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독해지거나, 포기하거나"

워킹맘 새벽2시의 기록

by 틈틈이

"오늘 뭐 먹을까? 샌드위치? 곰탕?"
"곰탕 좋아요!"
"그래. 그럼 곰탕 먹자. 사람 많으니까 좀 서두르자"

오늘 점심은 우리첫째와 동갑내기 아들을 키우고 있는 친구 워킹맘와 먹기로 했습니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곰탕에 친구가 파를 듬뿍 넣습니다.

"우와 너 파 정말 좋아하는구나."
"사실 곰탕이 싫어서 그래. 파랑 후추 잔뜩 넣으면 그나마 먹을만 하거든"
"엥? 난 네가 좋아하시는 줄 알고 곰탕 골랐는데... 샌드위치 먹을껄 그랬네"
"아냐. 너 몸보신 시켜주려고 밥 먹자고 한걸. 난 괜찮아"
"근데 나도 곰탕 싫어해. 너 몸보신 하라고 고른거야."

참 싫어하는 곰탕인데 끝까지 먹었습니다. 친구도 파를 밥 한공기만큼 넣은 곰탕을 싹 비웠습니다. 독감에 걸려 열이 나는 아이를 떼어놓고 출근한 워킹맘 둘은 그렇게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얼마 전 친구는 심리상담을 받았다고 합니다. 5살 된 아들이 아직 기저귀를 떼고 싶어하지 않고 분리불안도 심한 것 같아 걱정이어서요.

심리상담은 아이와 부모가 같이 받는게 좋습니다. 부모의 양육태도가 아이를 좌우하니까요. 친구 또한 같이 상담을 받았다고 하네요. 아이 이야기를 쭉 들은 상담사는 아이를 내보내고 엄마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답니다.


이제 엄마 마음 속 이야기 해봐요.



친구는 눈물이 활깍 쏟아졌다고 합니다.

"방금 전까지는 방실방실 웃고 있었잖아요. 아무도 없으니 마음의 ㅁ자만 꺼냈는데도 눈물을 흘리네요."

회사에서는 회사라 웃고 집에서는 아이가 있어 웃고. 아이 돌봐주시는 친정엄마 앞에서는 친정엄마 앞이라 웃고... 외로워도 슬퍼도 캔디처럼 웃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도 상대가 없습니다.


친구가 속한 부서는 특성상 이틀에 한번 새벽까지 야근을 합니다. 부서에는 친구가 유일한 여자라 워킹맘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친구의 남편도 밤샘근무가 많은 직업입니다. 그나마 친정엄마가 아이를 키워주셔서 다행이지만 여기저기서 삐그덕 거립니다.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 끝이 보이지는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하나도 제대로만족시키지 못하는 것 같아 기운이 빠집니다. 어쩌겠습니까.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버.티.는 수밖에요.

얼마 전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의 기자회견을 봤습니다. 삼성전자 최초의 고졸 여성 임원인 양향자 상무는 이번 총선에 출마하며 워킹맘의 고충을 정치권에서 풀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우리 사회가 직장맘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독해지거나 하나를 포기하라'는 것 말고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가정에 이해를 구하고 타협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포기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사회에서 워킹맘으로 살아남으려면 독해지는 것 뿐이네요. 워킹맘으로 살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더 독해져야 할까요.

매거진의 이전글엄마의 '아픈 손가락'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