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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Dec 23. 2018

좋은 엄마라는 ‘섬’에 갇힌 것 같은 엄마들에게

둘째 결이가 첫 돌 즈음이었습니다. 웅이가 심한 감기에 걸렸었고, 결이가 이어 받아 옮았었고, 두 녀석이 다 나을 무렵 제가 물려받았었습니다. 아이 키우면서는 ‘내 병원’ 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집에 있는 상비약으로 버텼었습니다. 나흘이 지나도 나아질 기색이 보이지 않아 병원에 가기로 했습니다. 


38도 열이 계속된다는 말에 의사선생님은 수액을 처방하셨다가 아기띠에 안겨 있는 결이를 보시더니 ‘엄마들은 수액도 마음대로 못 맞죠. 오늘은 아이 때문에 어려울 것 같으니 다음 진료 땐 혼자 오세요.’ 라고 하셨습니다. 엄마들 다 똑같구나 싶어 씁쓸했던 기억입니다. 


병원에 다녀오면 나을 지 알았는데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의사선생님도 이상하다고 하셨고, 제 생각에도 왜 이러나 싶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의사선생님이 이런저런 질문을 하시더군요. 주로 저와 제 일과, 아이들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나자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너무 밀착되어 있어요. 

복직하시면 문제가 많은 부분 해결될 것 같아요.”


아파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던 참인데, 아이를 키우는 것 만으로도 버거워 이렇게 됐는데 복직을 하라니요. 게다가 병원에서 이런 조언을 받는 게 황당했습니다. ‘알겠다. 감사하다’고 인사드렸지만, 진료실을 나서며 조언을 지웠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복직을 했습니다. 의사선생님의 조언을 따른 결정도 아니었고, 복직을 권한 이유도 여전히 모른 채였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4년이 지난 지금은 의사선생님이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알겠습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좋은 엄마가 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육아서를 끊임없이 읽고, 마음 속으로 시뮬레이션해가며 연습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내 아이 앞에선 머리로 익히고 연습한 그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알면서 왜 안 되는 건데!’ 나 스스로에게 짜증이 났습니다.


저 같은 상황에 대해 심리학자 이자벨 피이오자는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좋은 엄마’가 되려는 노력은 일부이며,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을 찾고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가령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면 ‘내가 더 참았어야 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인내심이 부족할까’ 자책하고 ‘더 노력해야겠다’ 다짐하는 것보다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화를 내게 된 ‘진짜 이유’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돌아봤습니다. 전 아이들을 재울 때 종종 화가 납니다. 아이들이 금방 잠드는 날은 문제가 없는데, 책을 읽고 오늘 하루 수고했다며 안고 뽀뽀를 나누고 침대에 누웠는데도 말똥말똥한 날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서 자야 내일 일어나서 같이 놀지’ 타이르다가 점점 목소리에 힘이 들어갑니다. 결국 ‘왜 안 자! 잘 시간 훨씬 지났잖아!’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깜짝 놀란 남편이 달려와 무슨 일이냐고 묻고, 저는 ‘애들이 아직도 안 자’ 씩씩댔었습니다. 


아이들이 안 자는 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잠들어야 남은 집안일을 하고, 계획한 일을 할 수 있는데 아이들이 잠들지 않으니 할 일들이 떠올라 조바심이 났고 화를 내게 된 것이지요. ‘진짜 이유’를 알게 된 뒤로는 아이들과 같이 자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을 재우는 게 아니라 같이 자는 겁니다. 해보니 아이들이 먼저 잠드는 날도 있고 제가 먼저 잠드는 날도 있습니다. ‘왜 안 자는거야!’ 소리지르는 날은 줄었습니다.


그렇다고 ‘할 일’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아이들이 잠든 뒤 집안일은 여전합니다. 아이들과 남편이 손을 더 보탰고 당장 급한 게 아니라면 일단 자고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하기도 했습니다. 올빼미형 일과를 새벽형으로 바꿨습니다. ‘화가 없는 집’을 위해 온 가족이 조금씩 변했습니다.



