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Rum)은 일단 술이 가진 자체의 맛이 쓰고 강렬하기에 이런 계열의 증류주에 익숙하지 못한 초심자들에게는 절대 권하기 어려운 주종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에는 늘 럼(Rum)이 항상 눈에 띄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유는? 럼(Rum)은 스트레이트로 마시지는 않지만 럼(Rum)을 베이스로 한 칵테일은 초심자와 여성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가지고 있다.
럼이 들어간 칵테일은 보통 ‘럼 베이스 칵테일’이라고 부르는데, 바에 갈 경우, 럼(Rum)의 세계를 가볍게라도 맛보기 위해서는 미리 공부할 필요가 있을 듯하여 몇 가지를 추천한다.
• 그로그(Grog)
럼 베이스로, 한국의 폭탄주와 비슷한 만들기 매우 쉬운 간단한 레시피로 구성된 칵테일이다. 럼과 물, 레몬즙, 라임, 설탕을 섞어 만든 술로 취향에 따라 각설탕이나 시나몬 스틱 등으로 장식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럼을 물에 타서 설탕을 넣은 것이므로 단맛과 럼의 쓴맛이 나는 칵테일이다. 보통 이를 따라 마시는 잔을 ‘탱커드’라고 하는데 오늘날에는 유리로 된 걸 구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쇠로 된 술잔이었다.
그로그(Grog)의 유래가 있나요?
핫 그로그
1650년대 영국 해군에서 생겨난 칵테일로, 원래는 배에 저장된 물이 썩지 않게 하려고 독한 술을 타서 가지고 다녔던 데서 유래되었다. 유럽에서 물과 술을 섞어 먹는 건 기원전 고대 로마 시절부터 있었던 전통이다. 이때 로마인들은 싸구려 포도주로 만든 식초(포스카)를 타서 마셨다.
보존성을 따진 것은 아니었고, 석회가 가득한 서유럽 지방의 물을 그냥 마시면 배탈이 났기 때문에 일종의 정수제처럼 사용했다. 군법을 어긴 군단병에게 내린 형벌 중 하나는 포스카 없이 맹물을 마시도록 하는 것이었다.
물에 술을 탈 것을 명령한 에드워드 버논 제독이 입고 다니던 망토의 재질인 그로그럼(grogram)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영국 해군에서는 매일 수병에게 그로그를 보급하는 관습이 있었으며, 1970년대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기본 베이스는 럼인데, 엄밀히 말하자면 술에 물을 탄 게 아니라 물에 술을 탔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다. 왜냐하면 물과 럼의 비율이 보통 4:1이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증류주가 그렇듯 럼의 도수도 40도 전후이며, 따라서 4:1로 희석한다고 해도 와인이나 막걸리 정도의 수준인 8도 정도가 유지된다. 하지만 럼은 독한 만큼 오래갈 수 있었고, 설탕 제조의 부산물로 만들어지는 만큼 값도 싸서 쉽게 공급할 수 있었다.
규정상 럼에 물만 탄 게 아니고, 설탕과 라임 주스(또는 때에 맞춰서 레몬주스 등)를 좀 섞어서 줬다. 앞서도 설명한 바 있다시피, 라임/레몬주스는 원래부터 괴혈병 예방을 위해 영국 해군에 보급되고 있던 것이기도 하며, 물에 럼만 타면 쓰고 맛없는 칵테일이 되기 때문에 가미하는 역할을 한 거다. 물론 들어가는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비타민C 공급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아니고, 그것마저 없어서 그냥 물만 타는 경우도 흔했다고 한다.
복싱에서 흔히 정신을 못 차리는 상태를 ‘그로기 상태’라고 하는 표현 역시, 그로그를 마신 영국 해군들이 취해서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을 보고 만든 단어라고 한다.
그로그(Grog) 만드는 법을 알려주세요.
그로그 칵테일에 필요한 재료는 다음과 같다.
• 골드 or 다크 럼 - 1 1/2oz (45ml)
• 설탕 - 1~2 tsp
• 물
잔에 럼과 설탕을 넣은 뒤 나머지를 물로 채우면 완성. 취향에 따라 물의 양을 조절하면 된다. 핫 그로그의 경우 기호에 따라 아니스나 시나몬 스틱을 넣기도 한다
• 다이키리(Daiquiri)
럼 베이스 칵테일로, 현재 IBA 공식 칵테일에 등록되어 있는 레시피 중 하나이다. 2004년 버전의 IBA 레시피에는 식전주(食前酒)로 구분되어 있었다.
