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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Dec 09. 2019

아이와 나 사이 ‘건강한 거리’,
어떻게 유지할까

부모성장문답 part.1

첫째가 처음 어린이집에 등원하던 날, 눈물이 그렁그렁해 선생님 손을 잡고 교실에 들어가는 모습이 마음에 걸려 한참 동안 문 앞을 서성였었습니다. 저와 같은 이유로 꽤 많은 엄마가 어린이집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현관문 밖으로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면 서로 ‘우리 아이인가?’ 웅성댔었습니다. 


하루는 원장선생님께서 나오셨습니다. “아이들 모두 안정되었고 잘 놀고 있어요. 어머니들 여기 계실 필요 없습니다. 많이 힘들어하는 아이가 있으면 전화드릴 테니 안심하시고 집으로 돌아가세요” 마침 엄마들끼리 “울면서 들어가도 웃으면서 나오더라. 막상 교실에 들어가면 울음 뚝 그친다더라”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아이가 주 양육자와 떨어질 때 불안해하는 반응을 ‘분리불안’이라고 합니다. 어린이집에 들어가며 우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반대로 주양육자의 분리불안도 있습니다. 아이와 떨어질 때 주양육자도 불안해하는 것이죠. 물론 아이의 분리불안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주양육자의 분리불안도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한 몸처럼 붙어 있다가 떨어지는 거니 당연하지요. 하지만 과도한 분리불안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듯 주양육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부모와 아이 사이, 경계선이 허물어질 때 


“왜 나는 사랑에 빠지면 ‘나’를 잃어버릴까? 남자를 위해 자기를 포기하면 그를 사랑할 ‘나’를 잃어버린다. 그를 사랑하기 전에 나를 사랑하는 힘을 키워라!” 


서점에 갔다가 눈에 띈 《자존감 없는 사랑에 대하여》 표지에 적혀있던 문구입니다. 연애할 때 여성의 심리를 다룬 책인데 ‘왜 나는 아이를 낳고 ‘나’를 잃어버린 것 같을까?’ 고민하던 저에게는 사랑에 빠진 여자가 아니라 아이에게 푹 빠진 엄마의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아이를 위해 자기를 포기하면 아이를 사랑할 나를 잃어버린다. 아이를 사랑하기 전에 나를 사랑하는 힘을 키워라’ 남자 대신 아이를 넣어도 문장은 완벽하게 뜻이 통했습니다.  

저자이자 심리치료사인 비벨리 엔젤은 이 책에서 여성들은 사랑에 빠지면  ‘자기’를 잃어가는 ‘자기 상실 증상(Disappearing Woman syndrome)’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독일의 정신분석학자인 어니스트 하트만이 주장한 ‘자아 경계’라는 개념을 빌어 설명했는데요. 개인과 개인 사이의 경계가 약한, 즉 ‘약한 경계’가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경계가 약하면 남과의 경계에 빠르고 깊숙이 들어가고 자의식이 사라지게 됩니다. 


정신경영아카데미 대표인 문요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도 ‘바운더리’라는 개념을 들어 비슷하게 설명합니다. 바운더리는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자아와 대상과의 경계이자 통로’로 몸으로 치면 피부와 같습니다. 피부를 통해 나와 외부의 경계를 확인하듯 자아도 ‘바운더리’가 있어 자신의 심리적 형체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즉, 바운더리가 있어 나와 너, 내 것과 네 것, 내 생각과 네 생각 등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합니다.



하트만이 ‘약한 경계’를 설명한 것처럼 바운더리도 ‘희미한 바운더리(vogue boundary)’가 있습니다. 바운더리가 희미하면 자기 세계가 약하고 외부 세계에 휩쓸리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에도 지나치게 관여하기 쉽고요. 반대로 바운더리가 경직(경직된 바운더리(rigid boundary))되어 있다면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게 됩니다. 둘 다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보호할 만큼 충분히 튼튼하되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친밀하게 교류할 수 있을 만큼 개방적”인 건강한 바운더리가 필요합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부모가 되고는 아이가 잘 때 자고 깨면 깨고, 아이가 웃으면 웃고 울면 우니 내가 아이 같고 아이가 나 같았거든요. 아이와 나의 경계를 허물고 기꺼이 한 몸이 되었습니다.  


