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눈_#6
수신료를 왜 내나
지인이 TV 수신료를 놓고 관련 기관과 싸웠다는 말을 들었다. 보지도 않고 TV조차 없는데 이걸 왜 내냐고 말이다. 요즘 TV는 노년층의 전유물이다. 사실 나도 안 본 지 벌써 몇 년 됐다. 유튜브 때문이라고만 하기엔 뭔가 더 큰 움직임이 무대 뒤에서 느껴진다. TV는 '아무나 다 본다'는 전제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는데 이 '아무나'가 이젠 없다. 그렇다. '대중'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 빨랫비누부터 '쇼쇼쇼'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모든 생산은 '대중'을 상대로 했다. 사람마다 입장, 수준, 목표가 모두 판이하지만 그냥 몇 가지 조건으로 평균을 내고 그것에 맞춰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 난 발이 300인데 마흔이 될 때까지 한 번도 보통의 신발가게에서 내 사이즈에 맞는 신을 산 적이 없었다 (이태원 왕족집 한 군데가 구원이었던). 비싼 술의 이름은 그냥 양주였고 커피는 인스턴트과 내려 마시는 '원두커피' 두 가지뿐이었다. '프라푸치노에 크림 절반만 올리고 시럽 한 펌프만 넣고, 그란데 사이즈로' 달라고 하는 요즘 주문법을 그 시절 사람들이 들으면 '미국 사람처럼 뭘 저렇게 유난을 떠나'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고 말았다.
나는 '그런 부류'인가
대중의 자리를 처음 이어받은 것은 segmentation(연령, 성별, 소비 습관, 지역 등으로 마케팅 대상을 세분화한 것)이었다. 클라이언트와 상담을 할 때는 안 빠지고 나오는 말이 'target이 어떤 그룹이냐'는 말이었다. 학교에는 우열반이 생겼고, 학군은 모두 같은 게 아니었다. (이 부분은 지금도 그렇다). 물건은 high-end 니 low-end 니 하면서 여러 종류에 여러 등급으로 세분화되었다. 새로운 물건은 새로운 페인포인트를 낳고, 그 페인포인트를 해결하는 새로운 상품이 끊임없이 줄을 이었다. 여기서 나오는 의문이 '도대체 우리는 어디까지 세분화의 가지를 뻗어 가야 하는가' 다. 이 질문은 대기업의 경영자만 하는 질문이 아니다. 동네 빵집은 빵을 어떤 사이즈로 몇 가지를 만들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청소용역 프리랜서는 입주청소, 에어컨 청소 외에 청소의 종류를 몇 가지로 세팅해야 할지 늘 고민한다. 이건 대 프리랜서의 시대, 소위 핵개인의 시대에 들어선 우리 모두의 질문이다. 여기서 잠깐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우리 마음이 향하는 곳
예전에 우리 회사에 신입 사원이 있었다. 난 그가 회사에 정을 붙이기를 바라며 유심히 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어떤 장면을 본 후로는 마음을 놓게 되었다. 우연히 그의 책상을 지나치는데 거기엔 집에서 가져온 의자 등받이, 허리에 좋다는 엉덩이 깔판, 책상을 일부 확장 시키는 장치, 모니터를 하나 더 달 수 있는 모니터 암, 일어서서 일할 수 있게 책상을 높이는 장치, 그 외에도 수많은 그만의 물품이 꽉 채워져 있었다. 물론 그가 사비를 들여 사거나 집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회사 책상을 '자기만의 업무공간' 그러니까 '자기 맞춤(customized)' 사무실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원래 내가 직원들의 '애사심'을 추정하는 비밀 바로미터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건 '회사에 얼마나 자기 물건을 들고 오나'이다. 이쯤 되면 내가 왜 이 직원의 회사 적응에 마음을 놓았는지 이해가 되실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결국 사람들의 속마음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곳은 Personalizaton/Customizaton (개인화/맞춤화)라는 것이다.
시대의 서막
Internet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homepage'의 유무가 중요하고, ChatGPT가 난리인 게 아니라 아이언맨의 자비스 같은 '나만의 GPT (이번에 결국 이 놀라운 기능이 추가되었다)'가 궁극의 이슈가 되는 것처럼 우리는 무엇을 팔던 개인 맞춤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 된다. 몇 달 만에 찾아간 고깃집 사장님이 '지난번에 오셨을 땐 살치살 2인분 드셨죠?'라고 알아 봐 주면 바로 그곳이 단골집에 되는 원리와 같은 것이니 새로울 것도 없지만 굳이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은 이젠 대중도 세분화도 다 사라지고 '개인화'만 남은 시장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상론 같지만 이 판타지 같은 세계, 그러니까 무엇을 팔아도 개인에 맞추어 팔아야 하는 세계는 이미 대문을 열고 우리를 빨아들이고 있고 우리는 그 태풍을 감당할 힘도, 그럴 필요도 없다. 모든 기술은 그곳을 향하고 있고 그곳에는 인간 최후의 욕망, 아니 이상인 '모든 환경의 개인 맞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TV는 석기시대 유물이 맞다. '대중'이라는 신화가 숨 쉬던 시절의.
글: 문단열
그림: 챗GPT