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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pr 01. 2022

알코올 중독 아버지의 학대로 인해 집을 나왔어도,

꿈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어 요식업계의 스타로 인정받다.

199번째 대가의 이야기.


1966년, 스코틀랜드 렌프루셔 존스톤(Johnstone)에서 2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가족은 그가 만 5세 때 잉글랜드 워릭셔주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으로 이동했다. 1997년 사망한 그의 아버지는 수영장 관리자와 용접공, 가게 주인 등으로 일했고 어머니와 여동생은 간호사였다.

이후 자서전 <험블 파이>에서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절망적인 순회’라는 말로 상징적인 설명을 대신했다. 지독한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버지의 열망과 반복되는 실패로 가족이 쉴 새 없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1976년, 그의 가족은 마침내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 안정적으로 정착했고, 그렇게 그는 비숍턴 지역의 마을에서 성장했다. 심지어는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학대와 방치된 ‘술을 많이 마시는 바람둥이’라고 서술하였다.


아버지는 알코올 의존증에 가정폭력은 일상이었으며, 아버지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형은 약물 중독에 찌들어 있었다고 한다. 특히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소년교도소에 수감되어, 성인이 될 때까지 교도소에 있었다. 결국 부모님은 싸움을 반복하다가 이혼하게 되고 후에 그의 어머니는 재혼한다. 그의 부모에 대한 일을 다소 거리감을 두고 서술하는 이유는 그가 만 16살에 집을 나와 옥스퍼드셔주 밴버리(Banbury)로 이주해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축구에 재능이 있었다. 12살부터 19살까지 축구를 하며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의 가장 큰 명문인 레인저스 FC의 유소년으로 경기에 ‘20분 출전’한 경력도 있는 나름대로 유망한 선수였다. 하지만, 체력이 상당히 약했고,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축구의 길을 접고 요리의 길로 뛰어들게 된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인으로 제이미 올리버와 더불어 영국을 대표하는 요리사 및 방송에서 대중적 인지도를 얻은 스타 셰프의 시초로 불리는 고든 제임스 램지 주니어(Gordon James Ramsay Jr.)의 이야기이다.


일각에서는 실력보단 방송에서 보여주는 막말과 분노 콘셉트로 인해 유명세를 탔다는 비난도 있는데, 한국에서 취사 장교로 일하며 맛있는 것만 먹으러 다녔던 경력으로 방송에 나대며 돈을 챙기는 요식업자 백 모 씨와는 기본부터가 다르다. 


실제로 램지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방송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각. 음식을 먹어보기만 했는데도 조리 방법이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어떠한 첨가물을 썼는지를 기본으로 가려내고, 풍미를 살리기 위해 아주 소량을 넣은 식재료도 정확하게 맞춘다. 당연히 혀만 좋다고 맞출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는 요리에 대한 풍부한 식견과 경험을 겸비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엉성한 실력이라면 절대로 흉내 내지 못할 그의 내공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장사꾼 백 모 씨가 방송에서 하는 것은 램지를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다.


2017년 기준 각국에 자신의 레스토랑이 25개나 되며(폐업한 12개 점 제외) 보유한 미슐랭 스타는 총 7개로 세계에서 3번째로 미슐랭 스타를 많이 가지고 있다. 대영제국 훈장 수훈자이기도 하다.

20살이 되던 때, 1987년 노스옥슨 기술대학에서 호텔 경영을 전공한 뒤 주방에서 일을 시작했다. 당시 괴팍한 성격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영국 최초로 미슐랭 3 스타를 획득한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와 알베르 루의 주방으로 가서 하루 17시간의 살인적인 노동을 견디며 주방의 밑바닥부터 일하게 된다. 


런던에서 일을 하던 고든 램지는 ‘요리의 고향’에서 더 배우겠다는 목표로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다. 프랑스어는 한마디도 못 하고, 프랑스에 아무 연고도 없는 상태였지만 배움에 대한 집착이 그를 프랑스로 이끌었다. 급여나 근무 여건 등은 고든 램지의 ‘배움의 여정’에는 고려할만한 조건이 아니었다.