문제라고 느낀 적 없습니다. ‘김아연’과 ‘웅이 엄마’, ‘결이 엄마’를 맞바꾼 것 같아 울적했지만 엄마가 됐으니 당연히 감내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자신과 엄마를 한 몸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도 생후 5~6개월부터는 엄마와 자신을 독립적인 개체로 인식하는 분리개별화를 시작합니다. 아이가 자람에 따라 부모에게도 분리개별화가 필요합니다. 지속적으로 밀착되어 있는 것은 아이에게도 득이 되지 않습니다. 문요한 전문의의 말처럼 “가까워질수록 결국 상대가 상대의 모습대로가 아니라 내 기대대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욕구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엄마와 아이는 한 몸이 되는 것이 아닌, 건강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건강한 관계를 맺으려면 건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건강한 거리에는 ‘자아 상실 증상’에 시달리지 않을 건강한 바운더리가 필요하고요. 아이 앞에서 희미해졌던 바운더리를 다시 건강하게 세우기로 했습니다.   



#건강한 바운더리를 위한 다섯 가지 능력 


문요한 전문의는 건강한 바운더리를 가지려면 다섯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부모 입장에서 재해석해 실천하고 있습니다. 



1_관계조절능력 

EBS <다큐프라임 – 마더쇼크>에서 모성애에 관한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연구팀은 엄마들에게 특정 단어를 제시하며 자신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면 네,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아니요 버튼을 누르게 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타인, 그리고 본인의 아이를 제시하며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뇌 스캔을 통해 어느 영역이 활성화되었는지를 살폈죠. 그랬더니 엄마 자신을 떠올릴 때의 뇌와 타인을 떠올릴 때의 뇌는 다른 영역이 활성화되어 있었습니다. 반면 본인의 아이를 떠올릴 때는 자신을 떠올릴 때와 같은 영역이 활성화되었고요. 즉, 엄마는 아이를 ‘또 다른 나’인 것처럼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요. ‘아이는 아이다. 또 다른 내가 아니다’ 수시로 되새깁니다. 아이의 성공에 아이보다 더 기뻐하지 않고 아이의 실패에 아이보다 더 속상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성공에 가장 기뻐야 할 사람은 아이, 실패에 속상해야 하는 사람도 아이니까요. 특히 아이가 실수했을 때 ‘이 실수를 조카가 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가정해 봅니다. 조금 더 이성적으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2_상호존중감 

남편과 저는 180도 다른 사람입니다. 저는 새벽형 인간 남편은 올빼미형 인간이고 저는 떡볶이의 떡만 먹고 남편은 어묵만 먹습니다. ‘이건 내가 좋아하니까 남편은 싫어하겠다’ 생각하면 십중팔구 맞습니다.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결혼해 같이 사는 게 신기하다는 지인들도 있지만, 우리 부부는 서로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서로를 보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이런 방법도 있어’ 배울 수 있어 좋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저의, 저는 남편의 ‘옵션 B’가 되어 줍니다.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을 때 서로에게 물어보면 생각하지 못한 방법을 알게 될 때가 많거든요.  


아이와의 관계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도 중요하고 너도 중요하다’ 아이들과 자주 외는 말입니다. ‘내 생각도 중요하고 네 생각도 중요하다’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생각을 물으며 해주는 말입니다. 내 생각이 아이의 생각보다 낫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생각이라고 가볍게 여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동등한 무게로 바라볼 때 저는 동등한 방법을 하나 더 얻고, 아이는 존중받는다고 느낍니다. 문요한 전문의가 “나와 너를 존중하되 우리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건강한 관계”라고 말한 것처럼 각자를 온전한 한 사람으로 존중할 때 우리의 힘이 세집니다.  




