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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Apr 10. 2016

"아들, 오래 아프게 해서 미안해"

얼마 전 웅이가 열이 났습니다. 엄마 닮아 편도선이 큰 웅이에게 자주 있는 일입니다. 해열제를 먹일 만큼 열이 오르진 않았지만 미열이 하루, 이틀. 미열이지만 병원에 가야겠다 마음 먹으면 정상체온. 다행이다 안심하면 다시 미열이 하루, 이틀.


병원에 갔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편도선이 부었다고 하네요. 의사 선생님은 해열제를 처방해 주시며 "열이 38도 넘으면 먹이세요. 심하지 않으니 곧 괜찮아 질 거에요" 하십니다.


아이가 아프면 마음이 한 짐입니다. 워킹맘이라 낮시간 아이 곁을 지킬 수 없다보니 아이가 아플 땐 죄인입니다. 그래도 심하지 않다니, 고열은 아니니 이번엔 조금 덜 죄인입니다.


그런데 '곧 괜찮아 질 것'이라는 의사선생님 말씀과 달리 웅이 컨디션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웅이가 활동량이 많은가요? 좀 쉬면 금방 좋아질 것 같은데, 푹 쉬게 해주세요."



당분간 어린이집에 보내지 말아야 하나 고민됩니다.


아직 요일 개념이 없는 웅이에게 평일은 아빠엄마는 회사에 가고 웅이는 어린이집에 가는 날입니다. 주말은 아빠엄마가 회사에 가지 않고 웅이도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날입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알려줬더니 웅이는 아빠엄마가 출근하면 가기 싫어도, 어린이집에 군말없이 갑니다.


아플 때는 어린이집을 쉬게 했지만 제가 복직한 뒤로는 열이 38도를 넘거나 전염성이 있는 병에 걸렸을 때만 결석합니다.


아빠엄마가 출근했는데도 웅이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면 웅이랑 아침에 실랑이하는 일이 잦아질 것 같아서 어린이집 결석은 웬만해선 하지 말자고 마음 먹었기 때문입니다.


(괜찮다고 하시지만) 이모님 눈치도 보입니다. 오전 9시-오후 4시까지 웅이의 보육 담당은 어린이집, 오후 4시-7시는 베이비시터 이모님입니다. 이모님은 결이 전담이지요. 웅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으면 이모님이 돌봐주셔야 하는데, 음... 죄송합니다.


컨디션이 좋은 아이 둘을 하루 종일 돌봐도 저녁이면 녹초가 되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아이는 짜증을 자주 냅니다. 떼도 잘 씁니다. 몸이 좋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니 혼내지도 못합니다. 엄마인 저도 아이가 아파서 떼를 쓸 때는 '참을 인' 여러 번 그립니다.


아픈 웅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으면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3시간만 아이 둘을 돌보기로 약속되어있는 이모님껜 쉽지 않은 초과근무가 됩니다. 초과근무수당을  드린다고 해도 힘든 건 힘든 겁니다.



웅이 입장에서도 친구들과 전문 교육을 받은 선생님이 계신 어린이집이 더 재미있겠죠.


이런저런 이유로 그동안 웅이를 '웬만하면' 어린이집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의사선생님의 "조금 쉬면 금방 좋아질텐데"라는 말씀을 들으니 잘못 생각했구나 싶습니다.


제가 아파 병원에 갔을 때도 의사선생님은 그러셨습니다.


"지금 엄마한테 필요한 건 주사도 약도 아니고 휴식이에요. 쉬어야 나아요"


무엇보다 좋은 약은 휴식과 잠, 충분한 영양섭취인데, 컨디션이 좋지 않은 웅이는 어린이집에 가서 실내놀이터에서 놀고 특별활동을 하고 산책을 했을 겁니다. 회복이 더딜 수 밖에 없었습니다.


웅이 결이는 잔병치레가 잦은 편입니다.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내가 일해서 더 많이 아픈건 아닌가' 죄책감이 듭니다. 그 마음을 아는지 의사선생님은 "엄마가 일해서 아이들이 더 아픈거 아니에요. 아이들이 어려서 그래요. 조금 더 자라면 병원 올 일 줄어듭니다" 하십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스스로에게 '내 탓 아니다' 이야기를 해주죠.


내가 워킹맘이라 아이들이 자주 아픈 건 아니더라도, 내가 워킹맘이라 아이들이 '오래' 아픈 건 부정할 수 없겠습니다.


워킹맘 숙지 사항

1. 뻔뻔해져라.

2.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은 사람을 최대한 확보해라


숙지 사항을 무시한 결과입니다. 아픈 웅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게 아니라, 아픈 웅이를 최우선으로 두고 제가 휴가를 내던가, 이모님께 부탁하던가, 이모님을 도와 웅이를 돌봐줄 누군가에게 SOS를 했어야 합니다.


웅이가 오래 아프면, 웅이도 힘들고 결이가 옮을 확률도 높아집니다. 결이가 옮으면 다시 웅이가 아플 수 있습니다. 악순환입니다.


의사선생님 말씀처럼 아이들은 어리니 아플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픈 기간을 최대한 짧게 줄여주는 것일 겁니다.


아픈 웅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건 어쩌면 제 자만심이었습니다. 주변에 민폐를 끼치지 않고도 워킹맘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욕심이었습니다. '웅이가 아픈데 출근해야 해요. 도와주세요' 라는 말이 왜 그리 자존심상하고 어려운지요.


내일은 웅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을 생각입니다. '도와달라'는 말은 여전히 어렵지만, 웅이 컨디션부터 챙겨야겠습니다.


"엄마, 미안한데 웅이가 열이 조금 나서 어린이집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와서 아이들 좀 봐줄 수 있어요?"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당연히 가야지. 걱정마 엄마가 갈게."


망설인 게 무색하게 엄마가 너무도 흔쾌히 와주신다고 합니다. 손만 내밀면 잡아 줄 사람이 있는데, 부탁하는게 뭐 그리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손을 내밀지 못했습니다.


부족한 엄마라 미안한 게 많습니다. 오늘도 반성했으니 내일은 하나 덜 미안한 엄마가 될 수 있겠죠. 이렇게 미안한 일 하나씩 덜어가며 웅이 결이랑 같이 커가렵니다.


# 틈틈이 이야기는 네이버 포스트 (post.naver.com/zinc81)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방문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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