설명하고 나서

그 자전거를 훔쳤던(?) 도둑을 확인하고

따끔하게 경고를 하고 사과를 받는 것으로

사건 신고를 취하하는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런데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허름한 관리사무소에 오래된 아줌마 파마를 한

꾸역꾸역 뚱뚱한 관리소장 같은 여자가 앉아 있고,

나름 자기는 커리어 우먼이라고 우기고 싶어 하는 표정의 여자 직원, 그렇게 둘이 앉아 있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중간에 여자 직원이 말을 막았다.

"CCTV는 주민이 아니면 요청할 수 없습니다."

"아니 내가 보겠다는 게 아니라니까요."

"어찌 되었든 주민이 아니면 요청자체가 안된다고요."


적당히 에어컨을 틀어놓고 컴퓨터로 드라마를 보던

그들의 평화로운 오후를 내가 깨뜨린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너무 거드름 피우는 모습이 거슬렸다.

직원이 응대하라며 여자 관리소장은 몸을 한껏 의자에 널브러뜨려 드러눕듯 이쪽은 응시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자전거가 이 단지에 세워져 있었고, 그럼 이 단지 주민일 텐데 그게 어른인지 아이인지는 몰라도 경찰이 확인하는 순간, 입건이 된다지 않습니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부러 온 건데, 내가 보겠다는 것도 아니고 당신들이 보고 확인해서 그 사실을 주민에게 알려주라는 거 아닙니까?"


"여기서 이렇게 언성을 높이는 거 아닙니다."


싸구려 파마 소장이 입을 열었다.


"아니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까 이러는 거 아닙니까?"

"말귀는 그쪽이 못 알아들으시는 거 같은데요. 우리도 다 원칙이 있고 그거에

따라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 단지 내에서 도난사건이 발생했고,

그건 관리소장의 책임 관할 문제이기도 하죠."

"뭐, 도의적인 책임은 느끼면 되죠."

말마다 따박따박 자신들은 원칙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볼 수 없다는 건방진 태도를 견지했다.


"나중에 아이든 어른이든 여기 주민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속상하다고 따질 때 내가

관리사무소에 와서 이런 요청을 했더니, 여기 여자들이 원칙 때문에 경찰에 그대로 신고를

존속하라고 했다고 말해도 나중에 괜찮다는 거죠?"

"여기 여자들이 아니라 직원입니다."


여직원 아줌마가 발끈 대들었다.


"맘대로 하시고 그렇게 하세요. 경찰 오면 제공할 테니까."

"아니 집에 아이들 없어요? 자기 자식이 그런 일을 당해도 이렇게 굴 겁니까? 공무원 코스프레라도 해요?"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나요?"

도저히 말이 더 통하지 않은 것 같아서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들도 나름 그게 직장이라고 그리고 직책이라고 우기고 싶었을 거다.

물론 찜통 같아야 하는 경비실에 앉아 에어컨에 선풍기를 켜고 TV를 보는 경비 아저씨들도

버젓이 직장인이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원칙이 그러니까 안된다고 뻗대는 이들이

자신들이 반대 입장에 처했을 때

얼마나 구차하고 비굴하며 역겨운 언행을 하는지

너무도 숱하게 마주쳐왔다.

그것이 권력이라고 자신의 위치에서

목을 빳빳이 세우는 이들이

더더욱 그랬다.


서울대학교에서 가장 권세있는 이가,

서울대 수위라고 하는 농담이 학교 다닐 때 유행했다.

나는 그것이 시덥잖은 농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느날 아무 생각없이 버스에서 내려 정문에서 학교를 막 올라가는데

쭈뼛거리며 사투리를 쓰던 아이들이 정문을 들어서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나왔는지 수위가 그들을 막으며

"여기 학생 아니지? 그럼 못 들어가!"라고 길을 막았다.

",우리 여기 학생 맞는데요."라고 하니

그가 갑자기 다짜고짜 그들에게,

"그럼 법대 건물이 몇 동인데?"라고 물었다.

참 신기하게도 그는 내가 그들의 대화를 스쳐 지나며 들어갈 때 나를 막지 않았다.


그들은 귀신같이 알았다.

자신들의 권위를 내세워 줄,

쭈뼛거리며 그곳에 속해있지 못한 이들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위치에 있는가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정말로 자신의 지위가 확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

그들을 억누르거나 그들을 비아냥거리면서

자신의 권위를 확인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모든 일에는 원칙과 규정이 있다.

그들이 키득거리며 이것저것 CCTV를 보면서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보는 것도

자신들만의 특권이라고 각할 수 있다.


하지만 원칙과 규정을 언제나 준수해야 한다고 우기는 건, 늘 정도를 지나쳐선 안 된다.

예외를 언제 둘 지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무단횡단은 범법이지만,

아이의 유모차가 굴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길에 뛰어들었다고 단속하지 않는다.


국민의 피 같은 돈 수백억을 해먹은 법비들이

적당히 1심의 유죄 쇼를 지나

2심에서 집행유예나 무죄 쇼로

법망을 가볍게 벗어나곤 한다.

하지만 법과 원칙이 어떻고 하면서

배가 고파 가게에 들어가 라면 5개를 훔친 가난한 이에게 실형을 판결하는

책으로만 법을 배운 예비 법비, 판사도 있다.


원칙과 규정을 떠들면서

내 등 뒤에서 신나게 씹어댔을

그 두 여자의 면상을 떠올리면

그녀들이, 혹은 그녀들의 부모나 자녀들이

원칙과 규정에 의해 가차 없이

처벌받고 도움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의

그녀들 얼굴이 떠오른다.


너희가 선량하고 공정한 시민이라고

착각하고 사는 거 안다.

너희가 버젓한 직장인이라고

오늘 이상한 사람이 와서 CCTV를 보자고 했다고

비아냥거리며

나는 오늘도 원칙대로 일처리를 잘했다고

착각하며 떠들 것을 안다.


너희들이 겪었을,

혹은 겪게 될, 원칙과 규정에 의한

가차 없는 처벌에

너희들이 볼멘소리를 하며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겠냐'라고

굴 것을 아주 잘 안다.


그러지 말자.

너희의 일이 아파트를 관리하는 업무라면

그 아파트 주민들이 너희들을 무시하고

괄시해서 엿 먹으라고 하고 싶더라도

그렇더도 그러지 말자.


원칙과 규정,

법과 규율보다

더 앞선,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쓰레기 정치인들이 만드는 게 아니다.

바로 당신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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