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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r 24. 2022

샴페인(Champagne) - 돔 페리뇽 1

샴페인(Champagne)의 세계 - 2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935


상파뉴 지역은 세 지구로 나뉘어있다.

중심지인 랭스 남쪽의 언덕 몽타뉴 드 랭스(Reims)


피노 므니에 품종을 주로 재배하는 발레 드 라 마른(Vallee de la Marne)


에페르네시 남쪽의 샤르도네 주재배지인 코트 데 블랑


주요 샴페인 브랜드는 무엇이 있나요?

상파뉴는 포도밭을 중시하는 보르도와 달리 제조회사가 더 중요하다. 약 120개에 이르는 상파뉴 제조회사 중 상위 20개 회사가 상파뉴 전체 생산량의 70퍼센트를 만들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의 본사가 랭스나 에페르네에 자리 잡고 있다. 상파뉴 제조회사들은 상파뉴 지방 각지의 농민들로부터 포도를 사들여 와인을 만들거나 자신들만의 비법에 따라 30여 종의 와인을 블렌딩 하는데, 이때 새로 만든 와인과 몇 년 지난 와인을 섞는 경우가 많아서 상파뉴에는 빈티지 표시를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포도가 특별히 잘 익어 품질이 뛰어난 해에는 그해의 와인만 블렌딩해 만드는데, 이것을 ‘빈티지 샹파뉴’라 하고 라벨에 빈티지 표시를 하는데 자연히 가격도 대단히 비싸진다.


돔 페리뇽(Dom Perignon)

베네딕틴 오빌리에 수도원(Benedictine Hautvillers Abbaye)

돔 페리뇽(Dom Pérignon)은 1668년 피에르 페리뇽(Pirre Perignon)이 프랑스(France) 샹파뉴(Champagne)에 있는 베네딕틴 오빌리에 수도원(Benedictine Hautvillers Abbaye)에서 제조했던 와인(Wine)을 모태로 탄생한 샴페인 브랜드이다.


1832년, 프랑스 샴페인 브랜드 모엣&샹동(Moët & Chandon)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베네딕틴 오빌리에 수도원을 복원했다. 이와 동시에 모엣&샹동은 최고의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피에르 페리뇽 수도사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모엣&샹동 브랜드 내 프리스티지(Prestige) 샴페인 라인으로 돔 페리뇽을 만들었다.


브랜드명에 쓰인 ‘돔(Dom)’은 성직자의 최고 등급인 ‘다미누스(Dominus)’를 줄여서 부른 호칭이며, 피에르 페리뇽은 훗날 ‘돔 페리뇽’으로 불렸고, 이로부터 브랜드 명이 유래했다. 1921년 빈티지(와인의 ‘생산연도’를 뜻함) 돔 페리뇽 샴페인은 영국, 미국 등에 수출되며 1936년 이후 독립된 브랜드로서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

본사 입구의 돔 페리뇽 동상

이후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영국 여왕의 대관식용 샴페인으로 사용된 것을 비롯해 찰스 왕세자(Charles Windsor)와 다이애나 비(Diana Spencer)의 결혼식 축하 샴페인으로도 쓰이는 등 각국의 공식 만찬과 행사에서 사용되는 세계적인 샴페인 브랜드이다.


돔 페리뇽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요?

프랑스 파리(Paris)의 북동쪽 샹파뉴(Champagne) 지역은 연 200일 동안 비가 오고 섭씨 10도 정도의 기온을 유지하는 곳으로 유명 샴페인 산지 중 가장 추운 곳이다. 샹파뉴 지역은 땅의 재질 또한 독특하다.


샹파뉴의 백악질 토양(Chalky)의 분필과 같은 재질은 비가 많이 오더라도 배수가 잘 되고 질소가 풍부한 포도가 재배되기에 최적화된 환경을 갖고 있다. 포도의 질소는 와인 숙성 과정에서 효모 활동에 도움을 준다. 또한 백악질 토양은 수금을 머금어 촉촉하고 서늘해 최적의 와인 저장고를 만들기에도 용이하다.


