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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Apr 15. 2016

엄마도 때론 아이가 고프다

사실 자주, 항상 고프다.

"웅이 결이 다 잠들었어?"

"응. 결이 먼저 재우고 웅이 재웠어. 결이는 엄마 많이 찾지 않았는데 웅이는 엄마 언제 오냐고 울면서 버티다 잠들었어."


이번주는 내내 야근입니다. 밤회의, 야근, 당번. 아이들 얼굴 볼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회사에 일이 많아도 일을 싸들고 퇴근할지언정 칼퇴근을 고집하는데 이번 주는 회의에 당번, 자리를 지키면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은 낮에도 밤에도 엄마 볼 틈이 없었습니다.


'하루 3시간 엄마냄새' 책에 따르면 '엄마 에너지'를 가득 충전해 둔 아이들도 3일간 쭉 엄마가 자리를 비우면 '엄마 방전'이 된다고 했습니다. 엄마가 3일 연속 야근했으니 두 아이는 방전 상태일 겁니다.


어제 새벽, 엄마를 찾으며 울다 잠들었다는 웅이는 잠꼬대로 "엄마 보고싶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엄마 오늘도 회사에 가? 일은 쪼끔이야?" 물었습니다. 결이는 제 옷 끝자락을 잡고 아랫입술을 계속 빨고 있습니다. 뭔가 불안하다는 표현입니다.



엄마인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에게 엄마랑 살 부비며 사랑을 느껴야 충전되는 '엄마 에너지'가 있다면 엄마도 아이들을 품고 아이들 냄새를 맡아야 충전되는 '자식 에너지'도 있나 봅니다. 회사에서는 되도록 아이들 잊고 업무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아이 사진이 보이면 더 생각날 것 같아서 책상 위에 액자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사진이 없어도 계속 아이들 얼굴이 동동 떠다닙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점심시간에 회사 밖으로 나가니 근처 직장어린이집 아이들이 산책을 하고 있더군요.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바라봤습니다. '웅이는 뭐하고 있을까'


바쁜 엄마를 대신해 이모가 구원병으로 나섰습니다. 친언니가 결이와 놀아주려고 조카들을 데리고 우리집에 왔다네요. 고맙게도 결이가 깔깔 웃는 동영상을 찍어 보내줍니다.


동영상을 한 번 보고 일하고, 일하다 또 생각이 나서 다시 보고. 동영상 속으로 들어가 결이를 꽉 안아주고 싶습니다. 곰같은 내 속에서 나왔는데 어쩜 저렇게 여우같은지요. 애교 가득한 웃음소리가 귀에 쟁쟁해 아예 이어폰를 꽂고 동영상 소리만 들으며 일을 했습니다.



오후 9시. 더는 못 참겠습니다. 아이들이 마음에 걸립니다. 엉덩이가 들썩입니다. 오늘은 웅이 결이가 잠들기 전에 집에 가야겠습니다. 자는 아이 얼굴에 뽀뽀하고 품는 것 만으로는 방전된 '자식 에너지'가 충전될 것 같지 않습니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아이들이 "엄마다!" 소리치며 다다다다 뛰어옵니다. "우리 웅이 결이 보고싶었어!!" 아이들을 품에 꼭 안았습니다. 휴…. 이제야 속이 뚫립니다.


3일 만에 만난 엄마이니 쟁탈전이 이어집니다. 웅이가 책을 읽어달라며 책을 가지고 오니 결이도 책을 가져옵니다. 서로 내 책을 더 많이 읽어달라고 산더미처럼 책을 쌓았습니다.


취침시간은 이미 넘겼습니다. 하지만 3일 만에 제대로 만났는데 '잘 시간'을 강요할 낯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잠들면 저도 서운할 것 같습니다. 평소보다 30분 늦게 아이들을 눕혔습니다. 오른 팔에 웅이, 왼 팔에 결이가 누워 꼼지락거립니다. 토닥토닥, 자장가를 불러주는데 웅이가 '섬집 아기'를 불러달라고 합니다. 가사때문에 불러주고 싶지 않은 노래인데, 하필 그 노래네요.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이가 혼자 남아서 집을 보는 것도 마음 아프고,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혼자 팔베고 잠드는 건 더 마음 아픕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잘 불러주지 않게 됩니다. 언젠가 웅이 낮잠을 재우며 이 노래를 불러주다가 남편과 '동요인데, 이렇게 끝날리가 없어'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내가 아는 건 1절일 뿐 2절도 있었습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여
다 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엄마가 아이를 혼자 두고 마음 편히 일 할리가 없지요. 다 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모랫길을 달려오는 엄마를 상상하며 남편과 '그나마 마음이 놓이네' 했던 기억입니다. 그땐 엄마가 집에 왔으니 다행이다, 생각만 했는데 오늘은 모랫길을 달려온 엄마 마음이 더 먼저 그려집니다.


웅이 결이는 이미 잠들었는데 아이들을 내려놓기 싫습니다. 아직 '자식 에너지'가 덜 충전됐습니다. 오늘은 그냥 이대로 아이들 양팔에 끼고 쭉 잘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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