프랑스에서 영국 런던으로 돌아온 고든 램지는 영국 최초로 미슐랭 3 스타를 받은 셰프 피에르 코프만의 주방에서 일하며 더욱 성장한다. 이후 1993년에 그는 처음으로 레스토랑 주방을 책임지는 수석 셰프 자리를 제안받는다.


마침내 자신이 이끄는 주방 팀을 가지게 됐지만, 고든 램지가 마주한 현실은 ‘인기 없는 낡은 레스토랑’이었다. 그러나 고든 램지는 ‘오베르진’이라는 이름의 이 레스토랑을 살려낸다. 훌륭하고 현대적인 유럽식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 콘셉트로 인기몰이를 하며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맛으로도 인정받으며 미슐랭 가이드 3 스타를 두 번이나 받기도 했다. 그 중심에 있던 수석 셰프 고든 램지가 유명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베르진에서의 성공은 단순히 고든 램지라는 이름을 알린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 레스토랑에서 훗날 자신의 글로벌 브랜드를 함께 세워갈 동료들을 얻었다. 런던과 파리에서 하루 17시간의 고된 노동을 하며 일을 배워왔다는 수석 셰프의 경험에 주방 직원들은 유대감을 느꼈고, 이후 고든 램지가 자신의 비즈니스를 꾸릴 때 기꺼이 손을 잡는 관계로 남았다. 그의 열정이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 것이다.


1998년 고든 램지는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오픈한다. 옛 스승인 피에르 코프만이 자신의 레스토랑을 옮기면서 매우 싼 가격에 그 자리에 가게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 그렇게 스승의 배려로 ‘고든 램지 앳 호스피털 로드’가 시작됐고, 레스토랑은 이내 명소로 떠올랐다. 

결혼하고 나서 장인이 비즈니스를 이끌어주는 사이, 셰프인 고든 램지는 음식과 레스토랑 관리에 집중해 3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에 미슐랭 3 스타를 획득한다. 이후 그는 영국 곳곳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늘려나갔고 2001년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베르’를 열면서 해외로 진출했다. 2006년엔 미국 지점 ‘고든 램지 앳 런던’을 세우면서 뉴욕에도 깃발을 꽂았다.


고든 램지가 본격적으로 미디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셰프이자 외식 사업가로 성공한 이 시기 즈음이다. 자신의 레스토랑을 늘려나가던 2004년 이후 <헬스 키친>, <키친 나이트메어>, <마스터 셰프> 등에 출연하며 외식업계가 아닌 일반 대중에게까지 영향력 있는 스타 셰프로 떠올랐다. 허드렛일부터 시작한 주방 경험과 훌륭한 셰프들에게 배운 탄탄한 기본기가 방송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요리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키친 나이트메어>에서 영국의 한 작은 레스토랑을 살려내는 과정 도중 해당 레스토랑의 신입 주방장과의 대화에서 아주 잠깐 언급된 적이 있다. 과거 자신의 청소년 시절에 자신의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자신도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하루하루를 우울하고 힘겹게 살았는데 우연히 요리를 하면서 즐거움을 얻어 요리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대중에게 각인된 괴팍하고 신랄한 이미지와는 달리 평소에는 친절하고 유쾌하며 사려 깊은 사람으로, 예의를 지키면서도 격의 없이 사람을 대하며 농담도 잘 던지면서 분위기를 잘 맞추고 띄울 줄 안다. 친밀성도 뛰어난 수준으로 실제로 키친 나이트메어를 보면 의뢰받은 가게에 방문한 손님들과 원활하게, 마치 이전처럼 알고 지낸 사람처럼 편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는 사려 깊은 모습을 자주 보인다. 집에서는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질 않고 딸의 남자 친구 관리에 철저하다.

그의 두 딸이 어린 시절

하지만 주방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다. 위에서 보여준 가정적이거나 다정다감한 성격은 찾아보기 어려운 말 그대로 악마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방송을 통해 공개된 모습을 보며 매 순간마다 굉장히 창의적인 독설을 쏟아내는 인물로, 독설가의 끝판왕의 모습을 보여준다. 


