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오늘은 네가 악당이야!"

5살, 악당도 할 줄 알아야 하는 나이

by 틈틈이

"엄마, 우리 싸우자."

"또?"

"응, 엄만 아빠를 괴롭히는 악당이야. 나는 멋진 영웅이지. 엄마 어서 아빠를 괴롭혀. 내가 아빠를 구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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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가 괴물, 악당입니다. 웅이는 영웅, 착한 공룡, 우리 편만 하지요.


"왜 항상 웅이가 영웅이야, 엄마도 영웅 하고 싶어."

"아냐. 내가 영웅이라고!! 엄마는 악당 해."

"아까도 엄마가 나쁜 공룡 했잖아. 이번엔 웅이가 악당 해. 다음에 엄마가 악당 할게. 차례차례 하자."

"싫어!! 내가 구할거야!!"


매번 몸으로 싸우는 놀이를 하는 것도 버거운데,

매번 악당입니다.


악당이 될 때마다 '공룡 유치원'이라는 책이 떠오릅니다.

공룡들의 첫 사회생활(유치원)을 그린 전집으로,

웅이가 어린이집에 입소할 때 추천받은 책입니다.


그중 '내가 대장이야' 편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놀 때 뿔리는 대장을 하겠다고 우기는데,

대장을 하고 싶은건 누구나 같습니다

결국 친구들은 뿔리를 떠나죠.


집에서야 매번 엄마 아빠가 악당이 되어줄 수 있지만,

웅이가 어린이집에서도 항상 영웅만 고집하면

외톨이가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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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엄마도 영웅 하고 싶어!"

굳이 우겨봅니다.


예상대로 웅이는 떼를 씁니다.

그래서 "그럼 같이 안 놀아" 등을 돌렸습니다.

웅이는 주변을 맴돌며

"같이 놀자~ 악당 해주라~"

졸랐지만

끝까지 악당을 하지 않았습니다.




잠든 웅이를 보니 '잘 한 건가' 싶습니다.

아이는 놀자고 하는데 나는 죽자고 덤빈 건 아닌가.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도 그랬어?"

"남자는 누구나 영웅이 되고 싶어하지."

"5살인데?"

"5살은 남자 아닌가?"

테스토스테론은 갓 태어났을 때는 많이 분비되다가 생후 몇 달이 지나면 80% 정도 감소한다. 그래서 남녀의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지만 만 3세가 지나면 테스토스테론 분비량이 다시 늘기 시작하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남성성’이 나타난다. 엄마의 고충이 시작되는 시기가 바로 이때부터다.


악당을 물리치는 로봇이나 영웅 캐릭터를 갖고 놀면서 자신의 힘도 세어져 나쁜 사람이나 적을 물리치는 용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5~7세는 힘과 공격에 관심이 많은 시기로 여자아이들은 예쁜 옷과 장난감으로 주목받고 싶어 하고 남자아이들은 자신의 힘과 에너지를 과시하고 싶어 한다. 특히 남자아이들의 경우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이 급격히 분비되면서 공격적인 성향을 띠는데, 힘센 로봇이 악당을 무찌르는 장면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남자 웅이 입장에선,

무찌름을 당하는 악당이 아닌

무찌르는 영웅이 되고 싶은 거군요.


싸우고, 무찔러서, 이기고, 힘을 과시할 수 있는

그런 영웅이요.


그래도 마찬가지 입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싫어도 악당이 되어야 하는 순간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내일도 한 번 쯤은

제가 영웅하겠다고 우겨보렵니다.

웅이가 '그럼 내가 악당할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해 봐야죠.

언젠간 악당도 할 줄 아는 5살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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