이자벨 피이오자는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아이를 사랑하면 된다’ ‘엄마가 잘 하면 된다’처럼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복잡한 역학 관계들이 얽혀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엄마가 되려면 무엇 무엇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하기만 하면 된다’ 식의 조언은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얽혀 있는 역학 관계를 파악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리고 그 역학 관계에는 부모의 신체적 정신적 상태, 사회적인 분위기, 주변의 지원, 부모의 어린 시절 기억 등이 모두 작용합니다. 


공감합니다. 내가 피곤하지 않을 때, 내가 스트레스가 없을 때는 아이에게 무한 미소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덜 피곤하려고 하고 스트레스를 그 때 그 때 풀려고 합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려고 합니다.




내가 ‘나쁜 엄마’라고 느껴질 때면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도 합니다. 정말 나쁜 엄마인 것인지, 사회에서 말하는 좋은 엄마의 기준과 다른 것 뿐인지를 구분하려고 합니다. 


돌이켜보면 엄마라는 자리가 더 버거웠던 건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믿음때문이었습니다. 내 상황에 상관없이, 내 컨디션에 상관없이 아이 곁에 머물려고 했습니다. 아파도 아이 옆에 있었고, 마음이 시끄러운 날도 아이 옆에 머물며 억지로 웃었습니다. 그럴 땐 몸은 같이 있었지만 마음까지 같이 있진 못했습니다.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지 않습니다. 


이제 다르게 생각합니다. ‘건강한 엄마가 아이를 돌봐야 한다’고요.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한가 살피고 건강함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만약 건강하지 않다면 다시 건강해지는 것을 우선으로 삼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복직하면 문제가 많은 부분 해결될 거라던 의사선생님의 조언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열이 올라서도 아기띠를 풀지 않았지만 의사선생님 눈에는 그런 제 가 ‘좋은 엄마’보다는 미련해 보였을 겁니다. 그리고 건강하지 않다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을 겁니다.

당시의 전 아이와 한 몸처럼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게 의사선생님 눈에도 보였을테니 아이와 ‘건강한 거리’를 유지할 방법으로 복직을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복직을 하고 (새로운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만) 많은 부분이 해결됐습니다. 아이와 떨어져 있으니 나를, 내 육아를 돌아볼 시간이 생겼고요. 반성할 부분은 반성하고 칭찬할 부분은 칭찬할 여유로 이어졌습니다. 아이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진 상태로 아이를 생각하며 ‘내 새끼’가 아닌 ‘2살 아이’로 볼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내가 곁을 지키지 않아도 웃으며 하루를 보내는 아이를 보며 (슬쩍 아쉽기도 하고) 기특하고 고마웠습니다. '좋은 엄마'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자 진짜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었습니다. 


+ 『엄마로만 살지 않겠습니다』에는 또 다른 이유로 저에게 복직을 권하셨던 의사선생님이 나옵니다. 두 분 다 저와 친분이 두터운 분들도 아니셨고, 그저 의사-환자였을 뿐인데 그런 조언을 주셨습니다. 당시엔 ‘지나친 조언’ 아닌가 싶었는데 지금은 이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생각을 바꿀 수 있었고 ‘건강한 엄마’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엄마라는 역할을 넘어 ‘엄마가 된 내 삶’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저도 엄마들께 이 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분명 내가 가장 건강하게 육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 중의 하나는 엄마의 삶을 지지하는 사회 분위기이고, 그 분위기에 저도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진짜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나에게 어떤 환경이 필요한가를 생각해 보세요. 의외의 답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 제가 휴직 중이라 두 분 모두 복직을 권하셨을 겁니다. 더 정확한 조언은 아마 엄마가 됐다고 아이만 바라보려고 하지 말고, 엄마라는 역할에 나를 한정짓지 말고, 나를 유지하라는 말씀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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