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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r 15. 2022

고인(古人)을 칭송함은 제대로 본받으라는 회초리이다.

내일을 어찌 살지 궁리하기 전에 오늘을 제대로 살아내라.

子曰: “禹, 吾無間然矣. 菲飮食而致孝乎鬼神, 惡衣服而致美乎黻冕, 卑宮室而盡力乎溝洫. 禹, 吾無間然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禹임금은 내 비난할 데가 없으시다. 평소의 음식은 간략하게 하시면서도 (제사에는) 귀신에게 효도를 다하시고, 의복은 검소하게 하시면서도 黻, 冕의 제복에는 아름다움을 다하시고, 宮室은 낮게 하시면서도 (백성을 위한) 치수 사업에는 힘을 다하셨으니, 禹임금은 내 비난할 데가 없으시다.”

태백 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장이다. 앞서 계속해서 요임금에서 시작하여 순임금과 우임금에 이어 무왕까지 훑고 나서 다시 우임금에 대한 상세한 언급이 나온다. 왜 요순의 시대는 역사의 기록이 있다고는 하지만 요순은 전설에 가까운 임금이라 현실성이 와닿지는 않지만, 우임금은 다르다. 우임금은 하(夏) 나라를 연 인물로 이 시기부터는 실증되는 자료들이 발견된 현실성이 다분한 시대이고 그 시대를 연 최초의 임금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한 가지는, 앞에서도 강조하였지만, 순임금과 우임금이 아버지가 천자라서 자연스럽게 세습한 왕족 출신이 아닌 이전 왕에게 능력을 인정받은 신하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수년간 제대로 발휘한 인물이다. 특히나 우임금은 자신의 아버지 곤이 홍수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처형을 당하고 나서 그 일을 다시 맡게 된 입장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아버지가 이미 그 직무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해 죽음으로 대가를 치렀음에도 아들이 그 일을 다시 맡아 완수하지 못하게 되면 아버지와 같이 책임을 져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우임금

사마천의 <사기(史記)>의 ‘하(夏) 본기(本紀)’에서 우임금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정작 우임금이 임금이 되어 무언가를 한 것보다 순임금의 신하로서 고요(皐陶)와 백이(伯夷) 등과 함께 신하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묘사하는 것에 치중한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순임금에게 왕위를 선양받는 과정과 이후 왕위를 계승받고 나서 죽기 전까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한 단락이 채 되지 않을 정도이다. 그 내용을 그대로 번역하여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제순(帝舜;순임금)은 하늘에 우(禹)를 천거하여 후계자로 삼았다. 17년 뒤 제순이 세상을 떠났다. 3년 상을 마치고 우는 순의 아들 상균에게 양보하고 양성(陽城)으로 피했다. 천하의 제후들이 모두 상균을 떠나 우에게 인사를 드렸다. 우는 그제야 천자 자리에 올라 남면하고 천하에 임했다. 나라 이름을 하후(夏后)라 하고, 성을 사씨(姒氏)라 했다.

제우가 자리에 올라 고요를 천거하고 정권을 주려 했으나 고요가 죽었다. 고요의 후손을 영(英)과 육(六) 또는 허(許)에 봉했다. 그 후 익을 천거 해 정사를 맡겼다.

10년 뒤 제우는 동쪽을 순수하다가 회계(會稽)에서 세상을 떠났다. 천하는 익에게 주어졌다. 3년 상이 끝나자 익은 제우의 아들 계(啓)에게 양보하고 기산(箕山) 남쪽으로 도망쳐 숨었다. 우의 아들 계는 현명하여 천하의 마음이 그에게로 돌아갔다.

우가 세상을 떠나면서 익에게 주었지만 익은 우를 보좌한 날이 얼마 되지 않아 천하가 미흡하게 여겼다. 그래서 제후들이 모두 익을 떠나 계에게 인사를 드리면서 “우리의 군주 제우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했다. 그리하여 계자 마침내 천자 자리에 오르게 되니 이가 하후 제계이다.


