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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Apr 20. 2016

아이와의 외출, 장난감 전쟁이라면

"엄마 나 레고 가지고 갈꺼야"

"레고는 부서지기 쉬워. 가지고 나갔다가 날개가 없어질 수도 있는 걸. 다른 장난감 가지고 가자."

"싫어. 난 레고가 좋단 말이야. 레고 비행기 가지고 갈꺼야."


보통 아이들이 그렇듯, 웅이도 외출 할 때마다 장난감을 손에 쥡니다. 손에 장난감이 있으면 새로운 장난감을 사달라고 하는 일도 적고, 낯선 곳에 가서도 손에 익은 장난감이 곁에 있으면 덜 낯설어 합니다.


그래서 외출하기 전에는 웅이에게 '장난감 가지고 갈래' 묻곤 합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웅이는 대부분 미니자동차을 골랐습니다.


문제는 웅이의 관심사가 자동차에서 레고로 바뀌며 시작됐습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미니자동차와는 달리 레고는 손에 쥐기에 큽니다. 꽉 쥐면 부서지기도 쉽고 작은 부품이 쉽게 없어지기도 합니다.


레고 장난감을 들고 외출했다가 없어진 부품이 한두개가 아닙니다. 그래서 웅이가 레고를 들고 나가면 제가 더 긴장합니다. 땅에 떨어진 부품을 주울 때마다 레고는 집에서만 가지고 놀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웅이는 듣는둥 마는둥입니다.



그러다보니 현관문 앞에서 '레고는 안되' '왜요?' '없어질 수 있으니까' '싫어요' 대화가 반복됩니다. 외출하기도 전에 진이 빠집니다.


어제도 웅이는 놀이터에 가며 레고 비행기를 집었습니다. 길쭉하고 가는 날개가 달려있지요. 분명 날개가 여러번 떨어질 겁니다. 다른 장난감을 고르라고 했지만 웅이는 버팁니다. '내가 잘 챙길 수 있다니까요!' 공약(空約)까지 합니다. 스스로 잘 챙길 수 있다면, 책임질 수 있다면 말릴 이유가 없습니다.


"웅이가 진짜 레고 잘 챙길 수 있어?"

"응. 내가 잘 가지고 다닐게."

"날개가 떨어질 수 있어. 웅이가 잘 챙기지 못하면 날개는 없어질꺼야. 그럼 비행기는 고장나는거지."

"알겠어. 안 떨어지게 조심할게."

"그래. 그럼 비행기 들고 나가자. 만약 비행기 부품이 없어져도, 그건 웅이 책임이야. 또 사달라고 하기 없기야. 괜찮겠어?"

"응"


웅이는 레고 비행기를 들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습니다. 비행기 날개가 없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나쁜 경험은 아닐 겁니다. 웅이에게 장난감에 대한 책임감을 심어주는 기회가 될테니까요.


현관문을 나서 놀이터에 가는 동안 날개가 떨어졌습니다. 웅이는 바로 알아채고 스스로 줍고 조립까지 했습니다.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타면서 날개가 또 떨어졌지만 웅이는 잘 알아챘습니다. 놀이터에서 한 시간 넘게 노는 동안 날개가 3번, 꼬리가 2번 떨어졌습니다. 웅이는 용케 잘 챙겼습니다.


'내가 잘 챙길 수 있다니까요!'가 공약(空約)인 줄 알았는데 엄마의 기우였나 봅니다. 미끄럼틀도 제대로 못 타며 장난감을 챙긴 웅이가 기특합니다. 웅이가 좋아하는 빵을 사줘야겠습니다.


신이 난 웅이가 빵집에서 소보로빵과 꽈배기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이 비행기 날개가 또 떨어졌습니다. 이번엔 웅이가 모르네요. 알려줄까, 말까 망설이다가 오늘 비행기는 웅이의 책임이니 알려주지 않기로 합니다.


웅이는 빵집에서 나와 한참을 걷다 비행기 날개가 없어진 걸 알았습니다.


"엄마! 날개가 없어!"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아무리 돌아도 안보이자 울상입니다. "어딨지? 어딨지? 엄마 못 봤어?"


'거봐! 엄마가 뭐랬어! 그러니까 밖에 나올 땐 레고는 절대 안되!' 이야기하고 빵집에 가서 날개를 찾아오고 싶지만 모르는 척 합니다.



웅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엄마한테 혼날까봐 걱정되는지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만 훔칩니다.


웅이는 집에 와서도 비행기를 만지작만지작. 손에서 놓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치네요.


"엄마! 좋은 방법이 생각났어!"

"무슨 방법?"

"가방줘봐. 레고를 가방에 넣으면 안 없어질거야!"


속상해 하는 줄만 알았는데 계속 생각하고 있었나 봅니다. '엄마 말 들을 껄' 후회가 아니라 장난감을 잃어버리지 않을 방법을 생각했다는 게 의외입니다. 장난감을 엄마가 챙길 때는 부품이 떨어졌는지도 모르던 녀석인데 꼭 다른 사람 같습니다.


어깨에 맬 수 있는 가방을 줬습니다. 웅이는 비행기를 가방에 쏙 집어 넣었습니다. "엄마, 우리 내일 또 놀이터 가볼까? 놀이터에 날개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이는 믿는 만큼 자란다더니 그 말이 맞나 봅니다. 아직 장난감을 스스로 챙기기 어린 나이인 줄 알았는데 책임을 준 만큼 아이는 자라있네요. 레고 비행기는 이렇게 날개가 없어졌지만, 웅이는 비행기를 볼 때마다 오늘 일을 기억할 겁니다. 이제 더이상 웅이와 현관문 앞에서 장난감 때문에 실랑이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없어져도, 고장나도, 버려도, 웅이의 장난감이니까요. 이제부턴 웅이의 장난감은 웅이의 책임으로 남겨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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