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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Sep 01. 2018

엄마 7년차,  부모됨의 득과 실 따져보니

월요일 오전 사무실 풍경은 꽤 재밌습니다. “주말 잘 보냈어?” 인사에 아이가 없는 후배들은 쌩쌩한 목소리로 “네!” 답하고 아이가 있는 동료들은 퀭한 얼굴로 “이번 주도 불태웠다”라고 합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주말이면 눈이 떠질 때까지 푹 자고 일어나 ‘오늘은 뭘 먹을까, 뭘 할까’ 고민을 하다가 ‘다 귀찮다. 잠이나 더 자자’ 다시 눈을 감곤 했었는데 부모가 되고는 주말이면 일찌감치 일어나 엄마가 일어났나 일어나지 않았나 손가락으로 눈을 찔러가며 확인하는 아이들 덕분에 늦잠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손가락을 꼭 잡고 ‘5분만 더 자자’ 타협해보지만 1초마다 ‘5분 다 됐어?’ 물으니 5분을 채울 수 없습니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출근을 할 때면 (모두 아는 비밀이지만) ‘회사가 더 편하구나’ 혼잣말이 나오죠.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한 숨 돌리고 있으니 후배가 “힘들죠?” 묻습니다.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니 “역시 부모는 아무나 하는 거 아닌 것 같아요. 전 지금처럼 살래요.”라고 하네요.


지난 해 결혼한 후배는 임신을 망설이는 중입니다. 그래서인지 부쩍 아이에 관해 자주 물어옵니다. 한 번 쯤은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참입니다. 같이 커피 한 잔 하자고 했습니다.


“힘들죠?”

후배가 다시 물었습니다.


이번엔 솔직히 답했습니다.

“응. 힘들어.”


예상한 답이었겠지만, 후배의 얼굴은 어두워졌습니다.

“그런데 힘들기만 한 건 아니야. 힘들기만 하면 내가 미쳤다고 애를 둘이나 낳았겠어?”

덧붙였습니다.


사실 후배에게 ‘정말 좋아. 고민하지 말고 어서 임신 해’라고 조언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도 엄마가 되고 싶었던, 엄마가 된 것이 충분히 만족스러운 저도 마냥 추천할 수는 없었습니다. 부모가 되었기에 행복한 것도 사실이지만 부모가 되었기에 감당해야 하는 무게도 만만치 않으니까요. 임신을 하라마라 어설픈 조언보다는 부모가 되어 힘든 점과 행복한 점. 득과 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힘든 점

“말 그대로야. 힘들어. 일단 체력적으로 부쳐.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소원은 똑같아. 통잠 한 번 자는 거.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자는, 그 당연한 일상을 아이들은 해주지 않거든. 낮에 자고 밤에 깨지. 한 번도 아니고 수시로 깨. 웅이도 결이도 예민한 편이라 4살까지는 통잠을 잔 적이 없었어. 지난해부터는 아이들이 통잠을 자는데도 나는 자다 깨는 게 습관이 됐는지중간 중간 일어나곤 해.


그런데 그런 것들보다 더 힘든건 내 일상을 내 마음대로 계획하고 움직일 수 없다는 거야. 아이들은 예측불가능 통제불가능하거든. 아이를 낳고는 친구들과 거의 만나지 않는 편이야. 오랜만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가도 아이가 아프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불가피하게 취소해야 하지.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보니 친구에게도 미안하고, 약속을 깨는 나도 스트레스라 아예 약속을 하지 않는거지.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하는 순간 두 손으로 내 밥을 먹을 자유는 사라져. 스마트폰을 보면서 볼 일 보던 날들도 끝이지. 스마트폰 대신 아이를 안고 변기에 앉는 날이 많아. 가끔은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인지, 아이의 아바타가 된 것인지 헷갈린다니깐. 아이가 자라면 좀 낫지 않냐고? 맞아. 아이가 자라면 부모의 ‘손’이 필요한 순간은 줄어. 그런데 마음은 더 쓰여. ‘다른집은 아이한테 이것저것 시키고 이 교구 저 교구도 샀다는데, 내가 너무 무관심한가?’ ‘옆집 시우는 진즉 한글을 뗐다는데 우리 웅이는 아직 ㄱㄴㄷ도 모르는데... 이대로 있어도 괜찮을까?’