굳이 우임금이 선양하려고 했던 익이 아닌 아들 계가 왕위를 세습하게 된 경위까지 인용한 것은 그 단계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신하에게 선양하던 맥이 끊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임금의 욕심이나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사마천이 기술한 바와 같이 본래 익에게 양위하였지만 익이 이전의 순임금이나 우임금이 했던 것처럼 천자 자리를 오르지 않겠다고 자리를 피하였고, 그 과정에서 순임금이나 우임금이 본래 천자의 아들에게 양보하였을 때 천하가 그 아들들이 아닌 능력 있는 순임금과 우임금을 향하였는데, 익의 경우에는 천자의 자리를 본래 우임금의 아들 계에게 양보하겠다고 하였을 때 천하가 계를 따랐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기존의 능력위주의 선양이 끊겼다는 것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다. 능력도 갖추고 백성들에게 옹위된 천자의 아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사실은 이상적인 것은 천자의 아들이 능력도 갖추고 천하의 백성들이 따르는 인물인 것이다. 그 이상향을 우임금이 자신의 아들 대에서 이루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서술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깜냥도 되지 않는 자신의 아들에게 당연히 세습하던 공자 당시의 시대에 권계를 주는 내용임에는 분명하다.

우임금에 대한 설명을 이 정도로 이해하였다면 다시 본장에서 그러한 역사적인 기록과 언급을 모두 살펴본 공자가 <논어>에서 단편적으로 언급되었던 우임금에 대해서 정리한 내용을 왜 제자들이 편집하면서 태백 편의 마무리에 넣었는지 그 편집 의도를 잘 유념하면서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주자는 이 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間은 틈(흠)이니, 그 틈을 지적하여 비난하는 것이다. 菲는 간략한 것이다. 鬼神에게 효도를 다한다 함은 선조에게 제사를 지낼 때에 풍부하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衣服은 일상 옷이다. 黻은 무릎을 가리는 것인데, 가죽으로 만들며, 冕은 관이니, 이 두 가지는 모두 제사에 입는 옷이다. 溝洫은 밭 사이 물길이니, 경계를 바르게 하고 가뭄과 장마를 대비한 것이다. 혹 풍부하게 하기도 하고, 혹 검소하게 하기도 하여, 각각 그 마땅함에 맞게 하였으니, 이 때문에 비난할만한 틈(흠)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차 말씀하시어 깊이 찬미한 것이다.


굉장히 작은 부분에까지 섬세하게 묘사한 것을 살펴봄에 있어 주자 역시 그 주석을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높은 지위에 오른 입장이면서도 자신을 위한 사치나 치장은 결코 하지 않으면서도 조상을 위한 제사의 격식을 위한 정성이나 의복 등에는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무엇보다 백성을 위한 사업에는 온 정신을 다 쏟느라 자신을 돌볼 틈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굳이 행간이라고까지 표현하지 않더라도 이렇게까지 상세하게 실제로 보지도 못한 우임금의 평상시 행실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한 것은, 실제로 공자의 시대 그것을 본받아 행하는 위정자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즉, 이 장의 가르침은 우임금을 칭송하기 위한 노래가 아니라 그렇게 중국을 열고 왕조를 열었던 고인(古人)들의 가르침을 후세에 와서 후세의 위정자라고 하는 이들이 모두 망쳐놓고 그 의미를 퇴색시켰으며 그 반의 반도 제대로 따르지 못했다고 하는 한탄이 담긴 것이다.


고문(古文)에서 고인(古人)을 칭송하는 경우는 대개 그 모습을 제대로 본받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과 개탄을 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전통은 바로 이 <논어>의 공자 필법에서 유래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굳이 문단의 시작과 끝을 ‘내 비난한 데가 없으시다’라고 수미쌍관(首尾雙關)을 이룬 것은 당연히 지금의 위정자들에게 얼마나 더 강하고 더 큰 비난을 던져야 한다는 일갈(一喝)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래서 공자의 의도를 이해한  씨(楊氏)가 이 장의 가르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해준다.


“자기를 받드는 데는 간소하게 하면서 부지런히 한 것은 백성을 위한 일이었고, 꾸미기를 지극히 한 것은 종묘와 조정의 예였으니, 이른바 천하를 소유하고도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찌 흠잡아 비난할 만한 것이 있겠는가?”