최고 수준의 레스토랑 주방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것이 쇼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 미슐랭에 등재될 정도의 주방에서 셰프들의 모습은 그가 유독 오버하는 것이 아닐 정도로 굉장히 거칠다. 특히 고든 본인이 세계적 규모의 레스토랑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수준급 사업가이며, 입문 과정서부터 전통적인 도제 방식으로 교육받은 정통파 요리인이기에 맛에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100%라 해도 좋을 정도로 유명한 요리사는 배울 때도 엄하게 배우고, 가르칠 때도 엄하게 가르친다. 특히 호텔 레스토랑이나 파인 다이닝 같은 경우라면 더욱 엄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욕을 안 하고 싶어도 안 할 수가 없다. 요리사라는 직업은 사고의 위험이 높은 칼과 불을 직접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요리사 개개인과 식당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안전 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하며, 식재료의 보관이나 요리 과정에 잘못이 생기면 그 결과물이 고스란히 손님의 입 속으로 들어가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먹는 것을 다룬다는 것이 이 때문에 어려운 것이며 소홀히 다루면 당연히 안 된다. 


그리고 잘못되어 맛없는 음식이 나갔을 때 손님의 비난은 오롯이 주방장이 책임진다. 신참이 칼질을 잘못해서 모양이 안 나와도 욕먹는 건 이름 걸고 요리를 내온 주방장이다. 그러니 식당과 주방장의 신용을 위해서는 주방 전체가 주방장의 한마디에 칼 같고 실수 없이 돌아가는 군대, 공장 수준의 명령전달 체계가 필요하다. 주방장이 엄하고 날카로울수록 음식에 집중하게 되고, 주방장이 안전과 맛을 중요시한다면 당연히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헬스 키친>에서 그의 불같은 면모는 여지없이 드러난다. 요리한 것이 수준 미만이면 몇 번이고 다시 만들게 하며,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폭언, 욕설과 독설이 난무한다. 일부 시청자는 폭언에 익숙해져서 주방 밖 평화로운 장면에서 위화감을 느끼기도 한다. 오죽하면 헬스 키친의 한 참가자는 고든 램지 하면 떠오르는 대사를 세 개 대보라 하자 “나가!”, “꺼져!”, “덜 익었어!”를 꼽았다.


셰프도 아닌 요식업자 백 씨도 방송할 때는 그나마 언어를 순화시키는 것일 뿐 스스로도 방송이 아닌 주방 실무를 할 땐 입이 험해진다고 인정한 바 있다. 그래서 유명 셰프들은 욕쟁이들인 경우가 허다하다. 요리사 일은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3D 업종인데 페이마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일류에 올라서기 전에 인성이 파탄 나는 게 대부분이다. 고든 램지는 방송으로 유명세를 탄 그들의 대표주자이자 시초 격 인물인 셈이다.


고든의 평가는 거칠고 모욕적일지언정 남녀노소 관계없이 공정하며, 요리 상태나 실력 등 오직 사실에만 기반한다. 또한 미친 듯이 화를 내더라도 뒤끝이 없고, 성과가 마음에 들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요리에 대한 평가가 공정하므로 도전자와 시청자가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TV에서 화끈하게 욕을 구사하는 모습만 보면 자극적인 내용만으로 승부를 보는 식당 경영 리얼리티 TV쇼의 쇼맨 정도로 밖에 안 보이지만, 관찰하다 보면 성격, 중시하는 부분, 조언이 철저하게 기본기를 강조하는 그의 본래 모습을 읽게 된다.

요리를 하는 사람이 재료에 별반 반응이 없을 때에도 화를 내는 편이다. 요리사로서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가지고 상상력이 없다는 걸 프로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그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일면이기도 하다.


다만 상황에 따라서는 화를 최대한 참기도 한다. 이를테면 요리사가 요리 외적인 문제로 인하여 무너지거나 요리로부터 마음이 떠났다면, 요리가 아무리 개판이어도 화를 내지 않는다. ‘Mike&Nelly 에피소드’의 마이크는 아버지 넬리를 잃고 침울한 상태에서 요리까지 망치고 있었는데, 고든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마이크의 두 딸로 하여금 아버지에게 용기를 북돋는 일부터 먼저 한다. 


