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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Jun 28. 2017

"어린이집 재밌었어?" (X) 제대로 물어보는 법

"엄마, 오늘 무슨 생각했어?"


저녁을 먹는데 웅이가 물어봅니다.  


"으응?"

"무슨 생각은, 당연히 내 생각했겠지."  (이런 답정남…)

"어떻게 알았지? 웅이 생각했지."

"그리고 또?"


물론 웅이 생각 했지요.  

오늘 저녁은 무얼 먹지,  

퇴근길에 바나나 사는 것 잊지 말아야지,  

이 보고서 마무리하려면 애들 재우고 일 해야하려나,  

다음주 조카 생일인데 뭐 사주지…  

생각이 많았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쉽게 입이 열리지 않습니다.


"결이 생각은 안했어?"

"했지. 웅이가 엄마 마음 속에 들어왔다 갔구나.  다 알고 있네~"


으쓱해진 웅이는 다시 밥에 집중합니다.


"오늘 뭐 했어?" 웅이에게 매일 묻습니다. 종알종알 쉴 새 없이 떠드는 아이인데, 유독 이 질문 앞에선 입을 다뭅니다. "오늘 재미없었어?" "아니" "그런데 왜 이야기를 안 해?" "생각이 안 나" 나와 떨어져 있는 시간, 아이는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한데 아이는 나눌 마음이 없는 것 같아 야속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키우는 언니와 비슷한 고민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조카 또한 "오늘 학교 재밌었어?" 물음에 "응 (가끔 아니)" 한 글자로만 답을 한답니다. 조잘조잘 이야기해주는 건 둘째치고 답이 '단어'가 아닌 '문장'만 돼도 좋겠다 싶었답니다. 아들이라 과묵한가보다, 절반은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놀이터에서 조카 친구의 엄마와 조카가 이야기하는 걸 보고 놀랐다더군요.  


"오늘 학교에서 점심 먹고 뭐 했어?"

"딱지치기 했어요. 제가 수성이꺼 다 따버렸어요~"

"우와. 신났겠다. 그런데 수성인 좀 속상했겠는걸?"

"그래서~"


친구 엄마는 '질문에도 요령이 있다'며 '콕 찝어 질문하라'고 슬쩍 알려줬다고 합니다.



"오늘 학교 재밌었어?"는 너무 광범위해 아이들이 대답하기엔 난감할 수 있습니다. 웅이가 "엄마 오늘 무슨 생각했어?" 물었을 때 제 말문이 막힌 것과 같은 이유죠. 오늘 생각한 게 백가지가 넘는데 그 중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뒤엉킨 생각 중 하나를 뽑아내기가 어렵습니다. 답하기 쉽게 질문을 해야 합니다.


'초등 1학년의 사생활'의 저자인 김지나 선생님도 비슷한 조언을 합니다. 김 선생님은 저서에서 '아이의 말문을 여는 대화법'으로 구체적인 상황으로 질문하기를 꼽았습니다. 친구 관계가 궁금하다면 "친구랑 사이좋게 지냈어?" 보다는 "오늘 학교에서 괴롭히거나 놀린 친구는 없었어?" 묻는 식으로요. 누군가에게 놀림을 받으면 엄청 분한 마음이 들고, 그런 감정은 금방 떠오르기 때문에 아이들이 쉽게 답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반대로 아이들은 추상적인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워 한다고 합니다. 아래 질문들처럼요.


"학교는 재미있었니?"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놀 때 빼고는 재미있는 시간보다 어렵거나 힘든 것을 참고 인내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다. 그러니 재미있었다, 재미없었다 한 마디로 대답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오늘 학교에서 뭐 배웠어?"
아침 자습 시간부터 하교 시간까지 하루에 적어도 네댓 과목을 배우다 보니, 뭘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냈어?"
아이들은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친구들과 싸우고, 그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친하게 지내기도 한다. 또, 어떤 친구와는 사이좋게 지내지만, 나를 놀리는 어떤 친구와는 매일 싸울 수도 있다. 그러니 아이 입장에서는 이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기가 어렵다


"선생님 말씀 잘 들었어?"
이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마음 한 구석이 찔리기 마련이다. 어떤 아이도 수업 시간 내내 선생님 말씀을 잘 들을 수는 없다. 잘 들을 때도 있지만 딴짓할 때도 있다. 엄마의 이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까? 당연히 정답은 '네'이다. '아니요'라고 대답하는 순간 그 뒤에 밀려올 후폭풍을 아이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끙… 매일 밤 제가 웅이에게 묻던 "어린이집 재미있었어?" "어린이집에서 뭐 배웠어?" "친구들하고 잘 놀았어?" 가 다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엔 조언대로 구체적이고 특정 상황이 떠오를 수 있게 물어봅니다. "오늘 어린이집 재밌었어?" 대신 "오늘 어린이집에서 가장 좋았던 일은 뭐야?" 묻고,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놀았어?" 대신 "오늘 웅이 놀린 친구는 없었어?" "웅이를 도와 준 친구 있었어?" 묻습니다. "누구랑 친해지고 싶어?" 대신 "내일 소풍가면 누구 손 잡고 가고 싶어?" 묻고요.



가끔은 이야기할 분위기를 따로 만들기도 합니다.  일전에 한 선배 워킹맘께서 댓글로 남겨주셔서 따라하는 방법인데요. 선배 워킹맘은 맥주 한 캔, 요쿠르트 한 병 꺼내놓고 마주앉아 아이와 일종의 '티타임'을 갖는다고 하셨습니다. 저 또한 따뜻한 커피 한 잔 앞에서 속이야기가 나오는 것처럼 아이도 비슷합니다.


어린이집 알림장에 웅이가 울었다거나, 친구와 다툼이 있었다고 적힌 날에는 저녁상 치운 다음 제 앞에는 커피 한 잔, 웅이 앞에는 게토레이 한 잔(웅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수입니다!)을 두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평소에도 조곤조곤 잘 이야기하는 웅이지만, 이렇게 '엄마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 신호를 보내면 "근데, 나 있잖아" 묻지 않아도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반대로 제가 말을 많이 하기도 합니다. 웅이에게 묻는 대신 제 하루를 이야기합니다. "우리 오늘 아침에 좀 늦었잖아. 그래서 지하철에서 내려서 막 뛰었거든? 회사에 갔더니 꼬르륵 소리가 나는거야. 창피하고 배가 고파서 숨겨놨던 과자를 먹었어"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면 웅이도 "그래? 난 어린이집에서 간식으로 찹쌀떡이 나와서 안 먹었는데, 엄마 가져다줄껄 그랬다" 이어 말합니다.  


+ 그리고 무엇보다 잘 듣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릴 때를 돌아보면 저는 말하고,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계실 때가 많았거든요. 엄마가 "그래?" "그랬구나" 해주면 친구 욕도, 선생님에 대한 불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웅이 결이가 "엄마~" 부를 때 "잠깐만~" 대답 대신 눈 마주치고 이야기하려고 하지만, 그게 참...마음과 달리... 하하하하. 노력하겠습니다 ㅎ




#틈틈이의 더 많은 이야기는 책 '나는 워킹맘입니다'와 아래 링크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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