편집상 태백(泰伯) 편의 마지막에 이 장을 배치한 의도가, 앞서 요임금과 순임금, 그리고 우임금을 언급했던 그 부분의 총정리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 앞서 18장에서 열었던 내용을 다시 환기시켜주고 있다.


요임금에서 시작된, 자신의 아들이 아닌 제대로 된 능력을 갖춘 신하를 낙점하여 천하를 양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이 천자에 오르는 과정에 있어서도 하나같이 요임금에서 순임금에게 이어지는 모습이 우임금까지 이어지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반복은 강조이고, 강조는 현재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이다. 공자는 현실의 비뚤어짐, 그 그릇됨을 바로잡을 열쇠로 역사를, 고인(古人)들의 가르침을 강조했던 천하를 일깨워려는 참스승이었다. 그것이 이 태백편을 마무리 지으면서 가장 현대와 가까운 우임금의 일상과 기본으로 돌아온다.


천하를 좌우할 수 있는 자리에 있더라도 자신을 치장하고 뽐내지 않으며 유학의 기본에서 말하는 조상을 제대로 섬기는 것에 지극정성을 다하면서 위정자로서의 기본, 즉 ‘백성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로 돌아온 것이다. 그것 이외의 것은 모두 군더더기이며 쓸데없는 것이고 올바른 배움과 수양을 방해하는 것일 뿐이다.


비싸고 좋은 물건을 진상받고, 자신의 땅을 더 넓히려고 전쟁을 벌이고, 여자를 탐하여 여색에 빠져 백성들을 돌보는 것에 등한시하는 것 등등이 모두 쓸데없고 부질없으며 제대로 정치를 하는 자가 해서는 안될 것들이라고 역설적으로 강조하여 죽비를 때리는 것이다. 물론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의 자만이 알아듣도록 된 구조이니 그것에 대해서 재삼 말할 필요는 없겠다.



국민들을 절반으로 갈랐던 대선이 끝나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황망한 결과에 너무 화가 나고 무기력해졌으며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을 뉴스를 통해 보는 것 자체가 곤욕이라며 시름을 토로하는 이들이 국민의 절반이나 된다. 엄밀히 말하자면 투표를 하지 않은 30%에 달하는 무책임한 자들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이전에도 언급하였지만 무효표로 인정되어 사표(死票)가 된 표가 이번 대선의 승부를 가른 표차보다 더 많았다는 황당함보다 30%나 되는 투표를 하지 않은 이들 중에서 정치가 꼴 보기도 싫어서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이들이 훨씬 많으니 말이다. 이제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고3조차도 교복을 입고 투표를 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부끄러움의 비수로 양심에 꽂히길 바란다.

그런데,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는 5년 전에 촛불을 들어 청와대에서 ‘그녀들’을 끌어내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줄 것이라며 지금의 대통령을 청와대에 입성시키며 환호했다. 그런데 5년간 당신의 삶이 많이 달라졌던가? 지금 그는 정말로 5년간 훌륭하게 대통령 역할을 했다며 국민들의 찬사를 들을만한 일을 했을까?


나는 그가 그런 인물인지 잘 알지 못하겠다. 이번 선거가 국민들을 분노와 무기력에 빠지게 만든 가장 큰 원흉(?)이 정부와 여당에 대한 반발 심리였다는 것은 여론 전문가가 아니어도 모두가 알고 있는 공공연한 패인이니 말이다.


그가 일부러 나라를 말아먹거나 무당을 찾아가 조언을 듣고 오방색으로 대통령 취임식을 꾸민 것도 아니고, 정치와 아무 상관이 없는 배후 인물을 두고 ‘그녀’가 고쳐준 연설문을 읽으며 시키는 대로 나라를 말아먹을 정도의 짓을 하지 않았다고 변명한다면 그건 정말로 욕을 바가지로 먹어도 시원찮을 일이다.


