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건 진짜 익스트림 스포츠잖아?
언젠가부터 여름휴가를 계획할 때 주(主) 질문은 "이번 여름엔 어디 갈까?"가 아니라, "이번 여름엔 어떤 액티비티를 배워볼까?"가 되었다. 관광 요소는 사실 유럽 어디에나 있어 기존 계획에 접목하기 쉽지만, 자연에서 하는 액티비티는 대개 지형과 기후 등의 조건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당시 일주일의 여름휴가를 계획하면서 유럽에서 하기 좋은 수상 스포츠를 검색했고, 카이트서핑을 배워보기로 결정했다. 윈드서핑도 성공적으로 배웠으니 카이트서핑도 충분히 할 만할 거라 짐작했고 (매우 잘못된 생각이었다), 보드를 타고 물살을 가르며 점프하는 카이트 서퍼들의 모습이 참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Kite(연) + Surfing(파도 타기)
카이트서핑은 말 그대로 연에 매달려 파도를 타는 레포츠다. 1990년대 유럽과 하와이의 파도가 치지 않는 바다에서 서핑을 즐기는 방법을 찾다가 고안되었으며, 주된 추진력은 연의 표면에 흐르는 바람으로 생기는 양력이다.* 연은 패러글라이딩에서 사용하는 연과 유사한 전용 대형 카이트를 사용하며,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최신 스포츠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바람이 연과 마주치면 볼록한 윗면은 바람이 빠르게 지나가 대기압이 낮고, 아랫면은 바람이 느리게 지나가 대기압이 높다. 대기압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므로, 이 기압차를 통해서 연이 공중에 뜨게 된다.
Kite(연) + Boarding(보드 타기)
카이트서핑을 다른 말로 카이트보딩이라고도 한다. 연과 보드를 이용하는 레포츠라는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대형 연을 하네스(harness: 기구와 몸을 연결하는 장비)를 통해 본인 몸에 연결한 뒤, 공중에 띄운 채로 보드를 타고 수상을 활주한다. 안전상의 이유로 보드와 연은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카이트서핑의 장점
장점 1. 간단하고 가벼운 장비
카이트서핑에 필요한 장비는 기본적으로 카이트와 보드이다. 그 외에는 하네스와 조종용 붐, 30m 길이의 줄이 필요하다. 카이트는 공중에 떠야 하니 당연히 가벼운 소재로 제작되고, 보드도 작은 편이다. 긴 줄은 조종용 붐을 이용해 최대한 엉키지 않게 정리하면 간편하다.
그래서 윈드서핑과 같은 다른 수상 스포츠에 비해서 장비가 굉장히 간단하고 가벼운 편이다. 모두 하나의 커다란 가방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수준이다. 그래서 잘 타는 카이트 서퍼들은 웻수트도 입지 않고, 바람 좋은 날 즉흥적으로 와서 가볍게 휙 타고 가곤 한다. 이토록 익스트림한데 이토록 간편하기 쉽지 않다.
장점 2. 익스트림한만큼 커지는 재미
혹시 카이트서핑 영상을 본 적이 있는가? 먼 육지에서 점프해서 바다에 착지하는 영상이라던가, 카이트에 의지해 작은 섬을 뛰어넘고 커다란 선박을 뛰어넘는 영상이라던가, 35m 이상 점프하는 영상을 보면 정말이지 입이 떡 벌어진다. 당신이 만약 스릴 식커(Thrill Seeker)이자 아드레날린 정키(Adrenaline Junkie)라면, 카이트 서핑은 최고의 레포츠가 될 수 있다.
카이트서핑을 처음 시작하는 초급 단계에서는 연을 다루는 것도, 라이딩을 시작하는 Waterstart도 모두 어렵다. 하지만 일단 라이딩을 하게 되면, 중급 단계에서는 실력이 빠르게 늘고 여러 트릭을 시도해볼 수 있다. 남들이 보기에 엄청난 기술을 구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단계까지 생각보다 금방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카이트서핑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점프에 있다. 이 점프는 높이와 거리 면에서 거진 나는 것과 유사하여 플라잉(flying)이라고도 부른다. 본인이 연을 잘 이해하고 컨트롤할 수 있고, 기본적인 라이딩 기술을 잘 익혔다면, 점프도 금방 도전해볼 수 있다. 연은 조종하기에 따라 언제든지 위쪽으로 날려고 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점프 자체에 큰 힘이 들진 않는다.