내부에서 분쟁이 많이 일어날수록 고든은 화를 내지 않으며, 점잖게 지적하기만 할 뿐 모욕은 최대한 자제한다. 이미 충분히 혼란스러운 상황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면 안 되기 때문이다. 어떤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을 다루는 에피소드에 등장한 부자는 틈만 나면 싸우고, 말리는 어머니는 복장이 터지는 중이었다. 고든은 이를 심각하게 보며 이 레스토랑은 요리적인 측면에서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며 부자지간을 화해시키기까지 했다. 


또한 충고만 분명히 할 뿐이지, 요리 외적인 부문, 감정, 성향을 비롯하여 확실하게 존중할 부분은 존중한다. 요리를 못하는 사람이 요리사로 일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친절하게 어떻게 요리해야 맛있는지를 가르쳐주지, 이딴 것도 못 하면서 왜 요리하냐고 무시하는 일도 없다. 즉 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은 압박하고, 의지를 잃거나 길을 잃은 사람에겐 친절히 도움을 준다.

주방을 벗어나면 인간미를 보여 줄 때도 종종 있다. <헬스 키친> 시즌 5에서는 어릴 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아버지의 이름인 ‘바비’라는 애칭으로 불리기 싫어한 로버트라는 참가자가 직접 램지와 대면해 설명하자, 이에 정중히 사과하고 다신 그렇게 부르지 않을 것을 약속했으며 경쟁에서 최종적으로 네 명 정도만 남으면 가장 불안한 한 명을 따로 불러 조언을 해주고 특별히 기운을 북돋아주기도 한다. 그래서 출연자들도 처음에는 불평만 하다가 다양한 고든 램지를 겪어보고 평가가 바뀌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아직 요리를 배우고 있는 아이 셰프들에게는 태도가 180도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마스터셰프 주니어>의 아이들이은 아직 어린 데다가 요리사로서 성장하고 있는 만큼 폭언보다는 격려나 도움이 아직 필요한 것을 생각해 굉장히 따뜻하게 조언을 해주거나, 요리를 잘못했다고 해도 다시 시도해보자고 보듬어 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밖에도 타문화의 요리를 체험하거나 배우기 위해 해외여행을 할 때는 ‘최고가 되려면 최고의 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가르침을 몸소 보여준다. 이때 해당 문화의 요리사를 절대적으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요리를 배울 때는 자신의 경력을 들먹이지 않고 제대로 경청하며 배우려는 확실한 의지를 보인다. 고든이 조언할 때 참가자가 변명하면 입 다물라며 폭언을 날리는 데는 다 까닭이 있는 것임을 반증하는 일관된 모습이다.

가정교육에 있어 적당히 봐주는 법이 없는, 매우 현실적인 아버지상이다. 자식들에게 절대 부모라는 명목으로 조건 없는 사랑을 주지 않으며, 온실의 화초처럼 연약하게 자라지 않고 밖에서 고생하며 열심히 산다는 조건 하에만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한다. 밑바닥에서부터 스스로 자립해야 한다는 이유로 유산 상속을 하지 않으며, 자기 자식들은 대우받을만한 수고를 하지 않았으니 1등석에 앉을 자격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이와 반대로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에 한해서는 그야말로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데, 키가 작아서 다른 학생들에게 민폐를 끼칠 거라는 이유로 요리 학교 입학을 거부당하고, 덤으로 이쪽 업계에 발도 못 붙일 거라는 모욕까지 당한 왜소증 청년을 자신의 가게에 채용하였으며, 빵집을 열고 싶어 하는 다른 청년의 학비를 전액 지원하고는, 네 가게가 성공했을 때 빵 한 덩이로 보답하면 된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고든의 성격은 단순할 정도로 아주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된다. 고든이 제일 싫어하는 유형은 자기 말만 하려는 고집불통이다. <키친 나이트메어> 시즌 1의 ‘시크릿 가든’ 에피소드에서는 자기 고집대로만 하려는 미셸에게 “You French Pig!(이 프랑스 돼지 새끼야!)”라고 소리를 질렀던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자신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장기적으로는 식당의 수명과 평판을 깎아 먹는 꼼수와 타협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거나 기본에 충실하기보다 어눌한 잔머리와 얕은 꼼수로 상황을 타개하려 할 때, 지적을 받고도 인지부조화에 빠져 마냥 부인하거나, 알면서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할 때 시청자들이 기대(?)에 마지않는 욕을 한 바가지 쏟아붓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그가 천사의 모습을 보이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상대들을 보면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가 주방에서 가장 강조하는 요소가 요리실력이나 타고난 실력 같은 것이 아닌, 원활한 의사소통(Communication)이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일례로 헬스 키친 시즌 2에서 버지니아가 헬스 키친 사상 최초로 고든에게 요리의 진척도를 스스로 먼저 말해주자, 고든은 이를 극찬한다. 반대로 대답 없이 입을 꾹 닫고 있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는데, 그는 심지어 “거짓말하는 게 입 닥치고 있는 것보단 낫다. 뭐라도 말하라니까!”라고 할 정도로 소통을 강조한다.