그것은 40점짜리 시험지를 성적이랍시고 받아온 녀석이 “그래도 빵점은 안 맞았잖아요!”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격이다. 물론, 어차피 그 녀석의 미래는 이미 막 긴 터널에 들어선 입장이라 뭐라 가치도 없긴 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5년 전에 그렇게 환호하고 원하는 대로 선거의 결과를 만들었고, 그에 이어 국회까지도 파란색으로 가득 채워줬지만 그들은 그 기회를, 그 국민의 뜻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그런 이유로 작금의 철퇴를 맞았다. 그렇지 않아도 아픈데 왜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이냐고 투정 부리고 싶은가? 아니면 왜 이것저것 탓을 하려고 드는 것이냐고 시비를 걸고 싶은가? 아니다. 지금이 그 어느 시기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당신들의 뺨을 후려쳐서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패배나 실패는 언제나 있을 수 있다. 늘 이기고 늘 성공하는 인생은 없다. 질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늘 다음이다. 대선 한 번 끝났다고 세상이 끝나지 않는다. 그를 뽑게 되면 그를 뽑은 손을 잘라버리고 싶다는 말을 목에 핏대 높여 부르짖던 이가 버젓이 인수위원장에 올라 희희낙락하는 시대 아니던가?


나라를 지켜야 할 국정원까지 동원하여 여론전을 감행하여 기어코 청와대에 간 군바리의 딸이 결국 수년 전 경선에서부터 지적받던 그 공공연한 비밀로 청와대에서 쫓겨 나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에게 다음 바통을 넘겨줘야 자신의 치부 과정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지금은 감방생활을 하고 있는 ‘그’역시 그녀와 경선 과정에서 치고받고 하던 사안이 모두 진실로 밝혀져 결국 지금 따뜻한 집이 아닌 감방에 들어가 앉아 있는 것이다.

박근혜, 최순실, 이명박

우리는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수많은 비리와 문제점이 수면 위에 오간 것들을 보아왔다. 당신은 이제 대선이 끝났다고, 혹은, 승자는 모든 것을 덮을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것은 올바른 사회가 아니다. 지금 당선인을 뽑은 이들이 ‘그’를 지지하고 그를 밀고 싶어서 찍은 것이 아님은 찍은 이들이나 그들의 곁에 있는 당신들이 더 잘 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혹은 그의 주변에 대한 지저분 너저분한 문제들에 대해 그가 어퍼컷을 연거푸 걷어올리며 외쳤던 캐치 프레이즈처럼 ‘모든 것이 법대로 공정하게’ 처리되는지 지켜보라.


검찰에서 법비노릇을 하고 있을 때 국민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 때와 나라를 대표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는 확연히 다르다. 그의 말처럼 이것은 국민학교 반장선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빨간당의 세상이 온 것처럼 그들은 착각하지만, 그것은 정말 온전히 평생을 그따위로만 살아온 그들만의 착각이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국민은 언제고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판단되었을 때, 그 잘못을 바로잡아 달라고 강력하게 목소리를 높여 판을 새로 짤 수 있다. 이미 한 번 했던 국민이 두 번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지금부터 더 눈을 부릅뜨고 그들의 약속대로 나라를 운영할 것인지를 감시할 의무가 국민들에게 있다. 어차피 자기 배지 빼앗길까 봐 허수아비 노릇을 하는 파란당의 국회의원 나부랭이들을 믿을 국민들은 없지 않은가?



이것으로 <논어> 제8편, ‘태백(泰伯) 편’ 스물한 장이 모두 끝났습니다.


작년 6월에 시작하여 어느덧 10개월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재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제는 형식이 완전히 자리를 잡아 평균 A4 4장 분량의 포맷으로 연재되고 있어 다른 매거진과는 별도로 <논어>만 한 달에 한 권씩 두꺼운 단행본 기준으로 벌써 10권 분량의 책이 묶일 정도가 되었습니다.


뒤늦게 시작하여 브런치 북으로 처음부터 다시 매일 새벽 읽어오시는 분들부터 원래의 진도에 맞춰 아침을 <논어> 읽기로 마음 다지기를 하는 분들에 이르기까지 학도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내일부터는 9편 ‘자한(子罕) 편’이 시작됩니다. 언제까지 이 연재를 계속해나갈지 <논어>는 마칠 수 있을지 <논어>를 마치고 <맹자>로 넘어갈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하루하루에 충실할 뿐입니다. 학기로 움직이는 것이 평생 익숙해진 터라 이번 학기까지는 큰 변화 없이 공부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내일도 먼저 와서 아침을 열고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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