또한, 오늘날 프랑스 정부는 원산지 통제 호칭법(AOC, 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을 통해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만든 스파클링 와인(Sparkling wine, 와인은 거품의 유무에 따라 발포성 와인인 스파클링 와인과, 거품이 없는 일반 와인으로 구분된다)만을 샴페인(Champagne, 샹파뉴의 영어 발음)이란 명칭을 사용하도록 통제했다.


샹파뉴 베네딕틴 오빌리에 수도원은 650년에 지어졌다. 베네딕트의 주교인 성 니바드(Saint Nivard)는 추기경의 명을 받아 프랑스 북부에 있는 랭스(Reims) 지역에서 출발하여 순례를 하던 중 샹파뉴 마을의 나무 그늘 밑에서 휴식을 취했다. 성 니바드는 나무 위를 맴돌던 한 마리의 비둘기가 숲으로 날아간 자리에 환한 빛이 비치는 영적인 경험을 한 뒤 그곳에 오빌리에 수도원을 지었다고 한다.


베네딕트 수도회(Benedictine Order) 소속의 오빌리에 수도원 신부들은 엄격한 공동체 생활을 하며 성경 공부를 했고, 간소한 방식으로 살며 각자 주어진 분야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오빌리에 수도원이 지어진 이후 1000년 동안 세 번가량 랭스 지역에 전쟁이 일어났었고, 그 사이에 오빌리에 수도원은 훼손과 재건을 거듭했다. 1668년, 당시 30세였던 베네딕틴 오빌리에 수도원의 수도사 피에르 페리뇽(Pierre Pérignon)이 재정 담당 수도사로 임명됐다. 피에르 페리뇽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성당을 재건하는데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피에르 페리뇽은 성배에 사용하는 미사주인 와인을 만들고 책을 만드는 활동을 통해 재원을 마련했다. 수도원의 규칙인 ‘성실과 신의’에 따라 피에르 페리뇽은 포도 재배 과정에서부터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는 등 좋은 품질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정성을 기울였다.


피에르 페리뇽 수사는 시력이 좋지 않았지만 미각에 대한 감각만큼은 그 누구보다 예민했다. 그가 만든 와인은 프랑스 파리의 귀족과 왕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1668년부터 1715년까지 47년 동안 피에르 페리뇽은 양질의 와인을 만드는 것에 노력을 쏟았다.  피에르 페리뇽은 수도원에 기여한 그의 업적을 인정받아 훗날 돔 페리뇽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이것이 돔 페리뇽 브랜드의 시작이다.


오늘날에도 일요일에 미사가 열리는 베네딕틴 오빌리에 수도원에 가면 ‘여기 돔 페리뇽이 누워있다’라고 쓰여있는 비문을 볼 수 있다. 비문에 쓰여 있는 돔 페리뇽의 생존 연도 ‘1638~1715’는 프랑스 럭셔리(Luxury) 문화를 이끌었던 루이 14세(Louis XIV)의 통치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돔 페리뇽의 역사를 알아볼까요?


1. 피에르 페리뇽, 샴페인 생산 시작 ~ 프랑스 혁명(1668~1831)


피에르 페리뇽은 오크통에서 숙성하는 방식이 아닌, 코르크(Cork)로 봉해진 병 안에 든 와인을 저장고에 넣어 숙성하는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새로운 맛, 색, 향 및 질감을 가진 샴페인을 만들었다. 양질의 샴페인을 만들기 위한 피에르 페리뇽의 정성과 자부심은 1694년 9월 29일에 피에르 페리뇽이 쓴 편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에페르네에서 샴페인을 주문한 어느 고객에게 피에르 페리뇽이 쓴 편지에는 ‘저는 경에게 세계 최고의 샴페인 26병을 드렸습니다’라고 쓰여있다. 자신이 만든 샴페인에 대한 피에르 페리뇽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돔 페리뇽이 고객에게 쓴 자필 편지

피에르 페리뇽이 샴페인으로 명성을 얻기 이전 보통 와인에는 마을, 산 및 지명 등 원산지의 특정 명칭이 붙여지곤 했다. ‘샹파뉴의 와인(Wine Of Champagne)’, ‘산의 와인(Wine Of The Mountain)’, ‘아이 와인(Wine Of Ay)’과 같은 식이었다.


