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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pr 02. 2022

해킹 피해 환불 원정대(Feat. 콘분위) - 5편

사회는 결코 한 마리 쥐가 좀 먹는 것이 아니다.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948



경제범죄팀의 경위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여자는 움찔하며 대답했다.


“아니, 그게 저어... 제가 전화를 해본 적이 없어가지고...”


“내가 지금 원래 안 되는 거 나만 특별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걸로 보입니까?”


답답함이 다시 하나씩 다시 차곡차곡 쌓이며 기가 막아나가기 시작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경찰이 돈을 받아들이는 곳이....”


“이봐요. 내가 욕 튀어나올까 봐 좀 진정하고 다시 마지막으로 정리해줄게요. 경찰은 위법한 사람들에 대해 범죄행위를 적발하거나 경고하는 겁니다. 맞아요?”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자아, 나는 해킹으로 인한 범죄피해를 당했는데, 그쪽이 외국계 글로벌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뻔뻔하게 범죄피해는 당신이 보상받을 일이고 우리는 당신 아이디로 결제되었으니 돈은 당신이 먼저 내라,라고 황당한 소리를 하고 있어요. 그러면 사건을 수사하는 담당 경찰이 이 건은 명백한 해킹 피해사건으로 수사에 들어갔고, 범죄피해가 실질적으로 발생하기 전이니 금액을 인출하는 것은 보류하는 것이 맞다,라고 하는 게 특별한 일이고 돈을 받아주는 일이라고 착각합니까?”


“죄, 죄송합니다. 제가 전화를 그쪽에 걸어보겠습니다.”


“보겠습니다?”


날카로움이 나도 모르게 목소리 끝에 삐죽거리며 묻어 나왔다.


“아니요. 하겠습니다.”


“정말! 미안하지만, 피드백 콜,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억지로 억지로 겨우 가르쳐 마지못한 대답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전화는 오지 않았다. 설 명절이 시작되면서 연휴 기간은 애플을 포함한 모든 기관이 모두 업무를 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뭔가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애플 상담원이 말했던 그놈의 기관 중에서 낙점했던 ‘콘텐츠 분쟁 조정 위원회’라는 곳을 찾아 다소 복잡하고 귀찮은 과정을 감수하고 해당 사건에 대한 조정(이라고 부르고 '환불신청'이라 새긴다)을 신청했다.


‘콘텐츠 분쟁 조정 위원회(이하 콘분위)’라는 곳은 분명히 정부에서 운영하는 기관으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이른바 한콘진)의 부설기관으로 인터넷 사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안드로이드 앱의 플레이스토어나 애플사의 앱스토어에서 설치하거나 구매한 게임 관련 환불이나 분쟁이 워낙 많아지고 해킹 피해도 많아지면서 그 부분에 대해 정부차원에서 중재를 하는 공인된 국가기관인 셈이었다.


공정위나 소비자원의 경우 범주가 훨씬 더 커 모든 소비자 구매 품목에 대해 다루는 것에 비해 집약적으로 전자 콘텐츠 관련 거래 품목에 한정하여 해결을 위해 마련된 기관이라 보였기 때문에 전문성을 보고 그쪽을 최종적으로 ‘애플을 푸시한 기관’으로 낙점한 것이었다.




설 연휴가 끝나고 SK텔레콤의 그나마 똘똘한 팀장에게서는 현지 폰으로 연락이 왔다.


“일단 지난번 말씀드렸던 것처럼 요금 체납부서에서 불쾌한 메시지나 연락이 가지 않도록 그쪽 부서를 통해서 업무협조를 구했습니다. 일이 잘 해결되시길 바라며, 혹시라도 이 건이 아직 완결되지 않은 상태이니 문제가 있으시면 상담원과 불쾌한 통화를 하시기보다 제 이름 메시지로 남겨드릴 테니 114로 전화하셔서 저를 찾으시면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겨우 속을 속을 삭이고 결제가 나가는 것은 어찌 되었든 통신사 선에서 막았으니 이제 문제를 빨리 해결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바로 콘텐츠 분쟁 조정위원회에서 메일이 와 있었다.


제목 자체가 ‘콘텐츠 분쟁조정위원회 조정 사건 종결 예정 안내’였기에 다시 속에서 천불이 일어날 기미를 보이며 스팀이 확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용을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옮기면 다음과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 안도현 조사관입니다.


선생님께서 신청해주신 사건번호 2022-12345는 단순 콘텐츠 관련 분쟁이 아닌 범죄 사건으로 인한 피해 분쟁으로 확인되어 조정규정 제4장 19조 3항 조정 거부 사유(해결이 불가능한 개인정보 도용 및 계정 해킹, 스미싱, 소액결제 사기 사건 등은 수사기관에서 진행하여야 하는 범죄 사건에 해당함.)로 따라 조정 종결될 예정이라는 점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금전적 피해의 경우 수사기관으로부터 피해 사실을 입증받으시는 경우 플랫폼 또는 개발사가 구제해주는 사례도 있으므로 사건 결과를 받아보신 뒤 관련 증빙 자료를 발급받아 플랫폼 또는 개발사로 환불 절차를 진행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한국 전화결제 산업 협회 (1644-2367)에서 통신사 및 결제 대행사의 휴대폰, ARS 결제 관련 피해 구제 민원을 받고 있으므로 해당 기관에 문의해보시는 방법도 함께 안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한 호흡에 훅 읽고는 이제 무슨 개소리인가 30초 정도 어이를 상실한 채 다시 찬찬히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았다. 아예 조사를 시작도 하지 않고 해킹 범죄피해에 대해서는 조사를 하지 않는다고 멋대로 조사를 종결하겠다는 거였다. 분명히 내가 처음 서베이 했던 자료에는 해킹 범죄로 인한 피해도 조사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홈페이지에 ‘콘텐츠 분쟁조정제도의 소개’ 카테고리에 가면 ‘구체적으로 어떤 분쟁이 있나요?’라고 하는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자신들을 소개하는 내용에 조사의 대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백히 설명하고 있다.


