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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진짜 적을 마주하다.

by 틈틈이

어느덧 새벽2시입니다. 회사에서 퇴근하면 집으로 출근,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놀다가 재우면 육아퇴근, 아이들이 푹 잠들면 집안 정리하고 살림퇴근, 노트북 켜고 재택야근까지 마치면 진짜 퇴근. 이미 눈은 반쯤 감겼습니다.


침대에 눕습니다. 아이들의 쌔근쌔근 숨소리에 온몸이 노곤해 집니다. 그리고 혼잣말이 나옵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애들 울려가며 회사에 다니나'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시간까지 집안일하고 있나'

말줄임표 안에 오만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애를 낳고 회사에 다니는 건 아니지만, 애를 낳고 회사에 다니다보니 이렇게 사는데 부귀영화라도 누려야 하는거 아닌가 싶습니다.


회사에 가면 '애들 울려가며 출근했으니 회사에서 뭐라도 해내야지' 이를 악 물고, 집에 오면 '내가 집안을 이 꼴로 만들면서까지 회사에 다니려고 한게 아니야. 어서 청소하자' 또 이를 악 뭅니다. 새벽에 일어나 새벽에 잠들때까지 쉴 틈이 없습니다.



6년차 워킹맘 선배가 충고합니다.


"너 그러다 쓰러진다."

"쓰러질 틈이 있나요. 그럴 틈이라도 있으면 좋겠네요." 헤헤 웃었는데 선배는 진지했습니다.

"너 스스로를 너무 몰아친다고 생각하지 않아?"


얼마전 배꼽친구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일이 많은 건 알겠는데, 그 일을 다 하려고, 그것도 너무 잘~ 하려고 하는 것 같다'라고요. 친구는 '대체 왜 그렇게 일욕심이 많아졌는데?' 물었습니다.


"너도 해봤잖아. 아침마다 우는 아이 떼어놓고, '엄마 내일은 토요일이야?' 묻는 아이에게 아직 세 밤 더 자야 토요일이라고 답하며 출근하는데 회사에서 설렁설렁 일하면 아이들 볼 낯이 없어."


"그래서 네가 승진하면 아이들에게 덜 미안해? 나라를 구하면 안 미안할 꺼 같아? 뭘 한들 아이들 끼고 키우는 거랑 비교가 되겠니. 네 마음의 문제지."


뜨끔. 얼마전 읽은 글이 생각납니다.


피곤해도 너무 피곤하다.
해야 할 일의 절대량이 너무 많아
육체적 피로가 떠나지 않는다.
그 많은 일을 척척 다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감정적 피로가 늘 붙어다닌다.

'그 많은 일을 척척 다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나를 더 몰아치는 것 같습니다.


'세상엔 키가 큰 사람도 작은 사람도 있듯 전업맘도 워킹맘도 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미안해하지 말자'고 다짐했으면서도 '더 잘 해야지. 그 정도 할꺼면 애들 떼어놓고 왜 일을 하니' 스스로를 다그쳤습니다.


나를 몰아친 건 아이들도 회사도 남편도 아닌 나 스스로였다는 걸 이제야 알겠습니다. 친구의 말처럼 나라를 구한다 해도 아이들에게 덜 미안할 것 같지 않습니다. 욕심을 낼수록 조급해지고, 짜증만 늘어날 뿐입니다.


'란도샘' 김난도 교수는 대한민국 워킹맘들에게 "마음의 부담을 덜어라. 자신에 대한 여러 가지 요구가 버거울수록 한계를 넘어서는 일은 포기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스스로에게 관대해져야 한다"네요.


서천석 선생님 또한 "잘하려는 마음이 짐이 될 때가 많다"고 했습니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네요.


역시 복직을 하며 나 스스로를 '이기적인 엄마'로 생각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러고보니 복직한지 100일이 지났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100일까지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백일잔치를 했다고 하죠.


복직한지 100일. 그동안은 하루 하루를 버텼다면 이제부턴 하루 하루를 살아볼까 합니다. 전문가들의 말처럼 마음의 부담덜고,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고, 나를 격려하면서요. 나 스스로의 적이 아닌 동료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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