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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 아들에게 배운 것들

by 틈틈이

올해 5살이 된 웅이는 말을 잘 합니다. 제가 복직한 뒤로는 그 말재주로 엄마를 들었다놨다 합니다. 이런 식입니다.


오후 10시, 아이들을 재우고, 푹 잠들었다 싶으면 슬쩍 거실에 나옵니다. 집정리하고 '재택 야근'을 시작하죠. 일을 하고 있으면 안방에서 "엄마~~"소리가 들립니다. 웅이나 결이가 깬 겁니다.


후딱 달려가서 토닥이면 곧 다시 잠이 들죠. 한두번은 토닥이면 잠이 들지만 반복되면 웅이는 벌떡 일어납니다. "엄마 어딨어! 이리 와요!" 짜증에 찬 목소리입니다.



"엄마 일하고 있었지. 지금 일하면 내일 엄마가 조금 더 일찍 퇴근할 수 있거든. 그러니 웅이 깨지말고 자자."

"엄마도 자야지. 일찍 자야 키가 쑥쑥 커. 엄마도 아빠만큼 크려면 자."


토닥여 재우고 다시 일을 하러 거실로 나왔습니다. 한창 집중하고 있는데 쓰윽 뭔가 느껴집니다. 실눈을 뜬 웅이입니다.


"웅아, 언제 나왔어."

"엄마가 자꾸 없어지잖아. 내가 옆에서 기다릴게."


내가 자지 않고 꼭 일을 해야 하나, 웅이 덕분에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노트북을 덮고 웅이를 안고 침대로 갑니다.




바쁜 아침시간. 출근 준비에 바쁜에 웅이가 장난감 상자를 뒤집니다.


"웅아 시간없어. 어서 신발 신자."

"엄마 잠깐만. 이거 가방에 넣고 가"


장난감 칼입니다.


"이걸 왜 가지고 가?"

"회사에서 엄마 괴롭히는 사람 있으면 그 칼로 무찔러. 근데 집에 올때 꼭 가지고 와야해. 소중한 거거든."



누구나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한숨을 쉬었는데, 웅이에게 칼을 받은 뒤로는 힘들 때 한숨이 아니라 웃음이 납니다.





씩씩하게 어린이집에 가는 웅이도 가끔 가기 싫은가 봅니다. 어린이집 앞에서 뭉그적거립니다.


"엄마 오늘 꼭 회사에 가야하지?

"응. 월요일이잖아. 웅이는 어린이집가고 엄마는 회사 가는 날이지."

"... 알았어. 엄만 내 마음 속에 있으니까."


눈물이 그렁그렁한데 꾹 참고 있습니다. 안아주면 울어버릴 것 같아 활짝 웃으며 인사하고 뒤돌아섭니다. 대견한데 마음이 쌔합니다. 웅이보다 제가 덜 자란 것 같습니다.




복직하고는 첫째 웅이의 목욕 담당은 남편, 둘째 결이의 목욕 담당은 베이비시터 이모님입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아이들과 놀다가 둘째를 제가 재우러 들어가면 남편이 첫째를 씻겨서 침실로 보냅니다.


그러다 지난 주말 결이를 씻기고 있는데. 웅이가 부러운 표정입니다. 엄마가 씻겨주냐고 물으니 좋답니다. 결이를 다 씻기지도 않았는데 신이나서 옷을 훌렁훌렁 벗고는 욕실에 들어와 기다립니다.

샴푸의자에 눕히고 머리부터 감기는데 귀에 비누가 들어가고. 샤워기 조준을 잘못해서 얼굴로 물이 흐르고... 아주 난리입니다. 그런데 얼굴에 물 한방울 묻는 것도 싫어하는 웅이가 묵묵히 참아냅니다.

"미안해. 엄마가 오랜만에 하니까 자꾸 실수를 하네"
"괜찮아. 아빠도 조금 그래. 그래도 엄마가 해줘서 좋아요"

물이 튀어서 싫은 것보다 엄마가 씻겨주는게 더 좋은가봅니다. 다 씻고 물놀이를 한다길래 그럼 엄마는
나가서 집안일 할테니 다 놀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싫다고 합니다.

"엄마 여기 있어요. 결이는 곁에 항상 있어주잖아요. 내 앞에 있어요. 내가 어떻게 노는지 보여주고 싶어요"

쫑알쫑알 설명을 하며 물놀이를 하네요. 옆에 가만히 앉아있기 좀이 쑤셨지만 가만히 지켜봤습니다. 기분이 좋은지 웅이는 눈이 마주칠때마다 '엄마 최고'를 외칩니다.

이제 48개월, 웅이도 어린데 첫째라는 이유로 뒷전이었습니다. 웅이도 결이도 엄마 손이 필요한 나이인데 결이에게만 신경을 쓴 것 같아 미안합니다. 웅이 말대로 웅이는 '형아'가 아닌 '쪼금 형아'라는 걸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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