셰프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이들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램지가 대중들에게 가장 인지도가 많은 이유는 앞서 말한 성격 등 인간적인 매력과 더불어 다른 셰프가 잘 보여주지 않는 사업가로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서 그의 방송에서의 모습을 통해 살펴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요식업에 대한 명확한 철학이 있고, 셰프로서의 자부심이나 요리의 퀄리티뿐만 아니라 이 요리를 팔아서 얼마나 남길 수 있는가를 고려함과 동시에 재료 수급과 보관, 조리의 용이성 등을 고려하여 짠 메뉴를 전수하는 등 사업가로서의 면모도 매우 탁월하다. 수십 개의 지점을 자신이 혼자서 총괄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다. 한국의 장사꾼 백 씨가 그를 얼마나 모니터링하며 코스프레하는지 잘 알 수 있다.


다른 이에게 거침없는 비판을 가할 때도 사업가적인 측면에서 판단하여 비판한다. 미슐랭 3 스타 셰프 미쉘루가 본인의 레스토랑에서 고객들이 음식을 사진 촬영하는 행위를 금지시킨 일이 있는데, 고객이 사진을 찍는 데에 열중하여 음식이 갓 나왔을 때 맛보는 순간을 놓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자 고든 램지는 트위터에서 SNS로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의 행위가 레스토랑 운영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이야기하며 미쉘루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셰프로서의 입장과 사업가로서의 입장 모두를 겪어본 그만이 할 수 있는 조언이고 비판이었다. 여기서의 핵심은 홍보에 더 비중을 두라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것에 쓸데없는 고집이나 에너지를 쏟지 말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램지에게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는 멘토이자 스승인 인물이다. 그전까지 램지는 호텔이나 중소 규모의 레스토랑에 다니며 요리를 배웠는데, 그 당시 만난 셰프들은 냉동음식이나 첨가물을 사용하는 저급 음식을 만드는 이들뿐이었다.


최초로 고든이 제대로 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주방장을 만난 것은 ‘Eleven Part War’라는 레스토랑의 마르코 화이트였다. 여기서 고든은 처음으로 주방장의 요직에 서게 되었는데, 마르코의 곁에서 제대로 된 요리와 요리 방식을 보며 자신의 재능을 깨닫고 급속도로 성장하게 된다. 고든은 마르코 화이트와 같이 일하게 된 지 겨우 1년 만에 미슐랭 1 스타를 따내는 기염을 토한다.

요리와는 별개로, 고든이 2006년에 청첩장을 받아 간 마르코의 3번째 결혼식장에서 난동을 부려 마르코와 둘의 관계가 틀어지게 된 사건은 워낙 유명하긴 하다. 고든과 마르코는 둘 다 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셰프들 중 한 명이었고, 특히 고든은 당시 스승인 마르코를 뛰어넘어 세계 최고의 스타 셰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이 사건은 많은 영국인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평소 방송에서 보여주는 행적을 보면 언행은 거칠더라도 프로페셔널답게 원리원칙에 입각하여 행동한다는 이미지를 쌓아 이 같은 고든의 도가 지나친 행동은 비단 영국인이 아닌 해외의 팬들과 프로그램 시청자들에게도 충격적이었다. 고든이 왜 이런 짓을 갑작스럽게 저질렀는지 현재까지 밝혀진 바는 없다.



