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연: 육아를 하다보면 머리로 알고 있는 건 똑같은데 어떨 땐 화를 내게 되고 또 어떨 땐 너그럽게 대하곤 해요. 왜 다를까요?
그래: 나와 아이의 상태가 언제나 똑같은 건 아니니까요.
아연: 알고 있으면 같은 상황에서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그래: 육아를 머리로만 하는 거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육아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죠. 또 육아에는 지식과 더불어 돈과 상품 같은 물질적인 자원 그리고 환경도 필요해요. 환경은 양육자의 신체적 에너지와 심리적 에너지를 포함합니다.
가령 아이가 딱히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일상적인 행동을 해도 유독 거슬리고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요? 그럴 때 아이를 다그치거나 ‘내가 문제’ 라고 단정짓지 말고 신체적 에너지부터 살펴보세요. 피곤할 때 예민해지잖아요. 잠깐이라도 쉬면서 나를 충전하면 괜한 일로 아이와 충돌하지 않을 수 있어요.
아연: 부모가 되고 ‘아프지 말아라. 네가 아프면 아이를 돌볼 사람도 없다'는 말을 종종 들어요. 썩 기분 좋게 들리는 말은 아니지만 저 스스로도 내가 아프면 육아에 큰 영향을 주는 걸 아니까 건강에 신경을 쓰고 있어요.
그래: 육아나 다른 그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는 잘 돌봐야 하는 존재라니까요.(웃음) 이렇게 부모인 나를 무엇 무엇을 해내야 하는 사람으로 대하는 데 익숙하다보니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건 뒷전으로 미루기쉬워요.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굉장히 낯선 일이 되어버려요.
몸을 돌보는 것뿐 아니라 마음을 돌보는 건 더 더욱 그래요. 심리적 에너지가 고갈되어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지요. 심리적 에너지는 육아지식을 아무리 쌓아도, 영양제를 아무리 먹어도, 잠을 충분히 자도 채워지지 않아요. 충분한 이해와 지지를 받을 때 채워져요.
아연: 지지요? ‘육아를 잘 하고 있다. 좋은 엄마다'와 같은 칭찬이요?
그래: 칭찬과는 달라요. 지금 말하는 지지는 속 마음을 알아주고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거예요. 지난해 초에 한 국제NGO의 의뢰를 받아 아동 학대 경험이 있는 부모들을 대상으로 재학대를 방지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어요.
아연: 아동학대 부모를 위한 부모교육인 거네요. 아동학대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알려주는 게 필요했겠어요.
그래: 그 부분도 중요하긴 해요. 그래서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아동학대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행동을 변화시키고 양육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시키는 쪽으로 접근하곤 해요. 양육 지식이 부족해서, 올바른 양육법을 몰라서 학대를 했다고 보는 거죠.
물론 그런 경우들도 있어요.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체벌을 ‘사랑의 매’라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실제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때리고 싶지 않았는데, 때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순간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벌어지는 경우가 상당수에요. 이 경우 체벌은 올바른 훈육방법이 아니고 아이에게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행사하면 안 된다고 아무리 설명한들 실제 상황에선 큰 효과로 이어지기 어려워요.
아연: 맞아요.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조절이 안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저 자신에게 더 화가 나요. 모르면 배우면 되는데, 아는데도 안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 심리적 에너지가 고갈되어 이성이 작용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을 수 있어요. 뇌과학적으로도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전두엽 기능이 마비되고 감정과 충동 중심의 변연계는 흥분도가 높아져요. 그럴 때 나를 다그치고 자책하면 심리적 에너지는 더 바닥이 나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되지요. 어떤 분이 ‘우아하게 화를 내고 싶다’고 표현한 게 기억나는데 내 감정에 매몰되어 폭주하지 않고 우아하게 행동하려면 우선 심리적 에너지가 잘 충전해줘야 해요.
학대행위를 한 부모들 중 상당수는 그런 행동이 옳지 않다는 걸 몰라서라기 보다는 심리적 에너지가 바닥나서 나도 모르게 아이를 때리거나 방임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재학대 방지 프로그램은 먼저 심리적 에너지를 충전하는데 초점을 뒀어요.
아동을 학대하는 일이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지식 뿐이 아니라 그 지식을 실천할 힘도 함께 키워줘야 해요. 부모들도 때리고 싶지 않았고, 때리고 나서 아파해요. 단지 그 부분을 드러낼 염치가 없고 비난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정당화 하기 위해 ‘잘 가르치려고 그런거다’라고 우기거나 버티는 거죠. ‘때리고 싶지 않으셨을 텐데요.’라는 말에 많은 분들이 눈물을 펑펑 쏟아요. 정말 때리고 싶지 않았는데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요. 진짜 이야기는 거기부터 시작됩니다.
충분한 이해와 지지를 받으면 심리적 에너지가 채워지니 스스로 상황을 돌아 볼 힘이 생겨요. 내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왜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는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가요. 자극점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에 화가 나고 불안해졌는지를 살펴보면 부모 스스로 아이가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깨우치세요. 아이를 잘 보살피고 싶은 부모성의 발현을 막은 게 무엇인지를 찾는 거죠. 그리고 변화가 시작됩니다. 힘이 생기니 스스로 깨우치고 스스로 변하는 거예요.
아연: 심리적 에너지가 고갈돼 조절이 안 된거니 심리적 에너지를 채워주는 거군요. 머리로는 아는데 행동은 다르게 나갈 때, 제가 해야 할 일도 심리적 에너지를 살피는 거겠어요.
그래: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건 ‘때리고 싶지 않았죠?’와 ‘때리고 싶지 않았던 거 알아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는 다르다는 거예요. 때리고 싶지 않았던 ‘마음’과 때린 ‘행동’은 구분해야해요. 우리가 공감하고 이해와 지지를 보내는 건 때리고 싶지 않았던 ‘마음’입니다. 때린 ‘행동'까지 그럴 수 있다고 정당화 해주는 것과 달라요.
결혼이 부담스럽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사람들은 더 많아지고 있어요. 정부는 부모들의 양육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며 출산을 장려하려고 하죠. 그런데 왜 크게 효과가 없을까요? 부모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부모들의 심리적인 에너지를 돌보는 대책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게 참 아쉬워요. 부모성이 발현되는 걸 막고 있는 사회적 요인이 무엇인지, 개인이 자신의 부모성을 발현해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문화를 형성해 나가는 게 부모를 진정으로 돕는 방법아닐까요?
얼마전 진행한 워크숍에서 한 분이 ‘제가 부족한 게 많은 엄마라고만 생각하며 살았어요.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정신줄을 놓은 적은 있지만 사랑을 놓은 적은 없어요. 오늘 그런 저를 만났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저는 우리 사회가 부모들의 이 마음을 기억하길 바래요. 부모인 내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있는 지를 알아주면 그 사랑을 건강하게 잘 실천할 방법을 찾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부모를 몰아세우고 불안을 부추기기보다 부모의 사랑을 믿어주고 응원해 줄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요즘부모 다시보기] 다음화에서는 '부모'의 정의를 살펴봅니다. 사전에서 부모를 찾으면 '집에서 어린아이를 돌보아 주는 사람'이라고 나옵니다. '부모=집에서 어린아이를 돌보아 주는 사람'일까요?
*자람패밀리는 부모의 삶을 연구하며 부모의 성장과 연결을 돕는 사회적기업입니다. 자람캠퍼스에서는 부모를 위한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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