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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은 최고의 '워킹맘 남편'

by 틈틈이

“네 남편 같으면 워킹맘 할 만하지. 너 남편 잘 만난 줄 알아!”


요즘 참 자주 듣는 말입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 남편이 ‘최고의 워킹맘 남편’이 됐는지 사실 전 잘 모르겠습니다.


남편은 고등학교 학생부 가족계획란에 자녀를 7명 낳겠다고 썼던 사람입니다. 게다가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고요. 결혼식 날짜를 잡고 ‘우리 나중에 애기 몇 명 낳을까?’ 물어봤을 때 남편은 주저없이 7명이라고 답했습니다. ‘누가 키울껀데?’ 물으면 말 없이 저를 빤히 바라봤죠.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에서 남편의 생각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울면서 산고를 겪는 저를 보며 남편은 같이 울었고 우리 자식이지만 부인을 힘들게 한 건 밉다고 주저없이 말했습니다.


둘째를 낳자는 말을 먼저 한 것도 저이고, 아이들이 예뻐서 쭉쭉 빠는 것도 저입니다. ‘7명 아이의 아빠’가 되겠다던 남편은 웅이 결이의 아빠로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충분히 힘들다’고 들립니다만) 합니다.


그런 남자가 ‘최고의 워킹맘 남편'이라니요. 나 요즘 회사에서 남편복 많은 여자로 유명하다고 이야기하자 남편이 어깨를 으쓱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칼퇴근입니다. 최근 발표된 통계청의 ‘2015 일 가정 양립 지표’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의 경우, 남편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46.8시간입니다. (아내는 41.4시간)


주5일 근무이니 하루 평균 9.36시간을 근무하는 셈입니다. 남편은 8시 반에 출근해 6시 퇴근하니 평균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단, 불가피한 회식과 야근을 제외하고는 퇴근시간에 정말 퇴근합니다. 집에서 회사까지 30분 정도 거리이니 보통 7시 전후로 집에 도착합니다. ‘오늘 저녁 집에서 먹을꺼야?’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고 싶지 않냐고 물어보면 아직은 아이들이 어리고, 저도 회사에 다니니 가급적 가정에 충실하고 싶다고 하네요. 마음이 고맙습니다.


정시 퇴근은 육아와 가사노동으로 이어집니다. 30대 맞벌이 남성의 경우 하루 평균 1시간 5분을 가사노동에 쓴다고 합니다. 29분은 가정관리에 36분은 가족 및 가구원 돌보기에 쓴다고 하네요.


우리부부는 아이들이 깨어 있는 동안에는 TV나 컴퓨터 등 아이에게 뒤통수를 보이는 일은 하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남편은 퇴근 후부터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자연스럽게 가사노동을 함께 합니다. 제가 저녁상을 차릴 때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제가 아이들과 놀고 있으면 집안 정리를 하는 식이죠. (아이들과 놀아주는 줄 알았는데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고 있거나,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30분 넘게 나오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이 정도는... 모른 척 합니다.)


하지만 자타공인 가정적인 남편은,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입니다. 아이들이 잠들면 남편은 서재로 들어갑니다.


물론 집안일은 남아 있습니다. 바닥에 떨어져있는 건 무조건 입에 넣는 둘째가 국수 삼키듯 머리카락 먹는 걸 보기 싫으면 걸레질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합니다. 다음날 아침과 간식도 준비해야 하고 첫째 어린이집 알림장, 시터 이모님께 남기는 메모 등도 써야 합니다. (설거지는 아이들을 재울 때 남편이 합니다)


피곤하고 눈도 감기고 가끔은 억울하고, 그럴 땐 ‘여보~ 같이하자~’ 콧소리라도 내고 싶지만 서재방 문을 열지는 않습니다.


몇 해 전 유행했던 ‘남편사용설명서’에 따르면 남편이라는 제품은 ‘스트레스에 민감하니 적절한 양분과 휴식을 취하게 하면 오래 사용하실 수 있다’고 하더군요.


남편을 '행복한 워킹대디'로 만들려면 ‘적절한 양분과 휴식’은 보장해야 한다고 합니다.


행복한 엄마가 가장 좋은 엄마라고 하죠. 마찬가지로 행복한 아빠가 가장 좋은 아빠, 가장 멋진 워킹대디일 겁니다. 그러니 닫힌 서재문은 그대로 둘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