알코올 중독의 가정폭력이 일상이던 아버지의 밑에서 축구선수를 꿈꾸던 그는 재능이 있었음에도 가정환경과 심리적 불안정을 이유로 축구 스타의 길을 접어야만 했다. 요리를 해서 스타가 되겠다거나 돈을 많이 벌려는 목적도 아니었다. 그저 우연히 요리를 하다가 맛있는 것을 만들 때 자신이 행복을 느낀다는 발견을 통해 그 길을 걷게 된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요리를 만들어 자신이 먹거나 누군가에게 대접하고 맛있게 먹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행위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는 그 느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주방 초보로 하루에 17시간 이상 주방에서 일한다는 것은 단순한 막노동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혹독한 정신노동을 수반하는 것이다. 

수행 당시의 주방장이던 고든 램지

즉, 몸만 쓰는 것이 아니라 셰프의 매서운 눈초리와 욕설과 폭력에서 초긴장모드로 생활하는 것의 연속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해낸다. 심지어 요리의 본고장이라는 곳에 프랑스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상황에서 더 배우겠다며 요리 수행을 자청한다.


내가 위에서 한국의 요식업자 백 씨를 평가절하한 것은 그는 눈썰미와 사업능력으로 요식업을 할 뿐, 셰프로서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도 못하고 수행을 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자신이 많이 먹으러 다니면서 쌓은 눈썰미와 감각으로 요식업을 운영하는 것과 수년간의 요리 수행을 통해 자신이 창작 요리를 만들어내어 세계의 객관적인 기준(미슐랭)에 검증을 받고 사업을 진행하는 사람을 같은 선상에 올려놓는 것 자체가 후자의 대상에게 모독인 셈이다.


그 모든 과정을 겪은 그였기에 방송에서 다소 연출되는 요소를 제외하고서라도 사람의 인성이라는 것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그는 자신을 고스란히 민낯을 드러낸다.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다. 그가 그렇게 심각할 정도의 불우한 가정형편을 가지고 있었고, 누구보다 혹독한 수행의 길을 거쳐오지 않았다면 누구도 그의 욕설과 폭언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오만하다는 오해에 대해 그는 자신의 분야가 아닌 요리사에게 요리를 배울 때 자신이 수행할 때의 모드로 돌아가 겸손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어느 정점에 있는 자가 아무리 방송이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저자세를 취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잠실에 14만 원짜리 버거가 등장하며 다시 그의 이름이 회자되는 것을 보고는 수년간 지켜보아왔던 그의 삶을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어졌다. 단순히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요리에만 일가를 이룬 괴팍한 셰프가 아닌, 너무도 인간적인 고난과 좌절을 극복하고 지금에 이른 그의 삶을 통해, 당신이 TV 프로그램으로만 보아온 오해를 벗으라고 일러주고 싶었다.


당신이 흙수저라서, 부모님이 이혼해서, 심지어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과 그로 인한 가정폭력으로 인생이 망쳐졌다고 변명하지 않기를 바란다. 고난이 있을지언정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것은 결국 오롯이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고든 램지는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그가 가정에 끔찍한 딸바보 아들바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짠한 것은 그의 히스토리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공통된 것이다. 가정폭력을 겪은 피해자들은 대개 아니라고 하지만 절반 이상은 그 전철을 밟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고든 램지처럼 절반의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아픔을 주변에 주지 않기 위해, 그리고 고난의 시기보다 훨씬 더 긴 자신의 생을 위해 노력하고 아름답게 가꾸고자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베컴과 가족들 모두가 농구 경기 관람가서

누구에게나 고민은 있고, 고난도 있으며, 실패도 있다. 그것‘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망가졌다며 변명하고 주저앉는 패배자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뛰어넘는 사람도 나오기 마련이다. 늘 선택은 자신이 하는 것이다. 녹록지 않을 것이다. 남들은 모두 순탄한 삶을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런 불행이 거듭되냐고 하늘을 원망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은 그 고난을 짊어질 수 없는 자에게 고난을 내리지 않는다 하였다.


고든 램지가 지금 힘겨워하고 있을 당신에게 던지는 말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Stop doubting yourself. Be bold
(스스로를 의심하지 말아요. 담대해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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