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임신이 망설여지는 당신에게
둘째아이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하며 집과 회사를 빼고 가장 많이 드나든 곳은 병원입니다. 대상포진 임파선염 부비동염... 온갖 병이 순서대로 찾아올 때 의사선생님이 그러셨습니다.
"00씨 보면 우리 병원 간호사들 결혼하기 싫어질 것 같아요. 이렇게 힘든데..."
워킹맘의 애환(?)을 글로 적다보면 미혼 여성들의 댓글이 종종 달립니다.
"주변에서 결혼해 아이를 낳고 일하고 있는 선배들을 보면 내가 앞으로 겪을 일들이 두렵습니다. 꼭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할까요?"
너무 하소연만 했나 싶습니다.
네, 힘든 건 사실입니다. 하루에 5시간 자는 날이 대부분이고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때도 많습니다. 일년에 한번 걸릴까말까했던 감기도 달고 삽니다. 육아는 체력전이라는 말, 절감합니다.
네, 결혼이 여자에게 불합리한 것도 사실입니다. 남편도 저도 사회생활을 하지만 집안일의 80%는 여자인 제 담당입니다. 6시 칼퇴근, 가정을 삶의 최우선순위에 두는 남편과 사는데도 그렇습니다.
책에서 여자의 사회진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 읽은 적이 있습니다.
여자들이 남자들의 세계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그런데 여자들을 둘러싼 세계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직장문화, 정부의 정책, 사회적 관습은 아직도 1950년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남자는 일을 하고, 여자는 가족과 집안일을 책임진다.' '아빠는 가족을 부양하고, 엄마는 항상 아이들 곁을 지킨다.' 남녀의 역할을 이렇게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무의식적인 관습이 사람들의 실제 생활과 일치되지 않으면 (여자들의 시간에) 쫓기는 삶은 완화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힘든게 전부는 아닙니다. 결혼 전으로 돌아간다해도 또 결혼을 하고 또 엄마가 될 겁니다. 힘들 거 뻔하지만 힘들다고 포기하기엔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
첫째는 아이들 그 자체입니다. 아이들 웃음소리에 모든 피로가 녹아내리는 건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또렷하지도 않은 발음으로 "엄마 따랑해"할 때면 온 세상이 내 것이지요. 퇴근 길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아이들이 "엄마다!!" 콩콩 뛰면 내 심장도 콩콩 뜁니다.
엄마가 되기 전 친정엄마를 생각하면 '자식이 뭐라고 엄마 인생을 다 희생할까' 싶었습니다. 부모가 되니 희생이 아니었다는 걸 알겠습니다. 기꺼이, 하고 싶어서 한 것 입니다. 희생이 아닌 사랑이었습니다.
그보다 더 큰 장점은 아이를 키우며 내가 성장한다는 겁니다. 아이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하니까요.
엄마가 아무리 '제발 손톱 좀 뜯지 말라'고 잔소리해도 듣는둥 마는둥, 평생을 못 고친 버릇인데 웅이가 손톱을 뜯기 시작하니 아차 싶습니다. 저부터 고치려고 노력 중입니다.
아이에게 혼자 하는 법을 알려주려면 나부터 아이를 재촉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이가 처음 혼자 신발을 신을 때는 10분, 20분도 걸립니다. 발을 넣었다가 뺐다가, 오른발에 왼쪽 신발을 신었다가 벗었다가. "빨리 신어" 재촉하면 아이는 급한 마음에 "못하겠어. 엄마가 신겨 줘" 합니다. 끝까지 기다려 주려면 마음이 여유로와야 합니다. 급한 성격을, 시간에 쫓기는 마음을 다잡습니다.
TV보다 책과 친한 아이들로 키우고 싶어 TV를 치우고 책장을 들였습니다. 리모콘을 가지고 장난하던 아이들이 책을 가지고 놉니다. 아이들 앞에서 책을 읽으니 아이들도 책을 봅니다.
"왜?" 자꾸 묻는 아이 덕분에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물웅덩이만 보면 뛰어들려는 아이를 저지합니다. "엄마 왜?" 왜 안될까요. 젖으면 옷 갈아입고 더러워지면 씻으면 되는걸요. 내가 번거로워지는 게 싫었던 거지요. "그래. 해 봐. 근데 물에 젖으면 추울 수 있으니까 집에 들어가자마자 씻는거야." 내친김에 저도 물에 발 한 번 담궈봅니다.
"울지마. 이런 걸로 우는 거 아니야." "왜? 눈물 나는데 왜?" 울고 나면 속이 뻥 뚫리는데, 왜 울지 못하게 했을까요.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하는 내가 이상한걸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합니다. 좋은 엄마가 되려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요. 내 가치관과 생각이 올바르면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고 좋은 엄마가 될 테니까요. 그래서 부모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성장하게 됩니다.
가끔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생각할 때는 있습니다. 하지만 곧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육아에 집중하고, 다시 일 할 수 있는 사회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으로 바뀌죠.
'나만 부모인가? 왜 나만 이렇게 동동 거리지?' 억울할 때면 남편과 상의하려 합니다. 남편과 집안일을 더 나누고, 해야 할 일 목록을 줄이려고 합니다.
출근길 웅이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데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결혼하기 전 나도 꽃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나는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힌 느낌이랄까요.
"웅아, 엄마도 저 꽃처럼 예뻤었다?"
"난 꽃보다 엄마가 더 더 더 더 예뻐."
이럴 때 피로가 녹아 내리지요. 오늘도 '하루만 푹 쉬면 소원이 없겠다' 혼잣말을 하지만 밑도끝도없이 힘든 이 시기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즐기려 합니다. 즐기다보면 '엄마사람'인 저는 더 단단한 열매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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