이름의 유래는 아래에 서술되어 있는 다이키리의 창시자인 제닝스 콕스(Jennings Cox)가 일하던 산티아고 데 쿠바의 광산 마을인 다이키리(Daiquirí)에서 유래된 것이다.
다이키리(Daiquiri)의 유래
제닝스 콕스(Jennings Cox)
기원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화가 거론된다. 하나는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시기에 엔지니어로 일하던 제닝스 콕스(Jennings Cox)가 산티아고 데 쿠바에 위치한 광산 마을 다이키리(Daiquirí)에서 철광산 노동자들에게 배급되는 바카디 럼에 다양한 재료를 혼합해서 음료를 만들어주곤 했는데, 그게 바로 다이키리였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제닝스 콕스의 손녀딸이 주장한 가설로, 1896년 쿠바에서 미국에서 온 손님을 대접하던 중 진이 다 떨어지자 대신 럼을 라임, 설탕과 섞어 제공하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럼 자체가 싸구려 술의 대명사처럼 쓰이던 때이고, 품질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라임과 설탕으로 이를 감추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두 가지 설 모두 창시자가 제닝스 콕스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한동안 다이키리는 유명세를 펼치게 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쿠바 내에서 전염병이 돌게 된다. 때문에 미국의 의료 장교 루시우스 존슨(Lucius Johnson)이 다이키리 마을에 조사를 목적으로 방문하게 되고, 조사 중 제닝스 콕스에게 다이키리를 대접받게 되는데, 이게 인상에 남았던 루시우스 존슨은 이후 본토로 돌아와 다이키리의 레시피를 자신의 바인 아미 & 네비 클럽(Army & Navy Club)에 가져와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다이키리가 본격적으로 전 세계에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후 1910년, 다이키리가 본격적으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펼치기 시작했고, 당시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바나 호텔에서 판매될 정도의 인기를 자랑하게 된다. 중간에 시행된 금주법으로 잠깐 주춤하긴 했지만, 금주법이 끝난 이후 다시 이전만큼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덕분에 1930년 여러 칵테일 책자에 다이키리가 실리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사보이 칵테일 북(Savoy Cocktail Book)>, <쿠바식 요리법(Cuban Cookery)>, <신사의 동반자(Gentleman’s Companion)> 등이 있다. 그리고 이 저서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며 마침내 IBA 공식 칵테일에 등록된 것이다.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칵테일이라구요?!
모히토와 함께 세계적인 작가이자 술꾼인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사랑한 2가지의 칵테일 중 하나로 꼽힌다. ‘나의 모히토는 라 보데기타에서, 나의 다이키리는 엘 플로리디타에서.(My mojito in La Bodeguita, my daiquiri in El Floridita.)’라는 문구가 유명하기는 했지만, 훗날 위 문구는 위조된 문구로, 헤밍웨이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드러났다.
당뇨병이 있었던 헤밍웨이는 설탕을 줄이거나 아예 넣지 않고, 럼은 2배로 넣은 드라이한 스타일의 다이키리를 선호했고, 나중에 여기에 자몽주스를 추가하여 헤밍웨이 스페셜이라는 칵테일이 되었다. 하지만 술 역시 당뇨병 환자에게 금기시되는 것 중 하나이다.
다이키리(Daiquiri)는 어떻게 만드나요?
1896년 제닝스 콕스(Jennings Cox)가 직접 기록한 다이키리 레시피
IBA 레시피를 기준으로 다이키리에 필요한 재료는 다음과 같다.
• 화이트 쿠바 럼 - 60 ml (2 oz)
• 라임 주스 - 20 ml (2/3 oz)
• 설탕 - 2 tsp
위의 재료들을 모두 얼음과 함께 8~10초가량 쉐이킹 한 다음, 얼음을 걸러내고 차갑게 식힌 마티니 글라스에 따라준다. 이후 라임으로 가니쉬 해주면 간단하게 완성.
다이키리의 변신은 무죄요!
다이키리에도 정말 수많은 바리에이션이 존재하는데, 주로 과일과 얼음을 블렌더에 갈아 프로즌 스타일로 선보여지는 것들이 주류를 차지한다. 헤밍웨이가 자주 들렸다는 엘 플로리리다(El Floridita)에서 처음으로 과일을 사용해 바리에이션을 선보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당시에는 5가지 바리에이션이 전부였다고 한다.
과일의 종류가 수십 가지인 만큼 바리에이션의 가짓수도 수십 가지이며, 그중 딸기 프로즌 다이키리와 바나나 프로즌 다이키리는 이전 IBA 공식 칵테일에 등록되었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