피에르 페리뇽이 수도원에서 만든 샴페인도 처음에는 ‘오빌리에의 와인(Wine of the Hautvillers)’으로 불렸는데 이후 이 와인이 유명해지며 누가 만들었는지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훗날 사람들은 이 와인을 ‘피에르 페리뇽의 와인(Wine Of The Pierre Pérignon)’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피에르 페리뇽은 오빌리에 마을에서 생산되는 포도 원액의 여러 종을 섞어 숙성시키는 남다른 제조방식을 사용했다. 피에르 페리뇽의 샴페인은 당시 가장 좋은 와인의 4배에 달하는 값에 거래되었고, 베르사유 궁전(Versailles)까지 배달되어 루이 14세와 루이 15세(Louis XV)의 식탁에도 올랐다.


피에르 페리뇽의 샹파뉴의 스파클링 와인, 즉 샴페인은 와인을 마시는 풍습에 있어서도 변혁을 초래했다. 하인들이 일일이 음료를 대접해야 하는 당시의 테이블 매너를 귀찮게 여긴 프랑스의 왕실과 귀족들은 하인의 도움 없이도 간단히 병을 딸 수 있고 ‘펑’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하얀 거품이 쏟아지는 샴페인을 축제와 쾌락의 음료로 애용했다.


특히, 루이 15세의 애인이자 후궁이었으며 인문학에 대한 뛰어난 지식과 패션, 미술 및 음악에 대한 조예를 갖춰 외교까지 영향력을 발휘했던 막후 실력자였던 마담 드 퐁파두르(Madame de Pompadour)는 유명한 샴페인 애호가였다. 마담 드 퐁파두르는 매년 200병씩 샴페인을 주문했다고 전해지며, 샴페인을 너무 좋아해 샴페인 잔을 잡으면 바닥에 놓는 법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담 드 퐁파두르

마담 드 퐁파두르의 일화는 훗날 바닥에 받침대가 없어 손으로 들고 있어야만 하는 ‘퐁파두르 샴페인 잔’의 영감이 되기도 했다. 마담 드 퐁파두르는 ‘샴페인은 마신 후에도 여인의 아름다움을 지켜주는 유일한 술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1715년, 47년 동안 샴페인을 만드는 데 일생을 걸었던 피에르 페리뇽 수사가 사망했다. 이후에도 약 1세기에 걸쳐 샴페인은 상파뉴 지역의 중요한 특산물로써 발전을 거듭했고 이 과정에서 피에르 페리뇽 수사가 일생 동안 연구한 샴페인 제조 기술이 적용되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을 통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고, 이후 혼란이 지속되며 1820여 년까지 약 30년 동안은 돔 페리뇽에 대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공백기였다.


2. 모엣&샹동의 돔 페리뇽 샴페인 생산

1743년 프랑스 샹파뉴 지역의 에페르네에서 론칭한 모엣&샹동은 1832년에 오빌리에 수도원을 복원함과 동시에 좋은 품질의 샴페인을 생산한 피에르 페리뇽 수사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프리스티지 샴페인 ‘돔 페리뇽’을 인수했다. 이는 ‘샴페인의 아버지’ 돔 페리뇽이 재조명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돔 페리뇽이 하나의 독립된 레이블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훨씬 훗날이다.


