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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아픈 손가락'이 됐습니다.

by 틈틈이

설연휴가 끝났습니다. 엄마아빠가 다섯밤이나 회사에 안간다는 말에 설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첫째는 ‘엄마 아직 네 밤 남았지?’ ‘엄마 이제 몇 밤 남았어?’ 물으며 시간이 가는 걸 아쉬워했고. 엄마 품이 아니면 안겨서 자지 않는 둘째는 매일 그네에서 잠들다 설연휴 내내 엄마 품에서, 엄마 등에서 잤습니다. 자면서도 ‘오늘까지 마무리하겠습니다’ 잠꼬대하던 저도 이번 연휴에는 일을 놓고 엄마 아내 며느리 딸로만 지내려 노력했습니다.


명절은 보통 때와 같았습니다. 시할머니댁에 인사드리고 시댁에 갔다가 친정에 가면 명절은 언제나 짧습니다.


친정에 화장을 하고 갔다는 게 유일한 차이점이랄까요. 언제나 민낯으로 갔는데 이번엔 거울을 보니 입술 주변 물집 피부트러블 다크서클... 얼굴에 피곤함이 덕지덕지 붙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복직하고는 딸 몸 상할까봐 걱정하는 엄마한테 이 얼굴을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BB크림을 두껍게 발랐습니다.


연극 '친정엄마'의 한 장면


아이고 우리딸 화장도 곱게 하고 왔네. 반기시는 엄마와 수다도 떨고 애들 재롱도 보고 있으니 여기가 천국입니다. 그런데 긴장이 풀렸는지 몸살이 오는 것 같습니다. 열이 오르는 게 느껴지는데 엄마 앞이라 괜찮은 척 합니다.


그리고 밤에 자는데 열이 꽤 오릅니다. 춥고 온몸이 아프네요. 엄마 몰래 아프려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만 귀신을 속여도 친정엄마는 못 속입니다. 잠들었는데 이마에 엄마 손이 느껴집니다.


"00야, 엄마가 손주들 키워주면 니가 좀 편할까. 근데 엄마도 늙어서 자신이 없어. 돈 때문이면 차라리 엄마가 용돈 줄게. 회사 그만 둬라. 엄만 못 보겠다."


울컥 목이 메입니다. 짜증이 난 척 퉁명스럽게 답합니다.


"누가 돈 없어서 다니나. 힘든 시기 다 지났어. 걱정 마."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엄마의 말이 떠오릅니다. "나중에 니 딸이 너처럼 산다고 생각해봐라. 너도 회사 그만 두라고 할꺼다" 끝내 화내셨던 엄마가 떠올라 죄송합니다.




첫째 웅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고, 복직 즈음해서 사표를 두고 고민할 때 엄마는 당연히 복직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엄만 너희 셋 키우는게 일이었고, 너희 셋의 엄마라 행복한데 지금와서 돌아보면 허무할 때가 있어. 품안의 자식이란 말이 맞더라. 그러니 너도 너 먼저 생각해'라고 하셨죠.


출근길에 웅이가 울어서 저도 같이 울면서 출근 할 때, 웅이가 아픈데도 출근하며 사표를 내고 싶다고 엄마한테 하소연할 때, 엄마는 그런 말 말라며 단호했습니다.


둘째 결이를 낳고 같은 고민을 하자 엄마는 마음을 바꿨습니다. '애들 잘 키우는게 돈 버는거다. 애들이 엄마 찾을 때 옆에 있어라'며 사표를 내라고 하셨죠. 웅이 때는 회사 나가라고 했으면서요.


"네가 그렇게 힘들 줄 몰랐어. 엄마 욕심에 네가 아까웠는데 네가 울 때마다 엄마도 속으론 같이 울었다"


둘째를 가졌다고 이야기했을 때, 제가 부탁드린 적도 없는데 엄마는 '손주들을 내가 키워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고 하셨습니다. 체력적인 부담으로 마음을 접으며 저한테 참 미안했다고 하십니다. 엄마 딸이 일하고 싶어하는 걸 알기에, 도와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까요. 애 하나 엄마로 회사에 다니는 것도 힘들었는데, 애가 둘이 되면 내 딸 몸도 맘도 다 상하겠다 싶으셔서 차라리 사표를 내라고 하신 겁니다.


엄마의 예상대로 저는 복직하고 자주 아픕니다. 여느 워킹맘들이 그렇듯 영양제와 병원을 달고 살죠. 하루 24시간은 바꿀 수 없는데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잠 잘 시간 먹을 시간을 줄일 수 밖에 없고, 몸은 수시로 반응합니다. 친정엄마가 걱정하시는 걸 알기에 매번 '괜찮다' '할 만 하다'고 합니다. 피곤하고 쉬고 싶으면 친정으로 달려가곤 했는데, 복직하고는 컨디션 좋은 날만 친정에 갑니다. 그래도 엄마는 매번 알아채고 매번 걱정합니다. 워킹맘이 되고 전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 됐습니다.


3.4kg 목도 못 가누는 갓난쟁이를 30대 중반 어른으로 잘~ 키웠준 것만으로 충분한데, 손주를 키워주지 못해 언제나 미안해 하는 엄마에게 저도 미안합니다. '올해부턴 내가 효도 좀 해볼게. 내 효도 다 받으려면 100살까지는 살아야 할 거야' 농담처럼 진담을 했습니다. 엄마는 ‘부모에겐 자식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가장 큰 효도다. 건강하고 행복하게만 살아라' 라고 하시네요. 뜨끔. 엄마에게 자식이란 기승전'애기'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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