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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May 23. 2016

이 남자, '내편'이라는 증거 셋.

"아빠, 엄마가 장난감 사면 안된대. 난 이 자동차가 꼭 가지고 싶은데... 사면 안될까?"


웅이와 마트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한창 실랑이 중입니다. 빨간색 스포츠카가 종류별, 크기별로 20개는 넘게 있는데 웅이는 오늘도 빨간색 스포츠카를 집어들고는 사달라고 조릅니다.


장난감을 사기로 약속하고 마트에 왔으면 빨간색 스포츠카가 21개가 되어도 22개가 되어도 사주겠지만, 오늘은 두부랑 과일을 사러 온 겁니다. 웅이와도 '오늘은 반찬꺼리를 사러 가는거야. 장난감을 보고 싶으면 구경하는 건 괜찮지만 사진 않는 거야' 손가락걸고 약속하고 왔습니다.   


엄마에게 작은 틈도 없다는 걸 확인한 웅이는 아빠를 공략합니다. 입술 쭉 내밀고 눈물이 그렁그렁하면 아빠가 약해진다는 걸 아는 5살입니다.


"아빠~"

"엄마가 안 된다고 했지? 엄마가 안 되면 아빠도 안 되."


팔짱을 끼고 눈 흘길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반응입니다. 그리고, 든든합니다.


남편과 전 13년 전 처음 만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결혼 7년차 부부입니다.


우리도 한 땐, 뜨거웠지요. 지금은 따뜻하지만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남매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우린 닮았습니다. 외모만요.


저는 세상 모든 일을 걱정하는 반면 남편은 어떤 순간에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래도 저래도 한 번 사는 이 세상, 열심히 살자 주의인 반면 남편은 이래도 저래도 한 번 사니까 되도록 편하게 살자 주의입니다.

저는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잠잘 때까지 모든 순간을 계획하는데 남편은 무계획이 계획인 사람입니다.

(남편 표현에 따르면 저는 '오늘 밤은 이 꿈 꿔야지' 까지 계획할 사람이랍니다)


먹는 것도 반대지요.

저는 반찬보다 밥, 고기보다 야채를 좋아하지만 남편은 밥보다 반찬, 야채보다 고기를 좋아합니다.

라뽁이를 먹으면 저는 떡과 야채만 먹고 남편은 라면만 먹고, 계란 한 알을 먹어도 저는 노른자 남편은 흰자를 먹습니다.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나랑 정반대인 저 사람과 살면, 나도 남편의 성격을 닮지 않을까? 결혼 7년차, 남편과 닮아가는지 아니면 더 달라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신합니다.


남편은 점점 '내편'이 되고 있습니다.


# 엄마가 아니라면 아빠도 아니야.


아이들과 제가 대립할 때, 옳고그름을 떠나 남편은 "엄마가 아니라면 아닌거야"라며 나와 한 편이 되어줍니다. 부모가 같은 목소리를 내니 아이들에게 강한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던 웅이는 아빠까지 안 된다고 하자 군말없이 장난감을 제자리에 가져다 놨습니다)


"아빠, 아빤 내가 좋아 결이가 좋아?" 웅이의 애정도 테스트에도 남편은 주저없이 답합니다.


"아빤 엄마가 좋아"




# 결제하실 금액: 263만7500원


지난 달은 카드값이 좀 많이 나왔습니다. 복직하고 첫 여름이라 옷과 신발을 마련했고, 매일 자라는 웅이 결이도 새 옷을 사야했습니다. 어버이날 스승의날 선물도 사고 가족과 짧은 여행도 다녀왔습니다.


제가 복직을 한 뒤로는 베이비시터 이모님 월급과 현금은 제 월급에서, 생활비는 남편 월급에서 충당합니다. 제가 생활비를 쓰는 게 대부분이니 저에겐 남편 카드가 있습니다. 카드를 쓸 때마다 남편의 휴대전화로 결제 메시지가 갑니다.


"이번 달 카드값 좀 많지? 돈 쓸 일이 많네."


잔소리를 하진 않을까 먼 산을 보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허투로 쓴 거 아닐텐데 뭐, 잘했어. 그리고 허투로 좀 써도 되. 여자는 쇼핑하면 스트레스 풀린다며. 당신도 여자잖아."


내 남편이지만, 감동입니다.


(저 또한 남편 앞으로 택배가 왔을 때, 궁금하지만, 뜯지 않고 묻지 않고 남편 책상 위에 올려둡니다. 이거 은근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 당신 뜻이 내 뜻


"여보, 당신은 내가 회사를 그만 둔다면 언제 그만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부부니까, 내 사표는 나 혼자만의 결정이 아닙니다. 남편과의 상의, 남편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사표 내고 싶어?"

"아니, 근데 어느 순간 갑자기 확 내고 싶어질까봐. 그럼 당신 답 생각하면서 참으려고."

"참지 마. 상의 할 필요도 없어. 당신이 다니고 싶으면 다니고, 당신이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 둬. 당신 뜻이 내 뜻이야."


의견을 묻는 말에 남편은 항상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은데?'라고 되묻습니다. 제가 하고 싶다면, 크게 반대할 상황이 아니면 고개를 끄덕여줍니다..





결혼하기 전, 지하철에서 한 노부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여름이었고, 꽤 더운 날이었던 기억입니다. 할아버지는 아이스크림 설레임을 들고 계셨습니다. 위를 주무르고 아래를 주무르고, 무릎 위에 내려놓고 두 손을 부비고 다시 아이스크림을 주무르기를 반복하십니다. 그리고 한 입 드시고는, 할머니께 건네시네요.


할머니 드리려고 두 손 호호 불어가며 녹이셨나봅니다. 사람이 아름답다는 거, 이런거구나 싶었습니다. 나도 나중에 늙으면 남편한테 해달라고 해야지 생각했습니다. 당시 남친은 (지금의 남편과 같은 사람입니다!) 웃으며 그렇게 해주마, 답했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이젠 아이스크림을 건네받은 할머니가 아니라, 아이스크림을 건넨 할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녹이는 동안 할아버지가 얼마나 행복하셨을지, 알겠거든요.


그 행복 제가 누리겠습니다.


# 틈틈이 이야기는 네이버 포스트 (post.naver.com/zinc81)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방문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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