당시 모엣&샹동의 CEO였던 로버트 장 드 보게(Robert-Jean de Vogüé)는 돔 페리뇽의 샴페인 생산을 1921년에 재개했다. 1921년은 날씨가 좋았고 여름은 무더웠으며 9월 19일에 포도 수확이 시작된 해였다.


봄 서리로 상당량의 포도가 냉해를 입었지만 냉해를 입은 포도는 오히려 품질이 뛰어났다. 모엣&샹동이 인수한 돔 페리뇽은 15년 뒤인 1936년에 1921년에 생산한 1921 빈티지 샴페인을 처음으로 시장에 출시되었다. 샴페인의 역사를 발전하게 한 ‘샴페인의 아버지’와 같은 돔 페리뇽은 출시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되었다.

모엣&샹동 사의 샴페인을 수입해서 영국에 판매했던 시몬 브로스 앤 코(Simon Bros & Co.) 사의 고객 150명은 총 300병의 돔 페리뇽 샴페인을 구입했다.


얼마 뒤에는 미국으로 100박스가 팔렸다. 이를 한꺼번에 사들인 이는 아메리칸 타바코 컴퍼니(American Tobacco Company)의 설립자이자 억만장자인 제임스 뷰캐넌 듀크(James Buchanan Duke)로 그는 돔 페리뇽의 맛과 역사적 스토리에 매료되어 돔 페리뇽을 대량 구매했다.


1943년 산까지의 돔 페리뇽은 모엣&샹동의 빈티지 샴페인을 좀 더 오래 숙성한 뒤 보틀링(Bottling)하여 판매하는 식이었다. 말하자면 당시 돔 페리뇽은 모엣&샹동 샴페인의 에노테크(Oenothèque, 장기 숙성과정을 거친 돔 페리뇽의 레이블 중 하나) 버전(Version)인 셈이었다.


또한 1947년은 1893년 이래로 가장 빠른 9월 5일에 포도를 수확할 정도로 작황이 좋았다. 이후 생산연도의 작황에 따라 독특한 맛과 향을 지닌 개성을 가지는 돔 페리뇽 빈티지의 역사는 계속 이어졌다. 1949년은 9월 19일에 포도 수확이 시작되었고 선별 과정에서 부패가 늘었지만 피해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기록된 해였다.


2008년 4월 로버트 로자니아(Robert Rosania)가 발행한 ‘꺄브 드 로버트 로자니아 경매 도감(Catalogue Vente aux Encheres de la Cave de Robert Rosania)’에는 ‘상태가 좋은 1949 돔 페리뇽은 강렬한 풍미 덕분에 (양질의 샴페인 중 하나인) 1961 돔 페리뇽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이다. 1949 돔 페리뇽은 훌륭한 샴페인이며 별점 6개를 받을 만하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후 돔 페리뇽은 세계의 왕실, 부호, 스타들이 애용하는 샴페인으로 알려지며 명성을 더해갔다. 1952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대관식과 1981년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비의 결혼식의 축하 샴페인으로 사용되었으며 이밖에도 세계 각국의 공식 만찬과 행사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에드워드 8세인 윈저공(Duke of Windsor)과 심프슨 부인(Simpson, Mrs. Wallis Warfield),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마를렌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등도 돔 페리뇽을 즐겨 마셨던 유명인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1962년 돔 페리뇽을 소유한 모엣&샹동은 프랑스 주식시장에 상장된 첫 프랑스 와인 하우스가 되었다. 같은 해 경쟁사인 루이나 페르에필(Ruinart Père et Fils)을, 1970년에는 메르쉐(Mercier)와 크리스찬 디올 향수(Parfums Christian Dior)를 인수했다. 1971년에는 코냑(Cognac) 회사인 헤네시(Jas Hennessy & Co.)와 합병하며 모엣 헤네시(Moët-Hennessy)가 되었다.

1987년, 모엣 헤네시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과 합병하여 루이 비통 모엣 헤네시 그룹(Louis Vuitton Moët Hennessy Group)이 되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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