게임 관련 주요 분쟁의 예


- 미성년자의 모바일 게임 결제 환불에 관한 분쟁

- 청약철회, 계약해지, 계약해제 등 결제와 관련된 분쟁

- 게임 서버 접속 장애, 게임 내 각종 오류 및 버그 등 서비스 장애로 인한 분쟁

- 불법 프로그램 사용, 아이템 현금거래 등으로 인한 계정 정지 관련 분쟁

- 계정 도용으로 인한 피해보상에 관한 분쟁


마지막 줄에 분명히 ‘계정 도용으로 인한 피해보상에 관한 분쟁’이라고 나와 있지 않은가?


열 받아서 메일로 할 일이 아니다 싶어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들의 상위기관이라고 하는 한콘진은 저술과 강연, 고문 등의 업무로 연관되어 국장급들과 안면이 있는 곳이기도 했기 때문에 여차 하면 한콘진에 직접 전화를 걸어 다 뒤집어엎을 생각까지 하며 일단 해당 안도현 조사관에게 사유를 듣기로 했다.


이 번호 눌러라 저 번호 눌러라 ARS뺑뺑이를 한 끝에 겨우 연결이 되자 상담원으로 보이는 어수룩해 보이는 목소리의 20대 후반 정도의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입니다.”


“네. 안도현 조사관 부탁합니다.”


“네. 무슨 일로 그러시죠?”


“제가 설 전에, 그러니까 한참 전에 애플 해킹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는데 그 금액이 200여만 원에 달해서요. 조정을 신청했는데, 해킹 피해는 구제 대상이 아니라는 황당한 메일 띡 하나 보내왔길래 어이가 없어서 항의하려고 합니다.”


상대는 잠시 주춤하고 말을 하지 못했다.


“안도현 조사관 부탁한다고 말했는데요.”


“죄송합니다만, 저희는 조사관과 직접 통화는 하실 수가 없습니다.”


“직접 통화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항의를 할까요?”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그건... 이메일로 받으신 대로 그냥 이메일로 쓰시면 됩니다.”


느낌이 이상해서 상대의 이름을 물었다.


“지금 전화받으시는 분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네? 안도현이라고 합니다.”


어이가 없었다. 자기가 그 담당 조사관이었다. 이 녀석은 처음부터 자신이 담당관이라고 말하면 혼이 날 것이라고 여긴 듯했다.


“담당 조사관이잖아요?”


“네. 그렇습니다.”


“담당 조사관이랑 직접 통화를 할 수 없다며?”


“네. 그렇습니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겁니까? 안도현 조사관 소속이 정확히 어디고 관할 상관이 누굽니까?”


“네?”


“당신 상관, 책임자가 누구냐구!”


“제 직속상관은 팀장님이신데, 지금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그러면 그 부서의 책임자는 누구인가요?”


“네? 저희 부장님을 왜 찾으시는 거죠?”


소비자원이나 공정거래위를 비롯해서 환경부에 이르기까지 조사관이라는 자들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2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까지 그들의 어이없는 헛발질을 처음 목도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조금 정도가 심했다.


“앞서 설명했습니다. 홈페이지의 안내에 아이디 해킹으로 인해 자신이 사용하지 않은 아이템 사용 등 금전 피해에 대해 조정을 신청하는 것은 기본 업무에 속한다고 되어 있는데요.”


“그게, 저어, 한 달 조금 전에 그 규정만 빠져서요.”


“그게 왜 빠졌는지 빠진 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홈페이지의 안내 사항에 등재되어 있고, 상식적으로 이 위원회가 설립된 취지 중에서 누락될 하등의 이유가 없는 범죄행위에 대해 해당 업체에 범죄피해 수익을 인출해서는 안된다고 조정하는 일을 도와주지 못하겠다고 조사관이 조정을 멋대로 종결한다는 게 말이 되는 짓입니까?”


“그건, 제가...”


“됐고, 아까 책임자가 부장이라고 했죠? 부장이랑 연결해주세요. 안도현 씨랑은 말이 안 될 것 같네요.”


“굳이 이렇게까지 하실 이유가....”


“그러면 바로 한콘진의 국장에게 전화가 가도록 해줄까?”


상위 관할 기관인 한콘진의, 국장이 언급되자 그제서야 그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한 듯 대답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기다리라고 하고 그는 한참을 전화 대기음을 걸어놓고 있다가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분명히 멱살 잡기를 하고 나서면 전화가 끊긴 것이라고 하는 것이 이들의 수순이었다. 바로 전화를 했지만, 예상대로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아....’로 이어졌다. 전화를 어차피 피할 것이 뻔한 성정이 드러나는 녀석인지라 바로 메일을 보내려고 하는데, 나름 급했던지 녀석에게서 메일이 왔다.



안녕하십니까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 안도현 조사관입니다.


앞서 안내드렸던 내용이 미흡했던 부분 정말로 죄송하단 말씀드립니다. 말씀해주신 부분 관련하여 직속 상급자 분께서 백신 휴가로 인해 자리에 계시지 않아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 김범룡 부장님께 내용 전달드렸으며, 부장님께 바로 연락하실 수 있는 연락처 전달 승인받았습니다. 


02-0000-1234번으로 문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미흡한 안내로 불편을 드린 점 죄송하단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메일의 마지막마다 습관적으로 붙인 ‘감사합니다’ 거슬렸지만, 일단 부장은 말을 알아먹겠지 싶어 바로 전화를 걸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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