*카이트서핑은 그 특성상 윈드서핑과 많이 비교되곤 한다. 윈드서핑은 시작은 쉽지만 그 이상으로 발전시키기가 어려운 스키에 비교되는 반면, 카이트서핑은 스노우보드처럼 처음 타기는 어렵지만 그 이상의 다이나믹한 기술은 개발하기 좋다고 한다.
카이트서핑의 단점
단점 1. 반드시 필요한 강한 바람
카이트서핑은 윈드서핑처럼 파도가 없어도 파도를 탈 수 있다고 하지만, 대신 바람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바람이 없으면 연을 날리지 못하듯이, 대형 카이트를 공중에 띄우고 우리 몸을 끌어줄 만큼 충분히 센 바람이 필요하다. 보통 최소 10~11노트(약 18~20km/h)의 바람은 필요하고, 초급자의 경우 바람이 14노트(약 26km/h) 이상은 돼야 재밌게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바닷가에서 느끼기에 '이 정도면 바람이 꽤 부는데?'라고 생각한 날에도 바람이 약하다며 수업이 우르르 취소되곤 했다. 심지어 바람이 좋아 카이트서핑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해안가에서 말이다. 강사님은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하셨다. 늘 당일 아침 또는 전 날 밤이 되어서야 바람에 따라 수업 'Go' 사인을 주곤하셨고, 한 번은 강습 받는 해안가까지 갔는데 수업이 취소된 날도 있었다. 그래서 카이트서핑 일정을 계획할 때는 바람의 사정에 따라 수업이 취소될 가능성까지 염두해 두고, 여유있게 강습일정을 잡는 게 좋다.
단점 2. 내겐 너무 익스트림한 초급 코스
익스트림 스포츠도 보통 쉬운 단계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 예를 들면, 산악 자전거(MTB, Mountain Terrain Bike, 마운틴 바이크)는 경사가 덜 가파른 산에서부터 시작하면 되고, 클라이밍은 본인이 등반할 수 있는 쉬운 레벨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하지만 카이트서핑은 시작부터 너무 익스트림했다.
초급 코스에서는 육지에서 연을 조종하는 것부터 배우기 시작한다. 위 사진은 "Wind Window"를 설명하는 그림인데, 바람을 등지고 있는 상황에서 연을 초록색 라인을 따라 조종해야 연을 안정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초록 라인을 따라 시계를 상상하며 10시 방향 또는 2시 방향으로 카이트를 조종하는 연습을 했다.
하지만 카이트 조종을 연습하는 단계인 만큼, 강한 바람 속에서 때때로 연이 내 마음대로 컨트롤 되지 않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때 연을 잘못 조종하여 연이 노란색 또는 빨간색 구역으로 가면, 바람을 무척 세게 받아 순식간에 연에 이끌려 가게 되고, 심지어 날게 된다.. (Waterstart 보다도 플라잉을 먼저 하게 되는 매직이다..)
나는 수업 때 총 3명이서 하나의 연으로 강습을 받았는데, 여성인 내가 다른 성인 남성 2명보다 몸무게가 가벼워 연에 이끌리는 경험을 특히 많이 했다. 연이 바람의 힘을 받으면 나를 얼마든지 가뿐하게 들어올렸고, 연을 조종할 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이런 경험은 나를 겁먹게 했다. 강사님께서는 보통 체급 차이 때문에 여성분들이 더 겁을 많이 먹고, 이 때문에 배우는 데에도 보통 3~4일 정도가 더 걸린다며 위로해 주셨다. 연을 잘못 조종했을 때 살짝 휘청한 사람과 몸이 떠오른 사람에게는 심리적 차이가 있지 않겠는가.
육지에서 연을 어느 정도 조종할 수 있게 된 후에는, 물에 들어가서 연에만 의지하여 수영하는 Body Dragging 연습을 하고, Waterstart를 시작했다. Waterstart는 처음에 보드 위에 올라서는 데 필요한 힘을 얻는 기술이다.
우리는 총 4일동안 강습을 받았는데, 안타깝게도 4일만에 Waterstart까지 성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같이 간 친구의 경우, 코스 마지막날 Waterstart 성공에 가까웠는데 떠나야 해서 무척 아쉬워했다. 여러모로 강습일정을 여유롭게 잡고 가기를 추천한다!
카이트 서핑은 내가 지금껏 해본 그 어떤 액티비티와도 비교할 수 없는 어나더 레벨의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제주도에서 카이트서핑 강습을 하기도 하고, 동호회를 중심으로 카이트서핑을 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배울 때 무서웠지만, 이번 글을 쓰며 카이트서핑 영상들을 보다보니 또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과연 다시 도전해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