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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죄책감와 아이의 화요병

by 틈틈이

“웅이 엄마, 웅이가 열이 조금 나는 것 같아요. 콧물도 조금씩 나고요.”

베이비시터 이모님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감기에 걸린 걸까요. 웅이가 아침에 살짝 피곤해보이긴 했지만 컨디션이 나빠 보이진 않았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 놀고 잘 먹고 잘 뛰어다녔습니다. 웅이는 한 번 열이나면 낮에는 미열이어도 밤에는 39도를 왔다갔다하는데… 어디가 탈이 난걸까 걱정이 됩니다.

일단 집에 해열제가 충분히 있는지 확인하고 혹시 모르니 병원도 예약합니다. 퇴근하고 웅이 상태를 보고 병원부터 가야겠습니다. 아이가 아프니 마음이 분주합니다. 옆자리 선배가 눈치를 채고는 ‘웅이 어디 아파?’ 묻습니다.

“아침까진 괜찮았는데…. 열이 난데요. 주말에도 잘 놀고 어제도 좀 피곤해 보이기는 했지만 잘 놀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7살, 4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 선배가 주말에 뭐했냐고 묻습니다. 토요일에는 결이 병원에 갔다가 날이 많이 춥지 않기에 전쟁기념관에 갔었습니다. 웅이가 예전부터 가고 싶다고 했었거든요. 일요일에는 교회에 갔다가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잠깐 놀이터에 갔었습니다. 선배가 혀를 찹니다.


그러니 병이 나지.
엄마가 직장다닌다고 주말에 몰아서 놀아주면
애들은 꼭 화요일에 병 나더라.



그러고보니 주말에 노느라 낮잠도 식사도 부실했습니다. 평일에는 웅이는 어린이집에 가서 정해진 패턴으로 생활하고 결이는 이모님과 맞춘 나름의 스케줄대로 움직이는데 주말은 패턴이 없습니다. 낮잠은 이동하는 차 안에서 자는 걸로 대신하고 밥은 하루에 한 끼는 외식입니다. 엄마아빠가 같이 있으니 아이들이 신나는게 당연한데, 신나서 잠을 자지 않겠다고 떼를 쓰고 밥도 먹지 않고 놀겠다고 심술을 부리는 걸 받아준 엄마인 제 잘못입니다.

선배 말대로 직장에 다니느라 주중에 놀아주지 못한 미안함을 주말에 몰아서 풀어주다보니 오히려 독이 된 것 같습니다.

아이를 시부모님께 맡기고 주말마다 시댁으로 아이를 보러 가는 또다른 선배도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부모님은 손주만 3명째 키우고 계시는데, 우리 아이 맡아주실 때 딱 한가지 신신당부하신 게 있어. 주말이라도 시부모님 쉬시라고 아이 데려갈 생각하지 말고 우리 부부보고 주말에 시댁에 와서 지내라고 말이야. 주말에 엄마아빠가 아이 데려 갔다오면 애는 주 초반에 탈이 나서 시부모님이 평일내내 병간호를 하셔야 할 때가 많았대. 주중에 겨우 낫게 하면 주말에 또 데려가서 또 병이 나는 악순환이었다고….”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 달력을 보니 웅이가 편도염에 걸린 것도 화요일, 결이가 열감기에 걸렸던 것도 화요일. 아이들이 아파 병원에 간 건 거의 화요일이었습니다. 보통 잠복기가 2~3일이니 아이들이 월요일 밤부터 아프기 시작하는데, 그래서 전 월요병이 아니라 화요병이 생겼습니다.


이모님 말씀도 생각납니다. 결이가 유독 월요일은 낮잠을 많이 잔다고 하셨거든요. 주말에 쌓인 피로를 그렇게 푸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줄 때, 아이들이 떼를 써도 혼내지 않고 받아줄 때, 항상 내가 직장을 다녀서 안쓰러운 마음에 좀 더 너그러운 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엄마가 직장도 다니는데 장난감이라도 하나 더 가져야지’라는 마음으로 골랐을 때는 장난감을 사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이들을 훈육하려다가도 ‘하루에 얼마나 같이 있는다고 애 울리기까지 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같이 있는 시간에라도 알려줄 건 제대로 알려주자고 마음먹고 훈육하려고 합니다.

주말에 ‘실컷’ 놀아주자는 마음도 죄책감의 일부였습니다. 주말에 특별한 곳에 가야 아이가 신날 거라는 생각을 바꿔야겠습니다. 주말 아침마다 “오늘은 어디가요?” 묻는 아이에게 “놀이터가죠”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일단 지난 주말처럼 빡빡한 스케줄은 피해야겠습니다.

‘요리 하지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놀아요’ ‘화장실 가지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놀아요’라는 아이들에게 주말은 어딜 가서 신나는 날이 아니라 함께 할 수 있어 신나는 날일테니까요. 그래서 돌아오는 주말 계획은 ‘집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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