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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Aug 31. 2018

워킹맘, 다시 일 욕심을 내는 시간

올해 저는 일 욕심을 내는 중입니다. 우선 회사에서는 예전같으면 몸을 사렸을 일들에 겁없이 덤벼들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이 일을 맡으면 야근 할 일이 많을텐데’ 싶은 것들은 가급적 피해온 게 사실입니다. 일에 에너지를 많이 쏟을수록 아이들에게 에너지를 줄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퇴근시간만은 사수하자’는 원칙을 정하고 이 외의 시간엔 회사일을 가급적 잊으려 했습니다.


올해는 다릅니다. 업무상 필요하다면 (가끔이지만) 새벽에도 출근하고, 아이들이 잠든 뒤에 퇴근하는 날이 (더 가끔이지만) 있습니다. 또 책을 한 권 출간했고, 또 다른 한 권은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보다 일이 우선이야!’ 이 악물고 다짐한 건 아닙니다. 그저 웅이 결이를 지켜보고 있으니 올해는 그래도 될 것 같았습니다.



복직할 때만해도 지각하지 않고 출근해 정시에 퇴근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제 때 회사에 도착했다는 건 아이들이 ‘엄마 회사 꼭 가야 해?’ 울며 눈물바람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정시에 퇴근했다는 건 업무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별다른 일이 없었다는 뜻이니까요. 별 일 없는 하루가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웅이가 6살, 결이가 4살인 지난해 하반기부턴 조금 달라졌습니다. 웅이 결이가 더는 “오늘 또 어린이집에 가는 날이야?” 시무룩한 날도, “엄마 보고싶은데 회사 안가면 안 돼?” 울먹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오늘은 회사에 안가고 싶다.”고 하면 “늦게 가면 친구들이 기다려.”라며 제 팔을 끌어당겼습니다. ‘늦었어. 서둘러’ 재촉하지 않아도 아침밥을 먹으면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엄마의 일’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언젠가 주말에 아이들과 집 앞 놀이터에 갔었습니다. 마침 웅이 친구들이 놀고 있었습니다. 웅이가 신이나서 친구들에게 뛰어가더니 “나, 엄마랑 같이 놀이터 왔다~” 자랑을 하더군요. 놀이터에서 노는 중간중간 “엄마~ 나 여깄어.” 손을 흔드는 모습에 괜히 마음이 시큰했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며 웅이가 “엄마랑 맨날 같이 오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엄마도 그러면 좋겠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슬쩍 물었죠.


“엄마 회사 가지 말까?”


속으로는 웅이가 정말 가지 말라고 하면 어쩌지 걱정이 되면서도 웅이의 솔직한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질문에 웅이는 “아냐. 엄마 일도 소중해.”라고 답하더군요. ‘장난감 필요없으니 회사에 가지 말라’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편안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해주는 웅이가 참 고마왔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 덜 아픈 덕도 보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두번은 열이 나던 녀석들이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확실히 덜 아픕니다. 아파도 하룻밤 푹 재우면 괜찮아지는 정도만 앓고 지나가주니 아이들도, 저도 일상이 편해졌습니다. 낮시간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열이 난다는 전화를 받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아이들이 자주 아플 땐 언제 아플지 몰라 늘 ‘대기’ 상태였는데 지난해부턴 ‘대기 해제’ 상태입니다.


이런 이유로 올해는 일욕심을 조금 더 내도,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의 축을 일 쪽으로 한 걸음 옮겨와도, 저와 남편, 웅이 결이에게 무리가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년을 생각해보니 일욕심을 내기엔 올해가 최적기였습니다. 내년엔 웅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니까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균형의 축을 아이쪽으로 또 바짝 옮겨와야할테니 올해 회사에서도 미리 성과를 내놓고 (잘 보여놓고!) 제가 하고 싶은 일도 더 해두는 중입니다.




이 글을 쓴 이유는, 한 후배 때문입니다. 업무 시간에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일과 중 어린이집 전화는 십중팔구 아이가 아프거나 사고가 났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갑자기 토를 하고 기운이 없어한다는 전화였습니다.


아이 걱정에 사색이 되어서도, 갑자기 조퇴하는 게 마음이 쓰였는지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더군요. 죄송할 일 아니라고, 지금은 그럴 때라고, 아이가 우선이라고 했는데도 ‘그래도 죄송하다’며 사무실을 나섰습니다.


아마 후배는 계속 마음이 불편했을 겁니다. ‘이렇게 이도저도 제대로 하지도 못 할 거면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낫겠다’ 싶었을 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랬었으니까요. 그 때 한 선배가 저에게 “이도저도 제대로 못 하는 게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해내고 있는 거다. 그리고 이 시기를 지나야 이것에도 저것에도 욕심을 잔뜩 낼 수 있는 시기가 온다.”고 해주셨던 것처럼 저도 후배에게 이 글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후배가 오늘 하루의 균형이 아닌 삶의 단계에서의 균형을 바라보길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삶의 단계에서의 균형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는 거니까요.




▷ 엄마된 당신을 위한 인생설계도가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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