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3월이 되면 친구들과 캠퍼스에서 새내기 맞추기 게임을 했습니다. 새내기를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3월은 봄 옷을 입기엔 추운 날씨지만 새내기들은 노랗고 빨간, 그리고 얇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교복을 벗고 대학생활을 준비하며 봄 옷부터 장만했을 겁니다.
진짜 봄에 들어서도 새내기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짙은 아이라이너 분홍 볼터치 새빨간 입술. 과한 화장을 한 친구들은 대부분 새내기입니다. 처음 해보니까요. 아직 화장이 어색하니까요.
그 얼굴이 참 싫었습니다. 내 얼굴이 도화지도 아닌데 내 얼굴에 화장 연습을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친구들의 화장술이 '삐에로'에서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럽게 발전해 갈 때 전 민낯을 고집했습니다. 점점 예뻐지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화장을 해볼까? 싶을 때도 있었지만 결론은 같았습니다. '내 얼굴에 연습하긴 싫다.'
대학 4학년. 사회에 나갈 시간입니다.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볼 일이 생깁니다. 민낯으로 면접을 볼 수는 없습니다. 삐에로 얼굴로 갈 수도 없습니다. 언니에게 화장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입사 첫 날. 이제부터 매일 화장을 해야 합니다. 언니에게 부탁할 수는 없습니다. 처음 내 손으로 내 얼굴에 화장을 했습니다. 볼터치, 아이라이너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파우더에 눈썹만 그리고 첫 출근을 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대학 시절 '삐에로 얼굴'을 하지 않은 걸 후회했습니다.
뒤늦게 화장 연습을 하려니 자연스럽게 화장한 동기들 사이에 내 어색한 얼굴만 튈 것 같습니다.그래서 지금도 제 화장실력은 입사 첫 날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출근할 때는 파우더에 눈썹만 그립니다. 결혼식이나 행사가 있을 때는 마스카라나 아이라이너를 하는 정도입니다.
연애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 시절 이상형을 만날 때까지 연애하지 않겠다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쉽게 만나고 쉽게 사랑에 빠지고 쉽게 이별하는 대학생 시절 그 친구는 연애를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20대 후반에 처음 연애를 하더군요. 첫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졌으면 좋았겠지만, 친구는 '이상형' 남자와 헤어졌습니다.
퇴근 후 깜깜한 공원에서 만난 친구는 펑펑 울었습니다. 첫 연애도 힘들었는데 첫 이별은 더 힘들다며 이별한 뒤에는 어떻게 마음을 달래야 하는 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나이 들어 이별하니 타격이 크다. 이 나이에 이별했다고 술 먹고 뻗어버리면 웃기지 않겠냐'며 '대학 다닐 때 이별 좀 해볼껄' 후회했습니다.
지나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목을 가누고 뒤집기를 하고 혼자 서고 걷고, 발달 과업이 있듯 모든 시기에 발달 과업이 있습니다. 대학 시절 제가 놓친 과업은 화장이고, 친구가 놓친 과업은 연애였습니다.
그래서 올해 대학교에 입학한 조카에게 볼터치와 마스카라를 선물했습니다. 화장에 관심도 없는 바지를 즐겨입는 조카인데 억지로 안겼습니다. 화장품을 볼 때마다 해볼까? 생각은 하겠죠.
화장을 안 하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못 하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화장이 꼭 필요한 날은 누구에게나 찾아 오니까요.
아직 화장이 어색하다면 한 번 더, 또 한 번 더 연습하세요. 지금 당신의 도화지는 삐에로여도 괜찮은 시간입니다. 그리고 삐에로여도 예쁜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