아이가 어릴 땐 눈만 깜빡여도 박수가 절로 나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이걸 해줬어야 하나’

후회가 되고 ‘뭘 해줘야 하나’ 불안해. 정답이 있으면 그대로 따르겠는데 육아는 정답이 없어. 조언을 해주는 사람은 많은데 아이마다 다르고 각 가정마다 상황이 다르니 조언을 그대로 따를 수도 없지. 친정엄마가 어느 날 그러시더라고. “너희 삼남매를 잘 키우고 싶다고 생각할수록 너희들 예쁜 모습을 놓쳤던 것 같아.”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이제 알 것 같아. 이런 저런 고민이 깊어질수록 지금의 웅이, 지금의 결이에 집중하기가 어려워 ‘앞으로 행복한 아이 말고, 지금 행복한 아이로 키우자’ 다짐하는데 말처럼 쉽진 않아.




#행복한 점

한 마디로 부모라는 역할은 힘들고 어렵고 무거워. 그런데 그래서, 행복해지는 것 같아. 부모가 되고는 나라는 한 사람을 돌아보게 되. 아이를 보고 있으면 얘가 ‘리틀 김아연’인가 싶을 때가 있어. 난 밥 먹기 전에 과자를 즐겨 먹거든. 좋지 않은 습관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주방에 숨어서 아이들 몰래 먹곤 하는데 들킬 때가 있어. 꿀꺽 삼키고 아무 것도 안 먹은 척 하지만 아이들도 눈치가 빤하잖아. 어느 날부턴 나한테 묻지 않고 주방에 숨어서 과자를 먹고 있더라. “뭐하고 있어?” 물으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절래절래 흔드는 모습에 웃음이 나면서도 애들 봐서라도 이제 정말 과자 끊어야겠다, 생각하곤 해.


과자는 빙산의 일각이지. 내가 웅이를 혼내는 그 말 그대로, 웅이가 결이를 혼내. 그리고 가끔은 나도 혼내. 정말 뜨악한다니까.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 초등학생 때부터 손톱을 뜯는 게 버릇인데 엄마가 아무리 혼내고 달래도 고치지 못했는데 웅이가 손톱을 뜯기 시작하니 나부터 조심하게 되더라. 육아는 한자어로 育(기를 육) 兒(아이 아)를 쓰잖아. 어린아이를 키운다는 뜻이야.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보니 육아를 통해 내가 자라는 것 같아. 育(기를 육) 我(나 아)인 것이지.


물론 엄마가 되지 않았어도 나는 계속 성장했을 거야. 어쩌면 직장에서 승진이 더 빨랐을 수도 있고 지금은 배우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서 미루고 있는 일본어에 이미 유창할지도 몰라. 더 능력있는 사람이 되려고 했을테지.


하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 같아. 부모가 되니 아이들이 따르기에 괜찮은 사람이고 싶거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더 나은 사람, 더 행복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게 되지.


아이들 재롱도 빼놓을 수 없어. 어린이집에서 배웠다며 작은 엉덩이를 씰룩씰룩하면서 동요를 부를 때면 아이돌 팬클럽에 가입하는 마음이 이해되고 슬금슬금 다가와 뽀뽀를 하고 갈 때면 연애할 때보다 더 심장이 두근거려. ‘무조건적인 사랑’은 자식에게만 가능하다고 하잖아. 부모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지만, 자식을 향한 사랑은 또 달라.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쉬운 건 부모가 되어 힘든 점은 구체적이라 임신을 고민 중인 너에게도 어렵지 않게 와닿을테지만, 부모가 되어 행복한 점은 추상적이야. 쉽게 공감하기 어렵지. 게다가 주변의 부모들은 행복보다는 피곤한 일상에 고단해 보여. ‘내 얼굴만 보고 판단하지마. 내 얼굴에는 티나지 않는 행복이 있어!’라고 주장하기엔 나도 부모가 되기 전엔 상상하지 못했던 행복감이니...


비혼인 지인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부모가 되면 더 힘들고, 더 행복하다면 더 힘들지 않고 더 행복하지 않겠다고. 지금에 만족한다고. 맞는 말이야. 나도 만약 부모가 되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임신을 다시 고민할꺼야. 지금이 행복하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또 다른 인생을 살아볼 수 있을테니까. 또 다른 종류의 행복을 경험할테니까. 이 사회에서 부모가 된다는 건 수많은 ‘핸디캡’이 생기는 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정말 부모가 되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고민을 하고 하고 또 한 뒤, 다시 부모가 될 것 같아. 부모가 되어 변한 내가 꽤 마음에 들거든.




이야기를 마칠 때 쯤 후배가 묻더군요.

“그래서 힘든 게 더 커요 행복한 게 더 커요?


음... 적어도 힘든 걸 묵묵히 감당할 만큼은 행복하다고 답했습니다.



▷ 엄마된 당신을 위한 인생설계도가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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