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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Dec 18. 2019

오늘도 아이에게 미안했다면, ‘부모 미안함’ 덜어내는법

결혼식 전날이었습니다. 밤늦도록 잠이 오지 않아 베개를 들고 안방 문을 두드렸습니다. 엄마도 잠이 오지 않던 참이었다며 팔베개를 해주셨습니다. ‘결혼 생활이 생각과 다를 수 있다. 마냥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엄마 딸이 동화 속 이야기를 믿고 결혼하는 줄 아냐. 예상하고 있다’며 티격태격하던 중 갑자기 엄마가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예쁘게 자라 시집을 간다고 하니 고맙고 미안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안방에 간 건데 쑥스러워 엉뚱한 말만 하던 참이었습니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마음에 없는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만큼 키웠으면 자랑스러워하면 되지.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엄마가 가진 게 많았으면 더 누리게 해줬을 테고, 아는 게 많았으면 더 가르쳤을 테고, 인내심이 더 컸으면 화를 덜 냈을 텐데 부족한 게 많았으니 미안하지.” 

“넘치게 많이 받았어. 미안해하지 마.”  


베개를 들고 방으로 돌아와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누구 덕분에 이렇게 컸는데, 고마운 것투성인데… 나중에 부모가 되면 나는 내 자식에게 미안해하지 말아야지 다짐했습니다.  


그 다짐은 부모가 된 순간 깨졌습니다. 30시간 진통 끝에 첫째를 낳으며 “힘 잘 주는 연습 좀 할걸. 엄마가 힘을 잘 못 줘서 네가 고생했다” 사과부터 했으니까요. 그런 저를 보고 친정엄마는 “너도 고생했는데 자식 고생한 것만 보이지? 그래서 ‘자식 둔 죄’라고 한다. 자식 앞에 미안하지 않은 부모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미안함에서 벗어나려면… 

딸 동생 누나 친구 며느리 아내 동료 직장인 부모…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주어졌던, 그리고 주어진 역할들입니다. 그 중 가장 잘 해내고 싶은 역할을 꼽으라면 주저 할 것 없이 부모입니다. 가장 자신없는 역할을 꼽으라면 그것도 부모이고요. 


참 이상했습니다.  부모가 되고는 잘 하고 싶은 마음만큼 최선을 다하는데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더 노력할 걸’ ‘한 번 더 참을 걸’ 후회가 몰려왔습니다. ‘학창시절에 이만큼 노력했으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을텐데’라는 생각에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가 ‘부모노릇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긴 숨이 나왔습니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만큼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하는 것이 미안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왜 나는 매일 아이에게 미안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미안하다고 자책하고 반성하기 바빴을 뿐 미안함을 들여다 볼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미안함은 어디서 시작된 것이며 왜 계속되는지, 어떻게 끝낼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아이에게 미안한 감정도 불편했지만 아이에게 ‘미안해하는 부모’로 기억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육아서를 펼쳐들었습니다. 전문가마다 육아서마다 강조하더군요.


죄책감에서 벗어나라


한숨이 나왔습니다. 몰라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죄책감이고, 어떻게 해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몰라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둘째가 태어나 생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선천성갑상선기능저하증 진단을 받았을 때 그랬습니다. 뱃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이에게 질환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질환이니 괜한 죄책감에 시달리지 마라”고 하셨지만 그래서 더 내 탓 같았습니다. 한창 속앓이를 하고 있을 때 ‘40년 선배 부모’인 시어머니께 제 마음이 보였나 봅니다. 어느 날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느끼는 것이 죄책감이다. 네 책임이 아닌 일에 괜한 죄책감 느끼지 말고 부모로서 할 일에 집중하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부모인데, 내 자식과 관련된 일에 내 책임이 아닌 부분이 있다는 말씀이 냉정하게 들렸습니다. 야속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말씀 덕분에 차분해질 수 있었습니다. ‘내 책임이 아닌 부분이 있다는 말’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말과 같았으니까요. 


기질, 유전적인 부분 등 타고난 것이 있습니다. 타고난 것은 아무리 애써도 바꾸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노력을 하는 게 최선입니다. 시어머니의 ‘부모로서 할 일에 집중하라’는 말씀은 그런 뜻이었을 것입니다. 책임을 회피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로서 진짜 해야 할 일’만  추려도 차고 넘치니 그 일에 에너지를 모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죄책감 ≠ 무력감 ≠ 수치심

둘째가 건강히 자라기 위해 부모인 제가 할 일은 하루에 한 번씩 갑상선호르몬제를 먹이고,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면 병원에 연락하는 것이었습니다. 약을 잘 먹였고, 검사 예약일도 잘 맞춰 갔습니다.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죄책감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했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니 다른 감정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 느낀 감정은 죄책감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아픈데도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허탈함. 즉, 스스로 힘이 없음을 알았을 때 드는 허탈하고 맥 빠진 듯한 느낌인 무력감이었습니다. 


죄책감은 수치심과 혼동되기도 합니다. 가령 아이의 손이 닿는 곳에 뜨거운 커피를 두어 아이가 화상을 입었다면 그건 부모의 부주의로 인한 일입니다. ‘왜 아이 곁에 커피를 뒀을까’ 반성하고 다음부턴 아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면 됩니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보통의 경우 ‘아, 뜨거운 커피를 아이 손에 닿는 곳에 두다니, 실수했구나’ 행동을 반성하기보다는 ‘나는 부모라는 사람이 왜 이렇게 생각이 짧지’ 자책으로 이어질 때가 많습니다.  



조지 메이슨대 준 프라이스 탱니(June Price Tangney) 심리학과 교수는 후자를 수치심으로 구분합니다. 죄책감과는 다릅니다. 죄책감이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면 수치심은 자기(Self)에 초점을 맞춥니다. 죄책감이 "나는 잘못된 행동을 했다"라는 감정이라면 수치심은 "나는 나쁜 사람이다"라는 감정이라는 겁니다. 죄책감을 느낄 때는 반성하고 개선안을 고민하는 반면 수치심을 느끼면 잘못을 저지른 나에게 분노합니다. 한 번 수치심을 느끼면 헤어나오기도 쉽지 않습니다. 확대해석해 자기 비난으로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막연한 미안함 = 더 잘 하고 싶은 아쉬움

막연히 미안할 때도 있습니다. 무엇이 미안한지부터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더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해서, 더 많이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더군요. 반대로 물었습니다. ‘지금은 좋은 부모가 아닌가?’ 자신있게 ‘좋은 부모지’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부모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노력하고 있으니 조금씩 나은 부모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더 많이 해주면 좋은 부모가 될까?’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진 못했지만 그래서 부모님을 원망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사과 한 알을 나눠먹던 따뜻한 환경이 감사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더 좋은 부모’가 되고 싶고 ‘더 많이’ 해주고 싶어 미안한 것은 잘못해서 미안한 것과는 달랐습니다.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아쉬움이었습니다. 


부모 8년 차, 여전히 아이에게 미안할 때가 있습니다. 달라진 것은 미안한 감정에서 무조건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무력감과 수치심 등 다른 감정들과 구분한 뒤 진짜 죄책감은 책임감으로 전환합니다. 그래도 미안할 땐 더 잘 하고 싶구나, 스스로를 토닥입니다.  



부모가 되어 마주한 감정과 고민들에 대한 17가지 성장문답, 

<왜 나는 매일 아이에게 미안할까>에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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