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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Jun 19. 2017

아이가 아픈 날,
죄인이 되는 이유

오전 11시 40분. 점심을 먹으러 나가려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어린이집입니다. 


"어머니 결이가 열이 나요. 밥도 먹지 않겠다고 하고요. 데려가셔야 할 것 같네요."


보통 아침에 깨우면 씩 웃으며 일어나는 녀석인데, 오늘따라 칭얼거렸습니다. 어제밤에 뒤척여 아직 졸린가보다, 생각했는데 아플 징조였나봅니다. 


"제가 회사라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요. 제가 가급적 빨리 가거나 누구한테 부탁할게요. 죄송합니다."



어디가 안 좋을까, 왜 나는 눈치도 채지 못했을까. 걱정과 미안함 반. 어떻게 해야하지? 깜깜함 반. 머리 속이 복잡합니다. 친정엄마도 시어머니도 당장 출발하신다해도 2시간 후에나 어린이집에 도착하실 겁니다. 시터 이모님께 일찍 와달라고 하는 게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이모님께 전화를 걸다 끊었습니다. 아닙니다. 내가 가는 게 낫겠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엄마일테니까요. 저 또한 결이 얼굴 보고 괜찮으지, 어디가 아픈지 직접 확인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할 것 같습니다. 


마침 점심시간입니다. 오후에 미팅이 있어 반차를 낼 순 없지만, 점심시간이니 택시타고 어린이집에 가서 결이를 데리고 와 간단히 점심 먹이고 약 먹이고 낮잠재우고 다시 회사에 오면 빠듯하긴 하지만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서둘러 회사를 나와 택시를 탔습니다. 


이모님께 전화를 해 상황을 설명하고 좀 일찍 오셔달라고 부탁합니다.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또 죄인이네' 기운이 빠집니다. 


무엇보다 아픈 결이 앞에 죄인.

아픈지도 모르고 어린이집에 보냈네, 혹시 수족구같은 전염병이면 어쩌지, 어린이집 친구들 앞에 죄인.

점심시간 직전 약속을 취소했으니 갑자기 혼자 밥 먹게 된 후배에게 죄인.

다른 일정 취소하고 일찍 우리집에 오셔야 하는 이모님에게 죄인. 

...


생각은 '내가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으로 이어집니다. 


결이는 똑같이 아팠을 수도 있지만, 

내 출근시간에 맞추겠다고 더 자고 싶다고 투정부리는 아이 억지로 깨우지 않았을테고 

결이가 아픈 걸 알아챘을수도 있었겠지.

모르고 어린이집에 보냈더라도 열이 난다는 전화를 받고 바로 어린이집으로 향했을테고, 

일단 해열제 먹이고 낮잠재우는 대신 병원에 갈 수 있었을 거고, 

갑자기 점심약속 취소 당하는 후배도 없었을 거야. 

그리고 나 또한 택시 안에서  눈물 참고 있을 일 없었겠지.


그렇다면, 내가 일하지 않았어야 하나? 



글쎄요. 기혼여성 두 명 중 한 명이 일하는 세상입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해결될까요? 어느 정도는요. 하지만 아이가 아플 때 눈치보지 않고 부모가 조퇴할 수 있다면, 휴가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어린이집에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아이들이 쉴 수 있는 양호실이 있다면 어떨까요? (많은 직장어린이집에 양호실이 있습니다)

복직하기 전, 내가 일해도 웅이 결이가 잘 자랄까 걱정에 워킹맘 자녀에 대한 연구 결과를 많이 찾아봤었습니다. 과거에는 엄마가 바깥 일하면 학업 성취 능력이 떨어진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 등 부정적인 결과가 많았습니다. 


반면 2010년 워킹맘과 전업맘 자녀를 0세부터 7세가 될 때까지 추적 연구한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결론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차이가 없었습니다. 워킹맘 자녀도 전업맘 자녀도 성인이 되어 비슷한 수준의 행복을 누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요. 전문가들은 과거에 비해 양질의 보육시설, 아빠의 육아참여 등 사회 분위기, 제도가 갖춰진 덕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잘 자라려면 사회가 뒷받침해줘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육아휴직을 끝내고 출근한 첫 날, 내 책상 내 의자. 심지어 사무실에서 신던 신발까지 그대로인 게 반가웠습니다. 선후배동료 모두 반갑게 맞아줬고, 걱정과 달리 변한 게 없는 직장이 참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고마울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부모가 되어 또 다른 역할이 생겼는데, 회사는 나에게 부모가 되기 전과 똑같은 모습을 요구했습니다. 


사회과학자 알리 러셀 혹실드는 저서 『2교대the second shift』에서 "직장은 아이를 키우는 아내를 가진 남자에 맞춰 설계되었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처럼 직장은 집안일  신경쓰지 않고 내조받으며 회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직원을 바랍니다. 부모가 되어도 여전히 야근을 하고, 여전히 밤에도 수시로 업무연락을 받고, 여전히 주말근무를 해내라고 합니다. 아이를 키우며 직장에 다니는 지금은, 직장의 요구에 맞출 수 없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 '아이는 국가가 키운다. 믿고 낳아라'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마음 놓고(?) 일 할 수 있도록 어린이집 종일반을 확충하고 제도를 강화하지요. 덴마크 어린이집은 오후 4시 이후에 남아있는 아이가 없습니다. 하원도우미가 아닌 부모 손잡고 하원합니다. 직장에서 퇴근하고 아이를 데리러 온 겁니다. 스웨덴은 주4일 근무하는 시간제 일자리가 보편적입니다. 엄마와 아빠가 요일을 바꿔 주4일 근무하면, 아이는 주말 이틀에 평일 이틀을 더해 일주일에 4일을 부모와 온전히 보낼 수 있습니다. 육아선진국들은 '아이는 부모가 키워야지. 아이를 키우며 일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게'라고 합니다. 


워킹맘이 되니 알겠습니다. '일 할 수 있게 아이는 국가가 키워줄게'와 '아이는 부모가 키워야지. 아이를 키우며 일 할 수 있게 국가가 나설게'는 천지차이입니다. '아이는 국가가 키워줄게' 사회에선 아픈 아이 곁을 부모가 지킬 수 없습니다. 아이의 희생이 담보됩니다. 일하는 엄마는 죄인이 됩니다. '아이는 부모가 키워야지' 사회에선 부모는 아픈 아이 곁을 당당히 지킵니다. 오늘은 누구에게 부탁하지? 걱정없이 내가 간호합니다. 아이가 다 나으면 출근해 더 열심히 일 할 수 있습니다.


아픈 아이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면서, 그게 속상했습니다. 아이가 아픈 것만으로도 속이 상하는데 왜 나는 아이가 아플 때마다 여기저기 눈치보며 죄인이 되어야 할까.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싶었습니다.  


'아이는 국가의 미래'라고 합니다. 그런데 국가의 미래인 아이를 낳고 키우는 나는, 부모가 된 뒤로 자주 죄인이 됩니다. 아이가 국가의 미래라면, 아이를 키우는 부모 또한 국가의 미래입니다. 부모의 미래가 보장되어야, 내일은 더 나은 날이 될 거라는 믿음이 서야, 이 땅에서 아이를 낳고, 키울 자신이 생기지 않을까요.   


한 아이를 살리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 국가가 같이 키워주셔야 합니다. 하지만 한 발 더 나아가 부모가 부모노릇하며 부모의 삶도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웅이 결이는 꼭 그런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행복한 부모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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