3_마음을 헤아리는 능력 

어렸을 때 부모님께 “엄마는 나를 낳아놓고는 어떻게 내 마음을 몰라?” 투정을 부린 적이 있습니다. 엄마는 “자식 겉만 낳지 속까지 낳는 건 아니다”라고 하셨죠. 부모가 되니 그 말의 뜻을 알겠습니다. 내 속에서 나오긴 했는데 아이 속을 모르겠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그래서 더 궁금하고요. 


부모가 되기 전에는 부모란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부모가 된 지금은 부모란 아이를 가장 궁금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부모님이 제 마음을 물어봐주실 때 감사했습니다. 관심이 있는 만큼 궁금한 것이니까요. 


‘기분이 어때?’ 자주 묻습니다. ‘오늘 뭐 했어?’는 묻지 않습니다. 마음은 궁금해하되 일상은 관찰할 때 더 많은 힌트를 얻게 되는 것 같거든요. 마음을 물을 때 아이의 마음을 넘겨짚지 않고 일상은 관찰할 때 간섭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4_갈등을 회복하는 능력 

태어나 지금까지 저와 가장 많이 다툰 사람은 두 살 터울의 언니입니다. 태어나 지금까지 가장 많은 추억이 있는 사람도 언니입니다. 언젠가 한 번은 우리는 그렇게 많이 싸우면서도 부모님이 각자 방을 만들어 주신다고 해도 왜 굳이 같은 방을 썼을까를 두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싸우면서도 방을 같이 쓰겠다고 고집했다기보다는 같은 방을 쓰니 부딪힐 일이 많았던 것뿐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같은 방을 썼으니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화해할 기회도 많았다고요.  


부모와 자식은 더 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습니다. 가까운 사이인 이상 갈등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잘 회복하는 방법을 익혀두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갈등이 생겼을 때 무조건 부모 말에 따르게 하는 것도 반대로 아이 뜻에 무조건 맞추는 것도 갈등을 회복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가족회의를 통해 부모와 아이 모두 흡족하게 갈등을 풀어내려 합니다.   



5_솔직한 자기표현 

아이와 건강한 바운더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이가 ‘또 다른 나’가 아니라는 것을 주지하는 동시에 나는 부모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한 명의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어린 아이의 경우 아기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특성상 부모의 기분이 좋으면 내 덕분에 좋고, 부모의 기분이 나쁘면 나 때문에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불안해하죠. ‘엄마가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어’, ‘엄마‧아빠가 의견이 달라서 해결하는 중이야’ 정확한 이유를 말할 때 아이가 엉뚱한 불안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희미한 바운더리’였을 때 문제 중 하나는 아이 위주로 생활을 하다 체력에 부치면 어느 순간 돌변해 바운더리를 철옹성처럼 쌓았다는 것입니다. 나를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 상태를 세심히 살피고 아이에게도 알리면 아이가 내 영역을 존중하기 시작합니다. 가령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엄마 머리가 아픈데 움직이면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솔직담백하게 말하면 어렸을 땐 “내가 호 해줄까?” 묻더니 조금 더 자라서는 “그럼 움직이지 말고 책 읽어줘”라고 했었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침대 가서 누워있어. 나 혼자 그림 그릴게”라는 식으로요. 내 한계까지 가지 않기 때문에 돌변할 일도 없습니다. 아이가 상처받을 일도 내가 자책할 일도 줄어듭니다.  


아이는 내 소유물이 아니라 
독립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아이를 본인의 삶의 주인으로 존중하며, 
아이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아이와의 갈등을 현명하게 풀어나가려고 합니다. 
이 모든 바탕에는 
아이만이 아닌 ‘나와 아이’를 동시에 두고요. 
그렇게 아이와 나 사이의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이 글은 얼마 전 출간한 <왜 나는 매일 아이에게 미안할까> 책에서 가져왔습니다. 부모가 되면 한 번쯤은 맞닥뜨리는 질문 17개와 답을 정리한 책,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책 정보는 아래 링크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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